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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8

347화.

우리는 페트로프 교수의 안내를 받아 연구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컴퓨터 앞에 연구원들이 앉아 일을 하는 모습은 다른 연구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긴, 대학교 안에서 우라늄이나 핵연료봉을 가지고 실험을 하지는 않을 테니, 이런 모습이 당연하겠지.

진행파 원자로 개발은 국책사업. 페트로프 교수 연구팀은 국고지원과 함께 로사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규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로사톰이 뭐하는 데야?”

“러시아 원전기업.”

한국에 한수원이 있듯이 러시아에는 로사톰이 있다. 원전을 건설하고 유지 및 관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로사톰은 여기에 더해 핵무기 개발과 생산도 한다.

러시아는 자국에서만 총 11개의 원전을 운용중이고, 원전의 해외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프랑스의 EDF와 함께 세계적인 원전기업으로 손꼽힌다.

외부인이 견학 가능한 곳까지 둘러본 후,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홍차와 커피 중 뭐가 좋으십니까?”

“전 커피로요.”

“콜라는 없나요?”

연구원이 음료를 내왔다.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놀라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페트로프 교수는 덩치만큼이나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죄송은요.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요. 모한 교수님께 같이 오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자랑하고 싶은 걸 참느라 고생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교수는 밀린 얘기를 나눴다.

모한 교수는 초기에는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페트로프 교수와 얘기를 하며 그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된 것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서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원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네. 한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피해는 끔찍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니까. 하지만 당장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전을 없앨 수 없다면,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게 맞겠지.”

페트로프 교수가 말했다.

“현재로서 원전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은 에너지입니다. 화력발전은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자동차 매연과 함께 환경파괴의 주범이나 다름없죠.”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은 친환경 에너지 비율을 늘렸지만, 동시에 갈탄을 연료로 하는 석탄발전소를 풀가동하며 오히려 환경파괴를 초래했다. 그러면서 대안이라고 나온 것이 결국 LNG발전이다.이를 위해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수입을 위한 가스관을 건설하는 중이고.

난 김호민 교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김호민 교수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면, 페트로프 교수는 원자력을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새삼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자세한 설명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TWR에 대해서 말입니까?”

“예. 요즘 그쪽에 관심이 생겨서요.”

학자라면 대부분 자신의 연구분야에 자부심이 있기 마련. 역시나 페트로프 교수는 신나서 진행파 원자로의 개요와 장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아시다시피 원자력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인간의 실수로 인해 끔찍한 재앙이 발생하기도 하죠. 하지만 TWR은 현재의 원전이 가진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행파 원자로는 고속증식로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은 1958년 소련에서 처음 나왔다.

“저희 아버지는 핵무기를 개발하던 과학자였습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는 핵무기의 재료로 쓰였죠.”

고속증식로(Fast Breeder Reactor)는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를 다시 태울 수 있다. 페트로프 교수의 아버지와 소련 과학자들은 고속증식로가 폐기물을 처리함과 동시에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라늄 공급부족, 폐연료 보관문제, 핵무기 확산 방지 등은 전 세계적인 숙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어서 진행파 원자로의 원리와 개요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어차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관계로 우리는 그냥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원리는 몰라도 장점은 확실하다.

원자력발전소는 해안가를 따라 지어진다. 이는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한 경수로의 특징 때문이다.해안가에서는 바닷물을 이용해 얼마든지 냉각할 수 있으니까.(한국은 주로 동해안 지역에 몰려있다)

하지만 진행파 원자로는 핵분열 반응이 천천히 진행되고, 액체금속으로 냉각한다. 따로 냉각수가 필요 없는 만큼 내륙지방에 지을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경수로나 중수로에 비해 소형화와 모듈화가 편하다는 것이다. 소규모 발전이 필요한 곳에 하나씩 지을 수도 있고, 큰 배나 잠수함 등에도 탑재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존 원전이 가진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슬쩍 물었다.

“만약 실험이 성공한다고 가정한다면, 상용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페트로프 교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실험만 성공하면, 1년 안에도 상용화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기존 원전과는 다르니, 건설시간과 비용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 단계에서 완전히 올스톱되어 버렸습니다. 모의실험을 하며 데이터를 쌓고 있지만, 언제 실험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단된 이유는 역시 예산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큰 이유겠죠.”

원자로 실험이라는 게 딸랑 원자로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온갖 시설과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주변 주민들도 설득해야 하지만, 러시아는 워낙 땅이 넓고 정부의 힘이 센 만큼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실험과 상용화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10억 달러.

당장 성공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계획이 투자하기에는 큰 금액이다. 하지만 100퍼센트 성공을 확신한다면 엄청나게 싼 금액이다.

“그럼 돈 문제만 해결하면,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겠네요.”

모한 교수는 농담처럼 말했다.

“설마 자네가 투자라도 할 생각인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투자를 하겠다구요?”

“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그야 당연히 예지를 봤기 때문이지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다.

택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어째서라니요!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두 분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이건 환경을 지키기 위한 획기적인 기술입니다.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만 있다면, 돈이 문제겠습니까?”

난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 그렇죠. 기후변화는 인류가 같이 해결해야 할 모두의 문제입니다. 기꺼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두 교수는 감격했다.

페트로프 교수는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며 말했다.

“놀랍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계실 줄이야!”

“아, 아니…….”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사리사욕에 의한 것이니, 너무 감동해도 곤란한데.

* * *

[강진후, 비밀리에 러시아행]

[OTK컴퍼니 CEO의 러시아 방문!]

