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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0

338. 소꿉 Ep – 복사체

흐린 날이면 레아가 빵집에 온다.

하나의 명제와도 같은 이것은 매일같이 먹거리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그녀의 습성이었다.

그래서 빵집 아들 한스는 레아가 날품을 팔러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녀는 어머니가 아침 반죽을 끝낼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쳇. 오늘은 허탕인가.’

다른 건 아니고, 레아에게 말이나 걸어볼 요량이었다. 아침부터 빵집 귀퉁이를 어슬렁거리던 한스는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큰마을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꼈다가 다음에 써먹어야겠다.

그때,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는 디노 형이 보였다.

“얘들아! 빅 뉴스!! 레아가 신탁을 받았대! 글쎄 사제님이…”

“디노, 늦었어. 우리 안 그래도 그 얘기 하고 있었어.”

마을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밭일하러 몰려가는 중에 웅성웅성 떠들어댔다.

“사제님이 말을 빌려달라고 했다면서? 레아한테 준다고.”

“어. 근데 하나밖에 없는 말을 내줘도 되는 거야? 쟁기질이야 끝났으니 당장은 괜찮다만…”

“촌장님이 고민 중이시래요.”

“응? 이게 촌장님이 고민할 문제인가? 청년회에서 쓰는 거니까 우리 허락을 받아야지.”

“그 말 촌장님 꺼야. 엄밀히 말하면.”

“그래도. 가진 게 뭐가 중요해. 밭을 가는 사람은 우린데.”

어쩌고저쩌고.

한스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슬며시 일하러 가는 청년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었고(“한스. 네가 웬일이냐?”), 소문을 주워들었다. 그 소문은 결론적으로 레아가 조만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한스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밭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렇다.

그 이후 레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잘 다녀오겠노라 인사하고 다녔다. 레브도 그녀와 함께 돌아다녔는데, 그도 따라간다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탁을 받았으니 아마 루테티아겠지?

한스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큰마을로 달렸다. 밑에서 상술을 배운답시고 온갖 허드렛일을 해준 상인들을 찾아가 루테티아로 가는 상단에 끼어도 되겠느냐 물었다.

하지만 팔 물건도 없는 초짜가 상행은 무슨. 모두 거절당했다. 한스는 화가 나서 악을 지르다가 체념했다.

‘씨발… 신탁은 무슨 개 같은…’

닭 쫓던 개가 된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도 다를 바 없었다.

체념한 이들이 본능적으로 낮은 곳을 향하기 때문일까. 길을 잃어 방황하던 그는 어느덧 큰마을 토리돔의 어두컴컴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기엔 그늘진 세상의 주민이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어서 옵쇼! 혼자 왔어요? 아, 좀 어리구나. 처음 왔지?”

저열한 건달이다. 그는 일그러진 미소로 순진한 방문객을 반겼다.

하지만 상도(商道)와는 거리가 먼 호객행위. 건달은 손님의 주머니를 거리낌 없이 두드렸다.

이 어린놈에게 돈이 있는 걸 확인한 그는 어깨를 휘감으며 더 그늘진 곳으로 안내하려 했는데…

“한스. 거기서 뭐 해.”

“레, 레브!”

“그쪽 아니라니깐. 이리 나와.”

“그, 그렇지. 죄송해요. 제가 길을 잘못…”

“그래? 왜, 놀다 가지.”

한스는 머리를 낮춰 건달의 팔뚝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허사였다.

건달의 말도 더는 질문이나 권유가 아니었다.

“놀다 가. 어이! 거기, 너도.”

“저… 저기 그게 아니라…”

“됐어요. 우린 안 가요. 한스, 이리로 와.”

“아- 참 애새끼가. 좋게 말해줘도 못 알아먹네. 그래. 가라.”

건달이 한스를 놔줬다.

하지만 짤그랑, 한스의 주머니에서 돈 꾸러미를 챙겨간 뒤였고, 건달은 금액을 확인할 뿐 더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스는 “어… 어…” 주춤거리다가

“왜?”

건달의 싸늘한 눈빛 한 방에 기가 죽어 뒷걸음질 쳤다. 레브는 그런 한스를 말없이 잡아끌었다.

“…”

“…”

터벅터벅.

사촌이 보는 앞에서 호구 짓을 한 사내의 기분이 이럴까. 보조를 맞춰주는 레브의 걸음걸이가 괴로워, 한스는 끝내 억하심정을 털어놓았다.

