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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4

342. 소꿉 Ep – 근위기사들

“소자, 몸 성히 가겠습니다.”

며칠 뒤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여행길에 올랐다.

그의 작별 인사엔 다녀‘오겠’다는 말이 없었고, 조촐한 행렬이 루티나를 빠져나갔다. 네도스티아 후궁은 몸소 마차에 올라 아들을 멀리까지 배웅하였다.

에릭 왕자가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이셀 왕국의 수도를 향해. 레브는 화기애애한 여행이 되길 바랐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안에서 드시겠답니다.”

“…알겠네. 요리사에게 전달해서 상을 차려 올리게.”

에릭의 태도가 우중충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얼핏 결연한 태도로 느껴졌는데, 마차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도 않고… 행렬의 분위기는 날로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다.

“네, 호위대장님.”

또, 아무리 조촐하게 꾸렸어도 한 나라의 왕자인지라 행렬에 포함된 인원이 일흔다섯에 달했고, 레브는 이를 총괄하는 호위대장이었다.

마부만 여덟 명에 왕자의 전속 시녀 다섯과 시종장, 몸종 둘 그리고 마흔다섯 명의 근위병까지.

당연히 기사도 여럿 있었다. 호위 기사로 레브만 있는 게 아니라.

네 명의 근위기사와 기사단에서 차출된 두 명의 왕국 기사 그리고 그들의 수발을 드는 준기사 여섯 명.

인원을 이렇게 차례로 셈하고 나면 일흔셋이니 레브와 레아까지 더해야 인원 파악이 끝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레브는 화기애애는커녕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머리로 레안의 한 마디가 스쳤다.

– “왕을 만나려면 그 정도 직책은 있어야지. 힘내.”

꼭 레안의 설득과 추천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레브는 평민이고, 평민이 왕을 알현하려면 보통 이상의 방법이 필요하니까. 그걸 레안이 대신해서 채워 준 셈이다.

레브는 속으로 마뜩잖은 고마움을 표하며 병사들의 식사가 준비되도록 독촉했다. 왕자는 밥을 마차를 타고 가면서 먹어도 괜찮지만, 병사들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기사님들도 식사하시죠.”

“그럽시다. 조엔, 수고해.”

“레브, 네 건 여기.”

“고마워. 너도 앉아.”

“난 먹었는뎁. 그래 뭐…”

병사들은 배급받은 음식을 가져다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식사하고, 기사들은 나무 원탁에 둘러앉았다.

종자들. 그러니까 준기사들이 제가 모시는 기사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기 바쁜 와중에 레브는 레아가 가져다준 쟁반을 받았다.

얇은 도자기 그릇엔 흰 빵이 담기고, 그 위에 걸쭉한 소이빈 수프가 부어져 있었다. 흰 빵이라니. 제법 화려한 식단이다.

근위병들도 수프에 젖은 흰 빵을 잘라 먹고 있었는데, 왕실에 소속됐다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먹는 한이 있어도 이 정도는 나와줘야 했다.

이 빵의 하얀색이 왕실 근위병의 자존심이고, 루티나 수비병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니까. 물론 기사들에게는 왕자에게 진상된 반찬 몇 가지가 따로 차려져 배달됐다.

달그락- 얌냠.

바람이 휙 불었다. 식사하던 레브는 고개를 들어 줄지어 선 마차들과 추수가 끝나 비어있는 평야, 산개해 식사하는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바람은 남서풍. 콘라드 왕국에서는 흔히 ‘동무역풍’이라 불리는 바람으로, 아이셀 왕국으로 가는 우리의 등을 떠밀어주고 있었다.

그런다고 마차가 빨라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북동쪽을 바라보던 레브의 눈에 레아가 들어왔다.

레아는 시녀가 아니지만 시녀들과 함께 마차를 쓰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일해야 하는 그들을 따라 먼저 식사했는지 레아는 하염없이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서풍에 휘릭- 날아오르는 머리칼과 한결같은 뺨이 아름답다. 뜬금없지만.

“레아.”

“왜?”

“…아니야.”

“싱겁기는.”

레아는 언제나처럼 웃었다. 숲에서 흐드러지게 자란 수풀처럼. 레브는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예쁘다’ 한마디 해주려는데, 제니아 재커리가 입을 열어 끼어들었다.

“레브 님께서는 오른 왕국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사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로그넘 산맥 끝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콘라드 왕국과 인접한 곳에… 제니아 경께서는 오른 왕국에 대해 잘 아십니까?”

