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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9

337. 소꿉 Ep – 노아랑 소야

안녕히 주무셨어요?

─ 라는 아침 인사와 함께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가 시작됐어야 했다.

잠은 얼마 못 잤지만, 레브는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걸 도와드릴 요량으로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뙇, 사제가 와 있었다.

“레브야, 사제님께서 급하게 찾으시는구나. 어서 나오렴.”

아이고, 두(頭)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시나리오가 시작된 지 고작 하루 만에 산골짜기 소년의 삶이 격변하고 있었다.

그저께의 레브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으리라. 필시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면피했을 것인데, 그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래 봬도 한 군단을 통솔해본 몸이다.

“네- 무슨 일이죠?”

“급한 일이다. 따라오너라.”

하지만 겉모습은 어쨌든 애인지라 사제는 하대했다. 레브는

– “아들, 무슨 사고 쳤니?”

눈으로 물어보는 어머니께 어깨를 으쓱하곤 따라 나갔다. 마침 옆집에서도 레슬리 수도사가 레아를 데려 나오고 있었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다.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내가 한 일이라곤 레아한테 고백한 거랑 레안한테 연락한 것밖에 없는데… 혹시 레안이 무슨 수작을 부렸나?

한편 레아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코코렌은 잘 떼냈어?” 물어보는 레브에게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사제의 뒤를 따랐다.

아마도 꿈을 꾸었기 때문일 테지.

레브는 말을 더 걸어보려 했으나 레슬리 수도사가 어깨에 손을 얹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교회에 도착해서 밝혀졌다.

“너희가 신탁을 받은 모양이더구나. 어제 성녀님께서 연락하셨단다.”

레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되묻는 건 레브의 몫이었다.

“그래서요?”

“성녀님께서 아침에 다시 연락하겠다 하셨으니, 기다리렴.”

“그럴 필요 없어요. 아니… 없을 것 같아요.”

그때, 레아가 나섰다. 그녀는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겠는지 말을 번복하고는 교회에 비치된 신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닿자, 레아는 다시금 몸을 떨었다.

꿈이… 꿈이 아니었구나!

어젯밤. 레아는 {신성}에 휩싸여 잠을 푹 잤다. 베개 대용으로 쓰는 소쿠리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꿈을 꿨는데, 오늘 레브가 고백했던 것의 영향인지 레브는 꿈속에서도 내게 고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그는 울고 있었고, 본인의 삶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노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고 꺼냈다.

당연히 나는 믿지 않았다. 때마침 (레브의 거울로) 떨어진 코코렌에게 짝짝 손뼉 쳐 행운을 기원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펼쳐진 말도 안 되는 모험담. 산골짜기 소녀와 소년은 길을 나섰다. 중간에 귀족들을 만나고, 복수에 미친 기사도 만났으며, 종국에는 ‘오리아스’라는 고대의 악신을 잡았다. 한 나라의 왕정이 추기경의 꼭두각시로 몰락하고 우리는 그곳의 귀족이 되어 살았다.

비참하게.

레아는 잠을 자는 내내 울었다.

그녀에겐 사랑스러운 딸이 있었고, 재간둥이 아들이 있었다. 그래. 있‘었’다. 그들은 정말이지 예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딸은 타오르는 벽난로에 머리가 박힌 채 발견됐고, 우물에 빠진 아들은 봄이 돼서야 묫자리를 찾았다.

범인은 불을 보듯 뻔했으나 남편은 레리아나 드 모나크 남작, 자작, 백작, 기어이 공작으로까지 올라선 ‘공주님’을 탓하지 않았다.

그녀와 사투를 벌여온 남편은

– “아하하하하하하하!! 레리아나! 레, 리, 아, 나! 이번에는 네가 내 가슴을 헤집는구나!!”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장례식을 마다하고 전장을 향했던 그는 레리아나 공작이 은퇴한 뒤에야 돌아와 딸과 아들의 유해를 화장했다. 그 뼛가루를 이로타시 강에 뿌리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의미를 다했다.

다시 또르륵, 눈물이 흐르고 레아가 만진 신물에서 빛이 뿜어졌다. 사제는 바보같이 중얼거렸다.

“서, 성녀?”

레아를 성녀로 착각한 걸까, 아니면 때마침 메리엘 성녀가 연락해온 거로 생각해 중얼거린 걸까. 뭐가 됐건 레아는 성녀와 대화하고 있었다.

