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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0

EP.349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3)

엘라가 잠에서 깬 것은 기차가 막 도회지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차장이 들어오더니 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20분 정도 남았음을 알렸다.

엘라는 차창 너머로 도심부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다른 단원들은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기 전에 미리 짐을 싸놓은 그녀는 다른 단원들처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어, 엘라, 깼구나? 아직 도착까지는 약간 남았는데, 조금 더 자지 그래?”

유라크네의 제안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피곤해서 자고 있던 게 아니었다. 열차를 몇 시간이나 타느라 지루해서 졸았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충분히 잤어요.”

그녀는 짧게 하품했다. 지루함은 그녀에게 낯선 단어였다. 한 달이나 됐는데도 아직 이 나른한 감각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동 중에도 할 일이 많아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데 클라라 선배는 어디 갔어요?”

“단장님한테.”

유라크네가 열차의 앞을 가리켰다. 좌석 위로 솟은 두 사람의 머리통이 보였다. 매끄럽게 빗은 금발 옆에 꼬불꼬불한 미역 같은 파란색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죠……제 생각에는 이쪽이 더…….”

“호오, 그거 괜찮군요.”

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얼핏 들리는 내용으로 봤을 때, 신년 축제에 참여할 만한 장소를 물색 중인 것 같았다.

엘라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원래 지금 클라라가 하는 일은 그녀가 하던 것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만 해도 그녀는 서커스단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었다. 일정표를 짜고, 단원들을 가르치고, 사회를 보고, 장부를 작성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정보 수집은 클라라가, 단원들의 훈련은 레이나가, 무대 진행은 미노바가, 자금 관리는 아나이스가 맡고 있었다.

그 덕에 편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커스단에 들어오고 나서 그녀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어다니다가 기절하듯 자지 않으면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고 여기는 습관이 들었다.

“어머, 찰리, 얘가 또 난리를 피우네.”

유라크네가 클라라의 짐을 내리며 혀를 찼다. 엘라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바짝 조이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찰리.

오랜만에 죽은 친구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됐다.

물론 엘라는 유라크네가 그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찰리는 선반 위에 놓인 이동장 안에 갇힌 족제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놈은 어찌 보면 찰리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저 족제비는 클라라가 키우는 동물이었다.

엘라는 클라라가 찰리를 좋아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선물해준 족제비에 그의 이름을 붙였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가 족제비를 다루는 태도를 보면 자신을 찬 것에 대한 원망도 상당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길들이기 과목에서 최우수 학생이었던 그녀가 족제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몰라서 싸구려 사료를 대충 부어준다든가, 족제비의 털 관리를 못 해줘서 터진 베개처럼 방치한다든가, 족제비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넘어갈 리 없었다. 분명 일부러 그러는 것일 것이다.

“꾸르륵, 꾸르륵!”

족제비도 그런 주인에게 심통이 났는지 걸핏하면 난동을 피워댔다. 엘라는 녀석의 울음소리, 눈빛, 몸짓을 통해 녀석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는 내 주인이 아니다!’

‘너는 가짜다!’

녀석이 어찌나 필사적으로 외쳐대는지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엘라는 클라라가 다른 사람의 족제비를 들고 온 것은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레카체프의 최우등생인 그녀가 자기가 길들인 동물도 못 알아볼 리 없을뿐더러, 족제비는 클라라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 반신반의하는 애정과 기대를 은근 드러냈기 때문에 곧 그 가설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마 주인에 대한 야속함 때문에 저러는 것이리라.

엘라는 문뜩 자신이 지난 두 달 동안 클라라와 족제비 찰리를 유난히 주의 깊게 관찰해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것은 조련사로서 호기심의 발로 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클라라가 더는 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그 둘을 관찰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며 말이다.

클라라가 아직도 찰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상상만 해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를 죽게 만든 범인이 그녀가 있는 서커스단의 단장과 부단장이라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실연과 지병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겨우 기운을 차린 그녀였다. 그런데 만약 찰리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걸 원더스타인과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될까? 어쩌면 산산이 부서질지도 몰랐다.

“맡겨만 주세요!”