“가본 적은 있지요. 우리 왕국과 인접한 곳이면~ 가이단 변경백령? 맞나요?”

“맞습니다. 제니아 경께서는 용병으로 일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가보셨나 보군요.”

제니아가 빙긋 버릇처럼 손목을 꺾으며 웃었다. 그녀에 관하여 조금 아는 만큼, 레브는 위험한 주제를 피해 잡담을 이어나갔다.

사실 별달리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는 잡담이었다. 다만 제니아가 레브에게 먼저 말을 건 건 처음이었고 이건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대장 자리를 차지했다.

것도 어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쟁취한 게 아니라 레안 드 예리엘 왕자의 추천으로 달랑 올라선 거라 레브는 불신 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 며칠간 레브는 행렬을 잘 이끌어 왔고, 그 결실이 제니아의 잡담으로 터져 나왔다. 다른 기사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잡담에 적극 끼어들었다.

“로그넘 산맥이라… 거기엔 야만인이 많다 들었는데, 혹시 레브 님도?”

“닐!! 죄송해요, 대장님. 이이가 말을 생각 없이 뱉는 편이라.”

“아, 왜. 야만인이 뭐 어쨌다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하잖아. 난 야만인을 차별하지 않아.”

닐과 웬디라는 부부 근위기사였다.

나이를 제법 먹었는데도 닐은 익살 궂은 인상이 남아있었고, 웬디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여걸이었다.

곁에 있던 다른 근위기사, 바린이 둘이 투닥거리는 걸 보고 웃었다가 닐의 눈초리를 받았다. 그의 왼손에는 은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제 아버지가 야만인 출신이긴 한데, 귀화하신 지 오래거든요.”

“오. 그렇군요. 그럼 그 아버님은 대전사? 맞나요? 실은 바르트한테 들었습니다. 엄청 강하시다고요.”

“아… 바르트 경은 괜찮습니까?”

진짜 전력으로 후려 찼다. 몸무게가 골반을 거쳐 무릎으로, 발을 거쳐서 목으로 찍혀 들어간 게 느껴졌으니 성하지는 못할 터였다.

닐이 파하하! 웃었다.

“바르트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친구는 좀 맞아야 했어요. 아들이 둘에, 최근에는 손주 본 재미에까지 빠져서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제니아 씨도 알지 않아요? 기사단의 누구랑 나란히 징계를 받았더만. 이름이… 앨빈이었던가?”

“…유명하죠. 저희 기사단 사람은 아닙니다. 제3 기사단 사람이에요.”

제니아가 은근히 선을 긋자 기사들이 폭소했다. 제3 기사단 사람이 들었으면 엄청 기분 나빠할 법도 한데, 다행히 여기에는 있지 않았다.

“쉿. 너무 크게 웃진 마세요들.”

“아차. 아이고- 왕자님께서는 왜 저러시나 몰… 악!”

웬디의 팔에 힘줄이 잔뜩 돋아 있다. 그녀는 남편의 배를 꼬집으면서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 계신 아가씨랑 레브 님은 무슨 관계세요? 명목상으로는 시종으로 들이신 걸 아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진 않은 것 같아서요.”

“저흰…”

“소꿉친구예요. 결혼할 거고요.”

레아가 덥썩 대답했다. 그 간결하고 당돌한 대답에 중년의 여기사는 만연하게 웃었다.

“어쩐지. 대장님이 아가씨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더라구요. 약혼은 하셨나요? 저는 이이가 차피 결혼할 거 약혼은 뭐 하려 하냐고 해서~”

“거 또 쓸데없는 소리를… 그리고 그게 뭐 틀린 말인가? 어차피 결혼할 거면. 바린, 그렇지 않나?”

“전 결혼 전에 약혼했었습니다.”

“그것 봐요. 약혼했을 때 어땠어요? 어차피 결혼할 거라도 느낌이 다르고 좋지 않았어요?”

“그랬죠.”

바린은 무뚝뚝해서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았다. 이 모범적인 기사님께서는 손수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게 준기사들을 자극했다.

준기사들이 빈 그릇을 싹 치워가 버리고, 원탁에 뭐라도 놓여 있으면 이야기를 더 했을 테지만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닐이 레브에게 언제 대련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원탁은 마차에 도로 실려 사라졌다. 근위병들도 휴식 시간이 끝나감을 직감했는지 슬슬 일어나고 있었다.

“왕자님께서 식사를 마치시는 대로 출발하지요. 그리고 요리사는 요리사랍시고 농땡이 좀 그만 피우고. 병사의 본분은 다 해야지.”

