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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

35화 전쟁 속의 전쟁 (1)

35화 전쟁 속의 전쟁 (1)

“족제비.”

“응.”

“왜. 가?”

“응?”

족제비는, 아니 조아킴은 세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세실. 미,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아킴은 페르디나를 벗어나 너른 벌판을 걷고 있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활과 화살, 그리고 검만 챙겨서 나온 그는 당장 성문을 지날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조아킴을 보며 세실이 한숨을 쉬었고, 놀랍게도 세실은 조아킴을 등에 업은 채 유령처럼 성벽을 뛰어넘었다.

“왜. 데미안. 따라. 가?”

세실은 길게 말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나,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광산을 탈출할 때도 짐만 됐고, 잡화점에서도 하는 일이라고는 요리와 청소뿐이고······.”

“요리. 괜찮아.”

세실의 말에 조아킴은 반색했다.

“저, 정말? 맛있었어?”

“응.”

“쿠가 만든 것보다?”

“맞고. 싶어?”

세실이 손날을 세워 들자 조아킴은 히익!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그, 금발 약골은 종종 무모할 때가 있어. 광산을 탈출할 때도 그랬고, 얼마 전에 사기도박꾼과 도박할 때도 그랬고······. 자, 자꾸 위험한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아서, 게다가 나는 늘 도움만 받았으니까······, 그래서 도우려는 거야.”

“금발. 약골?”

세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조아킴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미, 미안해.”

조아킴은 원래 세실을 무서워했다.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고, 또 가끔 드러나는 세실의 인간 같지 않은 표정과 움직임을 볼 때면 등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렀으니까.

심지어 몇 번의 도약만으로 페르디나 성벽을 뛰어넘는 괴물이었다니.

“족제비.”

“······응?”

“금패. 쿠?”

“아, 이거?”

조아킴은 품에서 금패를 꺼냈다.

꼭꼭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성벽을 넘을 때 들킨 모양이다.

“응. 쿠가 빌려줬어. 후, 훌륭한 궁수가 되라면서.”

사실은 조아킴이 떼를 썼다.

하지만 조아킴도 쿠가 정말로 금패를 빌려줄 거로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 그런데 세실. 이 방향 맞아?”

“응.”

“어떻게 알아?”

“흔적. 있어.”

무슨 흔적이 있다는 걸까.

“족제비.”

“응?”

“약골.”

“······.”

“데미안. 못 지켜.”

조아킴을 돌아보는 세실이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훈련. 필요해.”

그때의 조아킴은 그 말의 숨은 뜻을 알지 못했다.

***

나는 ‘황금의 검 용병단’의 후미를 달리고 있었다.

벨레트는 내게 잘생긴 회색마도 한 마리 빌려줬다. 이 도를 넘어선 친절을 보며, 나는 쿠와 벨레트가 모종의 계약을 맺은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렸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로 쿠가 뛰어난 전사라는 뜻이겠지.’

쿠가 오러를 발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는 소드 엑스퍼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거겠지. 예를 들면 앙리 몽포르처럼.

“그 건방진 117번은 보이지 않는군. 전쟁이 벌어지니 꽁무니를 내뺀 건가. 한심한 녀석 같으니.”

아까부터 내 옆에 착 달라붙어 말을 달리는 카인의 주절거림이었다.

“차라리 잘 됐군.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117번은.”

“테오는 사업 때문에 바빠.”

“그 랑베르 잡화점인가 하는 곳 말인가.”

“알고 있었어?”

“네가 도박사 세르지오를 엿 먹인 사건은 제법 유명하더군.”

카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대체 카인 녀석이 왜 이렇게 나한테 친한 척을 하는 걸까. 아까부터 나를 노려보는 마르셀 놈도 신경 쓰이고.

“궁금한 것이 있다. 데미안.”

“뭐를.”

“강철손 모건에 대한 것 말이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카인의 표정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너도 알고 있었던 거야?”

“물론. 그 이유로 그는 죽을 것이다.”

나는 저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혹시 오스카 단장도 연관된 일이야?”

