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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2

340. 소꿉 Ep – 이건 아니지

“왕자님께서 보증하신다니, 물론 믿습니다만 제가 기사와 관련해 잘못 아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지만 네도스티아 예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콘라드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 가문, 테르탄 공작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가 기사에 관해 잘 알지 못할 리 없는 것이다.

레안은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짐작하였으나 네도스티아 예리엘은 아버지의 처이고, 그에겐 손윗사람이어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기사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강한 것으로 압니다. 한데 왕자님께서 소개해주신 저분은 젊어도 너무 젊어 보이네요. 최강의 기사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씀하신 게 아닐는지…”

네도스티아는 적당히 말꼬리를 흐렸다. 요구하는 바를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전달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왕자와의 관계를 고려해서다.

그녀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이제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녀는 본인의 보신(保身)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에릭을 아이셀 왕국으로 보내기로 했잖는가.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다. 무릎 꿇고, 백기까지 잔뜩 치켜든 모양새라 낯이 뜨겁다.

한데, 그러면, 투항한 사람에 대한 예의는 갖춰줘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보고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이게 네도스티아 후궁의 불유쾌한 심정이었다.

다 같이 예리엘 왕가에 소속된 한 가족이고, 겉보기든 실제든 돈독한 친분을 다져왔으니 레안 왕자가 저희를 배려해주길 바란 것인데…

“전혀요. 이분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국내에 없을 겁니다. 벨리타 왕국의 헤르만 포르테 백작 정도나 가능하겠네요.”

네도스티아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왕이 될 사람 앞에서. 그만큼 왕자의 말은 허황된 것이었다.

저 듣도 보도 못한 평민이 대륙 유일의 소드마스터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레안 왕자는 무릎 꿇고 팔을 치켜든 우리 모자(母子) 앞에서 오줌을 싸지르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네도스티아의 표정이 굳어지려 할 때였다. 아이나스 드 예리엘이 잔을 내리며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그리 강한 기사님이시라니. 무척이나 놀라울 따름입니다. 왕의 선정(善政)이 백성들에게 미쳐 왕가에 복으로 돌아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런 분이 재야에 묻혀 있게 둘 수 없으니, 우선은 기사단에 입단할 기회를 주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왕과 왕자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에릭 왕자를 호위하는 데에 쓰진 말자는 뜻이다. 실력을(아무리 아들이 한 말이라지만) 모르겠으니 기사단에 넣어 보자는 의견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타협하라는 뜻인데 레안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아버지를 눈빛으로 설득하곤 하명했다.

“네. 기사 서임을 받아두면 아이셀 왕국에 가서도 쓸 일이 있겠지요. 여봐라. 가서 제1… 아니다. 제2 기사단장을 불러오너라.”

왕족이 말을 실수했다면 그건 실수가 아닌 고의다.

왕국의 대들보인 제1 기사단장을 부르려다 만 것은 위상이 중요한 그 대신에 제2 기사단장을 불러 실력을 견주어보겠다는 뜻이고, 저 평민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레리아나가 잉차잉차, 네도스티아 예리엘 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말했다.

“‘레안 오라버니’가 엄청 자신만만한데요? ‘에릭 오라버니’한테 정말 좋은 기사님이 생기려나 봐요, 어머니.”

“…글쎄요.”

네도스티아는 다소 누그러진 말투였다.

화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지만, 왕자가 저렇게 뒷수습 없이 자신하는 것도 기이하고, 레리아나 공주가 말을 예쁘게 해준 덕이다.

왕위 경쟁에서 날 때부터 승리한 남매. 개중 왕가의 금지옥엽이 레안 왕자와 에릭 왕자를 구별 없이 오라버니라 불러주니 어찌 안심이 되지 않으랴. 네도스티아는 대련 이후를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레브는

‘대체 뭘 하려고 이래?’

레안의 의도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왕과 공주들 앞이라 레안한테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레안이 다가오자 으드득, 저음으로 말했다.

“너 이따 보자.”