여행 도중 길바닥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이 워낙 제한적이라 그냥 요리를 적당히 할 줄 아는 근위병을 데려왔다.

레브는 그의 태만을 지적하며 행렬을 가다듬고, 이윽고 기수로 하여금 깃발을 치켜들게 했다.

기우뚱기우뚱. 다시 차분하게 나아가는 이 행렬이 마법 왕국의 수도 오프론티스에 도착하려면 앞으로 몇 달이 걸릴 터였다.

가는 길에 마을에 들러서 물자를 충원하고, 간혹 영주성에 들르기도 하고.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여정 속에서 특기할만한 일이 생긴 건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쯤이었다. 겨울. 날넋바람이 우리의 왼쪽 귀를 간지럽혔다.

* * *

“왕자님. 관문에 도착했습니다.”

흔히 관문 앞에는 마을이 있다.

꼭 무역 거점이 아니더라도 오가는 상인이 많아 창고가 즐비하고, 역시 오가는 사람이 많아 숙박업이 발달한 마을이었다. 이런 마을들은 보통 저희가 ‘마지막’ 마을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여튼 왕자의 행렬은 이 마을에 도착해 (당연하다는 듯이 환대받은 뒤) 일정을 점검하느라 잠시 정차한 상태였다.

왕자가 타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니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저쪽에서도 환대를 준비해야 하고, 기사 7명과 근위병 수십 명의 통과를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관문 수비병을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전달할 일이 아니어서 일명 관문지기. 관료를 내려오라 했다.

그런데 관문지기가 마차 앞에 부복해 기다리는데 에릭 왕자는 무슨 상념에 빠져 있었다. 침묵이 너무 길어서 레브는

‘설마 돌아가자는 건 아니겠지?’

터무니없이 걱정할 정도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왕자의 말은 다행히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었다.

“날짜를 조금 미루겠다. 정확히 나흘 뒤에 넘어갈 것이니 관문지기는 일에 차질이 없게 하라.”

“망극하옵니다.”

일 처리할 시간을 넉넉히 주려나 보다. 하지만 이틀도 아니고 사흘도 아니고 나흘? 레브는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에릭 왕자의 기행의 시작이었다.

“검을 주게.”

통째로 빌린 숙소 뒷마당에서 에릭 왕자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레브가 알기론 그는 검을 다룰 줄 몰랐고, 여태껏 선보인 적도 없었다. 오리아스의 사도로서 힘을 뿜어냈을 뿐.

이번엔 그렇지 않은 걸까? 레브는 의아해하며 지켜봤는데…

“이틀째야. 말려야 하지 않을까?”

“글쎄…”

역시나 형편없었다. 되는대로 휘둘리는 검날이 위험천만하다.

저건 연습도 아니고, 에릭 왕자는 땀을 무의미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저러면 다치기 십상이라 레브는 레아를 옆에 대기시켰다. 옆에서 제니아 재커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네요.”

“…”

레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에릭이 왜 저러는지 알 길이 없으나,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은 있기 때문에. 몇 번째 회차인지는 몰라도 레브도 검을 휘두르며 저렇게 발악했었다.

– “씨발! 어쩌라고! 어떻게 해야. 내가 어떻게 해야… 아아아악!!”

하늘이 원망스럽고 한 치 앞 눈앞조차 깜깜하던 시절이었다.

그 괴로움을 기억하기에, 레브는 검을 들고 나섰다. 에릭은 충혈된 눈으로 레브를 바라보았다.

“원하신다면.”

“…고맙군.”

이어진 건 대련이 아니었다.

에릭이 일방적으로 레브를 몰아붙였고, 레브는 왕자의 엉성한 공격을 챙! 챙! 챙! 힘으로 맞부딪쳐 시원시원하게 터뜨려주었다.

[ 레오 당신은 소드마스터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그 업적으로 {검술.4v : 자코브류(流)} 능력을 드립니다. ]

에릭이 내려치는 힘이 그리 강한 것이 아닐진대, 이상하게도 검에서 조금씩 파열음이 나더니 쨍! 끝내 깨져버렸다. 에릭은 조금 얼떨떨해하다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틀 뒤, 에릭 왕자는 국경을 넘었다. 레브는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야트막하게 짐작하였다.

레안과 레리아나가 태어나면서 뒷방으로 밀려난 에릭 왕자와 네도스티아 후궁. 오리아스가 사라진 이번, 해소하지 못한 상실감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겨울을 맞은 동부, 아이셀 왕국의 늪지가 왕자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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