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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8

346. 소꿉 Ep – 고해성사

레브가 에릭 왕자를 따라 왕을 알현하러 간 그때, 레아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교회를 찾아가고 있었다.

‘고해성사를 받고 싶은데…’

그녀는 본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뽀글뽀글. 속에서 끝없이 솟구치는 신력 때문에.

{신성}에 눈을 뜬 그녀의 몸은 세포 하나하나가 신력을 토하는 공장이요, 저장고였다. 비록 생산되는 신력의 양이 깊은 숲의 옹달샘이 뿜는 물처럼 소량에 불과하지만 {신성}에 눈을 뜬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신력이 넘쳐흐른다.

레아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이 도시 전체… 는 조금 무리고, 오프론티스 왕성에 통째로 축복을 내릴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행동해선 안 됐다.

레브에게 영향이 갈까 봐.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자중해야 했다.

허나 이건 마음씨 여린 레아에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는 건 그녀의 기준에서는 죄이고, 불경이기에. 참다 참다 못한 레아는 이 힘을 어디에 몰래 쏟아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교회가 좋겠지.

교회는 거룩한 전당인 동시에 빈자와 병자, 삶의 낭떠러지에 몰린 이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프론티스 교회에 당도한 레아는 신력을 어디에 쏟아내는 게 좋을지를 물색하며 서성거렸다.

다만 레아는 자신의 그런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두리번두리번.

욕망 가득한 눈으로 교회 구석구석을 헤매었고,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도둑질을 저지르려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적어도 피델리오 추기경이 보기엔 그랬다.

‘…기이한 처자일세.’

추기경은 레아가 교회에 입장했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눈이 끌려서.

한데 그녀가 하는 행동이 참 가관이었다.

성상(聖像) 앞에 서서 놀랄 만큼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기도를 마친 직후 그것을 잡아먹을 듯이 훔쳐보았다. 가끔 손을 쭈뼛쭈뼛 뻗기도 했다.

그러고는 도리도리,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는지 손을 거두기를 수십 차례. 기어이 한 조각상에 손을 대고 말았다.

‘저런.’

하필 아즈라 성인의 성상이라니.

아즈라 성인의 인기가 워낙 좋은지라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겠지만, 저 성상은 오프론티스 교회가 특히 애정하는 물건이었다.

한 손으론 거대한 까마귀의 목을 움켜쥐었고, 다른 손에는 황동 술잔이 들렸다. 달아나려 하는 까마귀의 날개에서 황금이 쏟아진다.

저 까마귀의 정체에 대해서는 신학자들도 잘 알지 못했다. 이 늪지 가득한 땅에 깃든 저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막연히 추측할 따름인데, 아즈라는 이를 퇴치해준 대가로 아이셀 왕국의 ‘나무’를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아즈라 성인을 대표하는 두 개의 성물, 황동 술잔과 나무 지팡이가 갖춰지는 순간이다. 그 때문에 아이셀 왕국에서 나무가 잘 자라지 않게 됐다는 민담이 있지만, 어쨌든.

피델리오 추기경은 저 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기 전에 나서려 했다. 아즈라의 발치에 우수수 떨어진 황금 덩어리가 그녀의 눈을 멀게 한 모양이다.

역시나 그녀는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고 아즈라의 발목을 움켜쥐었는데…… 응?

‘금이 아니라?’

처자는 황금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등을 둥글게 굽혀 절을 올릴 뿐.

잠시 후, 처자는 한껏 개운해진 표정으로 일어났다.

작은 헤프닝. 남이 오해할 뻔한 행동을 하긴 했으나 처자는 순수하게 기도를 올렸을 따름이고, 겉보기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피델리오 추기경은 자신이 어째서 저 여자를 주목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녀의 정체까지도. 피델리오는 가벼워진 걸음으로 교회를 떠나려 하는 아가씨를 불러세웠다.

“실례하겠소이다.”

“네? 앗!”

돌아선 처자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었다. 추기경을 상징하는 보라색 숄에 눈길이 닿았을 때는 거의 백지장에 맞먹게 창백해졌다.

‘역시.’ 피델리오는 제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잠깐 이야기나 하지 않으렵니까? 사제님께 벌을 내리려 하는 건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네에.”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이 영 못 미더운지 따라오는 내내 불안한 표정이었다. 집무실에 도착한 피델리오는 ‘마타비 열매’를 한 움큼 집어 접시에 내어주었다.

이제 갓 성년이 됐을까 말까 한 처자는 접시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이게 뭔가요?”

“마타비라는 열매입니다. 보기랑은 달리 맛이 괜찮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메 넝쿨’ 열매의 충영(蟲癭)1)이다.

원래 우메 넝쿨 열매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인데 겨울벌레가 알을 까면 열매는 제가 살기 위해 기괴하게 비틀리며 자라나곤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먹지 못하던 게 먹을 수 있게 변모한 것으로, 아이셀 왕국의 특산품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레아는 잠시 근심을 잊고선 오도독, 추기경을 따라 마타비를 깨물었다.

“와! 맛이 신기해요!”

“마음에 드십니까?”

“네! 겉보기엔 엄청 단단한데 깨물면 어금니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감촉이 아주 일품… 앗.”

레아는 팔짱을 끼곤 저를 고요히 들여다보는 추기경을 보곤 정신을 차리었다. 내가 미쳤지! 하필이면 추기경 앞에서. 어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레아는 이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기경이면 말 한마디로 왕국을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녀는 황망히 입을 놀렸다.

