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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7

345. 소꿉 Ep – 낭하랑

레브는 에릭의 뒤를 따라 대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환영을 안 해주길래 왕을 알현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에릭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인지 알현 일자가 바로 잡혔다. 다만 수행 인원이 제약돼서 호위기사 대장인 레브만 동행을 허락받았다.

[ 업적 : 첫 왕궁 입성 – 왕궁에서 더 강해집니다. ]

또각또각, 왕자의 걸음이 바닥을 울리는 가운데 뒤따르는 레브는 어쨌든 호위에 집중했다. 오프론티스 왕궁은 그가 여태껏 봐온 왕궁들과는 구조 자체가 딴판이어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오프론티스 왕궁은 층이 높지 않았다. 궁의 높이라는 게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임에도.

기껏해야 3층 누각이 몇 군데 있는 정도이고, 대신 엄청나게 넓게 펼쳐져서 왕궁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려면 반나절을 걸어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정사각형의 방이 매우 많았다. 복도는 그보다 훨씬 많아서, 서로 면을 맞댄 방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체스판이 연상될 정도로 오밀조밀한 방들은 어떤 건 한 개 대대가 들어갈 만큼 크고, 어떤 건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큼 작았다. 대체로 미닫이문을 사용한지라 교차하는 복도와 복도들, 크기가 제각각인 방들로 인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현기증은 이곳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프론티스 왕궁은 폐쇄감과 개방감이 훌륭하게 어우러진 건물이었다.

방이 있어야 할 네모난 자리가 뻥! 위아래로 뚫려서 위로는 하늘이 보이고, 아래론 아래층이 보이도록 만들어진 곳이 많았다. 지금 레브가 지나가는 복도가 그러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밀폐된 복도였던 것이 난간이 달린 회랑으로 변하고, 왼쪽 아래에는 근사한 정원이 가꾸어져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다.

궁내 한 층 아래에 정원이 있다니.

이런 형태가 가능한 까닭은 오프론티스 왕궁이 공중에 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건물이 공중부양하고 있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말하자면 1층에는 벽이 별로 없고 기둥만 많아서 궁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마 기후 때문에 공간을 띄웠을 것이다.

습기가 올라오기 쉬운 땅이라 한 층을 비우고, 2층을 1층으로 삼아 지어진 것이었는데, 여기서 이틀을 머물러본 결과 레브는 이 구조를 아주 불쾌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저 아래 0층.

지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궁궐은커녕 1층 취급도 받지 못하는 저곳을 여기서는 ‘낭하랑(廊下廊)’이라고 불렀다.

낭(廊)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행랑 랑 또는 복도 낭. 이렇게 두 가지로 쓰이는데, 이 때문에 ‘낭하(廊下)’라 하면 ‘대문 안에 지어져서 주로 하인이 거처하는 방’이라는 ‘행랑’의 뜻이기도 하고, ‘건물 안에 다니게 만들어진 통로’라는 ‘복도’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낭하랑(廊下廊)은 위의 두 가지 의미가 합쳐져서 발전된 단어였다.

낭하(下)랑.

‘복도 아래의 복도’라는 뜻인 동시에 하인이 거처하는 ‘아랫’방이라는 뜻이다. 레브는 이 단어에 내포된 오만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배정받아 사용하는 방은 1층임에도 불구하고 테라스가 갖춰져 있었다. 낭하랑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오프론티스 왕성은 방은 물론이거니와 복도 그 어디서든 낭하랑을 찾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기분이 나쁜 건, 시녀들과 하인들, 병사들이 낭하랑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일하고, 떠들고, 생활하는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목청을 돋우면 언제든 명령할 수 있었다.

거기. 놀고만 있지 말고 가서 물 한 잔 떠오니라고.

그렇게 막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 층이 아주 가깝지도 않아서 손에 닿을 듯 말 듯, 밀접하면서도 머나먼 거리감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겐 고개를 치켜들어야 하는 불편함을, 위에 있는 사람에겐 관음(觀淫)의 즐거움과 우월감을 선사했다.