[모한 교수와 모스크바 대학서 페트로프 교수 만나. 개인적 목적인가, 투자목적인가?]

[강진후, 비소츠키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은?]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러시아에 왔고, 페트로프 교수와 접촉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퍼졌다.

우리는 러시아에 숙소를 잡고 바로 일을 진행시켰다.

기업에 대한 투자와 원전기술에 대한 투자는 전혀 다르다. 원전기술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외국기업의 투자는 반드시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돈을 싸서 짊어지고 와도 정부에서 허가를 하지 않으면 끝이다.

허가가 난다고 해도 여러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이 과정이 적어도 몇 개월 길면 일 년 이상 걸리겠지만, 러시아는 사실상 독재국가.

비소츠키 대통령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OTK컴퍼니는 로사톰에 투자의사를 전달했다. 투자를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복잡한 서류처리 과정이 필요하지만, 돈이 많으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할 필요가 없다.

우리를 대신해 골든게이트 러시아지사가 움직였다.

원전에 대한 투자는 투자를 받는 쪽이나 하는 쪽이나 민감한 문제다. OTK컴퍼니는 미국법인만큼 한국정부에 보고하거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

대신 미국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검토에 들어갔다. 이 부분은 한국지사가 맡았다.

날벼락처럼 쏟아진 일감에 법무팀은 비명을 내질렀다.

난 법무1팀장의 항의전화를 받았다.

[이게 뭐예요? 진후 때문에 지금 팀 전체가 퇴근도 못하고 있어요!]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일이 그렇게 많아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진행파 원자로에 투자하러 갔으면서 왜 아무 말도 안 했던 거예요? 미리 얘기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요.]

아무래도 업무폭탄보다 미리 얘기를 안 해준 것에 삐친 것 같다.

“미안해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일단 얘기만 좀 들어보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결정이 된 거라서…….”

[거짓말이죠?]

“……정말이에요.”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았지?

난 한참동안 엘리를 달래주었다.

“선물 사갈게요. 화 풀어요.”

그러자 엘리는 목소리가 좀 누그러졌다.

[그건 어떤 선물 사오는지 봐서요.]

“…….”

마트료시카로 되려나?

“그보다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요?”

[지금 찾아봤는데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메가파워의 연구가 중단된 것은 미국의 원전기술이 중국 쪽에 유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 우리는 기술이 아닌 자본만 투자하는 것이니, 법적으로 걸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제시카는 다른 문제를 걱정하던데요.]

현재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제재대상. NATO 회원국들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라며 압박하는 중이다. 물론 러시아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있지만.

법적인 문제를 피한다고 해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미국이 허락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러시아는 한때 미국의 적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급부상한 뒤로 상황이 좀 달라졌다. 미국은 러시아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대외전략을 수정했다.

로날드 대통령 역시 이러한 전략을 밀었다. 그래서 중국은 신나게 두드리면서도, 러시아 제재에는 소극적이다.

또한 원래 대선 전부터 친러파로 유명했고, 대선 전에 비소츠키 대통령과 개인적인 만남을 자주 가졌다.

법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딱히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비소츠키 대통령의 의중인가?

* * *

크렘린궁에서는 대통령 주재로 비밀리에 회의가 열렸다.

로사톰과 가즈프롬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명목상으로는 둘 다 민영기업이지만, 독재국가답게 사실상 정부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트루소바 로사톰 사장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OTK컴퍼니의 투자를 받을 것 없이 로사톰이 투자해도 충분합니다.”

강진후는 이제까지 모든 투자를 성공했다. 그가 관심을 보인다는 건 실험 성공과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로사톰이 자본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굳이 OTK컴퍼니를 끼워줄 필요가 없다. OTK컴퍼니의 투자를 받으면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지만, 대신 이익도 나눠 가져야 하니.

에너지부 장관 역시 생각이 비슷했다. 그러나 몇몇은 의견이 좀 달랐다.

“강진후가 이쪽 분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면, 러시아가 거절해도 다른 곳에 투자할 겁니다. 현재 기술적으로는 미국의 메가파워가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진후를 배제하기 보다는 그의 명성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러시아의 원전기술을 인정받은 셈 아니겠습니까? 강진후와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원전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경각심이 커지며 세계적으로 원전건설은 한동안 멈춰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만큼 수요가 적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요는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영국, 중국, 체코, 일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등.

원전건설 계획을 확정했거나, 재검토를 하고 있는 나라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러시아는 수주를 따내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이 분야에서 세계최대 기업은 역시나 프랑스의 EDF. 기술력 역시 세계최고 수준이다.

중국은 CNNC(중국핵공업집단) CNNP(중국원자력발전) 등을 앞세워 저가수주로 치고 들어오고 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수출실적을 쌓아 세계원전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한국 역시 강력한 경쟁자다. 한국은 70년대부터 중동건설에 앞장섰고, 그때 쌓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중동 원전건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랍 에미리트의 바카라 원전을 수주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로사톰은 서방의 제재 등으로 인해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진행파 원자로를 실험에 성공한다면 이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

원전 분야에서만큼은 러시아가 세계최고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다!

러시아가 성공하면 미국과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바로 실험을 재개해 추격을 해오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확실하게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다.

볼코프 총리는 대통령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만큼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았다.

“강진후는 자율주행전기차, 게임, IT 등 여러 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를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시키고, 산업전반에 걸쳐 OTK컴퍼니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는 침체된 러시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강진후를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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