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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1

망인 (9)

귀료역.

흑색귀골궁의 지부.

그곳에 있는 섭명함의 함장이자 남색 원로인 차조귀는 두개골로 된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꽃과 나무가 즐비한, 명귀계만의 운치가 있는 정원을 감상하며 그는 끌끌 웃었다.

“으음, 천지귀기를 보아하니 백린 그 친구가 경지를 찾았나 보군.”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부관을 보며 말했다.

“그가 이제 돌아와서 또다시 백음역 침공을 설득하겠어. 자네는 어떻게 설득할 거라 생각하나?”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의 모습을 한 부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아마 백음역에 자리잡은 사교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논리적으로 그 사교가 명귀계 전체에 어떤 해악이 되는지를 설파할 겁니다. 그리고 백음역의 공령지를 얻어 생기는 이익, 유명귀궁과 봉래도의 불가침 영역인 백음역을 치면 두 세력의 자존심을 꺾을 수 있다는 둥의 주장을 들고 올 것 같군요.”

“쯧쯧. 약하군, 약해. 천인기 때에 받은 은혜 덕에 말을 들어주곤 있다지만, 솔직히 그런 빈약한 주장으로는 본궁을 설득시킬 수 없어. 내 생각에는 아마, 5, 600년 정도 꾸준히 같은 주장을 하면 본궁에서 그 의지를 봐서 소규모로 병력을 파병할 것 같긴 하다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차조귀는 술을 한 모금 넘기며 물었다.

“그럼 자네가 보기에 어찌하면 본궁에서 그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겠나?”

“흠, 아마 백맥문의 모든 비술을 본문에 넘기고, 본인이 흑색귀골궁의 노예가 되기를 서약한 후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준다면… 가능하겠지요.”

“개열기 진인의 시선을 받아 침식당하는 그 [실험] 말인가? 쯧, 상부에서는 너무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시는군. 자발적으로 침식을 당할 미치광이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노예들조차 해방시켜 준다 해도 그것에는 참여하기를 꺼리는데.”

“하하, 그러니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이제 앞으로 저 친구가 계속 나한테 찾아와서 5, 600년은 찡얼거릴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차조귀가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콰앙!

차조귀의 정원 한 구석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마침 왔군.”

차조귀는 혀를 차며 먼지구름 속에서 흉흉한 귀광을 흘리며 걸어나온 백린에게 말했다.

“그래, 경지를 찾은 걸 축하하네, 친구. 이전에 부탁한 대로, 흑색귀골궁이 백음역의 무극교단을 사교로 지정하게 하고 근시일 내에 사교를 토벌하러 간다는 소문을 흘려 줬네. 하지만 이전에 미리 말했었지. 그건 그저 표면적인 소문일 뿐이고, 진짜로 본궁을 설득하려면 몇백 년이 걸릴 게야. 그러니까 너무 급하게 얘기할 것 없네. 같이 술이나 한잔하면서….”

“백맥문의 모든 걸 바치겠네.”

“…엥?”

“그리고 흑색귀골궁의 노예가 되겠어.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무엇이든, 무엇이든 감내하겠네!”

백린의 눈두덩이에서는 시뻘건 귀화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엉망으로 구겨진 기록부가 들려 있었다.

[제발 부탁이네! 부디 내 동료들을 잡아먹어 버린, 그 괴물 같은 마교를 토벌해 주게!!!]

차조귀는 잠시 멍하게 백린을 쳐다본 후, 부관과 눈을 마주쳤다.

“…음, 일단 본궁에 연락해 보게나.”

* * *

“비상! 비상입니다!!!”

나는 무극교전의 지하에서 귀왕화를 풀지 않은 채 38개의 안광을 빛냈다.

저주인형을 입은 무극교전의 시종 한 명이 내게 달려와 고했다.

“현재 백음역의 북쪽, 흑색귀골궁 측에서 섭명함 한 대와, 남색 원로 셋, 흑색 원로 30명을 백음역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교, 교주님! 비상입니다! 현재 남쪽, 유명귀궁 측에서 1명의 합체기 귀왕과 10명의 사축기 귀왕을 백음역으로 이동시킨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교주님!!! 봉래도 측에서 합체기 귀왕 1인, 사축기 15인의 병력을 이끌고 동쪽에서 백음역으로 전진하고 있다 합니다!”

