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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6

344. 소꿉 Ep – 선제후

“저로 인해 시작된 전쟁이니 제가 가겠습니다. 벨리타 왕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 전까지. 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우억! 기사들의 땀내 나는 환호가 터졌다. 열광적으로 손뼉 치는 귀족도 있고, 눈살을 찌푸리는 귀족도 즐비한 이곳은 아이셀 왕국의 심장, 제국의회(Comitium imperiale)였다.

전쟁을 진두지휘할 총사령관이 방금 정해졌다. 연단에 선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는 기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반면 제2 왕자, 오스카 드 이사도라 파벌 측은 맘대로 하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만 팔짱을 끼며 냉소적인 포지션을 잡았음에도 잔잔한 패배감이 흐르는 것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타국으로 선을 보러 가서는 모욕만 당해 돌아온 왕자, 비비안에게 못난이 왕자라는 멸칭을 씌우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총사령관에 오르는 것조차 막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건 투표 결과였다.

62대 59.

비록 근소한 격차지만 이건 몇몇 선제후(選帝侯)가 이사도라 왕가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뜻이었다.

비비안 왕자는 승리를 자축하듯 의회 강당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악수를 주고받았고,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는 입술을 초조하게 오물거렸다. 그때, 그의 귀로 부드럽게 날 선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왕자님.”

“…네.”

오스카의 뒤에 바짝 붙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쳤다.

그렇지 않으면 입술이 뒤틀린 걸 감추지 못했을 테니까.

“비비안 왕자님이 총사령관이 되셨네요. 왕자님이 가서 축하드리면 무척 우애 넘치고 보기 좋은 광경일 듯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작은 속삭임을 덧붙였다.

– “어깨 펴고 웃는 낯으로 가세요. 꼴사납게 서 있지만 말고.”

으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면 누가 믿을까. 오스카 왕자는 “네…” 창백한 안색으로 답하곤 걸어 나갔고, 이내 비비안 왕자 앞에 당도해 있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뇨, 뭘요. 트루디 남작이 애써주신 걸 보셨잖습니까. 그분께 공을 돌리고 싶네요.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겠… 습니다. 잠시만요.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죠.”

비비안이 오스카를 발견했다. 그가 대화를 끊고 다가오자 오스카에게 그늘이 드리워졌다.

비비안 왕자의 체구가 어지간한 기사 못지않아서. 오스카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며 말을 붙였다.

“…축하드립니다. 총사령관이 되신걸.”

비비안은 활짝 웃었다. 그는 저의 배다른 동생이자 정적(政敵)인 오스카에게 악수를 청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동생님께서 축하해주시니 더 기쁘군요.”

보이는 행동과 달리 맞잡은 손이 싸늘하다. 웃으며 내려다보는 눈에서도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우애를 다지기엔 서로가 짊어진 게 너무 많은 것이다. 비비안 왕자는 오스카의 손을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

다소 도발적이다.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오스카는 자신의 접근이 결국 신경전으로 번졌음을 깨달았다. 비비안 왕자가 저의 커다란 덩치로 우월함을 과시했으니 그도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이를테면 마법이라던가… 하지만 오스카는 손을 빼며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갈라졌던 물이 합쳐지듯 그가 되돌아온 길은 사람들로 메워져 사라졌다. 각양각색의 비단옷이 물결치는 가운데, 아무 일도 없었건만 오스카는 구역질을 느꼈다.

사람들의 눈빛이 그새 또 변하였기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실망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오스카는 가능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허나 패배감이라는 것에는 묘한 중독이 있어서, 그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비비안 왕자는 아직도 악수했던 손을 들어 올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단한 쇼맨십이다.

잠깐이지만 제후들의 입가엔 조소가 어리고, 비비안은 싱겁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사람 병신 만들기를 찰나의 몸짓으로 해낸 비비안과 순진하게 뒤돌아선 오스카의 ‘정치인’으로서의 격차는 까마득했다.

어쩌다 저만한 사람이 벨리타 왕국에서는 체면을 구겼는지. 그러지 않았으면 피차 편했을 것을. 오스카는 내심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를 힐난하며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여인을 다시 마주하였다.