“왜 말렸어. 어차피 뜯길 거 그냥 가게 내버려 두지.”

“저기가 어딘 줄은 알고?”

“어디든 뭔 상관이야. 이젠 레아도…… 아니다, 씨발.”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정처 없이 걷던 와중 여기가 지나쳤던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즈음에 레브가 입을 열었다.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내가 뭐.”

“상인들한테 푼돈도 못 받으면서 일해주고, 마을 사람들한테는 게으름뱅이 취급당하고.”

“이익. 누가 뭐라든 상관없어! 난 꼭 상인이 될 거…”

“장사 밑천을 모은답시고 이모네 빵집에서 남은 빵을 가져다 팔고. 그래서 그 돈은 지금 어디 있는데?”

“…”

“받아.”

“뭔데? 책이랑… 돈?”

“내가 틈틈이 모은 돈이야. 그리고 그건 읽어둬서 나쁠 것 하나 없으니까, 가져. 글은 읽을 줄 알지?”

“아니. 뭐야! 무슨 돈이 이렇게…”

“글도 못 읽으면서 무슨 상인이 된다고 그래. 먼저 공부부터 해. 난 이제 떠나니까. 잘 살아.”

은화 여덟 개와 동화 다섯 개.

레브는 본디 한스의 것임이 분명한 {초기 자금}을 돌려주었다. 호구처럼 살아가는 그를 위해 적은 {뒷골목의 규칙} 정보까지.

레브는 인연을 정리하고 있었다.

소꿉친구 마지막 회차. 다음 회차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될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가능한 한 꼼꼼하게, 한스가 매춘에 발을 들이지 않게 막아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레브와 레아는 마을을 떠났다.

마차를 타고 떠났는데, 마차는 토리돔 교회에서 마련해준 것이고, 말은 촌장이 구해준 녀석이었다. 그는 (청년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마을에 하나뿐인 말을 주기보단 큰마을에서 새로 사주기를 택했다. 그런데…

“…반테잖아.”

촌장이 사다 준 말이 반테였다.

레오가 반테를 처음 만났던 것도 토리돔에서 구입하면서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공교로웠다. 그땐 바르바토스의 매혹을 이용해서 아주 싸게 구했었다.

“이러면 탈 것 업적이 발동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휘파람을 불었지만, 마차에 매인 반테만 눈을 뒤룩거릴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브는 다소 곤란해졌다.

마차는 한 필로도 충분히 끌 수 있는 것을 골랐다. 하지만 반테를 소환해서 두 필을 붙이려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갈 길이 머니까.

“어쩔 수 없지. 그냥 가자.”

“쳇. 이게 이렇게 되네.”

레브는 아쉬움에 투덜거렸다.

소환하거든 평야를 가르며 달려오던 흑마, 쿠스와 달빛처럼 홀연히 등장하던 백마, 우디.

레아한테 멋있는 걸 보여주려 했는데 아쉽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레브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 히힝?

마차를 몰고 가길 잠시 가까운 냇가에 게으른 갈색 마, 반테가 빈둥거리고 있었다.

레아는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게으른 친구구나.”

“아씨. 야! 너 이리 안 와? 모양 빠지게스리.”

레브는 또 다른 반테를 잡아 마차에 달았다. 그렇게 약삭빠른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는 동쪽으로, 머나먼 여행을 시작했는데…

두 반테는 외모는 물론 걸음걸이며 행동거지까지 완벽하게 동일했다.

마치 틀에 찍혀 복사된 것처럼.

– 히히힝!!

– 히히힝!!

* * *

레브와 레아가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에 도착했을 때는 낙엽이 울긋불긋해져 가는 가을이었다.

한 달이 넘게 쉬지 않고 달려왔음에도 그랬다. 대륙은 무식하게 넓었고, 레브의 시간은 촉박하기 그지없었다.

이를 의아해하며 레아가 물어보았다. 레브가 하리에 가이단과 팔라스 테르탄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고 제안했을 무렵이었다.

“왜 그렇게 급한 건데? 엔딩은 내 직업이 결정되거나 결혼해야 나는 거라며. 끝나는 시간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다음 회차랑 시간을 맞춰놔야 하거든. 아스타로트를 잡으려면 우리도 어쨌든 벨리타 왕국으로 가야 하잖아.”

다음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겨울에 시작된다. 레이는 레라를 여차저차 설득해서 오르빌로 향할 것인데 그 시간을 맞춰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 그러네. 그 레라라는 사람은 꿈을 안 꾼다고 했지, 참.”