톡톡―

나는 교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어떤 세력이 가장 먼저 움직였지?]

“흑색귀골궁입니다!”

[하면 흑색귀골궁이 움직이자 나머지 세력이 자극받아 오는 거라 봐야겠군.]

“예, 하지만 세 세력 다 일단은 백음역의 사교 토벌이란 명분을 걸고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단 우리를 쓸어버린 후 자기들끼리 삼파전을 벌여 백음역을 차지하겠단 소리로군.]

나는 눈에서 귀화를 피워 올렸다.

‘합체기 다섯, 사축기 55명. 거기다가 흑색귀골궁은 섭명함까지 한 척 끌고 오고… 유명귀궁과 봉래도 측에서도 그에 준하는 걸 끌고 올 예정인 것 같은데….’

나는 히죽 웃었다.

[충분하군.]

그 정도라면, 거사를 치르기에 충분한 전력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보살필지어다.]

나는 교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홍범, 때가 왔다. 준비해라.]

“예, 주인님.”

홍범은 공령지에 다가가, 이전부터 준비해 두었던 인력을 통해 공령지와 백음역의 용맥을 엮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난 시종들을 지나쳐, 무극교전의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쿵!

그리고 무극교전의 앞쪽에 도착한 나는 대호법과 좌우호법들, 그리고 수호귀왕 전원에게 전음부를 사용했다.

[집결하라.]

콰르르릉―

하늘에서 붉은 번개가 번뜩이며 여섯 개의 그림자를 달고 있는 전명훈이 떨어져 내렸다.

이어,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 기운을 흘리는 오현석이 반쯤 거인화를 시전한 채 걸어왔다.

철컹, 철컹, 철컹!

무수한 저주인형이 지고 있는 가마를 탄 김연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고 있던 연진도 헐레벌떡 뛰어왔다.

번쩍, 번쩍!

귀기를 뿌리는 둔광이 터져 오며, 12명의 수호귀왕 역시 어느새 내 앞에 도열했다.

[모두 들어라.]

나는 38개의 안광을 번뜩이며 외쳤다.

김연이 내 목소리를 받아, 백음역 전역에 설치한 진법과 연동시켜 곳곳에 내 목소리를 전달했다.

[현재, 유명귀궁, 봉래도, 그리고 흑색귀골궁 등, 명귀계 사대세력 중 3곳이 우리를 공적으로 지정하고 토벌하러 오고 있다.]

내 말에 백음역 전체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들어라.]

쿠구구구구!

내 발밑에서 6개의 그림자가 뿜어져나왔다.

파직, 파지지직―

흑뢰를 머금은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은 내 죽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콰앙!

내가 발을 구르자, 내 발밑의 그림자는 백음역 전체로 뻗어 나갔다.

명귀계의 낮에는 하늘의 시선들 때문에 내 죽음을 인지하는 이들이 없다.

하지만 육극음뢰신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주 살짝 내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는 건 가능했다.

싸아아아아―

내 그림자로 뒤덮인 백음역의 귀물들이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직접적으로 내 죽음을 느끼진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고 조용해진 것이었다.

여기서 더 죽음을 드러내면 발광하다가 백음역에서 달아날 터였지만 내가 아슬아슬하게 조절한 탓에 그러진 않았다.

[명귀계에는, 한 마리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움찔!

전명훈과 김연, 오현석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유령에겐 여러 이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 현재 그대들이 느끼는 것이다.

유령의 첫 번째 이름은 횡사요절(橫死夭折)이다. 그대들은 횡사당하고, 요절당해서, 한을 가지고 귀물이 되어 명귀계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삶을 누리고 싶어서 명계의 인력을 피하려 늘 노력해 왔다. 하지만 명귀계에서도 죽음의 인력을 피하기는 늘 어려웠다. 그대들은 언제 어느 날 인력에 끌려 명부로 가 심판을 받을지를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본교에서는 그대들이 안정적으로 삶을 누릴 수 있게 육신을 주었다.