앞자리에서 클라라가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아무래도 논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엘라는 클라라를 마주 보며 웃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당신도 참 뻔뻔해. 찰리를 죽여놓고 선배 앞에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굴 수 있어?’

엘라는 원더스타인에게서 ‘웃는 남자’라는 저주에 대해 들었다. 이제는 그의 비상식적인 태도가 이해되는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짓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을 살해한 원수였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빈말로도 ‘증오에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미움으로 얼룩진 눈동자에 드문드문 다른 감정이 묻어났다. 엘라는 그 감정에 대해 감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은 죽은 친구들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그것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고향에서 겪은 불과 몇 시간 남짓한 기억로 인해 그에 대한 원망을 지울 수 없듯, 그와 1년 넘게 함께하며 쌓은 추억으로 인해 촉발된 마음 역시 지울 수 없었다.

“앗, 맞다.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유라 언니가 머리를 빗겨준다고 했는데!”

“바쁜데 유라 씨를 성가시게 하면 쓰나요. 자, 이리 오세요. 제가 머리를 빗어드리죠.”

“헤헷, 웃, 다, 단장님, 간지러워요!”

“머리카락이 엉망이군요. 정말이지……. 머리를 감고 나서 제대로 말려야죠. 이대로 밖에 나가면 다 얼어붙습니다.”

논의가 끝난 뒤에도 클라라는 여전히 원더스타인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푼수처럼 구는 그녀의 모습에서 레카체프에서 보였던 신경질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흥. 남자 앞에서 어수룩한 척하는 타입. 저러니 찰리에게 차였지. 그 녀석은 그런 연기는 다 꿰뚫어 본다고.

엘라는 그녀를 보며 질투심이 솟는 것을 느꼈다.

원래 저 자리는 부단장인 내 자리인데……. 예전에는 내가 그의 옆에서 떨어질 일이 없었는데……. 온갖 잡것들이 기어들어 와서는……. 나와 그 사이에 얽힌 인연을 생각하면 전부 하찮기 그지없는 사연들…….

좋지 않은 감정이 마구 들끓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노골적인 악의를 띠고 있어서 그녀 자신도 금방 위화감을 알아차렸을 정도였다. 그녀는 심호흡을 통해 감정을 가라앉힌 뒤 주머니에 든 유리병을 슬쩍 매만지며 속삭였다.

‘캇피.’

그러자 병 안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들켰군요.’

‘무슨 짓이야?’

그녀의 가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은 그녀가 한 번 맛본 적 있는 것이었다. 사신의 낫에 찔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까 명령하셨잖아요. 역에 도착하기 5분 전에 깨워달라고요. 끼끼끼! 사람을 깨우는 데는 악몽만 한 게 없죠. 이미 깨어나신 줄 모르고 실수했네요? 끼끼, 죄송합니다!’

하여간 조금만 틈만 보이면 이러지. 엘라는 유리병을 콱 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캇피와 그녀는 계약으로 묶인 사이였다. 그것은 중간에 깰 수가 없었다. 유리병을 부순다면 그녀는 캇피를 지상에 묶어둔다는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어비스의 인력에 영혼이 끌려가고 말 것이다. 원더스타인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는지 그녀가 캇피를 데리고 있는 것을 허락했다.

이윽고 기차가 역에 도착했고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짐은 어디 갔어요?”

“우몬과 미노바 씨, 설리반 씨가 출구 쪽으로 미리 옮겨 놨어.”

“그렇군요.”

세 사람은 서커스단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이었다. 그들 셋 덕분에 다른 단원들은 짐을 옮기거나 할 때 힘을 크게 쓸 필요가 없었다. 엘라는 부단장다운 일을 하기로 했다.

“다들 내리기 전에…….”

“밍크 기름을 발라라. 겨울에 살을 트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지.”

그녀가 운을 떼기도 전에 서커스단의 마사지사인 칼슨이 먼저 나서서 단원들에게 약품을 발라주고 있었다.

“에이, 기름은 끈적거려서 싫은데.”

우몬의 투덜거림에 가스통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특별히 연금술 길드의 비전 약물 몇 개를 더 배합했다. 피부에 잘 녹아들어 끈적거리지 않을 거다.”

