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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1

339. 소꿉 Ep – 예리엘 왕가

“어… 치료를 해줘야 할까?”

“…아니. 일단 가자. 내가 먼저 올라갈게.”

차라리 기절해줘서 고맙다. 레브와 레아는 실신한 바르트 경을 두고 우물을 기어올랐다. 우물이 그리 깊지 않은 데다 간간이 홈이 파여 있어서 금방 올라설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레브는 의외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정원에 나무들이 있지만, 완전히 숨어서 이동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어차피 성벽에서 근무 중인 근위병들 눈에 띌 거라 두리번거리면 수상쩍기만 할 뿐이었다.

해서 차라리 나무가 아닌

“저 사람들은 뭐야? 옷차림이 좀 이상한데?”

“누구 가족들이 면회를 온 모양이지. 시녀나 하인을 더 뽑았다던가.”

일상에 몸을 감추는 편이 나았다.

레아는 이 상황이 굉장히 재미있는지 걸어가는 내내 숨이 거칠고, 홍조가 만연했다.

“너 꼭 도둑놈 같애! 여유가 아주 만만한 대도둑놈.”

“흐흐. 남이사. 하지만 조심해. 걸리면 레안이 곤란해질 거야.”

이윽고 그들은 왕궁 돌벽 아래에 도착해 왕자의 방을 찾아 돌았다.

에릭 드 예리엘이 사용했던 방은 남향. 방 일부가 테라스처럼 튀어나온 곳이라 위를 올려다보며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이 근처에 종을 묻어두겠다고 했는데. 아! 저기네.”

누가 봐도 땅이 파헤쳐졌다는 걸 눈치챌만한 곳이 있었다. 레브가 거길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쓱쓱 파내자 손아귀에 딱 잡히는 크기의 종이 나왔다.

이걸 던지라고 했지.

“던져놓고 기다리면 되나?”

“그런가 보지. 그럼… 합!”

고작 3층에 불과하지만 왕궁이라 높이가 상당했다. 레브는 창문으로 쏙 들어가게 던졌는데…

“하하! 왔구나!”

종을 낚아채는 손이 있었다. 왕자, 레안 드 예리엘이 턱을 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태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다. 하긴, 그에게도 {추적술}이 있으니까.

“레아도 왔네. 조금만 기다려. 곧 사람이 갈 거야.”

무어라 말했는지는 잘 안 들렸다. 높이가 너무 높아서. 하지만 제스쳐를 보고 알아들었다.

레안이 손가락질한 방향에서 어느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종이다. 산티안 라우노는 당연히 아니고, 우리 또래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왕자님께 안내해드리죠.”

“네. 부탁드립니다.”

왕자의 시종이니 십중팔구 귀족이겠지. 레브는 말을 삼갔다.

더군다나 레안 같이 후계가 유력한 왕자면 서자나 둘째가 아닌 적통일 가능성이 컸는데, 역시나 청년의 행동거지가 범상찮았다.

그는 레브의 검을 수거하고, 둘을 안내하던 중에 충고했다.

“왕자님께서 무슨 연유로 당신들을 초대했는지 모르겠으나 몸가짐을 바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스스로를 너무 특별히 여기지도 말고요.”

“…어째서 그렇죠?”

“왕자님의 취미니까요. 공주님이랑… 여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러실 테니, 당신은 운 좋게 왕자님을 만나 오늘 하루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런 건 왜 묻죠?”

“값비싼 충고를 해주신 분의 존함을 기억하고 싶어 그렇습니다.”

“…흠. 전 ‘데비 아르네’라 합니다. 그럼.”

흑색 눈의 청년은 레브를 품평하듯이 훑어보고는 몸을 돌렸다. 한편 레브는 그의 이름을 통해 콘라드 왕국의 권력 구도를 얼핏 엿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데니스 아르네 후작의 첫째 아들이다. 역사가 바뀌기 전에는 아르네 후작을 수도에서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르네 후작가의 후계자가 왕자 곁에 붙어 있다는 건 파벌이 없던 이곳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역사가 바뀌기 전에는 라퍼트 테르탄 공작이 단일 파벌로, 정계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르네 후작가가 레안의 편인 건가. 선상 생활을 시켰어야 했을 아들을 시종으로 붙여두기까지 한 걸 보면.