이를 알아차린 레브는 시녀를 부르지 않고 직접 내려가 수건을 받아오는 둥, 같은 평민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다했다.

그 어느 왕국에서도 평민을 이렇게 대우하지 않는다.

하하… 아래에서 생활하는 병사, 시녀들은 그런 레브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멋쩍게 미소 지으며 받아주었다. 그들에게는 아이셀 왕국, 오프론티스 왕성의 구조적인 하대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시종이 큰 목소리로 읍하여 레브의 상념을 깨뜨렸다.

“콘라드 왕국. 예리엘 왕가의 제3 계승권자,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드옵니다~”

발이 오지게 아플 지경으로 걷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사도라 왕가가 사용하는 구역은 오프론티스 왕성의 남서쪽 구획이었는데, 여기가 손님들이 머무는 구역과 조금 멀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낭하랑으로 마차를 타고 잠깐 달리면 해결될 문제였으나 에릭 왕자는 굳이 걷기를 선택했다. 남이 알건 말건,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유의하는 것이다.

이내 문이 열렸다.

드르륵,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거대한 미닫이문이 좌우로 부드럽게 열렸고, 에릭과 레브가 문턱을 넘자 소리 없이 닫혔다. 그리고…

[ 업적 : 왕 5/6 ]

아이셀 왕국에 온 목적 중 하나를 달성했다. 레브는 레안이 도와준 덕에 수월하게 얻어냈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용상에 좌정한 왕과 반 칸 아래에 다소곳이 앉은 왕비가 보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 아리아 이사도라 후궁,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 등 왕가의 인물들이 죄다 모여 있었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엘리카 공주 역시 다소곳하게 앉아 제 신랑이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릭은 멈칫, 멈춰 서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릭이 그녀에게 어떤 감상을 품었든 간에 레브에겐 알 바 아닌 일이었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그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둘러볼 수 있었다.

인물들의 배치가 특이하다. 붉은 나무로 된 옥좌는 여러 층의 평상 같기도 하면서 계단이 달린 커다란 단상 같기도 했다.

알렉산더 드 이사도라 왕이 가장 높은 곳에 앉았고, 반 칸, 또는 한 칸의 간격을 두고 왕자와 후궁 등의 왕족들이 중요도에 따라 차례로 앉은 모양새다. 거기서 레브는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였다.

길버트 포르테. 소드마스터의 외아들이자 벨리타 왕국의 악명 자자한 탕아가 여기 있었다.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아 참. 이이나 이사도라를 따라서 망명했다고 했지.’

레안은 길버트가 클로에 공주와 키스하게 되는 걸 막지 않았다고 했다. 그건 막아 봤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결과로 길버트가 수도교회로 보내지면 다음 회차의 레아가 곤란해질지도 모르므로, 레안이 약간의 수작을 부려 놓았다.

외종사촌인 비비안 왕자에게 미리 말해서 클로에 공주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는데, 결과적으로 길버트는 피해자로 인정받으며 여기로 망명이 가능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길버트는 핼쑥한 표정이었다. 수도교회에 보내지고서도 여색을 밝히던 모지리가 없는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보다.

레브는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곤 넘어가려 했는데…

– “레나!”

– “레오!”

그때 빵집. 뭉게뭉게 일어난 밀가루 연기와 반죽투성이의 레아, 좁디좁은 방의 곰팡이 내음이 일었다.

노을을 뒤로하고, 수도교회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그녀의 뒷모습까지.

레브는 길버트 포르테를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매번 레안의 눈을 통해서 보았고, 그의 기억으로 놈을 기억했었다.

그래서 깜박했다. 내가 저 녀석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속에서 욱! 해묵은 감정이 솟구쳤다. 복수는 한 번만. 그래. 저 녀석에겐 복수했었지. 하지만 내가 하진 못했는걸.

레브는 길버트 포르테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상상으로. 녀석의 입에 양손을 밀어 넣고는 위턱과 아래턱을 위아래로 뜯어버렸다.

그래도 속이 시원치 않다. 레안은 녀석을 너무 무감정하게 살해했었다. 나라면. 만약 나였다면…

레브는 고개를 돌렸다.

