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5

35화 요즘은 군대도 밥은 잘 먹인다는데

하리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훈련이란 이름의 쌈박질을 하는 헌터들을 보며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괘, 괜찮은가요? 정말 저런 식으로 훈련을 해도?”

-이론상 완벽.

그야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어찌 사람이 이론대로만 움직인단 말인가. 레온은 그 한계를 인정했다.

“그래, 한계는 있겠지. 허나, 병사 레벨에서는 충분히 성장할 것이다.”

레온은 그들의 성장 한계치는 제가 이끌던 근왕병보다 못 미치는 수준을 상정하고 있었다.

스펙 자체가 근왕병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기사 클래스가 아닌 근왕병이나 1군 정예병사 수준이라면 지금의 헌터들도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

‘허나, 경험의 차이가 너무 크지.’

근왕병들은 왕국 전체에서 숱한 전쟁을 겪어온 프로 전쟁꾼들. 지휘관의 명령이 없어도 십인대 단위로도 충분히 전술적 행동이 가능한 자들이다.

팔십만 오크 개떼와의 전쟁에서 너무나 넓어진 전장 속 근왕병들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능선을 방어하고 요충지로 지원을 갔다.

못해도 삼십 년. 길게는 오십 년까지 전장에서 구른 최정예군 수준을 바란다는 건 너무한 처사이리라.

“진짜 실력은 실전경험으로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 짐은 저들의 육체를 한계까지 단련시킬 것이야.”

본래라면 상비군 수준에서는 이 정도로 가혹하게 굴릴 필요는 없었다.

“짐의 백성이었다면 이미 완성된 육신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신들이 축복한 작물과 환경 속에서 자라왔으니.”

허나, 이들은 아니었다. 불신을 넘어 신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이들이다. 그들은 병든 삶을 살아왔으며 온갖 병에 취약했다.

“건강한 몸을 지닌 신민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자극을 주어 깨우칠 필요가 있지.”

“그, 그렇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식한 중세식 막가파 단련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하리는 애써 이를 이해하기로 했다.

“저… 폐하. 저는 따로 훈련이 없사옵니까?”

하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협회 소속의 파견 직원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레온과는 가장 오래 함께한 지구인이다.

그녀 자신도 A급 헌터지만,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은 헌터 공통이었으니.

“뭐냐, 저 안에 끼고 싶은 거냐?”

“어음… 안 될 것 같사옵니다.”

싫다는 게 아니었다.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났다.

“흥, 그래. 네게 있어 저들은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겠지.”

“으음… 그 정도는 아니옵니다.”

“겸손도 그쯤 되면 오만이다. 병사와 기사의 재목이 다르듯 그 훈련법도 다른 법. 너는 병사의 훈련처럼 단순무식하게 단련할 필요가 없다.”

무식하다는 자각은 있었구나!

하리는 이 야만스러운 중세 기사왕이 때론 날카로울 정도로 자기객관화가 잘 된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슬슬 끝나갈 시간이니 식사를 준비하러 가지.”

“아, 예! 그렇군요! 고된 훈련을 했으니 밥이라도 잘 먹어야겠죠!”

하리는 고된 훈련을 하는 헌터들을 상대로 고기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레온이 다 어련히 알아서 준비했을 테지.

그러나 하리는 병사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식사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저… 폐하? 이거. 물인가요?”

희멀건 물이었다. 무언가를 넣긴 했는데, 저 희뿌연 것이 어떤 특제 약이라도 되는 걸까?

“이 희뿌연 것은 무엇인지요? 폐하께서 준비하신 축복받은 무언가인가요?”

“소금이다.”

“……그뿐이옵니까?”

“설탕도 있지.”

이상해. 이상하다.

그걸로 끝나면 안 된다. 무언가가 더 있어야 했다.

“하리여, 병사들에게 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잘 먹고 잘 훈련 받는 거요?”

지금 그 두 가지 모두 개판임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었다.

“훗, 전시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병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독기’다.”

“독기요?”

“행복한 병사는 살육을 쉬이 저지르지 못하는 법. 모자란 보급과 열 받은 상태로 두는 것이 악바리가 생기지 않겠느냐.”

고로 병사에게는 최소한의 물품만을 지급해 독기를 키운다. 하리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요, 요즘은 군대도 밥은 잘 먹이는 편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이 어딜 반문이더냐. 네 녀석이 짐처럼 군대를 이끌어 보았느냐?”

“……아뇨.”

“헌데 어찌 짐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단정지을 수 있지?”

“그, 그건…….”

내가 해봤는데 됐음. 넌 해봤음?

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폐하. 권고사항.

오오, 야피 경. 역시 기계의 냉철한 수학적 지식으로 객관적인 지적을 하려는 건가!

‘야피 경! 야피 경의 계산식에 모두의 생존권이 달려 있어요!’

힘 내라, 야피 경!

“말하게, 스피너 경. 그대의 말에 짐이 귀 기울이고 있다.”

