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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5

343. 소꿉 Ep – 오프론티스

“마법 왕국이라더니 마법은 무슨… 마법이랑 왕국 빼고 늪지대라고 불러도 되겠다.”

근위기사 닐의 각박한 평가였다.

그도 그럴 게 국경을 넘어온 이후 여행길이 지독하게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땅이 질척거리는 것도 그렇지만 ‘겨울벌레’가 많아 괴롭다.

이곳 동부는 아카이아 제국 시절에는 버려진 땅이었다. 이종족을 몰아내고 점령하긴 했으나 지랄 맞은 환경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메마른 황무지와 다습한 늪지.

그 원인은 바람이었다.

이 세계의 바람은 사계절에 따라 다르게 불고, 온 대륙에 영향을 미쳤다. 지형 그리고 기온을 결정하는 위도(緯度)와 함께 지역의 기후를 결정짓는 중대한 요인이다.

우선 봄에는 소위 ‘서무역풍’이라 부르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대륙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부는 것인데, 다분히 남부 지역 사람들의 기준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항해하기 좋다 하여서 ‘서무역풍’인 거다.

실제로 이 바람을 타고 아이셀 왕국에서 항해를 시작하면 콘라드 왕국과 오른 왕국의 해안을 지나 대륙 반대편에 있는 제롬 신성 왕국까지 갈 수 있었다. 반대로 제롬 신성 왕국에서 이 바람을 타고 출발하면 (시계방향이니까) 북쪽으로 갈 수는 있어도 머지않아 얼어붙어 뱃길이 없는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여튼 이 봄바람이 아이셀 왕국의 기후를 지랄 맞게 만든 첫 번째 원흉이었다.

봄바람이라 하면 어렴풋이 따뜻할 것 같으나 아이셀 왕국에 불어오는 봄바람은 혹독한 북부에서 내려온 찬바람이다.

식물이 자라나야 할 때 자라지 못해 땅이 황폐해지고, 끝내 벌거숭이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

이때 여름이 닥치면 서무역풍은 사그라들고 ‘들넋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고온다습한 바닷바람이 비를 몰고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는 금세 늪지가 되고, 기껏 자라는 것들도 덩굴 따위의 한해살이 식물로, 빠르게 자라는 만큼 영양가가 없었다.

덤이지만 그래서 아이셀 왕국이 콘라드 왕국과 사이가 좋다. 숲이 드문 아이셀 왕국은 목재가 부족하고, 산이 없는 콘라드 왕국은 석재가 부족해서 이것들을 서로에게 의존해 왔다.

그리고 드디어 가을. 반시계방향으로 부는 ‘동무역풍’이 콘라드 왕국 방면에서 온화한 기후를 빌려올 차례이지만… 지형이 이를 망쳐버렸다.

아이셀 왕국에 있는 커다란 산맥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콘라드 왕국의 땅이 마치 누가 ‘두드려 다진’ 것처럼 낮아서 그쪽에서 오는 바람이 더 쉽게 가로막혔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여름에 쌓인 습기가 오래 머무른다. 습기로 인해 축축하고 부패하는 가을. 풍요로워야 할 시기가 그러지 못하니 원통할 일이다.

그나마 겨울이 되면 ‘날넋바람’이 찾아온다. 바람이 대륙에서 바다로 불어 나가는 것으로, 벨리타 왕국 방면에서 풍요로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래 봤자 겨울이다.

나무가 자라기엔 늦었고, 벌레들의 수명만 잔뜩 늘어났다. 그래서 ‘겨울벌레’다.

해서 동부는 신에게 버림받은 땅으로 여겨졌다.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제롬 신성 왕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대륙 서부에 있는 제롬 신성 왕국은 남부에서 따뜻한 봄바람이 올라오고, 덕분에 자라난 숲에 여름비가 내려 더 풍성해졌다.

가을이 되면 동장군(冬將軍)께서 동무역풍을 타고 남하하지만, 신성 왕국과 아스란 왕국 근방에는 이를 막아주는 산줄기가 있었다(에이브릴 성이 있는 곳이다). 아이셀 왕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더없이 축복받은 땅이다.

