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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0

348. 소꿉 Ep – 도둑질

“이제 알겠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레아야 나 잠깐… 아니다, 너도 같이 가자.”

“어딜?”

“이이나 이사도라를 만나러.”

“이 시간에? 해 떨어졌어.”

“더 잘 됐지.”

레브는 거침없이 방을 나섰다.

랑하랑을 통해 어디서든 올라올 수 있기에 되려 사람이 없는 복도가 음산하다. 인기척 없이 적막한데도 호롱불은 곳곳에 달려 있었다.

뒤에서 레아가 말했다.

“레브, 그러면 잠깐만. 나 옷 좀 갈아입을게. 이런 꼴로 공주님을 알현할 수는 없잖아.”

그녀는 평상복 차림이었다. 레안 왕자한테 받아서 두고두고 아껴놓은 드레스를 꺼내 입을 생각이었는데 레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면 됐어. 우린 공주를 알현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얼른 나와. 너무 늦으면 못 써.”

“방금 공주님을 만나러 간다며?”

“맞는데, 아니야. 이이나가 우리를 찾아오게 할 거야. 하하! 기대해도 좋아.”

“??”

레아는 알쏭달쏭하면서 뒤따라갔다. 레브가 끼익- 종이 달린 어느 미닫이문을 젖히자 랑하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항시 대기 중인 시녀도.

“어서 오십… 아, 레브구나. 레아랑. 깜짝 놀랐네.”

“누나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누나 차롄가 봐요?”

“아니. 로라가 근무설 차롄데 열이 나길래 바꿔준 거야. 그보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뇨. 잠깐 산책을 다녀오려고요. 기록하실 필요는 없어요.”

“너도 레아랑 똑같구나? 레아도 매번 적지 말아 달라고 하던데. 그래, 잘 다녀와. 사고만 치지 말고.”

레브는

“네, 누나. hvala ti!”

─ 라고 말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셀 왕국의 방언으로 고맙다는 뜻인데, 친구나 연인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번번이 고맙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때 쓰는 말이었다.

어두운 문가에 남은 시녀는 외국인의 어설픈 방언 사용에 피식, 웃고 말았다. 사람들이 왜 저 청년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레브는 랑하랑의 사람들, 특히 시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왕궁에서 생활할 정도로 능력이 있고, 그러면서 오만방자하지 않고 늘 깍듯한 청년인 것이다.

또, 어딘가 우수에 잠긴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는데, 아직 성년도 안 된 연하에게서 그런 묘한 성숙함이 감도니 시녀들 사이에서는 인기 폭발이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말을 걸거든 저의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내며 활짝 웃어주는 게 모성애를 자극한다나 뭐라나… 어쩌면 로라는 아파서 열이 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라고 시녀는 생각했다.

계단을 통해 랑하랑으로 내려온 레브와 레아. 왕궁 숙소 아래엔 방문객을 위한 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레브는 그곳에 있는 마구간에 가서 반테‘들’을 꺼내 왔다.

– 히힝! 푸륵.

– 히힝! 푸륵.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짓이냐는 듯 투정을 부리는 반테들. 하는 행동이 판박이다. 말 등에 오르던 레아는 문득 생각이 나서 빈정거렸다.

“저번에도 기대해도 좋다고 잔뜩 부풀리고는 별거 없었잖아.”

“…아, 그땐 반테가 그따구로 소환될 줄 몰랐지. 레이랑 레안이 소환했을 때는 진짜 근사했단 말야. 치. 얘들은 좀 게을러서… 레아, 웃지만 말고 받아.”

레브가 야간 탈것용 랜턴에 불을 붙여서 건네주었다. 레아는 랜턴을 받아다가 말안장에 걸면서도 쿡쿡 웃음 지었다.

“하하! 좋아, 그럼 이번에도 기대할게. 사실 저번에도 재미있었어. 그럼… 이럇! 엄마! 엄마야! 천천히, 천천히.”

“조심해. 이럇!”

레브와 레아가 각자 반테를 타고 랑하랑을 달렸다. 거대한 기둥이 꽝꽝, 수없이 내리꽂힌 이곳엔 허름한 민가가 잔뜩이었는데, 사이사이마다 왕궁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조성된 정원이 즐비했다.

빈곤과 사치가 뒤섞인 도시다.

햇볕을 빼앗긴 사람 사는 곳에선 습한 내음이 나고, 관상용의 정원은 밤에도 달빛을 받아 빛났다. 어둠을 헤쳐가던 레브는 도시의 정중앙에서 말을 세웠다.

“여기가 어디야? 여긴 여태까지랑은 분위기가 다르네.”