열차 입구에서는 아나이스의 집사인 바텔이 단원들에게 여권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기름을 바른 분들은 모두 이걸 받아 주십시오. 이곳은 행정 구역이 바뀌는 곳이라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헉, 미리 말씀해주셔야죠. 심사표 작성하는 데 오래 걸리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원의 심사 서류는 제가 전부 작성해두었으니까요.”

“정말요?”

“와, 영감님, 최고!”

엘라는 알아서 자기 일을 찾아내어 척척 해내는 노인 세 사람의 기량에 혀를 내둘렀다. 과연 한 분야의 달인들다웠다.

“그런데 새로 심사를 받으려면 또 뇌물을 써야 할 텐데요. 이곳 공무원들은 알다시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니카가 코트를 여미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귀족 신분 덕분인지 부패하기 짝이 없는 제국 공무원들과의 협상을 쉽게 풀어냈다. 그가 준비한 몇 가지 문장과 서류, 그리고 몇 마디 말이면 공무원들은 하던 업무도 내려놓고 그들 서커스단의 편의를 먼저 봐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뛰어난 포커 플레이어로서 실력 덕분일지도 몰랐다. 그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나 숙소의 가격을 협상할 때도 아나이스가 요구한 가격 이하로 곧잘 결과물을 얻어냈다. 자신의 노림수가 훤히 읽힌 상인들이 당황해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서커스단 안에서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 아나이스는 원더스타인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필요한 물건을 항상 극한의 최저가로 구해올 것을 요구했다. 원더스타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그녀로서 그것이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심술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결은 현재 승률이 비슷했다.

엘라는 그렇게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새로운 단원들은 그 뛰어난 능력 덕분에 서커스단에 쉽게 융화되었다. 기존 단원들도 그들의 등장을 반겼다.

어째 저들에게 자신은 점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자신 혼자만 점점 뒤쳐져서 겉도는 것 같았다.

맞아. 너 혼자만 다르잖아. 다른 사람들은 다 자발적으로 서커스단에 들어온 건데 너만 협박당해서 끌려다니는 거잖아. 아, 맞다. 네 고향 친구인 미키도 포함해서.

‘닥쳐, 캇피.’

엘라는 애꿎은 사신에게 화풀이했다.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정 긴축 상태에서 그들의 이동은 예전과 달리 최대한 저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나이스는 짐수레, 달구지, 인력거 등을 수배해서 최대한 예산을 아껴서 이동 수단을 마련했다.

“그래서 누구랑 탈 거예요?”

현재 그들이 봉착한 문제는 누가 원더스타인과 탈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는 인력거를 타기로 했고, 거기에 추가로 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공중을 잘 떠다니던 마야는 갑자기 마력이 다 떨어졌다면서 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이나는 단원들에게 도입할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이 떠올랐다며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유라크네는 가슴골 사이에 땀이 차서 답답하다며 가슴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엘라는 불퉁한 표정으로 그들이 벌이는 기행을 지켜보다가 곧 그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게 뭐 중요한 일이라고. 아무나 하고 타. 나는 먼저 갈 테니까.”

그러나 그녀가 막 소 달구지에 오르려는 순간, 원더스타인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엘라 양이 함께 가줬으면 하는데요.”

“뭐, 뭐……나, 나?”

“네. 신년에 ‘막간극’을 담당할 새 단원들을 뽑기로 했잖아요. 제가 당신과 논의 안 하면 누구와 논의해야 하죠?”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그건 자신 외에 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주, 중요한 사안이니 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그녀는 질시에 찬 시선을 받으며 인력거에 올랐다. 제일 싼 녀석을 빌려서 그런지 2인용인데도 불구하고 좌석은 좁았다. 두 사람의 몸이 자연스럽게 밀착됐다.

“조, 좁잖아……! 괘, 괜히 탔어……쳇…….”

“음, 그러면 논의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다른 사람이랑 교체할까요?”

“시, 시끄러워! 일을 미루면 어떡해! 그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라고. 어쩔 수 없지. 내가 참아야지 뭐……흥!”

그렇게 그와 딱 달라붙어 간 3시간.

추운 동토의 겨울에서 몸을 데우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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