그럼 테르탄 공작가는 역시 에릭 드 예리엘 왕자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걸까?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레아가 “와아…” 많은 부분이 목재로 장식된 루티나 왕성을 감상하는 사이 레브는 잡다한 생각을 하며 걸어 나갔다.

이윽고 2층. 레안 왕자는 몸소 제 방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에 내려와 있었다. 그랬는데…

“허어?”

“레브, 반가워. 레아 씨도요.”

“너 키가 좀 컸다?”

“응?”

“이 무엄한!!”

“하하하! 데비, 그만. 자네 상대가 아니야. 레브, 자넨 용서하시게.”

레안은 오히려 검을 뽑아 든 시종을 말렸다.

비록 살상력이 적은 의장용 검이라지만, 저쪽은 무장 해제된 일개 평민에 불과한데… 데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돌아가고, 레브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널 꽤나 좋아하나 보군.”

“그렇지만도 않아. 보기보다 잔소리가 많거든. 그보다… 하하! 그래. 내 키가 좀 컸지.”

“나보다도 큰 것 같은데? 히야… 이런 날도 오네. 아! 맞다. 오는 길에 바르트 경을 만났어.”

“…저런. 어디다 뒀어?”

“우물에.”

“데비를 괜히 보냈군. 잠깐만. 내 방에서 기다려.”

레안은 잠시 바르트 경을 처리(?)하러 떠나고, 레브와 레아는 왕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멋지다!”

“흐음… 레안이 이런 취향이었는 줄 몰랐네. 아니, 바뀐 건가?”

레브가 기억하는 레안은 대단히 검소한 왕자였다.

사치를 부릴 여력이 있던 적도 드물지만, 기회가 있어도 자신보다는 동생을 위해 쓰곤 했다.

해서 은연중에 살풍경한 방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이거… 보석이야?”

“보석은 아니고 원석인 듯하네.”

하지만 레안의 방은 다분히 사치스러웠다. 루티나 왕성의 분위기에 맞춰 레안의 방 역시 따뜻한 색감의 목재로 가득했지만, 군데군데 커다란 원석이 박혀 있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 색이 짙어서, 얼핏 보아서는 나무로 착각할 법하다.

티가 나지 않는 사치스러움.

레브가 레안의 성향을 파악하고, 레아가 왕자의 방을 한창 신기하게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한 인물이 뛰쳐 들었다.

“오빠! 나 낮잠 잤는데 이번에도 재밌는… 어라? 너흰 누구세요?”

레브와 레아는 일순 경직됐다.

레브는 레리아나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서였지만 레아는

“…허억!”

치미는 감정으로 몸을 떨었다.

꿈에서 본 그 고약한 공주 공작님이 되돌아왔다. 그녀의 눈은 태양처럼 번쩍이는 황금빛, 순진해 보이는 미소 뒤에 영악함이 묻어 있었다.

레아는 떨리는 팔을 추스르며 레브의 뒤로 몸을 숨겼다. 레리아나는 그런 그녀보다는 레브에게 관심을 보였다.

“흠- 분명히 꿈에서 본 얼굴이야. 네 이름이 혹시… 레브야?”

“…그렇습니다.”

“맞아? 맞다고? 와우! 평민이지?”

“네.”

“하하! 꿈에서는 아닐 때도 있드라구. 거참 신기하네… 아, 그보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레리아나 드 예리엘이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주님. 절 어떻게 아시는지는 몰라도 저는 레브이고, 이쪽은 레아입니다.”

레리아나가 고개를 까닥했다.

“너도 반가워.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었어? 여긴 내 오라버니 방이야.”

“왕자님께서 저희를 초대하셨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기다리던 중이었네요.”

“그래? 흐음… 알았어. 오빠한테나 물어봐야겠네. 만나서 반가웠어.”

용건이 다하자 레리아나는 고개를 획 돌려 떠났다. 레아는 그녀가 떠나자마자 털썩, 군데군데 흑요석이 박힌 나무 바닥에 주저앉았다.

