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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7

346화.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페트로프.

그의 아버지는 천재 핵물리학자로 냉전시절 미국에 맞서서 소련의 핵무기 개발에 앞장섰다.

부전자전인지 페트로프 교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핵물리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이제 냉전은 끝이 났고, 소련은 해체됐다. 더 이상 돈 들여서 쓰지도 않을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에너지 분야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유용하다.

방사능이나 핵폐기물 문제를 제외한다면, 원자력발전은 다른 발전에 비해 가격이 싸고 효율적이다.

모한 교수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페트로프 교수는 진행파 원자로를 개발 중이네. 그 분야에서는 선구자라 할 수 있지.”

방금 예지를 통해 봤지만, 난 마치 몰랐다는 듯 괜히 감탄했다.

“아, 진행파 원자로…… 그렇군요.”

“어떤 건지 알고 있나?”

“문과라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요.”

최근 본 논문과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다.

어떤 기술이든 시간이 지나면 발전하기 마련. 1950년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원전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차례 진화를 거듭했다.

진행파 원자로(Traveling Wave Reactor)는 현재 원전이 가진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차세대 원전기술이다.

기존 원자로는 핵연료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 멜트다운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시스템을 관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진다. 이제까지 일어난 원전사고 대부분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간의 실수 때문이다.

하지만, 진행파 원자로는 한 번 연료를 장전하면 50년 이상 중단 없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다.

인간의 조작이 개입되지 않으니,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냉각수가 아닌 액체금속으로 냉각하기 때문에, 원자로 압력도 100배 이상 낮아 폭발이나 노심용융 가능성도 거의 없고.

연료다발을 99퍼센트 이상 연소시키니, 방사성 폐기물도 줄어들고 폐연료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도 차단할 수 있다.

예지대로 페트로프 교수가 진행파 원자로 실험에 성공한다면,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 원전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기술이 과연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돈도 돈이지만, 핵융합에너지 같은 신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에너지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찌됐든 일이 진행되려면 페트로프 교수를 만나야 한다.

난 슬쩍 물어보았다.

“무슨 일로 만나시는 건가요?”

“친구끼리의 만남이지. 일전에 페트로프 교수가 칼텍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네. 그때부터 서로 교류를 하고 지내고 있네만, 서로 바쁘다 보니 얼굴 본 지가 좀 됐지. 마침 페트로프 교수도 여유가 좀 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만나볼 생각이네.”

원전기술을 개발하는 핵물리학자와 지진을 연구하는 지질학자.

이 둘이 무슨 관련이 있나 싶지만,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전기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안전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내진설계가 더욱 강화되기도 했고.

내가 갑자기 아무 인연도 없는 러시아의 핵물리학자와 접촉해 투자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모한 교수가 있으면 얘기가 다르다. 매우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내 말에 모한 교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요즘 그쪽에 관심이 좀 있어서요.”

“원자로에 말인가?”

말을 안 해도 대충 사정을 눈치 챘는지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요. 저희가 요즘 에너지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러시아도 한 번 놀러가 보게요.”

잠시 생각하던 모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차피 개인적으로 만나는 거니, 딱히 상관은 없을 거네. 일단 페트로프 교수님께 말씀을 드려봐야겠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다른 자리에서 유리와 대화를 나누던 엘리는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그새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은 살짝 풀려 있었다.

“어디를 간다구요?”

“러시아요.”

“무슨 일로요?”

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엘리는 투정부리듯 말했다.

“뭐예요? 저도 러시아 가보고 싶었는데.”

“그럼 같이 갈까요?”

“그래도 돼요?”

“물론이죠.”

엘리는 재빨리 현주 누나가 있는 테이블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잠시 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왔다.

“히잉, 제시카가 꿈도 꾸지 말래요.”

“…….”

요즘 한창 바쁠 때지.

내가 위로해주는데, 엘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러시아 미녀들 구경하러 가는 건 아니죠?”

“헉!”

엘리는 순식간에 화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러면 화낼 거예요.”

난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제가 그럴 리 없잖아요. 다른 여자 안 볼 테니 걱정 말아요.”

“정말이죠? 옆에서 엄청 예쁜 러시아 여자가 지나가도 고개 안 돌릴 거죠?”

“그럼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 안 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니, 갑자기 엄청 보고 싶어진다.

러시아에 미녀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가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택규한테 다 물어볼 거예요.”

“…….”

최대한 안 보는 척하며 힐끔힐끔 봐야겠다. 아니면, 오택규 입단속 좀 시켜놓던지.

택규는 옆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훗, 이래서 애인 있는 놈은 안 돼. 난 대놓고 실컷 구경해야지.”

난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민하영, 양하나, 그리고 엔리케 공주한테 이른다.”

“……응?”

* * *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는 취했는지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난 그 사이 거실에 나와 택규와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그 러시아 교수가 진행파 원자로 실험이란 걸 성공한다고?”

“응.”

전기차의 확산은 에너지 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그래서 한때는 수소차가 대세가 될 거라는 얘기가 나왔던 거고)

니콜라의 창업자 알렌 에버하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솔라랜드라는 태양광발전 회사에 투자했고, 이후 니콜라와 합병시켰다.

솔라랜드에서 주력으로 만든 제품은 태양광 루프. 집 지붕에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 지붕을 만들어 전기차충전과 가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는 한계가 있겠지만, 좋은 아이디어인 것은 분명하다.

난 자료를 좀 더 찾아보았다.

원전기술은 단지 에너지뿐 아니라, 핵무기와도 직결된다. 때문에 원자로가 있는 나라는 마음만 먹는다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핵무기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NPT(핵확산방지조약)등의 국제규제가 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사실상 해당이 안 된다.