천장이 뚫린 거대한 원형 광장이었다. 평소의 레아라면 이 장엄한 광경에 놀라 오와… 감탄했을 테지만, 도시 꼬라지가 마음에 걸리는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레브는 하늘이 뚫린 한가운데, 구름다리로 연결된 천장을 손가락질하며 소개했다.

“저기가 바로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가 전시된 곳이야. 따라와. 여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어.”

“공주님은?”

“기다려 봐.”

반테들은 잠시 매어두고, 레브와 레아는 원형 광장 외각을 따라 둥글게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기둥도 없는데 어떻게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모를(아마 마법일 것이다) 구름다리를 건너자 광장 위 2층 허공에는 황금 원판이 바닥을 대신하며 떠올라 있었다.

넉넉한 크기의 집 다섯 채가 들어갈 법한 넓이의 황금이다. 이것이 정말로 통짜 순금이라면… 레아는 정말로 화가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황금 원판의 정중앙에는 금색 양피지가 떠올라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위대한 마도사 코르니우스가 만들었으며 만자문 황실을 구성하는 121개 가문이 적힌 문서가 바로 저것이었다.

레아는 잠시 화를 내려던 것조차 잊어버리곤 황금 문서의 찬란함에 놀라 다가갔다. 은은한 금색 파동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이것을…

“훔칠 거야. 잘 봐봐.”

“뭐? 꺅! 미쳤어?!”

레브가 우악스럽게 움켜쥐더니 품에 넣어 버렸다. 레아는 너무 놀라서 죄지은 토끼마냥 주위부터 살폈다.

한밤중인 게 다행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야! 대체 어, 어쩌려고 이래.”

레브가 황금 문서를 품에 넣은 채 걸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레아는 교수대 올가미가 어른거리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진짜 훔치려고 저러나?

아니면 미친 건가.

저 문서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몰라도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딱 봐도 알겠다. 교수형으로 끝나면 많이 선처받은 것이리라.

레아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레브를 붙잡으려 했는데, 레브는 정말 훔쳐 달아나려 하는지 이미 구름다리에 발을 디딘 상태였다.

그때였다. 레브의 품에서 황금빛 안개가 뿜어진 게.

레브가 황금 원판에서 벗어나자마자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는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쫓아가던 레아의 머리를 흩날리더니 언제 도난당했냐는 듯 제자리에 홀연히 돌아가 있었다.

레브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때, 근사하지?”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는 파괴하거나 훔치는 게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경비 하나 없이 전시해 둔 것이고, 문서에 적힌 121개 황가는 이 신비한 문서를 만백성이 직접 보고, 만져 보길 원했다.

그리하여 우릴 더욱 우러러보기를. 그때,

“아야!”

레아가 레브를 모질게 움켜잡았다. 그녀의 온화한 인상이 지금만큼은 악귀에 비견될 만하다.

“너 이 씨!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악! 잠깐만 레아 잠깐! 다 이유가 있… 악!”

“나가 죽어 이 화상아!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날 놀리려고 작정을 했어. 어쭈? 어딜 도망… 어라?”

“…내가 뭐랬어.”

공주가 우릴 찾아오게 할 거라고 했잖아. 레브는 머리끄댕이가 붙들린 채로 중얼거렸다. 언제 왔는지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가 구름다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업적 : 도둑질 – ‘1’ 주인에게 들킬 확률이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

언젠가 레브가 토리토에서 말을 훔치면서 뜬 업적이었다. 오르빌에 급히 가야 해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훔쳤던 말이 ‘쿠스’로, 제법 까마득한 옛일이었다.

레브는 당시를 회상하기보단 일단 레아의 억센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황금 문서의 주인이 저 아주머니임을 확신하며 흠흠, 옷매무시를 바로 하였고, 이이나 공주는 황망한 표정으로 다가와선 물었다.

“레브 경이시죠? 제가 눈이 안 좋아서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레브 경이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다행히 추태를 보이진 않은 모양이다. 레브는 고개를 굽히며 예의를 차리려 했는데, 이이나 공주가 불쑥, 손을 움켜잡았다.

“기사님. 정말… 정말 실례지만 도와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 * *

이이나는 자신이 어째서 여기에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라도 여긴 그녀가 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제가 한밤중에 여길 홀로 찾아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잠깐 미쳤나 보다.

절박한 상황이긴 했다. 내가 가진 최후의 수단을 내심 고려했을 정도로. 그녀는 벨리타 왕국과의 전쟁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었다.

하지만… 써도 되는 방법이 있고, 그래선 안 되는 방법이 있다.