레아가 기억을 되찾았구나!

홀로 회차를 반복하는 건 외로운 일이다. 레브는 드디어 레아가 저와 같은 감정선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반가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얹었는데,

– 탁.

레아가 어깨를 털어 그의 손을 쳐냈다. 그녀는 그와 같은 감정선 상에 있지 않았다. 이윽고 레아가 자리를 넘겨주며 말했다.

“사제님. 성녀님과 이야기하세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요.”

“레아야. 이게 대체…”

“수도사님. 죄송해요. 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

레아는 터벅터벅 교회를 나섰다. 레브는 레슬리 수도사와 어리둥절한 시선을 교환하고, 뒤따라갔다. 레아는 교회 앞 계단에 주저앉아 소매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우나? 우네.

“…레아.”

“지금은 말 걸지 마. 바보야.”

“…”

왜 울지?

엔딩 이후를 겪어본 적 없는 레브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레아는 한참이 흐른 뒤에야 “후아.” 고개를 들었다.

소매에 짓눌린 눈가가 아직 빨갛다.

“넌 우리 애들 이름도 모르지?”

“…!”

“‘노아’랑 ‘소야’야. 기억해 둬. 걔들은… 정말 예뻤어. 정말.”

“…그랬구나.”

“아니. 그럴 거야.”

레아와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녀의 눈은 또렷하고 단단해, 과거를 딛고 일어나 미래를 기약하는, 그런 눈이었다.

* * *

성녀는 무제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당장 필요한 건 그쪽 교회에 있는 걸 가져다 쓰고, 원한다면 주변 백 리 이내의 모든 교회로부터 재원을 징발해주겠노라 말했다.

여태 가만히 있다가 왜 인제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받아낼 건 많지 않았다. 아이셀 왕국까지, 어쩌면 아스란 왕국까지 다녀와야 하니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증명서와 넉넉한 여비 정도?

아, 그보다는…

‘벨리타 왕국의 왕이 악신이래요. 잡아달래요.’

레아를 시켜 고자질했다.

아스타로트를 잡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물론, 바로 거절당했다.

“그랬다간 비나르 님께서 자기를 가만두지 않으실 거래. 지금도 엄청 투덜대면서 쪼고 계시다는데?”

“…성녀가 신을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거야?”

레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또 뭘 달라고 할까?”

“음… 글쎄? 이제 된 것 같은데? 사실 이번엔 할 일이 별로 없거든. 아이셀 왕국에 가서 왕만 만나면 돼. 가능하면 아스란 왕국까지.”

“그게 할 일이 ‘별로’ 없는 거야? 왕도 왕이지만 대륙을 반 바퀴 넘게 돌아야 하는구만. 그럼 말이랑 마차를 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마차는 됐어. 말은 있고. 이제는 나한테도 ‘탈 것’이라는 업적이 있어서 말을 소환할 수 있거든. 되게 신기해. 나중에 보여줄게.”

“그럼 나는 어쩌고?”

“응?”

“난 말도 없고, 말을 탈 줄도 모른단 말야. 설마 그 말이 나까지 태울 정도로 튼튼해?”

“아… 그렇지는 않은데…”

말을 소환하면 십중팔구 반테가 나올 건데, 그 뺀질이가 레아까지 태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레이의 힘 좋은 흑마, 쿠스면 또 모를까.

다만 레아를 말에 태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어서, 레브가 다소 침울하게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못 가.”

“왜?”

“넌 수도교회로 가서 황동 술잔을 챙겨놔야 하거든. 이번이 우리한테 마지막 회차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바보냐? 황동 술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수도교회에 있는 거면 성녀님한테 보내 달라고 하면 되겠네. 잠깐만 기다려 봐…… 이런. 안 된다네. 그건 성물(聖物)이라, 아무나 운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래. 신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어쩌지?”

이번엔 레브가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은 서글프게. 마지막인데, 레아와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레브는 좀 화가 났다.

성물이라 ‘못’ 옮긴다고? 어김없이 치사하다 진짜. 전능한 신에게 ‘못’하는 것 따윈 있을 수 없었다.

성녀가 연락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깟 황동 쪼가리 좀 옮기게 해주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안 해주느냔 말이다. 피조물은 그냥 안 해주는 이유가 있겠거니… 스스로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레아랑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니니까.’

레브는 자신을 이렇게 설득했다.

