Switch Mode

Chapter 338

망인 (6)

우웅―

김연은 의식을 응집시키며 눈을 빛냈다.

눈앞의 그림자와 백골 사령.

사축기 수준인 둘을 보며, 그녀는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최근 막 천인기에 올랐다.

천인의 경지에 오르는 방법은 ‘한 가지 관념’에 대한 몰입.

그렇다면 그녀가 몰입한 감정은 무엇일까.

아마 서은현에게 그의 마음의 진실을 듣기 전이라면, 그녀는 어쩌면 막연히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진실을 듣고 감정을 관조하니, 그제야 김연은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뭘까.’

김연은 생각했다.

이 감정의 방향은 서은현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랑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이름. 이 감정에… 이름이 필요해.’

또한 이 감정은 괴군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감정은 집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이 감정은 동료들에 대한 신의를 품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스승에 대한 태도를 정하기 위해.

그리움을, 신의를 더더욱 굳게 다지기 위해.

김연은 이 마음에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그나저나 놀랍군. 그 악명 높은 기묘귀왕이 고작 천인기였을 줄은….”

음와와 백린이 각자 법보를 꺼내 들었다.

김연은 침묵하며 의식을 집중했다.

서은현이 그녀의 꿈속에서 무공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연아, 너는 수도 재능은 나보다 훨씬 높지만 무공 재능은…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야.

―헉! 그럼 어떡하죠? 무공을 익혀야 탈출 가능성이 생긴다고….

―걱정 마. 나도 둔재였어서 네게 가르치는 건 자신 있으니까. 일단….

그때의 서은현은 그녀에게 말했다.

―비익무를 끝없이 반복해 보자.

―네?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재능 없는 이는 끝없는 반복만이 경지에 이르는 최단거리야. 내가 경험해 봐서 알지.

그날부터 그녀는 서은현의 지도 아래에 끝없이 비익무라는 무공을 수련했다.

기이하게도 그녀가 배운 비익무는 괴군의 [그녀]의 움직임과 상당히 비슷했다.

동시에 그녀의 기묘성심전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어, 오히려 비익무를 익힘으로써 기묘성심전에 도움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는 했다.

처음에는 지루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부채 들고 계속해서 반복 동작이라니.

물론 그 당시에는 괴군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서 감지덕지해서 시키는 대로 했으나 별로 마음에 드는 행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지루한 행위도, 그녀가 비익무를 익히며 비익무의 어떠한 ‘경지’에 오르자 조금씩 잊혀 갔다.

비익무의 진의는,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게 아닌 동작과 동작이 ‘이어진다’는 것.

처음과 끝이 이어지며 손실된 힘이 다시 어느 정도 복구되는 게 비익무의 진의였다.

처음과 끝이 이어질 수만 있다면 부채를 들든, 창을 들든, 머리로 물구나무를 서고 팽이처럼 돌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비익무 자체는 공격력이 부족해.’

그렇기에, 그녀는 서은현 몰래 새로운 무공을 하나 배웠다.

스릉―

김연은 손을 늘어뜨렸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순간 네 자루의 암기(暗器)가 들려 있었다.

서은현이 만들어 준 비익무에, 그와 함께하며 홍범이 가르쳐 준 새로운 무공을 더해 익혔다.

서은현에겐 비밀로 하고 말이었다.

―김연 대인, 이 무공은 용형비호조와 투괴암기술이란 무공을 합친 무학입니다. 현재 익히고 계신 비익무는 대인의 기묘성심전을 훈련시키는 데에 잘 맞겠지만, 아마 직접적인 전투력이 확 올라가는 건 이 무공일 겁니다,

―아, 감사드려요.

―존칭하실 것 없습니다. 전 대인보다 어립니다.

―…아, 예…. 그, 그래도 존칭은 붙일게요. 어쨌든 그럼 이 무공의 이름은 뭐죠?

―이름은 짓지 않았습니다.

홍범은 김연 앞에서 수많은 무공을 펼쳐 보았다.

―주인님이 알려 주신 무공을 바탕으로 권법, 각법, 창법, 검법, 편법, 조법 등 다양한 무공을 만들어 보고 또 합치고 진화시켜 봤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름 붙인 건 하나도 없습니다.

―어, 어째서죠?

―흠, 글쎄요. 무학엔 이름이 의미가 없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 모든 무학을 통합하고 난 후에나 하나 정하려나요.