“저기… 그 오해가 있으셨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한 건 그… 별게 아니라…”

“축성을 내리셨죠?”

“……네.”

들켰구나.

레아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걸 어쩌지? 만약 이 사람이 나를 만난 것으로 인해 평소와 눈곱만큼이라도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면.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레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파국을 예감했다. 하지만 피델리오는 빙긋,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사제님을 벌하려 하는 게 아니라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어느 왕국에서 오셨죠?”

“……콘라드 왕국에서요.”

“음! 콘라드 왕국이라! 그렇다면 혹시 에릭 드 예리엘 왕자의 일행으로요? 하하. 맞군요.”

“…”

“괜찮습니다! 당신이 성직의 꿈을 가졌던 것도 진심이고, 포기하겠노라 마음먹은 것 또한 진심이겠지요. 전 그게 불경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닌 신력을 교회에 돌려놓으셨으니 죗값은 그걸로 충분…”

“신탁을 받았습니다.”

“예?”

“성녀님께서 제게 동쪽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축성을 내린 건… 제게 주어진 일이었습니다.”

‘비나르 님! 죄송해요!’

레아는 결국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성녀님을 팔아서라도 이 사람의 행동을 고정해야 하니까. 그녀는 다소 도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라 하였는데, 제 부주의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당신이 신탁을 받으셨고, 행하는 중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추기경은 잠시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레아가 원하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실례지만 성녀님께 연락해 확인해 보아도 되겠지요?”

“그래주시길 바랍니다.”

추기경쯤 되면 성녀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넣어도 무례가 아니다. 그는 집무실 한쪽에 있는 신물을 붙들곤 잠시 통신하는가 싶더니 놀란 얼굴로 레아를 돌아보았다.

레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성녀님께 전해주세요. 이분에게 근신할 것을 명해주시고, ‘다음’에도 오늘과 같은 날부터 일주일간 근신에 들어가도록 해 달라고요.”

“…하하. 제가 제 근신을 성녀님께 요청하란 말씀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요청하신 대로 전달했습니다. 저도 다음부터는 사제님을 보게 되더라도 모른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녀께서 제게 일주일 근신하라 답해주셨네요. 이걸로 됐습니까?”

“네. 충분합니다. 폐를 끼쳤네요.”

새하얀 백색의 집무실. 다과용 원탁으로 돌아온 추기경은 난데없이 주어진 근신이 싫지 않은지 마타비 한 알을 깨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마침… 오독, 은둔할 핑계가 필요했는데 잘 됐지요. 왕자들의 후계 다툼이 어찌나 극성인지, 귀족들이 절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지 뭡니까.”

“…저런. 곤란하셨겠군요.”

“네. 아주 곤란했지요. 슬슬 루테티아로 돌아갈 때도 됐는데… 제가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서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렵네요.”

“…”

‘나도 그만 돌아가고 싶은데.’

─ 라고 레아는 생각했다. 여기에 발령 나서 추기경으로서 일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되었다는 거나, 그 덕분에 이사도라 왕가와 키르기스 공작가 양측 모두와 친분을 쌓았고 중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이나, 레아에게는 하등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 떠드는 꼴을 보아하니 추기경은 그녀를 쉬이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주름진 혀로 마른 입가를 다시곤(마타비를 먹으면 입이 금방 마른다) 본론을 꺼내 들었다.

“자. 어쨌든… 제 이야기는 됐고, 어떤 신탁을 받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께서 신탁을 내리시다니, 무척 궁금하네요.”

“어… 그게…”

무척 기대하는 눈빛. 레아는 자신과 나이가 마흔은 차이나는 노인의 기대를 꺾기 미안했다. 그렇지만 신탁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마땅찮았다.

“아직 수행하지 않은 일이라 입 밖에 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긴 됐고, 왕궁에서 할 일인데…”

해서 레아는 에둘러 비밀을 가장하였다. 그런데 추기경은 그 의도를 읽고 실망하기는커녕 눈빛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것이 아닌가!

“역시! 역시 왕궁에서군요. 제 짐작이 맞는가 봅니다.”

“?”

뭔 짐작?

애초에 거짓말인데. 추기경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아즈라 성인은 고대의 일곱 악습을 멸하신 분이니 사제님께서는 그분의 가호를 빌어 이 나라에 잔존한 폐단을 몰아내시겠지요.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 그것이 찢어질 날이 도래한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저는 모른척해 드리겠습니다.”

…아닌데요. 저는 그게 뭔지도 잘 모르거니와 그거 코르니우스가 만든 거라 찢어지기는커녕 글자를 고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요.

아까도 ‘다음’이 무슨 뜻인 줄도 모르면서 다음부터는 날 모른체 하겠다고 장담하더니만… 레아는 이 노인을 지레짐작하길 좋아하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바로 다음 말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님께서도 그래 주길 바랄 겁니다. 용기 내어 다가가십시오! 그분은 상처가 많은 분이랍니다…”

레아의 귀가 쫑긋해졌다.

추기경은 그녀를 신의 사도쯤으로 생각하는지 어지간해선 비밀을 사수해야 할,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의 고해성사(告解聖事)2)를 털어놓았다.

1) 식물의 줄기, 잎, 뿌리 따위에서 볼 수 있는 혹 모양의 팽대한 부분. 식물체에 곤충이 알을 낳거나 기생하여 이상 발육한 부분이다

2) 세례받은 신자가 범한 죄를 뉘우치고 천주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일. 고백 성사.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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