잠깐, 아니, 일 년 정도 헤어진다 뿐이지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정도면 사람의 삶을 놓고 보았을 때 아주아주 ‘잠깐’이 아니냐.

사실… 아니다.

나는 엔딩이 나면 없어진다.

그 이후에 누가 살아가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엔딩이 나면 민서와 함께 뜯어지고, 사라질 터였다. 나에겐 그 ‘잠깐’이 삶의 전부였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 ‘나’라는 존재는 회차별로 뜯어진 정신들이 민서의 기억에 묻어 이어져 온 파편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엔딩이 난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우리는 고작 텍스트 몇 줄을 보았을 뿐인걸.

– “‘노아’랑 ‘소야’야. 기억해 둬. 걔들은… 정말 예뻤어. 정말.”

마음에 어둠이 스미려 할 때, 막 알게 된 아이들의 이름이 빛났다.

그래. 미래는 존재할 거다. 믿는 수밖에 없다.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으냐. 신이시여.

원통하다.

하지만 레브는 그 원통함마저 납득해버렸다. 장난감은 소모품. 쓰면 없어지는 것이니까.

아악-! 그때였다.

“어? 잠깐만. 종이, 종이.”

레아가 수선을 떨며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성녀와의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한 손은 신물에 댄 채, 다른 손으로 깃펜을 잡고 끄적였다. 레브는 종이가 밀리지 않게 잡아주었다.

“레브, 계산이 잘못된 것 같아.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지 않아?”

“…마지막이야. 다음이 약혼관계 시나리오 차례거든. 레이랑 레라가 마무리를 지을 거야. 우리도 함께하긴 하겠지만.”

“내 말이. 그러니까, ‘다음’ 약혼관계 시나리오? 가 남았다는 거잖아.”

“…? 그게 그 말이잖아. 다음이 약혼관계 시나리오라 우리는…”

레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게 아니라, 간단하게. ‘이번’이랑 ‘다음’ 두 번이 있잖아. 그치?”

“…그렇… 지?”

“그런데 왜 이번이 마지막이냐고! 이 바보 멍청아. 다음에! 그러니까 마지막 회찬지 뭐시긴지에서만 내가 수도교회에 가서 술잔인지 뭔지를 챙기면 되는 것 아니야?”

“…??”

“이번에는 갈 필요 없다는 거잖아. 맞지? 그럼 이번에는 안 갈래. 오케이? 다음에 갈게.”

“???”

“뭘 봐.”

“잠깐만, 레아야. 네가 이해를 잘 못 한 것 같은데, 한번 회차가 진행되면 다음에 그 시나리오는 전에 했던 방식으로 고정돼서 진행돼. 네가 이번에 수도교회로 가지 않으면 다음 회차에서도 가지 않게 될 거야.”

“누가 그래?”

“…누가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하고, 경험해서 알아낸 사실이야.”

레브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본인도 속이 답답한데, 레아가 이해하지 못하니 속이 더 탄다. 하지만 레아는 말똥하게 되물었다.

“그럼 그건 뭐야. 회차가 끝났을 때 다른 회차가 변경되기도 한다면서.”

“그건 그때 지난 회차에 영향을 줬을 때의 일이지.”

레아가 후- 숨을 내쉬었다. 볼이 뽈록, 살짝 화가 난 듯하다.

“그래. 영향을 주면 되겠네. 오케? 그리고 줄 방법도 여기 있네.”

“…없는데? 아! 거울로 연락해서 깨우는 방법이 있긴 해. 그런데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겨울에 시작…”

“그거 말고! 이거!!”

레아가 제가 손바닥을 대고 있는 신물을 가리켰다.

“이거란다. 여기 성녀님이 있잖아! 이분이 오늘 우리한테 연락을 했고, 성녀님은 시간의 영향을 안 받는다면서.”

“…어?”

“성녀님이 다음에 우리한테 말해주면 되겠네. 이번에는 내가 수도교회로 와야 한다고. 그럼 해결되는 것 아니야? 이 정도는 해주겠지.”

“…어어?”

“뭘 봐. 사람을 왜 그렇게… 꺅!”

레브가 레아의 뽈록한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풉! 붕어처럼 눌려 납작해진 얼굴을 당겨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

“레아! 역시 넌 천재야!”

다음 회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겠지만, 이번엔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눈속임에 불과한 일일지라도 매우 짧은 수명을 가진 신의 장난감은 기뻐해 마지않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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