-인간 최소 생명활동유지에 필요한 나트륨보다 17mg, 112칼로리가 초과됨. 적확한 정량에 따라 배급을 줄여야 할 것을 권고.

악마다! 악마들이다!!

경험에 의거한 사람의 악바리를 키우는 병사 훈련법과 온기라곤 1도 없는 냉철한 기계의 계산식이 환장할 콜라보를 이루었다!

* * * *

저녁식사 후 다시 재개된 훈련이라는 이름의 고문. 때아닌 우기에 당일 훈련은 중지되었다.

헌터들은 전우애 향상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회관에 욱여 넣어졌고 주륵주륵 흐르는 빗물마냥 늘어진 헌터들.

“으으… 그렇게 고생했는데, 고작 설탕물 두 잔 먹고 끝이라니…….”

“으아, 삭신이 쑤신다. 아파…….”

첫 훈련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몸은 멀쩡했다.

‘진짜 다 나았어.’

구대성은 찢어졌던 피부와 부러졌던 뼈가 멀쩡한 것이 신기했다.

아직 실감은 안 되지만, 정말 뼈가 단단해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성배의 회복력은 엄청났다. 어지간한 힐러급의 회복력을 몇 시간이고 지속해서 부여해준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게 광역 힐이라는 것이다.

보통 힐러가 한 명씩 힐을 해주는데다 마력의 제한도 있는 반면, 레온의 성배는 범위 내 모든 아군을 재생시켜줄 뿐 아니라 지속시간도 최소 다섯 시간.

차원이 다른 회복력이라 할 수 있었다.

“으… 그래도 배고파.”

격한 단련으로 헌터들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식사시간에 받은 것이라곤 설탕과 소금을 넣은 물 두 잔.

일단 칼로리 자체는 문제없었다. 혀가 아릴 정도로 설탕이 가득 부어진 덕이다.

영양소는 둘째 치고 일단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유지는 된달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식사는 너무 부족했다. 그만큼 고된 훈련을 했는데, 고작 그것을 먹고 만족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군대 내무반 마냥 옹기종기 모여 모포 한 장만 뒤집은 채,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쏟아지는 빗물에 묻힌다.

“젠장, 빗물이라도 마셔야 하나?”

“배고파…….”

열한시. 잠에 들 시간이지만, 누구 하나 잠들지 못하는 밤. 회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계세요?”

“하, 하리 양?”

하리가 빼꼼 드민 얼굴로 허가를 구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어쩐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다들 배고프실 것 같아서 야참 좀 싸왔어요.”

하리의 두손에는 광주리 한가득 감자와 고구마가 들려 있었다.

“시원한 물이 없어서… 요앞에서 생수 좀 사왔어요. 다들 고생하셨는데, 이거라도 드세요.”

‘처, 천사다.’

‘아직 어린데 어쩜 저리 참할꼬.’

하리의 배려에 구대성과 헌터들은 감격에 젖어들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감자와 고구마를 들고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욱여넣는다.

“꺼흐흑! 맛있어! 맛있어요, 하리 양…!”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천천히들 드세요. 감자와 고구마는 아직 많으니까요.”

하리는 거지꼴을 한 채 허겁지겁 감자를 집어먹는 헌터들을 보며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래, 사람이 그래도 먹을 거 가지고 섭섭하게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대격변으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기에 먹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물도 좀 마시면서 드세요. 날도 더운데 수분 보충도 해야──”

-콰릉!

회관의 문이 노크도 없이 열린다.

흙바닥을 축축하게 때리던 세찬 빗소리도, 내리친 벼락 소리에 묻혀버린다.

외부와 이어지는 회관의 열린 문. 벼락이 만들어낸 잠시간의 뇌광이 빗물로 젖은 차가운 동체를 밝힌다.

-끼룩.

쏟아지는 빗줄기와 벼락을 배경으로 세운 거미기계의 안광이 평소보다도 싸늘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여덟 개의 카메라 아이가 삐걱삐걱 사방을 두르며 시뻘건 빛을 낸다. 마치 최중요 기밀구역에 침범한 침입자를 보는 것처럼.

“야, 야피 경…….”

-부정행위 발견.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기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무겁고 싸늘했다.

* * * *

비로 젖은 흙바닥을 여덟 개의 다리가 주파한다.

질퍽한 바닥조차 다각전차에게는 별다른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머, 멈춰요오오!”

반면 이를 쫓는 붉은 댕기머리 소녀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달린다. 그 시선에는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것이 섞여 있다.

“자, 잠깐만!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야피 겨어어엉!”

레온 몰래 감자와 고구마를 챙겨주다 걸렸다.

그녀로선 동정심과 배려에서 준비한 음식이지만, 레온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를 일이다.

들켰다는 것을 파악한 순간, 헌터들이 허겁지겁 감자와 고구마를 욱여넣는 것을 떠올리자면 눈물이 났지만, 문제는 이 사실이 레온에게 보고된 뒤다.