“참 잘하셨어요, 왕자님.”

“…”

오스카가 절대 작은 키는 아니지만, 그 여인은 여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키가 커서 왕자를 고개를 굽혀 내려다보았다. 이내 창백하게 가는 손이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고, 오스카는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은 악력을 느꼈다.

마치 잘못한 어린이를 데려가는 어머니처럼, 여인은 왕자를 데리고 의회를 나섰다. 이를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게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안젤리카 리디아 키르기스.

대륙 유일의 대마법사이자, ‘키르기스 공작가’의 대리인이자,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의 스승이었다.

의회를 나서기 무섭게 안젤리카는 허공을 격하여 통로를 만들었고,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안에서 뺨 맞는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두컴컴한 통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왕성이었다. 그것도 하필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의 방이었는데 엘리카 공주는 제멋대로 난입한 마법사와 ‘오라버니’를 나무라지 않았다. 되려

“어서 오세요.”

고개를 숙여 맞이했다. 안젤리카는 분이 덜 풀렸는지 통로 밖으로 나와서도 씨근덕댔다.

“물.”

“여기요, 어머니.”

물을 건네는 공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다행히 어머니는 냉수를 들이켜곤 심호흡했다.

“아드님은 그만 가보셔도 좋아요.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엔 무슨 잘못을 해서 얻어맞았을까. 오스카가 공포에 절은 표정으로 나가고, 엘리카는 자신이 욕심 많은 어머니의 다음 표적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소리가 차단됐으니까. 문밖에 있는 시녀는 주인이 비명을 질러도 알지 못할 터였다.

해서 엘리카는 선수를 쳤다. 밝게 미소 지으며.

“어머니. 그거 아세요? 콘라드 왕국의 왕자가 곧 도착한대요.”

“…그렇군요. 저기 보이네요.”

“듣기론 참 잘생겼다던데. 어머니가 보시기엔 어때요?”

“머리는 금발이네요. 아니. 그마저도 좀 섞였네… 후. 레안 드 예리엘 왕자를 어떻게든 불렀어야 했나.”

“어머니~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어머니가 지난 일로 속상해하시면 저도 속상해요. 제가 확!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처럼 걷어차 줄 수는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겠죠?”

벽을 넘어 아주 멀리를 바라보던 안젤리카가 고개를 돌렸다. 오망성이 맺힌 눈동자가 무섭지만, 엘리카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론이죠. 벨리타 왕국과 전쟁이 난 이상, 콘라드 왕국을 언제까지 이사도라 왕가의 편으로 남겨둘 순 없어요. 우리도 손을 벌려야 하죠.”

“역시 그렇죠? 그럼 저는…”

“하지만 우리 따님을 너무 쉽게 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네요. 이리 오세요. 안아보게.”

‘미친년.’

엘리카는 순순히 품에 안겼다. 창백하다 못해 회색을 띤 손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으나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동작이었다.

딸을 쓰다듬어주고 있긴 하지만 그건 곧 시집가게 될지도 모를 딸을 위로한다기보단 본인의 재미를 위해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것과 같았다. 이를 엘리카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낳은 건 순전히 실험을 위해서니까.

그 실험은 불행히도 성공해서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 오스카는 이 무시무시한 마법사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당해온 것이다. 엘리카는 안젤리카가 그녀의 금발 머리에 코를 묻고는 콧바람을 들이켜는 걸 (끔찍하게 여기며) 견디며 생각했다.

만약 주어진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고.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오프론티스에 입성한 날이었다.

* * *

“환영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째서요?”

“에릭 왕자님은 키르기스 공작가와 손잡을 수밖에 없거든. 이사도라 왕가에서 환영할 턱이 없지.”

“잉? 그게 무슨 말이죠? 에릭 왕자님은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님과 결혼하러 온 거잖아요. 키르기스 공작가가 왜 나오죠?”

그러자 닐이 끼어들었다.

“조엔도 잘 모르면서 떠드는 거야. 적당히 흘려들으라구.”