더 쳐다봤다간 정말 실행에 옮길 것만 같아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버트 포르테 옆에는 왕의 여동생이자 길버트의 어머니인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가 앉아 있었다.

전에도 봤지만, 보기 드문 안경을 낀 여자였다. 그러고도 앞이 잘 안 보이는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곤 목마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브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

아무도 없는데.

저 눈 나쁜 아줌마가 에릭 왕자랑 나를 헷갈리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레브는 불현듯 깨달았다.

‘저 아줌마 눈알 색. 어디서 많이 봤는데.’

탁한 회색이 섞여서 바짝 마른 낙엽의 색. 안구에 힘을 주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품이 떠오른 듯한 알알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혀있었다.

“중간에 죄송하지만, 에릭 왕자님. 동행하신 분도 소개해주셔야지요.”

상념에 빠져있던 레브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끼곤 정신을 차리었다.

생각과 상상이 얼마나 길었는지 에릭 왕자는 그새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 앞에 좌정해 있고, 그녀의 어머니인 아리아 이사도라 후궁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죄다 놓쳐버린 거다. 그런 와중에 말을 꺼내어 분위기를 망친 건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였다.

그는 도저히 오해할 수 없을 만치 레브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제야 에릭이 레브를 소개했다.

“제가 성급했군요. 레브 경입니다. 저를 여기까지 안전하게 호위해 주셨지요.”

“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실은 제게 레안 드 예리엘 외종사촌께서 연락해서 알려주셨거든요. 아버지, 전에 말씀드렸던 그 기사님이 바로 저분입니다.”

“…흐음. 하지만 젊어도 너무 젊지 않으냐.”

왕과 비비안 왕자는 에릭에겐 별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곧 신랑이 될 왕자가 와서 딸과 처음 통성명하는 자리임에도.

그도 그럴 게 파벌은 이미 극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아리아 이사도라 후궁과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를 중심으로 한 키르기스 공작가 파벌은 이사도라 왕가 내에선 배제해야 할 암 덩어리였고, 엘리카 공주는 이사도라 왕가의 턱에 드리워진 암기나 다름없었다.

키르기스 공작가가 그녀를 이용해 예리엘 왕가에 추파를 던졌다.

아이나스 공주(레안과 레리아나의 어머니)를 시집보내는 둥 예리엘 왕가와 친분을 유지해온 이사도라 왕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벨리타 왕국과의 전면전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더더욱. 심지어 예리엘 왕가는 그 추파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왕자가 에릭 드 예리엘이다. 보는 시선이 고울 턱이 없었다.

제1 계승권자인 레안 왕자가 오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왕은 이 일로 인해 비비안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게 될까 봐 크게 염려하였다. 한 가지 희소식은 레안 드 예리엘 왕자가 비비안 왕자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하며 관계를 다지고 있다는 것인데…

‘레안 왕자가 보낸다던 게 이리도 비리비리한 기사일 줄이야… 막냇동생한테 연락해서 물어봐야 할까? 네 아들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고.’

알렉산더 왕은 내심 불평을 늘어놓았다. 오래전에 시집간 여동생, 아이나스 드 예리엘을 생각하며. 허나 비비안 왕자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쾌활하게 소개했다.

“외종사촌께서 이 기사님의 실력을 겉보기로 평가하지 말아달라 하더군요. 놀랍게도 이분이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가 그런 괴이한 행동을 하리라는 걸 예견해 알려준 사람이다. 비비안은 레안의 말이라면 녹물로 금화를 제조한대도 믿을 수 있었다.

비비안은 “이분이 전쟁에 참전해 저를 도와주실 겁니다.” 선언하였고, 남편의 이름이 나오자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는 더 절박한 눈으로 레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와는 관계없이 엘리카 공주에게 푹 빠져버린 듯한 에릭 왕자까지. 레브는 휘몰아치는 정보에 얼핏, 현기증을 느꼈다.

미세한, 아주 미세한 운명의 실타래가 여기서 볼일을 마쳤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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