“레아! 괜찮아?”

“어, 응. 좀 놀라서 그래. 저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네.”

“…”

레브는 어떻게 위로해줄 말이 없어 침묵했다. 레리아나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에 동의할 수가 없어서 더 그랬다.

한껏 상쾌해진 미소.

그 코찔찔이 동생이. 말수가 적고,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던 동생에게서 더는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레브는 솔직히 감격스러웠다.

레아는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의 레리아나만 본 거다. 레리아나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레브에게는… 바짝 마른 오물투성이, 지난 회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동생을 용서할 수 있었다.

되려 또각, 또각, 뒤돌아 떠나가던 구두 굽 소리에서 다 큰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감성마저 느꼈다면 주책이겠지.

레브는 레아를 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팔을 주물러주었다. 레안은 생각보다 늦게 되돌아왔다.

“오래 기다렸지? 가자.”

“어? 어딜. 그 전에 우리 할 이야기가 있는…”

“따라와 보면 알아.”

왕자는 밑도 끝도 없이 레브를 잡아끌었다. 레브는 도로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투덜댔다.

“가만 보니까 너 아주 못된 버릇이 있구나. 사람 말을 좀 들어. 네 마음대로 하지 말고.”

“알아. 지난 회차 이야기를 듣고, 아스타로트를 잡을 방법이 뭐였는지 알려달라는 거잖아.”

“잘 아네. 그럼…”

“뭔지 대강 알았어. 네가 날 깨워준 이후로 오르빌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거든. 아스타로트가 전쟁을 아이셀 왕국이랑 벌이는 거로 바꿨더라. 그게 녀석의 실수야.”

“…왜?”

레안이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콘라드 왕국의 왕자이니까. 길버트 포르테가 이이나 이사도라와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아들이니까. 그리고 타티안 후작이 뭘 원하는지 알아냈으니까!”

하하하하하하하!

레안은 도로 뒤돌아서 걸었다. 레브는 그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이곳은 왕궁, 경계가 삼엄했다.

근위병과 근위기사가 갈수록 빽빽해지는지라 레브는 그 무엄한 생각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왕궁을 그야말로 직선으로 가로지른 레안이 두 사람을 안내한 곳은…

“알현실?”

3.5층. 왕과 왕비가 귀빈을 맞는 곳이었다. 대문은 왕자가 접근하자 저절로 열리었고, 레안이 안면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네도스티아 후비마마! 데려왔습니다. 우리 왕국 최강의 기사를요!”

“???”

활짝 열린 대문. 그 너머엔 휘황찬란한 알현실과 자넬 꽃이 하얗게 수놓아진 소파들, 두 명의 아름다운 여인과 이 나라의 지배자가 있었다.

병으로 쓰러져만 있던 왕과 매번 사망한 상태였던 아이나스 드 예리엘 왕후, 그리고 네도스티아 예리엘 후비였다. 오리아스가 사라지며 많은 게 변한 것인데, 거기엔 레브가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에릭 드 예리엘 왕자였다.

그는 어머니인 네도스티아 후궁 곁에 서서 레안과 레브, 레아를 깨끗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레안이 이어 말했다.

“이분이 에릭 형님을 오프론티스까지 모셔다드리고,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와 만날 때까지 안전하게 호위할 겁니다. 이분의 실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오프론티스는 아이셀 왕국의 수도다. 엘리카 드 이사도라는 지난번에 에릭 왕에게 시집왔던 공주고.

하지만 나한테 뭘 또 시키려는 건지. 레브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쉴 틈 없이 쓰인 금붙이와 콘라드 왕국에서는 특히 귀한 대리석, 시선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왕(王), 따뜻한 미소로 공기를 데우는 왕비, 눈부시게 아름다우나 칼같이 단단한 인상의 후비, 왕이 앉은 소파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레리아나와 그녀의 농담에 난처하게 웃는 에릭 왕자까지.

헤진 면 신발에 초라한 가죽옷을 입은 레브는 마찬가지로 그러한 레아가 부끄럽지 않게, 그녀의 곁에 달라붙었다.

그는 정말이지 아오! 레안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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