“그건 아닌 것 같더군. 단장은 다혈질이지만 악인은 아니다. 사리 분별도 할 줄 아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을 왜 죽였냐. 소설에서는.

“나는 힘을 키울 거다. 데미안.”

“그래. 열심히 해.”

“머지않아 나의 용병단을 만들 것이다.”

“응.”

“너도 함께하는 것이 어떤가.”

내가 미쳤냐. 거기 들어갔다가 흑화한 너한테 살해당하라고?

“거절하겠어.”

“왜지?”

“내 길은 내가 정할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내 앞을 달리는 수많은 용병들을 봤다.

벨레트는 휘하에 3개의 대를 거느리고 있다.

1번대는 황금의 검 용병단.

2번대는 검은 갈기 용병단.

3번대는 고독한 늑대 용병단.

참고로 ‘고독한 늑대’는 쿠가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으로, 3번대는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은 용병들로 구성된 누더기 집단이다.

쿠는 3번대의 대장이었다. 나 역시 3번대에 속해 있고.

“······이런.”

돌연 카인이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드디어 할 말이 떨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와 수다를 떤 것에 대해 고참 용병에게 혼나고 있었다.

‘카인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소설 초반의 카인은 이미 모건과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서열로 치면 검은 갈기 용병단에서 3, 4위쯤 됐을 테지.

나는 혼자가 된 틈을 타 댓글과 RP를 확인했다.

◎ RP: 23

좋아. 리메이크 스킬을 발현할 수 있을 만큼 모였다.

***

어젯밤부터 시작된 행군은 오늘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멈췄다. 용병들은 야영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몇몇은 불을 피우는 역할을 맡았고, 다른 몇몇은 물을 끓이고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눈치껏 용병들을 도왔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그들이었지만, 얼마 후부터는 내가 생각보다 일을 잘한다고 느꼈는지 이것저것 일을 맡겼다.

“오, 금발. 제법이잖아.”

나는 잡일을 하며 쿠를 찾아봤다. 쿠는 행군을 멈추자마자 회의가 있다며 자리를 떠났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저만치 검은 갈기 용병단이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2번대인 검은 갈기 용병단과 우리 3번대는 한 몸처럼 움직였기에 늘 가까이 붙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카인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체 왜 그러냐, 너.

카인에게 눈이 팔린 탓에 나는 누군가와 몸을 부딪쳤다. 사과하고 물러나려는데 그가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뭐야. 이런 애새끼도 전쟁에 나간다고?”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나를 봤다. 체구가 상당한 자로, 검은 갈기 용병단 소속이었다. 제법 경험이 많은지 얼굴에는 칼자국이 여럿 나 있었다.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그래. 가는 길에 저놈들도 데려가면 되겠군.”

사내가 카인 일행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주위에서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검은 갈기 용병들이었다.

나는 사내를 통찰한 후, 빈정거리듯 말했다.

“너야말로 뒈지기 싫으면 짐 싸서 돌아가는 게 좋을걸. 얼굴에 성한 피부를 찾기 어려운 걸 보니 실력도 없는 주제에 여태 운빨로 살아남은 모양인데, 그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는 거니까 말이야.”

“뭐라고?”

나를 바닥에 내던진 사내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내 이름은 도미닉이다. 뽑아라. 한 수 가르쳐 주지.”

도미닉의 레벨은 31. 무한회귀 세계관에서 ‘중급 소드유저’에 해당하는 자다.

반면 내 레벨은 최근 두 단계 상승했지만 27. 아직 ‘하급 소드유저’에 머물러 있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병사로 치면 상급 병사와 중급 병사만큼의 수준 차이가 날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도미닉에게 빈정대며 싸움을 걸었다. 왜냐고?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스릉.

검을 뽑았다.

나의 검술 적성은 2레벨, 상대는 3레벨이다.

그러나 내게는 ‘검의 재능’ 특성이 있다.

그리고.

“빌어먹을 애새끼가!”

도미닉이 달려들었다. 나는 두 발을 굳게 땅에 박으며 그를 주시했다. 상대의 검이 쇄도한 순간 내 검이 움직이며 카앙! 날 선 소음을 울렸다.