―대단하시네요. 은현 오빠도 알고 있는 거죠? 홍범… 씨의 그 무학들을?

―아, 주인님껜 비밀입니다. 나중에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싶어서 말이지요. 허허….

무시무시한 재능을 지닌 서은현의 요수, 홍범.

자칭 둔재에게 배운 비익무, 천재에게 비운 이 무공.

우우웅―

진법 안쪽, 그 전체를 김연의 의식이 메웠다.

그녀의 의식이 주는 압박에, 백린과 음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이게 천인기의 의식…?”

“말도 안 되는… 어쩌면 기묘귀왕은 그냥 경지가 떨어진 사축기가 아닙니까?”

김연은 옅게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말씀하실 여유가 있으신가 보군요.”

부웅―

다음 순간.

김연의 손끝이 두 귀물에게 휘둘러졌다.

콰아앙!

네 자루의 암기가 날아가는 듯하더니, 커다란 짐승의 발톱처럼 참격을 뿌렸다.

이미 천인기 수준에서 합체기급 의식을 지닌 김연의 공격은, 의식으로 가득 찬 진법 내에서 마구 증폭되며 내쏘아져 갔다.

“크윽, 이 무슨…!”

백린은 법보로 그녀의 공격을 막으며 헛숨을 들이켰다.

김연은 손을 늘어뜨렸다.

그녀의 손끝에선 의식의 실이 흘러나와, 기(氣)와 합쳐져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진 기사(氣絲)가 되어 있었다.

그 기사는 그녀가 꺼냈던 네 자루의 비도(飛刀)와 연결되어 있었다.

“크윽! 뭐냐, 그 사술은!?”

백린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고, 김연은 반대쪽 손 역시 늘어뜨렸다.

차랑―

그녀의 반대쪽 손에서도 네 자루의 비도가 기사와 연결되어 늘어졌고, 김연은 일순간 보법을 내딛으며 기사와 연결된 비도를 휘둘렀다.

“뭐, 일단 조법(爪法)이라고 해 두죠.”

후웅―

쿠과과광!

마치 거대한 발톱이 휘둘러지듯이, 총 8개의 참격이 둘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김연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수한 참격을 흩뿌리는 그녀의 춤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콰과과광!

진법이 참격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법에 틈이 생기며 백린과 음와가 도망칠 틈이 생겨났지만, 둘은 도망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진법에 틈이 생겼을지언정, 그녀의 영역에 틈이 생기진 않았다.

그녀의 비도가, 그녀의 [발톱]이 휘둘러지면, 참격이 흩뿌려진다.

그러나 참격은 또 다시 ‘이어진’다.

끊임없이 참격이 이어지며, 힘이 소모되지조차 않는다.

본래라면 그저 서은현의 산외산부진과 비슷한 절기인 비익무.

하지만 그런 비익무에 천인기의 공능이 더해지자 또 다른 특성이 생겨났다.

쿠구구구―

김연의 천기 유도에 의해 천지영기가 김연에게 끌려왔다.

비익무를 펼치며 힘은 거의 소모되지 않는데, 천지영기가 더더욱 끌려오자 김연이 가진 힘은 늘어만 갔다.

오히려 펼칠수록 강해지는 괴악한 절기가 완성된 것이었다.

두 귀물은 점차 강해지는 참격의 폭풍 속에서 도저히 벗어날 틈을 찾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크윽, 이렇게 당할 순 없어!”

“우리의 뒤쪽엔 백음역의 무수한 귀물들의 의지가 있다! 세뇌 따위나 시켜서 억지로 마음을 굴복시키는 마교인에게 패할 순 없다!”

김연은 그 말을 들으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세뇌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희 무극교단은 칠 주야 내에 20시진(40시간)의 근로 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모범적이고 선진적인 근로 시간을 준수하며, 매월 지급되는 합당한 임금, 교도들에게 제공되는 준수한 복지와 혜택 등으로 마음을 얻은 것일 뿐. 세뇌로 굴복시킨 게 아닙니다.”

“크윽, 도대체 무슨 언어를 쓰는지 모르겠군.”

“요사스러운 마교인의 단어입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백 문주!”

쿠구구구구!

그러나 그와 함께, 무수한 참격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두 사축기를 향해 쏘아졌다.

“크으으윽! 이 무슨 괴물 같은 힘을…!”