“이기기나 해. 만약에라도 지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레아 님께서는 잠깐 이쪽으로 오시죠.”

“자꾸 존칭하지 않으셔도 돼요, 왕자님.”

“하하. 그럴까요? 레아 ‘씨’는 조금 그렇고, 앞으로는 레아 양이라고 부르죠.”

“그냥 레아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좋을 대로 하셔요.”

제2 기사단장, 하젠 경이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레안은 시녀들을 시켜 레아의 옷을 갈아입히라 명하고 돌아왔다.

레브는 알현실 저쪽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빠, 나 좀 봐.”

“왜.”

레리아나가 다가와 잡아끌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저 사람, 내 꿈에서 나온 사람인데 혹시 오빠도 알고 있어?”

“어. 나도 꿈에서 봤으니까.”

“흠… 오빠는 꿈을 어떻게 꿨는지 모르겠는데, 저 사람은 되게 특이해. 꿈마다 모습이나 관계가 달라.”

“…어떻게?”

“음~ 반란군 수장이기도 했고, 내 호위기사인 적도 있고, 나랑 맞붙기도 했어. 마지막에는 오빠랑 친구도 아니더라.”

레안은 순간 멈칫했다.

레리아나랑 레브가 맞붙고, 나랑은 친구가 아니었다고? 지난번 회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랬구나.”

“응. 조심해 오빠. 저 사람 어딘가 수상해. 사람이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리고 맞다. 저번에 오빠가 해놓으라 한 거 있잖아.”

“타티안 후작 말이야?”

“응. 불러냈어. 그 사람 엉덩이가 엄청 무겁더라. 그거 들어 올리느라 이 몸이 고생 많았어.”

“공주가 엉덩이가 뭐니. 아무튼, 꿈에서 이상한 말버릇만 배워서는.”

“히히. 그래도 엄마 아빠 앞에서는 절대 안 쓴다구~”

“어머니 아버지.”

“네~ 네~ 어쨌든 나 잘했지?”

“그래그래. 쉽지 않았을 텐데 용하다. 그러면… 에릭 형님을 보내고 우리도 차차 갈 준비를 하자꾸나. 아버지께는 내가 말씀드리마.”

“헤헤. 오르빌! 좋아!”

레리아나는 살랑살랑 되돌아갔다.

호로록- 다과를 나누며 절도있게 이야기하던 왕족들 사이에 그녀가 퐁당! 끼어들자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레리아나 공주 역시 가족들 틈에서 활짝, 더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그러는 한편 레안은 하젠 경을 맞이하러 문 앞에 나가 기다렸다.

왕자로서, 왕을 보필하는 기사단장을 오라 가라 했으니 마땅히 행해야 할 예의였다.

이윽고 하젠 경이 당도하였고, 그의 체면과 위신을 위해 대련 결과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에릭 왕자에게 새 호위기사가 생겼다는 소문만큼은 막을 길이 없었다.

* * *

“아이고. 힘들어라… 내가 이게 뭔 개고생이냐.”

“고생했어.”

레아는 레브에게 다가가 그가 벗는 옷을 뺏어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했던 레브는 그런 레아의 손길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방은 괜찮네.”

“응. 시녀도 붙여 줬어. 먹을 건 끼니마다 가져다준대.”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오늘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오.”

레브는 오늘 취직했다.

예기치 않게 왕자의 호위기사로.

기사 서임을 왕에게서 직접 받은 것도 그렇지만 근위기사가 아닌 자가 왕족의 호위기사가 된 건 대단한 영예고, 영광이었다.

하지만 레브는 (원하지도 않았거니와) 온종일 온갖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느라 곤욕이었다.

예법관은 왕자를 대하는 예법이~ 어쩌고저쩌고, 시종장은 당신은 누구고 정확한 국적이 어떻게 되느냐 궁시렁궁시렁. 레브는 근위기사대장과도 대면하고 마지막에는 에릭 왕자와 면접(?)까지 봤다.