아마 우연이겠으나 십자교회의 본단이 어째서 서부에 있고, 어째서 아이셀 왕국에서는 마법이 발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질퍽한 길을 따라가던 레브는 어느 순간 기온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거의 다 왔나 보군요.”

“잠깐 정지. 옷매무새를 다듬고 간다. 신발과 바퀴, 말발굽의 진흙을 털어라. 시종장은 먼저 가서 왕자님의 행차를 전하게.”

“네.”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레브는 마법사의 존재를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 왕자 행렬은 어느 영지에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었다. 제법 단단한 대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과 간격을 두고 지어진 건물이 특이하다.

건물들을 아치가 들어 올려 지탱하고, 길게 달린 계단에서 한 귀족이 내려오며 말했다.

“친애하는 왕국의 왕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곳의 영주, 발렌타인 백작이었다. 하지만 에릭 드 예리엘 왕자는 그를 다르게 호칭하였다.

“저도 반갑습니다. 이곳이 저에겐 타국이라 푸대접받을까 걱정했는데, 위대한 왕국의 ‘제국백(帝國伯)’께서 환대해주시니 안심입니다.”

“괜한 걱정을 하신 듯하군요.”

발렌타인 제국백이 기쁘게 웃었다. 그는 에릭이 머무는 동안 극진히 대접했고, 레브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안이 아이셀 왕국에선 입조심, 몸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지. 귀족을 직접 상대하지 말고 되도록 에릭에게 맡기라고…’

정계가 혼란스럽기가 지랄 맞은 기후만큼이나 극단적인 동네였다.

신에게 버림받은 이곳은 아카이아 제국 시절 죄인을 귀향 보내는 데에나 쓰였다.

그 당시 isolated cell, 고립된 감옥이라고 불렸던 것이 이 ‘아이셀’ 왕국의 어원이라 추정할 정도인데, 그랬던 곳이 왕국으로 급부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다름 아닌 아카이아 제국 최후의 ‘황태자 전쟁’이다.

약 700여 년 전, 수천 년 인류 역사를 견인해온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근이 반복됐으며, 북부는 마우닌&레티이라는 두 영웅과 야만인의 힘으로 독립하고, 서부는 십자교회의 도움을 받아 제국과의 결별을 준비하였다.

그럼에도 두 황태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국이 중부와 남부로 찢길 지경으로 싸우는 통에 민심은 흉악해지고, 두 황자의 암투를 견디다 못한 황족들은 국외로의 탈출을 감행했다.

북부, 서부, 남부. 모두 망명하기 부적합해서 그들이 향한 곳은 결국 버림받은 땅, 동부였는데… 황족들의 가냘픈 ‘시집살이’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버려진 땅이라 해도 영주와 백성들이 있었다. 다만 그들 대부분이 유배자의 자손이었고, 도망쳐온 지배자들을 업신여겼다.

감히.

팔다리를 뽑아 먹여도 면치 못할 중죄였으나, 제국은 무너져가고… 도망쳐온 황족들에겐 힘도, 권위도, 그 무엇도 남은 것이 없었다.

아니, 단 하나. 그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이 남아있었다.

{혈통}.

찬란한 금발 머리와 태양처럼 빛나는 금빛 눈동자. 동부의 유력자들은 황족을 업신여길지언정 그네들의 혈통을 선망했고, 수 세기에 걸쳐 거래 아닌 거래가 이루어졌다.

수백의 황족 공주님이 동부 유력자의 품에 안겼다. 그렇게 황족의 고귀함을 나눠 받은 유력자들은 스스로를 황족으로 여기며 으스댔고, 도망쳐온 황족들은 살아갈 자리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위대한 왕국의 제국백(帝國伯)’이라는 어이없는 호칭은 아이셀 왕국에서는 ‘백작’을 대신하는, 당연한 칭호였다.

발렌타인 백작도 ‘만자문(卍) 황실’의 일원이니까… 레브는 조용히 입을 닥쳤고, 에릭 드 예리엘 왕자는 제 할 일을 마쳤다.

이 발렌타인 백작가에 가장 먼저 들른 것부터가 에릭의 선택이었고, 그는 아이셀 왕국의 파벌 싸움에 서서히 발을 들이고 있었다. 백작령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늪지가 다시 질척, 발에 달라붙었다.