“무슨 힘의 출력이…!”

본래, 무림인과 수도자가 싸울 때는 무림인이 뛰어난 기교를 부려 수도자의 술법을 파훼하고, 수도자는 무림인의 기교를 압도적인 출력으로 으깨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김연의 무공이, 합체기급 의식을 지닌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압도적인 출력으로 수도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백린과 음와는 온갖 기교와 술법을 사용해 대며 김연의 참격 속에서 틈을 노렸다.

“저기다! 저기가 틈이야!”

“빨리 탈출해요!”

음와와 백린이 힘을 모았다.

두 귀물은 힘을 합쳤다.

거대한 백골 형상의 기운이 뭉쳤고, 그 위쪽에 시커먼 그림자가 덮였다.

거대한 흑골 형상의 기운이 진법의 한곳을 향해 날아갔다.

백린은 선량한 표정으로 노동을 즐기던 백골 사령들을 떠올렸다.

음와는 항상 복종과 순종을 미덕으로 삼던 순진한 귀신들을 떠올렸다.

두 귀물은 손을 맞잡고, 백음역의 평화를 기도하며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타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

번쩍!

마침내 두 귀물은 악랄한 기묘귀왕의 영역에서 벗어나, 그녀의 참격에 휩쓸리기 전 탈출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

뒤쪽에서 무너지는 진법을 쳐다본 둘은, 서둘러 무극교단의 중심.

마교주, 무극귀왕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헉, 허억, 헉….”

백린과 음와는 생전처럼 숨을 헐떡이며 달려나갔다.

“저, 저곳이….”

“무극귀왕의 거처…! 무극교전!”

둘은 시커먼 저주로 건물 전체가 덮여 있는 곳에 도착해 숨을 헐떡였다.

“역시 마교주답게 저주로 건물을 칭칭 둘러놓았군.”

“보기만 해도 사악한 저주군요. 얼른 뚫어요!”

두 귀물은 힘을 끌어올려, 건물을 향해 법보를 던졌다.

쿠과과과광!

그리고, 폭음과 먼지구름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어진 광경에 백린과 음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덩치가 큰 인영이 무극교전의 앞에서 둘의 법보를 막아 내고 있었다.

“저 자가 멸혼귀왕…?”

“우호법이로군요!”

그리고,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자, 잠깐…!”

“다, 당신…!”

그러나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후.

두 귀물은 법보를 막아 낸 이의 정체를 알아채고 화들짝 놀랐다.

둘의 법보를 막은 이는 위시혼이었다.

“시후종주! 뭐하는 짓이오!?”

“위시혼, 당신 설마….”

위시혼은 씨익 웃으며, 팔을 들어 보였다.

위이이잉―

위시혼의 전신에서 기묘한 회로가 빛을 뿜었다.

“아, 미안하군. 원래는 기묘귀왕이나 육극귀왕에게 처리를 맡기려 했는데, 기묘귀왕은 자네들을 놓쳐 버리고 육극귀왕은 할 일이 있다고 해서 말이지.”

백린과 음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위시혼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게. 자네 둘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교단 깊숙이 몰아넣으려면 희생하는 척하며 등을 떠밀 필요가 있었다네.”

두 귀물은 이를 악물었다.

생각해 보면 마교주를 습격하자는 제안을 한 것 역시 저 자였다!

“네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냐!”

“하하하! 교주의 은총을 받아 보았다. 과연 어마어마했지. 그리고 무극교단의 복지 역시 둘러보니, 본종보다 낫더군. 우리 종파의 강시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선물해 주기 위해 옳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우우웅―

위시혼은 자신의 회로를 빛내며 외쳤다.

“자, 봐라! 본래 사축기 중기에 불과했던 나지만, 기묘귀왕의 ‘시술’과 교주님의 ‘은총’을 하사받고 나니, 사축기 대원만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하하하!”

“크윽,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위시혼! 우리 함께 백음역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로 하지 않았는가!?”

“정의? 정의는 허약한 귀물들과 강시들에게도 좋은 육신을 제공해 주고 선진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무극교단이 정의였다! 너희 역시 무극교단에 합류해라. 이미 여기까지 온 것. 어차피 너희 둘은 빠져나갈 수 없다.”