비유를 하자면, 중화기로 무장한 거대조직들이 동네 양아치들이 총질하고 다니는 것을 막겠다며 총기를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제질서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힘의 논리로 움직이니까. 그리고 너도나도 핵무기 개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하는 편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엄청난 규제를 받는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핵실험이 자유로운 편이다. 때문에 원전기술에 대한 연구 역시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것은 역시나 미국. 특히 메가파워의 경우 상용화를 위한 실험단계까지 왔다.

미국은 핵실험에 있어서 딱히 국제기구의 제재를 받지는 않지만, 정부의 규제가 심하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니, 자국 내에서 실험을 한다고 하면 국민들도 좋아하지 않을 테고.

그래서 메가파워는 중국기업과 협력해 중국에서 원자로 실험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실험을 하기 직전 문제가 생겼다.

“무슨 문제?”

“미중무역분쟁이 발발했지.”

어느 나라나 원전 관련 기술은 최고보안 등급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공동으로 실험을 할 경우 중국기업들이 이 기술을 베끼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로날드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기업과의 공동개발과 중국에서의 원자로 실험을 전면중단시켰다.

“뭐야? 그럼 너 때문이었네.”

“뭐…… 관련이 없지는 않겠지.”

이미 중국정부의 승인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딱 한달만 무역분쟁이 늦게 터졌어도 실험에 들어갔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진행파 원자로 개발에 나서는 동안 러시아도 가만히 놀고 있지는 않았다.

미국에 비해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원전기술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일단 기술개발의 역사가 길다. 소련시절부터 핵개발을 해왔고, 원전 상용화와 운용에도 앞장섰다.

진행파 원자로 역시 이미 상당한 개발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실험이 중단된 만큼 러시아 연구진 입장에서는 경쟁자를 제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러시아도 연구가 중단됐다.

“어째서?”

“이것도 어른들의 사정 때문이지.”

현재 러시아의 경제사정은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유가하락. 빅원과 북해유전 파손 등으로 유가가 올랐다지만, 고유가 시절과 비할 바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를 신나게 채굴해서 전 세계에 팔며 유가를 끌어내렸다.

여기에 2014년 크림반도 분쟁이 발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집어삼키자, 서방세계는 강력한 경제적 제재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루블화는 폭락하고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일단락되는가 싶던 크림반도 사태는 이제 동부 우크라이나로까지 번지며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상황이 이런 만큼 성공가능성이 불확실하고 거액이 들어가는 원자로 실험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실험을 중단한 것에 기술적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 수도 있겠지.”

덕분에 우리한테 좋은 기회가 생겼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에서 불곰국 형들과도 뭔가 할 때가 됐지.”

* * *

모한 교수는 원래 예약했던 비행기표를 취소했고, 한국 일정이 끝난 후 우리 전용기를 타고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모한 교수와 캐리와 합류한 우리는 바로 러시아로 날아갔다.

캐리는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전용기라니! 사진 찍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해도 돼요?”

“그럼요. 마음껏 찍고, 마음껏 자랑하세요.”

한국은 날씨가 슬슬 풀리고 있다지만, 러시아는 아직 한겨울이다. 그래서 겨울옷도 충분히 챙겼다.

모스크바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아홉 시간.

비행기가 이동하는 동안 난 러시아어 회화책을 훑어보았다.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칼어 등과는 달리 러시아는 슬라브어군에 키릴문자를 쓴다.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읽고 발음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인사말 몇 개 외우고 책을 덮었다.

택규는 옆에서 괜히 쓰바씨바를 중얼거렸다.

공항에 도착하자 통역과 경호원이 대기 중이었다. 글로벌 금융사인 골든게이트는 러시아에도 진출해 있고, 영어와 러시아어가 가능한 직원을 파견해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터 강. 안젤리나 루다코바입니다.”

큰 키에 새하얀 피부,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슬라브계 미녀였다.

택규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엘리한테 이른다.”

“……벌써?”

아직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바로 준비된 차에 올라타 모스크바 대학으로 향했다.

처음 와보는 모스크바 대학은 크고 아름다웠다.

택규는 감탄하며 말했다.

“강철의 대원수님의 기상이 느껴지는군. 오오! 스탈린 동지!”

“…….”

이게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건물을 ‘스탈린 양식’이라고 하며, 모스크바에 일곱 개가 있다고 한다.

페트로프 교수는 학교 밖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모한 교수와 그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체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그 이상이다. 키는 190센티미터 이상. 금발에 거친 턱수염을 길렀고, 떡 벌어진 어깨와 강철 같은 팔뚝은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택규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핵물리학자가 되려면 저 정도 근육은 길러야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직접 핵연료봉 들고 뛰어다닐 것도 아니고.

다행히 페트로프 교수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같이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니콜라이 페트로프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입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 * *

강진후가 모한 교수와 함께 러시아로 갔다는 사실은 금세 알려졌다. 그의 러시아행은 이번이 처음.

OTK컴퍼니 대표뿐 아니라 부대표도 같이 이동했다. 당연히 방문 목적에 대해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크렘린궁은 강진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

“현재 모스크바 대학으로 이동 중입니다. 30분 후 도착해 페트로프 교수와 만날 예정입니다.”

과연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을까? 모한 교수와의 동행을 핑계로 러시아의 상황을 둘러보려는 건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고의 부자. 단지 돈이 많은 걸 떠나 세계경제를 움직일 만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연방의 맹주였던 것도 옛말. 이제는 돈 많은 자본가라면 두 팔 들고 환영이다.

NATO 동맹국들과 긴장감이 고조되고, 서방의 제재에 신음하는 상황에서 OTK컴퍼니가 러시아에 투자를 한다면, 경제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중요한 일정만 남기고 전부 취소하게.”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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