* * *

늪지가 가득한 땅이래도 육로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땅을 파서 새 흙을 덮어도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로 늪지가 되어버리니 값이 저렴한 임시방편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적당한 크기의 자갈을 마구 뿌려두는 것이다. 자갈은 점차 늪지에 박혀 흩어지겠지만, 오래도록 쌓여왔기에 어느 정도의 단단함을 보장해줬다.

발은 빠지지 않지만 질척한 대지.

에릭 왕자 일행은 그런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지칠 법도 한데 행군을 묵묵히 이어나갔고, 레아는 그런 병사들을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을 타고 있었고, 병사들에게 축복을 내려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안이 레브에게 신신당부한 것처럼, 레브도 레아에게 경고했다.

– “이번 회차에서 너랑 같이 여행 다닐 수 있다는 게 난 너무 기뻐. 하지만 절대 네가 이 여행에 영향을 미쳐선 안 돼. 왜냐면 다음 회차에는 네가 없을 테니까.”

축복을 내려주면 병사들의 걸음이 빨라질 터였다. 그러면 도착 시간부터 모든 사건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에 레아는 마치 본인이 여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사람들은 그런 레아를 쌀쌀맞은 아가씨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도 뭐, 호위 대장님의 여자 친구니. 그녀를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옅은 한숨을 내쉬며, 레아는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떼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아가 좋아하는 숲도 없고, 겨울바람에 바짝 마른 넝쿨만 잔뜩일 것 같지만, 풍경이 의외로 그렇지만은 않았다. 목적지에 근접했는지 사각형의 구조물이 주위를 제법 둘러싸고 있다.

‘논’이다.

늪지대에서 그나마 기를 수 있는 작물이 벼여서 아이셀 왕국은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 레아는 그 쫀득한 질감을 신기하게 맛봤다.

이런 걸 먹고산다니. 신기해.

독특한 풍토 때문에 복식도, 식습관도 다른 왕국을 재미있게 관광해왔다. 레브는 좀 바쁘지만~ 그래도 섭섭해하지 않았다.

연애 감정이 죽어버린 레브.

남자친구를 닦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루티나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레브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찡찡거릴 것도 생각해 봤고, 애교부릴 것도 생각해 봤다.

루티나의 번화한 거리를 걸으며 조오금 야한 속곳과 벨리타 왕국에서 왔다는 선진 미용기구를 눈여겨보기도 했는데…

‘아냐. 이게 아니야.’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브의 연애 감정이 죽은 건 남녀 관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권태기와는 달랐다.

그는 내게 게을러진 게 아니라 지친 것이다. 레아는 본인과의 연애, 결혼을 너무 많이 반복해서 지쳐버린 레브에게 자기가 더 이상 새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내게 마음을 쥐어짜 쏟아달라고 떼쓰는 게 이미 바짝 말라버린 레브에겐 참 괴로울 일이라… 레아는 다르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를 믿고, 내 본모습을 지키자.

레브가 사랑에 빠졌을 내 첫 모습 그대로.

해서 레아는 고향 마을의 숲처럼 남아있었다. 때론 야속해도 참았고, 레브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언제나 그곳에 있을 수 있도록.

마침 레브가 다가오고 있었다.

“레아.”

“말해. 듣고 있어.”

레아가 고요히 뒤돌아보자 레브는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잊어버렸다.

언제나처럼 호의로 가득한 당찬 눈동자와 둥글게 걸린 미소가 그의 심장을 쥐어뜯었다. 그게 너무 새삼스러워 레브는 헛기침했다.

“왜에?”

다가갈수록 짓궂어지는 미소.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반테와 반테가 충돌할 무렵, 레브는 아직 기마술이 서툰 레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지 않으면 본인이 낙마할 것 같아서. 레아는 바짝 다가온 그의 귀에 속삭였다.

“재미있는 얘기 해주려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니까. “어, 어어.” ─ 레브는 더듬거리며 레아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가 바로 아즈라 성인이 마르하스라는 악신을 둘로 찢어버렸다는 곳이며, 동부의 중심지라고.

장엄한 수도 오프론티스가 그들 앞에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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