우웅―

자신의 몸에서 빛나는 회로를 뽐내며, 위시혼은 두 귀물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안을 하겠다. 이왕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처지. 무극교단의 수호귀왕 직을 맡게 된 몸으로서, 너희에게 기회를 주지. 무극교단을 한 바퀴 둘러보며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 한번 무극교단을 탐방해 본 후 입교를 결정해라.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다. 백음역의 미래는 무극교단이야!”

백린과 음와는 분기탱천해서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사령 생물을 세뇌한 사악한 마교를 어찌 믿으란 말이오!”

“역시 위 종주도 세뇌당하신 거로군요.”

“쯧…! 어리석긴! 모두가 입 모아 말하지 않나! 세뇌가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 감화한 것이라고!”

백린은 귀화를 불태우며 언성을 높였다.

“벗이여! 도대체 어디까지 세뇌당한 거란 말인가!”

“…말이 안 통하는군. 좋다. 그럼 직접 무릎 꿇린 후 진실을 알게 해 주겠다.”

위이이잉―

위시혼의 전신에서 회로가 밝게 타올랐다.

세 귀물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 * *

우우웅―

김연은 귀물들을 놓쳤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수결을 맺고 있었다.

“옳지, 옳지. 잘 하는구나.”

그녀의 옆에선 연위가 김연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래, 진법은 그렇게 펼치는 게다. 안 그래도 의식 영역이 넓은 너라면 충분히 진법의 역량을 12할 이상 끌어낼 수 있을 거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가 금신천뢰문의 제자는 아니라서 뇌도공법은 못 가르쳐 준다만, 그래도 내 진법 지식은 가르쳐 줄 수 있으니 다행이구나. 이렇게 진법을 잘 배우다니.”

“과찬이세요.”

우우웅―

김연의 주변으로 기묘성심전의 의식 실이 마구 뻗쳐 나와 허공을 덮었다.

그녀의 의식 실은 허공을 뒤덮으며, 무극교단 전체를 뒤덮는 하나의 새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침입자는 빠져나갈 수 없게, 단단히 의식으로 허공을 엮고, 천지영기의 흐름을 유도해서 공간 자체를 분할시키면….’

키이잉―

김연은 진법을 완성시키며 웃었다.

“아, 완성했어요. 연위 님!”

“훌륭하구나! 후후, 아주 참한 녀석이군.”

연위는 그런 그녀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는 듯하더니, 은근슬쩍 질문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구나. 도대체 왜 저 서가 놈을 쫓아다니는 거냐?”

“에, 예?”

“솔직히 이해가 안 가서 말이다. 물론 저 서가 놈이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 맞지만, 머리도 19개고, 취미도 괴팍하고, 정신머리도 살짝 돌아있는 거 같지 않느냐. 고향에서부터 좋아했다 들었다만, 도대체 왜 저런 놈이 좋은 거냐?”

연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법 안쪽의 장면이 김연의 뇌리로 들어왔다.

백린과 음와가 ‘세뇌된 배신자’인 위시혼을 무찌르고, 마침내 무극교전의 저주 결계를 깨 버린 장면이었다.

두 명의 귀물이 무극교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저 둘이 들어가 버렸군. 저런, 이제 저 둘도….”

연위는 혀를 차며 두 귀물에게 동정의 의념을 내보였다.

김연은 연위가 진법 내부를 들여다보는 틈을 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은현 오빠를 좋아했지?’

그녀는 자연히 입사 초기의 기억을 되살렸다.

생각해 보면, 입사 초.

김연은 딱히 서은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 * *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일하게 된 인턴 조수현입니다!”

“오, 오늘부터 일하게 된 인턴 김연입니다!”

“오늘부터….”

비누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간 김연은 사실 조금 긴장했다.

‘영업 개발부 인턴….’

이 회사의 영업 개발부는 안 좋은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부장인 전명철은 주말 등산을 소집한다든가.

차장인 김영훈은 별말이 없지만 과장인 오현석은 사람을 빡세게 굴리기로 유명했고, 대리인 강민희, 전명훈 등은 한 명은 음침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그냥 최악’이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턴 여러분. 일단 오늘 다들 처음이시니까 크게 할 일은 없으시고, 그냥 오늘 하루는 저 따라다니시면서 배우신다 생각하세요. 아. 저는 서은현 주임이고, 서 주임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일단 다들 본인 책상들부터 확인하시고….”

서은현 주임.

눈 밑이 퀭하고, 커피와 각성 음료를 달고 다니듯이 살며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항상 기분이 안 좋은 듯한 그 남자.