“…닐. 너희는 돌아가겠지만 나는 왕자님 곁에 남아 있어야 해서 아이셀 왕국에 대해 좀 알아봤어.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와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는 비록 이사도라라는 성을 쓰지만, 키르기스 공작가 사람이라 봐도 무방해.”

“왜요?”

“아이셀 왕국은 전통적으로 모계(母系)를 따르거든.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관습이 들어와서 쓰이고는 있지만, 왕의 성씨를 결정하는 건 결국 모계야.”

“뭔 개소리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닐은 탁자에 발을 올리며 반쯤 드러누웠다. 오늘 오프론티스 왕성에 입성했는데 타국의 왕자를 맞이하는 행사 없이 방만 배정되었고, 이런 푸대접이 너무 당혹스러워 기사들이 모여 앉은 것이었다.

조엔은 참을성 있게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 이사도라 왕가는 이사도라 공작가가 되고, 키르기스 공작가는 키르기스 왕가가 된다고 보면 돼. 왜냐면 오스카 드 이사도라의 어머니가 키르기스 공작가의 여식이거든. ‘아리아 키르기스’였던가? 그 후궁이 왕한테 시집오기 전의 이름이 그랬다는 거야. 지금은 아리아 이사도라지.”

“와! 왕가가 바뀐다고? 그거 되게 신기하네. 그러면 이사도라 왕가랑 키르기스 공작가는 사이가 별로 안 좋겠구나? 경쟁하는 관계니까.”

“그렇겠지.”

“음? 하지만… 잠깐만요.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레아가 질문했다.

“그러면 왕위를 차지한 가문은 다른 가문의 여식을 후궁이나 왕비로 들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요? 근친… 이라도 반복하면 왕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 듯한데요.”

“물론 제약이 있지. 결혼은 왕이나 왕가가 오롯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만자문 황실이라고, 아이셀 왕국에는 독특한 정치체계가 있어. 음~ 이걸 이해하려면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하는데…”

“저 역사라면 제법 알아요.”

평민인 레아가 잘 모를까 봐 걱정한 것이다. 조엔도 평민 출신이지만, 그는 기사가 되어서 기본적인 공부를 마쳤다.

“다행이군. 그럼 아카이아 제국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알지? 막말로 사방(四方)으로 찢기며 몰락했지. 개중 동쪽으로 달아난 황족들이 있었는데, 그 황족들과 동부의 귀족들이 섞이면서 만들어진 집단이 만자문(卍) 황실이야. 그들은…”

“조엔의 역사 교육시간~”

“여보, 좀 닥쳐요.”

“…기본적으로 모두 혈연관계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가문과 어느 가문이 맺어지고, 또 황실의 여성과 새롭게 맺어지는 등 가계도가 지나치게 복잡해져서 더는 혈연관계로 자신들을 정의하지 않아.”

“그럼요?”

“‘선제후’라는 특권층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위를 대변하지.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가문만이 선제후로 인정되고.”

“선제후는 뭐고 코르니… 머시기의 황금 문서는 또 뭔데요?”

“선제후란 선거할 수 있는 제후(諸侯)를 뜻해. 제후가 뭔지 알지? 맞아.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오등작(五等爵)에 따라 구분되는 귀족 계급인데, 선제후(選帝侯)는 임금 제(帝) 자를 써서 아카이아 제국 황실의 혈통을 이었음을 과시하는 거야.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는… 흐음. 코르니우스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코르넬 마탑은 들어봤지?”

“네. 아이셀 왕국에 있는 마탑이잖아요. 최초의 마탑으로 유명한. 어? 이름이 뭔가 비슷하네요. 혹시…”

레아는 추측하고, 조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르넬 마탑을 지은 사람?”

“아니. 코르니우스는 인류 최초의 마법사야. 마도(魔道)의 지평을 열었다고 하여 유일무이한 마도사(魔道士)로 인정받는 위인이기도 하지. 그는 아이셀 왕국의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

“그 사람 덕에 아이셀 왕국의 정계가 이 꼴이 난 거기도 하고.”

레브의 중얼거림에 뒤이어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가 주제로 올랐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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