“맞아. 걔를 데리고 다니기가 좀 힘들거든. 그러니 우리 쪽에서 최대한 서둘러서 맞춰주는 수밖에.”

“흠~ 알겠어. 하지만 저 사람은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레아가 저 멀리 손가락질했다.

거기엔 이로타시 강을 건너는 팔라스 테르탄 일행이 있었고, 레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오리아스가 없거든.”

전에는 오리아스의 계획에 따라 팔라스가 붉은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게 하리에에게 넘어가고, 하리에와 팔라스는 헤어져서 각자 돌아가야 했는데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공작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며 함께 콘라드 왕국으로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바르트 경을 만나 목걸이를 빼앗기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레브는 신이 안배해둔 순리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신이 점지해준 사랑.

하리에와 팔라스가 돌아오게 했다. 그들을 바르트 경과 만나게 하고, 목걸이는 복수에 미친 그 기사에게 넘어간다.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이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붉은 보석, 오리아스의 목숨줄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리아스를 소멸시키기란 매우 요원한 일일 터였다.

사람의 목숨과 감정을 장기 말처럼 다루는 주신. 하지만 오리아스가 잡힌 지금은 모든 것이 순리를 되찾은 듯했다.

저기 가는 팔라스는 하리에를 만나 다시금 사랑에 빠질 것이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허락을 받으려 움직일 것인데… 여기서 레브는 달갑잖은 감동에 휩싸였다.

그들은 아마도 하리에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지. 아들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시에라 가이단은 살아있었다면 아들과 비슷한 또래였을 레브를 보고 정신을 차리었었다.

그리고, 팔라스 테르탄은 레브와 나이가 같았다.

하리에보다 세 살이나 연하. 그가 그녀에게 안배된 까닭이었다.

‘…생각해보니 바르트 경도 멀쩡히 살아가고 있겠구나.’

오리아스가 없으니, 에릭 왕자가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와 레리아나 드 예리엘 공주를 데리고 달아났던 근위기사들도…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오리아스의 존재 여부가 이렇게 거대했었다.

뿌듯하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하면. 지나고 나니 추억이더라, 는 말같잖은 소리다.

그렇게 레브와 레아는 소개팅하러 가는 팔라스를 지나쳐 강을 건넜다.

그때는 레아도 꿈을 대부분 꿔 둔 상태여서 강기슭을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레브는 푯푯푯푯, 물수제비로 그녀의 시선을 돌렸다.

레아는 빙긋, 웃었다.

고맙게도.

그리고 다시 지금. 레아는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에 입성해 주위를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십자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시간이 없지 돈은 많은지라 레브는 맛있어 보이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집어 레아의 손에 들려주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

“레안을 만나러 가야지. 왕성에 들어가야 하는데… 성녀가 준 통행권으로는 무리겠지?”

“가능이야 하겠지만 교회로 며칠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번거롭지.”

“흠… 그럼 그냥 들어가자. 인가를 받겠답시고 며칠씩이나 허비하는 건 좀 그렇네.”

“마차는 어쩌고?”

“어차피 밖으로 나가야 해. 비밀 통로가 도시 외곽에 있어.”

잠시 후, 레아가 우와- 감탄했다.

“이게 비밀 통로야? 신기해! 좀 무서워!”

“조용히 해. 거의 다 왔어. 이쪽은 우물이랑 연결된 거라 조심해야 해. 이제 여길 올라가면 정원이 나오… 이런.”

마른 우물에서 고개를 들자 사람이 보였다. 외모가 많이 달라졌지만 레브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바르트 경이 우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무시간이 아닌 척하느라 사복 차림으로.

비밀 통로 순찰을 도는 중이었나 보다.

당연히, 그의 눈에는 레브가 침입자로밖에 보이지 않는지라 스르릉- 검을 뽑았다. 소리는 치지 않았는데, 침입자가 한두 명 있는 것보다 비밀 통로의 위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더 손해이기 때문이리라.

바르트는 침입자들을 때려잡으러 우물로 뛰어내렸다. 레브는 바짝 긴장했다.

소드마스터를 빼면 아마도 적수가 없을 최강의 기사다. 오러블레이드를 쓰지 못하는 이상 레브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해서 그가 내려서기 무섭게 걷어찼는데…

“엌!”

“엥?”

바르트는 발길질에 채여 기절해버렸고, 레브는 ‘이걸 맞아?’ 당황해 더듬거렸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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