유령의 두 번째 이름은 질병(疾病)이다. 그대들은 이미 죽어 몸의 병은 걸릴 일이 없다. 하지만 그대들은 죽는 순간 사무친 한을 가져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되었다. 그 사무친 한은 마음의 병이다. 나 역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무친 한을 가진 적 있기에 그대들의 한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대 귀신들의 한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잃어버린 삶에서 온다. 그렇기에 본교에서는 그대들이 한정적이나마 삶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령의 세 번째 이름은 우환(憂患)이다. 그대들은, 아니, 우리들은 모두 운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이들이 아니라면 운명의 끝에서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는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이 우리의 종착지라는 것을 알고, 걱정하는 마음이 우환이다. 그렇기에 본교에서는 그대들이 잠시나마 우환을 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의 복지와 혜택을 지급했다.

유령의 네 번째 이름은 빈(貧)이며, 다섯 번째 이름은 약(弱)이요, 여섯 번째 이름은 미움(惡)이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도 마찬가지. 본교에서는 그대들을 위하여 빈궁한 처지를 개선했고, 약한 이들에겐 강한 육신을 지급했으며, 미움이 꽃피우지 않게 최대한 공정한 통치를 해 왔다.]

허곽은 내게 말했다.

육극음뢰신은 누구도 대성한 적이 없는 마공이라고.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그대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하겠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나의 자기만족이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잠시나마 그대들의 고통을 가려 줄 마약이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대들에게 제공한 눈속임이자 짧디짧은 희롱에 불과했다.]

육극(六極)은 오복과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복과 달리, 육극은 해당하는 축이 없다.

육극의 축은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가공의 개념일 뿐이었다.

이전 수계에서 무림의 호사가들이 만든 등봉조극이란 개념처럼.

육극음뢰신은, 가공의 개념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망상(妄想)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대성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육극음뢰신의 구결대로 수행해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나 전명훈이라고 해도, 이 공법은 절대로 대성할 수 없는 공법이라는 걸.

그렇기에 완결된 공법인 태극진뢰신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그저, 백음역의 주민들인 그대들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오만함과 상상만으로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함부로 재단하고 멋대로 지급했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그리고 무극교단은 명귀계에 떠도는 여섯 개의 이름을 가진 이 유령을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제멋대로 폭력과 무책임한 권력을 휘둘러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백음역을 차지한 무극교단의 통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폭정이라 느끼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든지 수긍한다. 분명 우리의 방식은 누군가에겐 폭정이요 억압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다시 전한다. 지금, 유명귀궁, 흑색귀골궁, 봉래도. 명귀계의 삼대세력이 백음역의 무극교단을 공적으로 지정하고 토벌하러 온다.

들어라.

우리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유령을 빌미로 그대들을 괴롭혀온 사이비 교단이요, 마교다. 그러니 삼대세력이 코앞에 온 지금 이 마교를 탈출해서 자유를 누리는 건 절대 죄악이나 배신이 아니다. 그대들에게 준 괴뢰의 육신은 앞으로도 수리만 잘하면 충분히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으로 쳐들어올 삼대세력에게, 과거에 겪었던 횡사요절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이들은 전부 백음역에서 탈출해라. 우리는 그대들을 쫓지 않을 것이고,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이 마교가 통치하는 백음역을 탈출하는 건 절대 배신이나 죄악이 아니다. 오로지 모두들, 각자 자신에게 소중한 걸 지켜라.]

복(福)에 반대되는, ‘아픔’이란 개념은 복이 빈 자리를 뜻할 뿐이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육극음뢰신은 절대 대성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그 실체 없는 것에 시달려 왔다.

실체가 없음에도 우리를 고통스레 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유령이요, 진정한 큰 귀신이다.

그렇기에 이 실체 없는 귀신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상처입히지 않았으면 할 뿐이었다.

[귀물이 되었을 그때처럼, 또다시 뭔가를 잃는 아픔을 경험하지 말아라. 명귀계에 떠돌아다닌다는 유령을 제멋대로, 제 방식만으로 쫓아내고자 하는 미치광이 교주와 함께할 미치광이들만….]

그래, 나는 실체 없는 귀신을 쫓아내고자 발버둥 치는….

[…이곳에 남아라.]

큰 귀신에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망인(亡人)일 뿐이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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