김연은 첫날 서 주임에게 가장 먼저 찍혔다.

“김연 씨, 빨리빨리 좀 따라와 주세요. 지금 둘러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재고 관리도 우리가 해야 한다고요.”

“죄, 죄송합니다.”

“김연 씨, 그거 떨어뜨리시면 어떡해요! 빨리 비켜요.”

“김연 씨! 하아… 됐어요. 비켜요.”

김연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본인이 가장 먼저 떨어질 것이란 걸.

‘서 주임… 너무 무서워.’

커피를 먹으며 심심하면 ‘전명훈 엿 같은 새끼’를 읊조리는 서은현은,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다가가기 쉬운 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은 꽤 친화력이 좋은 탓인지 서은현에게 꽤 쉽게 다가갔다.

처음 사흘간은 가장 끙끙 앓았던 것이 김연이었다.

‘그냥 인턴 기간 안 채우고 나가 버릴까.’

그 당시 서은현은 부서 내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면, 가장 빡세게 일하는 사람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 밑에 배정된 김연은 자신이 일을 못 하는 사람인가 자괴감을 느꼈다.

서은현은 회사에서 한숨도 쉬지 않았다.

“저, 서 주임님. 점심시간 됐는데….”

“아, 김연 씨. 식사하고 오세요. 저는 이거 서류 작업 마치고 갈게요. 다른 인턴분들도 가서 식사하고 오세요.”

다른 이들은 그 말에 식사를 하고 왔지만, 김연은 그럴 수 없었다.

‘처음에 실수한 걸 만회해야 해!’

다른 이들이 나갈 때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대한 이를 악물고 업무를 끝마쳤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것 같아도,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도, 사약 같은 커피를 한 잔씩 들이켜며 버텼다.

서은현은 오며 가며 그녀를 흘긋 쳐다볼 뿐 별말이 없었다.

그렇게 인턴 기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쯤.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다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주임님….”

“하하. 주임님, 안녕하십…니까….”

처음에는 하나같이 서은현과 친해지려 했지만, 인턴 기간이 조금 지나자 서은현과 눈을 마주치려 하는 이들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서은현과 눈을 마주치는 건, 오직 김연밖에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주임님!”

“오, 김연 씨.”

서은현은 김연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이 서류 좀 과장님한테 전달해 주시고, 오늘 재고 창고 가셔서 재고 수량 체크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오시는 길에 탕비실 가서 커피도 좀만 가져다 주시면 정말 감사할 거 같아요.”

“네, 넵!”

눈만 마주치면 미친 듯이 일을 시켜 대는 게 서은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즐겁게 서은현이 시키는 일을 도맡아 하던 이들도 점차 체력이 바닥나서 서은현을 피하기 시작했고, 끝까지 서은현의 눈빛을 받아 내는 건 결국 김연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인턴 기간이 끝나갈 때쯤.

김연과 조수현이라는 인턴 둘을 제하고, 모든 인턴이 도망쳐 버렸다.

* * *

[도망쳐! 도망쳐야 해!]

[흐아아아아! 큰 귀신이다!]

무극교전에 들어갔던 두 귀물이,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에서 도망을 나오기 시작했다.

김연은 진법을 움직이며 눈을 빛냈다.

“어딜!”

키이이잉―

진법이 움직이며 수많은 실타래들을 풀어헤치며 귀물들을 향해 실을 뿜었다.

촤르륵!

두 명의 귀물이, 수천 가닥의 새하얀 거미줄에 묶여 버렸다.

쿠구구구구―

거기에, 무극교전 안쪽.

저주문으로 이뤄진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교주 서은현이 힘을 쓰고 있었다.

[어딜 가시나. 손님들께선 조금 더 무극교단을 탐방해 보시고 가시게.]

[흐아아아아아! 살려 줘!]

[흐, 흐아아으! 배, 백 수사!]

김연에게 잡혀서 꿈틀대던 음와가, 각오를 다진 것인지 두 눈에서 귀화를 밝혔다.

[잠깐, 음 문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당신이라도 가세요!]

화르르르르!

본인의 몸 전체에서 귀화를 뿜어내며 김연의 진법을 태워 버린 음와가 백린에게 달려들어, 그를 묶은 실을 태웠다.