야참을 먹은 만큼, 설탕물에서 설탕을 빼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이 얼마나 가혹한가!

곧장 레온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다닥다닥 달리는 야피를 말리기 위해 하리도 필사적이다.

다행히 야피의 속도는 하리보다는 느렸다. 워낙 보폭이 짧은데다, 덩치가 작아진 만큼 출력이 떨어진 탓이다.

“거, 거의 다 잡았다!”

그렇게 하리의 손이 닿기 전, 야피가 멈춰 섰다.

-추적 중단요청. 귀하는 중대한 위법행위를 자행하고 있음.

“아, 알았으니까! 알았으니까! 멈출게요! 됐죠? 잠깐만 이야기를 들어줘요!”

야피가 멈춰 서자 하리도 자연스럽게 멈췄다. 하지만 이건 야피의 심리전이다. 숱한 전투기록 속에서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야피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다 바로 다시 뛰었다.

“소, 속였어?! 지금 협상하는 척하면서 속인 거예요?!”

하리가 허겁지겁 달렸다. 하지만 어느새 하리의 발목에 억세고 단단한 것이 묶여있었다.

“와이어? 어푸!”

흙바닥에 자빠지는 하리. 그러는 사이 야피는 거리를 벌렸다. 하리는 자신의 발목을 묶은 것이 와이어임을 눈치채고 손가락을 튕긴다.

-화륵!

거친 빗줄기 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길. 그녀가 가진 불의 축복은 우기 속에서도 발목에 묶인 와이어를 태워버렸다.

“거기 서…!”

다시금 달리는 하리. 10%의 남짓의 출력인 야피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하리가 몸을 던진다.

“잡았드아!”

온몸을 던져 야피를 잡아내는 하리. 진흙이 얼굴에 튀고 정장이 다 찢어졌지만, 헌터들의 한끼를 지켜냈다는 기쁨이 이를 상쇄했다.

-터치다운.

허나, 그녀가 몸을 던져 야피를 낚아챈 곳은 딱 레온이 머무는 숙소의 코앞이었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레온이 냉엄한 시선으로 하리를 내려다본다.

“잘밤에 이게 무슨 소란이냐.”

“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하리. 하지만 기계는 당황하지 않는다. 조목조목 차가운 목소리로 보고를 올린다.

-부정행위 발견. 필요 이상의 영양분 공급 발각.

하리가 밥 주다 걸렸다. 야피는 잔혹한 보고를 읊어나갔다.

“쯧… 고작 하루를 못 참아 그런 짓을 벌였단 말이냐.”

“아, 아니, 그게… 죄송… 해요.”

하리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이 밥은 제대로 먹여야 할 것 아닌가.

“되었다. 이미 먹은 것을 어찌하랴. 허나, 다음부터는 주의해야 할 것이야.”

하리가 납득하지 못한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레온은 피식 웃으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게이트에서의 실전 훈련 때는 제대로 먹일 것이다. 다음 게이트나 낙찰받아 와라.”

“그, 그렇군요!”

요컨대 게이트 공략 중에는 제대로 먹인다는 뜻인가! 하리는 헌터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적당한 게이트를 찾아야겠다 여겼다.

“아, 맞다. 폐하… 실은 내일 보고할 예정이었사옵니다만.”

“무엇이냐.”

“폐하께서 요청하신 대로 훈련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협회장님이 수료식에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흠, 그런가.”

이는 레온이 요청한 것이었다.

훈련받은 헌터들의 등급을 재평가하기 위해 그들을 수료식에 초대했다.

레온은 이들을 데리고 노란색 게이트를 공략할 것이고 그곳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헌터들의 등급이 공식적으로 재평가된다.

만신전 길드에 들어오면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병사를 모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손님들이 많겠구나. 방문한 손님을 소홀히 해서야 사자심왕의 권위가 손상되겠지. 주민들에게 일러 준비를 하라 일러야겠다.”

“전달하겠사옵니다아아…….”

레온은 야피를 쫓느라 엉망진찬인 하리의 꼬락서니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얼른 가서 씻어라. 그리고… 앞으로 야참은 챙겨주도록 해라. 이 땅의 작물을 좀 챙겨주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 말에 하리의 안색이 밝아졌다. 소금물만 먹어야 하는 훈련병들이 안쓰러웠는데, 감자와 고구마를 허락하시다니!

과연, 이게 고마워해야 할 사안인지는 몰라도 헌터들이 4주간 소금물만 먹으면서 버티는 일은 없어졌다.

‘후… 그래도 나름 자비로우신 분이라니까.’

하리는 몰랐다.

이 융통성이라곤 없는 권위주의자에게 일방적인 플러스나 마이너스는 없다.

플러스가 있으면, 당연히 마이너스를 넣어 되돌려야할 것 아닌가?

성배기사 상비군 훈련 매뉴얼 필자 그라타스 경 가라사대.

요령 피우는 병사는 반드시 좆되게 만들어줘라.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