어쨌든 그를 고용하는 사람은 에릭 왕자니까. 돈도 결국에는 에릭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면접은 그야말로 거짓말과 거짓말, 그리고 거짓말의 향연이었다.

레브는 레안 드 예리엘 왕자와의 관계는 물론이요, 콘라드 왕국으로 이민을 결심한 이유와 과정, 콘라드 왕국을 향한 충성심, 향후 비전과 목표까지 즉석에서 지어내야 했다.

레안, 이 개새끼.

그러고서 다시 어떤 근위기사를 만나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앞으로 어떻게 호위할 것이며, 왕궁에 있는 동안 다른 근위기사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호위 업무를 배분할 것인지 논의하다 하루를 흘려보냈다.

이가 다닥다닥 갈린다.

옷을 대강 벗어 던진 레브는 방에 있는 아무 소파에나 주저앉았다.

소파는… 푹신하니 좋았다.

피곤해서 살짝 졸린 가운데, 레아가 그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레브, 이거.”

<루티나 왕궁 생활수칙 – 평민편>

“…”

레브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짚었다. 책의 두께에 놀라서, 그리고 책의 부제로 적힌 ‘평민편’이 짜증 나서다.

내용은 대충 안다.

벨리타 왕국에서 근위기사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왕궁에 머무는 평민이 대강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하지만 거긴 오르빌 왕궁이고, 루티나 왕궁은 세부적인 것에서 다른 점이 있을 거라, 결국 최소 한 번은 읽어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냥 왕궁에 들어오지를 말걸.

아니, 레안을 보러 온 것 자체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레브는 옅은 한숨을 내쉬곤 두툼한 책을 집어 팔락팔락 넘겨나갔다.

뒷간에서 쓰는 물(왕궁의 뒷간은 보통 물이 계속 흐르게 만들어져서 분뇨가 배출되게 되어 있다)은 매월 둘째 주 주말에 비워져서 청소하니 그때는 뒷간 이용이 제약될 수 있고, 생활 비품은 담당 시녀장이 매주 월요일 오전에…

내가 왜 이런 걸 읽고 있어야 하지? 레브가 <루티나 왕국 생활수칙 – 평민편>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읽어볼게. 지금은 좀 피곤해서… 잘래.”

궁에서 레브와 레아에게 내어준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뭐, 그거야 당연한 거고. 레브는 별생각 없이 침대에 드러누워 뻗어버렸다. 그는 순식간에 코를 골며 잠들었는데…

레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빨리 말을 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야아. 레브으. 여기 사람들 아무래도… 우리가 결혼한 줄 아는 것 같아. 어떻게 좀…”

하지만 침대에 대(大)자로 뻗어버린 레브. 그 꼬라지를 본 레아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아무래도 이 고얀 소꿉친구 놈도 내가 저랑 이미 결혼한 줄 아는 모양이다.

“…”

물론, 노아랑 소야를 위해서라도 이 녀석과 결혼하긴 할 테지만, 살짝 심통이 나는 것까진 어쩔 수가 없었다.

난 아직 연애도 못 해봤단 말야! 너는 어떨지 몰라도!

레아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잘도 잠든 친구, 아니, 전우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랬다.

회차를 수없이 반복하며 깊어질 대로 깊어져 소꿉친구 관계는 졸업한 지 오래고, 레브에게 레아는 너무 당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해한다. 허나,

“여자친구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야. 바보야.”

“끄, 끄응.”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레아가 레브의 귀를 모질게 틀어쥐었다.

꿈으로 지난 회차들을 띄엄띄엄 보긴 했지만, 회차를 반복한 건 레브지 레아가 아니다. 그녀에겐 이번 생이 늘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레브는 끙끙 신음했고, 레아는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의 죽어버린 연애 감정을 되살릴까 고민하다가 곁에서 나란히 잠들고 말았다.

원치 않은 노동에 휘말린 레브.

레안이 그를 찾아온 건 무려 일주일도 더 지나서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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