황금 문서를 수정하는 건 그녀의 정치적 포지션에 어울리는 행동도 아닐뿐더러 그랬다간 숨겨왔던 비밀이 들통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여길 한밤중에 찾아왔나 보다.

정신을 되찾은 이이나는 자신의 경솔함을 책망하며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앞에서 웬 남녀 목소리가 들렸고, 개중 한 명은 이이나가 조만간 따로 불러내서 만나보려 했던 사람이었다. 오늘 들은 목소리라 알아볼 수 있었다.

– “놀랍게도 이분이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분이 전쟁에 참전해 저를 도와주실 겁니다.”

비비안 왕자가 극찬한 레브 경이었다. 이이나는 자신의 전남편을 상대할 수 있는 기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동시에 저 사람을 어떻게든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님. 정말… 정말 실례지만 도와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미 시작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전쟁. 그 때문에 바라는 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절실하기로는 그녀가 가진 황금 열다섯 궤짝을 모두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는데, 레브 경은 그녀의 절실함과 속사정을 꿰뚫어 본 듯이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얼 바라시나요?”

“그 전에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레브 경이 고개를 들었다. 이이나는 그가 엄청나게 젊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또, 지금 굉장히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잠깐. 무, 무슨 짓이죠?”

레브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공주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움켜쥐며 메시지가 떠오르는지를 확인할 뿐…

이윽고 레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

이이나 이사도라 공주의 것이니 당연히 레브의 소유가 아니지만, 이 메시지는 그런 의미를 전달하려고 떠오른 게 아니었다.

마지막 약혼관계 시나리오. 할파스를 잡으러 가던 중에 들렀던 계곡 아래 신비한 사원에서 이와 동일한 메시지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레라 아이나르의 귀속 아이템이 된 검을 레이가 잡았을 때 떠오른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레브는 이 목걸이의 정체를 유추하였다.

이게 바로 우리 동생, 레리아나의 귀속 아이템이다.

저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를 수정할 수 있는, 아이셀 왕국의 전 ‘여왕’ 이래 행방이 묘연해진 옥새(玉璽)가 여기에 숨어있던 거다.

눈이 반쯤 먼 공주의 가슴골에…

레브는 아차, 레아의 눈치를 보며 손을 거둬들였다. 확인은 되었으니 거래할 차례다.

“전 이 목걸이를 원합니다.”

“…무례하군요. 이건 드릴 수 없는 물건이에요.”

“어째서죠? 이게 아카이아 제국의 마지막 옥새여서인가요?”

“…!!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건 제가 즐겨 쓰는 평범한 목걸이에 불과해요.”

“그럼 제게 주실 수도 있겠군요. 잠시만요. 제가 그걸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어차피 그걸 옥새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공주님뿐이잖습니까. 엘리카 드 이사도라 공주는… 음, 금발에 금안이긴 하지만 눈에 주황색이 섞여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겠지요. 아시잖습니까.”

“…”

“수긍하신 거로 알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걸 에릭 드 예리엘 왕자에게 줄 겁니다.”

“…왜요?”

“전쟁을 멈추려고요. 공주님께서도 이대로는 비비안 왕자가 이끄는 아이셀 왕국 군이 포르테 백작의 손에 박살 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포르테 백작 부인이셨으니 저보다 잘 아시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레브가 집요히 물어보았다. 이이나 이사도라. 한때 이이나 포르테였던 그녀는 잠시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표현이 과격하네요. 하지만… 맞아요. 우리 왕국군이 지겠죠. 제 남편이 도저히 패할 수가 없는 사람이어서기도 하지만, 비비안 왕자는 반쪽짜리 군대를 이끌게 될 테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키르기스 공작가 파벌은 비비안 왕자를 요만큼도 돕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제가 에릭 왕자에게 옥새를 주려는 까닭을 짐작하시겠습니까?”

“…이해했어요. 당신은 오스카 드 이사도라 왕자가 절로 폐위되게 만들 작정이군요. 에릭 왕자는 엘리카 공주와 결혼하면서 새로운 왕위 계승권자로 떠오를 테고요. 그렇게 되면 전쟁은…”

“빠르게 이해해주시니 좋네요. 자, 공주님. 목걸이를 제게 주시죠. 그게 공주님께 고통만을 주었다는 걸 압니다. 부탁도 무엇이든 들어드리죠.”

이이나 이사도라는 희뿌연 눈앞의 이 청년이 기사인지, 전략가인지, 교묘한 언변의 사기꾼인지, 평민은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목에 걸린 건 너무 무거운 데 반해 그의 말은 달콤하였기에… 이이나는 목걸이를 넘겨주었다.

목걸이의 가치에 비하면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부탁과 함께.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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