주르륵, 내 몸이 뒤로 밀렸다. 아무리 ‘검의 재능’이 있어도 아직은 개화하지 않은 꽃봉오리다. 이 대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플레이어 레벨과 검술 레벨, 그리고 실전 경험이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면 봐주겠다! 으하하하!”

도미닉이 크고 강한 움직임으로 나를 압박했다. 예전이라면 제대로 손도 못 쓰고 당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들판을 달리며 체력을 단련했고, 쿠에게 검술도 배웠다.

‘그래. 쿠에 비하면 별것 아니야.’

도미닉은 강했지만, 쿠와는 비교 대상조차 아니었다. 내 눈이 차갑게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짧아졌다.

도미닉의 검이 내 어깨를 노리며 내려왔다. 나는 빠르게 자리를 옮기며 공격을 막았다. 두 검이 충돌하며 불똥이 튀었고, 도미닉은 아주 약간이지만 공격의 리듬이 무너졌다.

어느새 주위에는 많은 용병이 몰려 있었다. 그 안에서 카인을 발견한 나는 히죽 웃어주었다. 녀석 덕분이니까. 내가 이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비검(Lv.1)을 발현합니다.]

내 검이 상대가 흘린 작은 틈을 노리며 쏘아졌다. 그 순간 나는 카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동기화 스킬로 그의 가장 강력한 공격기를 훔쳤으니까.

카앙!

도미닉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들렸다. 나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그에 놀라 뒷걸음질 치던 그는 제 발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역시 운이 좋네. 바람구멍 하나쯤은 내줄 생각이었는데.”

도미닉의 목에 칼날을 드리우며 나는 옆을 눈짓했다. 도미닉이 옆을 돌아봤고, 자신을 향한 쿠와 오스카의 사나운 눈빛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일어섰다.

“이런 미친놈이! 이제는 하다 하다 3번대 꼬맹이까지 괴롭히는 거냐!”

오스카가 도미닉의 가슴을 걷어찼다. 부리나케 달려온 모건이 오스카를 말렸지만, 오스카의 발길질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

.

.

“이보쇼 대장. 그 금발은 잘못한 거 없수.”

“맞아. 먼저 시비를 걸고 검까지 빼든 건 검은 갈기 놈이었다니까?”

내 덜미를 잡아들고 가는 쿠를 향해 3번대 용병들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어린 나이에 상당한 검술인데?”

“마지막에 검 뻗는 거 봤어?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더라니까?”

“저 치켜뜬 사나운 눈깔 좀 보라고. 크게 될 놈이야.”

용병의 무리를 지나간 쿠는 나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후우, 한숨을 쉬었다.

“성격 까칠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하루 만에 고참 용병과 싸움질할 줄은 몰랐는데.”

“용병들 하는 말 못 들었어요?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요.”

쿠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조금 아파서 내 입에서 아악! 소리가 튀어나왔다.

“용병들이 저런 시비를 거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야. 저들 나름의 환영식이기도 하고.”

“하지만 쿠.”

“금발 꼬마. 우리는 전쟁을 하러 가는 거다. 오늘 죽이니 마니 하는 사이가 내일은 서로의 목숨을 구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쿠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한 점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알겠어요.”

“그래. 그럼 가 봐라! 하하하하!”

내 등을 찰싹 때리며 쿠가 껄껄댔고, 나는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3번대 용병들에게 돌아갔다.

***

조르르 달려가는 데미안의 뒷모습을 보며 쿠는 생각에 잠겼다.

잘못 본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데미안이 마지막에 보인 일격은 분명 하센베르크의 검술이다.

하지만 어떻게. 데미안이 그 검술을 익히고 있는 것일까.

쿠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카론 늪지에서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그 어떤 영창이나 술식 실행의 과정도 없이 펼쳐졌던 데미안의 마법. 그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쿠는 하마터면 데미안이 늪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구하지 못할뻔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얼마 전의 어둠굴에서도 데미안은······.

쿠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그러한 힘을 발현하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그가 이 드넓은 아스트레아 대륙을 유랑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악마의 숨결을 삼킨 자.

소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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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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