그런 후 그녀는 백린을 진법 바깥을 향해 떠밀어 버린 후 서은현이 만들어 낸 저주의 손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제, 제가… 시간을 벌겠어요!]

[음 문주! 음와! 음와아아아!]

[하아아앗!]

음와를 덮고 있던 그림자의 장막이 저주의 손을 막아섰다.

백린은 피눈물을 흘리며 김연의 진법을 벗어나며 외쳤다.

[내가 다시 구하러 오겠소! 모두를 구하러 올 것이오!!]

콰아악!

저주의 손이 음와를 집어삼켰고, 음와는 저주의 손 너머.

그 저주를 발산한 ‘존재’를 느끼며, 다시금 지성을 잃어버리고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아! 키야아아아아! 캬아아아! 끼야아아!]

저주의 손은 음와를 천천히 무극교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런, 한 명을 놓쳤군요.”

김연이 눈을 빛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잡으러 갈까요?”

우웅―

그녀가 의식을 뻗치자, 무극교단 전체에 퍼져 있는 괴뢰들이 덜걱거렸다.

그러나 연위는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됐다. 마침 전명훈도 되돌아온 모양이군.”

쿠르르릉―

어두운 밤하늘 위쪽.

백린이 도망친 곳을 향해, 붉은 벼락이 번뜩였다.

“우린 이만 무극교전으로 가 보자꾸나. 보아하니 교주가 포로를 인형에 가둘 것 같은데, 시술을 도우려면 네 힘이 필요하니.”

“아하하, 사실 은현 오빠면 혼자서 하셔도 될 거에요.”

김연은 연위와 함께 서은현의 거처로 향했다.

* * *

서은현의 가혹한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인턴들을 제하고, 김연과 나머지 한 명만이 비누 회사에 입사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 진짜 입사해 버렸네.”

사실 김연은 굉장히 고민했다.

어차피 이 중소 기업 같은 중견 기업에서 버텨 봤자 의미도 없고, 노동 악귀라는 별명마저 있는 서은현 주임은 오늘도 퉁명스러운 태도로 그녀를 부려먹을 터였다.

“…아니야. 그래도 해 보자.”

하지만 김연은 이를 악물고 사내로 들어갔다.

어쨌든, 조금씩이지만 일도 몸에 익고 있었고 강민희와도 조금씩 친해지는 중인지라 조금만 더 다녀 보자고 생각하며, 그렇게 ‘사원’으로서 처음 출근한 그 날.

“아, 김연 씨 왔어요?”

“안녕하세요, 서은현… 주임…님…?”

김연은, 처음으로 웃어 주며 자신을 맞아 주는 서은현을 볼 수 있었다.

“입사 축하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어… 아….”

“부장님이랑 전명훈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사실 일을 안 하는 월급 도둑들이 많아서 저희가 조금 일이 빡센 편이거든요. 그래서 인턴분들한텐 항상 솎아내기식으로 조금 강하게 대하는데, 잘 버텨 주셔서 고마워요.”

김연은 서은현이 내민 손을 보며 왜인지는 모르지만 울음이 조금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정식 입사 축하드려요, 김 사우님. 어서 오세요.”

* * *

[아, 어서 오려무나, 연아.]

김연은 연위와 함께 교전의 지하실로 가, 서은현의 아래쪽, 수많은 저주문에 꽁꽁 묶여 있는 귀물을 바라보았다.

[일단 ‘시술’을 시작하자. 네 도움이 필요해. 저물도에서 괴뢰 재료들 좀 꺼내 주겠니?]

‘아… 그렇구나.’

김연은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이 언제쯤 서은현에게 반했는지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제대로 좋아하게 된 건, 수목원에 출장 가서였지만 어쩌면 정식 입사 첫날부터 흔들렸던 것일 수도….’

단순히 못살게 굴던 상사가 돌변해서는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해 준다는 것.

김연은 어쩌면, 그게 너무 기뻤던 것 같았다.

‘더욱더, 앞으로 더욱더 성장하자.’

그녀는 다짐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기로.

더욱더 성장하고, 강해지고, 경지가 높아져.

서은현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괴군에게까지.

그녀는 서은현과 함께 포로를 개조하며,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했다.

===

작가의 말: 호불호가 갈리실 것 같은 파트는 분량으로 밀어 버리겠습니다!

조금 지루하실 것 같아도 나름 빠르게 끝낼 예정이오니 모두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십시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