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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1

349. 소꿉 Ep – 완료

오프론티스 왕성은 두 가지의 큰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관료는 관료대로, 근위병은 근위병대로 격무에 시달려 하나같이 눈이 퀭하다.

개중 하나는 조만간 있을 비비안 왕자의 출정식이었다. 벨리타 왕국에는 이미 선전포고했고, 국경에서는 전초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사도라 왕가는 왕이 몸소 나서서 군대를 소집할 정도로 이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비안 왕자가 모욕을 당해 돌아온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만회하지 못하면 왕위 계승에 문제가 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서 비비안이 총사령관직을 맡을 수 있도록 갖은 로비를 총동원해 선제후들을 구워삶았고, 제국 의회의 표결에서 총사령관직을 따냈다. 이제 모욕당한 왕자가 직접 타탈리아 왕가를 상대로 응분의 대가를 받아 오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얼핏 국가의 명운이 달린 것 같아 보이는 출정식 준비와 달리 왕궁의 다른 한편에서는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이셀 왕국의 권력을 양분하는 키르기스 공작가가 이사도라 왕가에 “엿 먹어라.” 중지를 치켜든 셈으로, 공작가는 지방의 유력자들을 불러 향응을 베풀고, 전쟁에 참전해야 할 귀족들에게는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했다.

사람 마음이 아무래도 전쟁터보다는 잔칫집으로 기우는 게 사실이라 이사도라 왕가는 병사와 재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레아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카드를 버리며 중얼거렸다.

“저래도 되나 모르겠네. 쫄딱 망하면 어쩌려고 저러지?”

“뭐가?”

“결혼이며 전쟁이며… 민생이 파탄 나는 건 둘째치더라도, 물론 둘째치면 안 되지만, 저러다가 전쟁에서 패하기라도 하면 어떡해. 다 같이 망하는 거잖아.”

“오예! 이건 내가 가져간다! 4567. 레아 덕분에 붙였어, 하하!”

“오! 좋네. 그럼 나는 3이랑 8을 양옆에 붙이고… 아 참, 먼저 먹어야지. 먹고 버렸어.”

“…감사합니다.”

“앗! 젠장. 다른 거 버릴걸. 바린이 은근히 잘 주워 먹네.”

카드놀이가 엎치락뒤치락 진행되는 가운데 레아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레브밖에 없는 듯했다.

다음 차례였던 레브는 더미에서 카드 한 장을 먹고, 판을 살핀 뒤 카드를 한 장 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차례를 마쳤다.

“글쎄. 생각한 것처럼 나라가 쉽게 망하지는 않거든. 게다가 키르기스 공작가도 나름대로의 균형을 잡고 있어.”

“균형? 저게 무슨 균형이야. 그냥 훼방만 놓으면서 뻗대는 거지.”

“음… 레아, 너는 그냥 왕가랑 공작가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서 화가 난 거지? 카드놀이는 곧잘 하면서 그러네.”

“…카드놀이가 왜 나와?”

“카드놀이랑 마찬가지로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전 버렸어요.”

“7을 버려? 배가 불렀구만.”

근위기사, 닐이 말했다. 7은 혼자서도 판에 내려놓을 수 있는 카드라 버리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아는 눈썹을 꿈틀, 레브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 카드놀이는 제 차례마다 더미에서 한 장을 집어가고, 들고 있는 카드 한 장을 골라서 버리는 식으로 손에 든 덱을 맞춰가는데, 결과적으로 손에 든 카드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없애는 게 승리 조건이었다.

매 턴마다 한 장을 먹고 한 장을 버리니, 수가 변하지 않는 가운데 자기가 가진 카드를 줄이려면 판에 카드를 내려놓아야 했다.

당연히 아무렇게나 내려놓을 순 없고 규칙이 있다. 모양은 달라도 숫자가 같은 카드 세 장, 이를테면 666을 모으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또는 234와 같이 모양이 같으면서 숫자가 3개 이상 연속되면 마찬가지로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카드 한 장을 먹고, 버리고, 먹고, 버리는 식으로 연속되거나 동일한 카드를 모으는 건 너무 지루하므로 이를 원활하게 할 규칙이 더해졌다.

바로 조금 전에 닐과 바린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버린 카드를 낼름 집어가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카드 4, 6, 7을 들고 있던 닐은 레아가 버린 5를 가져다가 4567을 쫘라락 내려놓았고, 바린은 웬디가 버린 다른 5를 고맙다며 가져다가 555를 내려놓았다.

이러면 카드를 수급하는 속도가 월등하게 빨라진다. 전체적으로. 또, 자신에게 필요 없는 카드를 버리는 행위도 심사숙고해서 할 필요가 생기므로 재미가 더해졌다. 그 와중에 레브는 7이라는 조금 특수한 카드를 버린 것이다.

7은 유일하게 홀로 내려놓을 수 있는 카드였다.

678이든 777이든 세 장을 모아서 내려놓아도 되지만 그냥 내려놓아도 되는 걸 굳이 버린다는 건 카드 한 장을 줄일 기회를 구태여 저버리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손해다. 하지만 레아는 이게 멍청한 짓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레브의 말마따나 전쟁과 카드놀이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레아는 제 손에 들린 6을 억울하게 바라보았다.

“야아… 그걸 버리면…”

레아가 든 6은 곧장 애물단지가 됐다.

손에 든 카드를 줄이는 방법은 세 장을 모아 내리는 것 외에도 남이 내려놓은 카드에 ‘붙이는’ 방법이 있는데, 조금 전에 웬디가 제 남편이(닐이) 내려놓은 4567에 3과 8을 붙인 게 그것이었다.

제가 가진 카드를 남이 내려놓은 카드에 붙여서 없애도 되는 것이다. 한데 레브가 7을 버려버리니 레아의 손에 들린, 저 7과 모양이 같은 6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바린이 555를 내려놓았고, 닐이 4567을 깔아둔 상태라 5라는 숫자는 완전히 동이 났다. 그 말인즉슨 레아의 6이 활용될 방법은 666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결국 레아는 제 차례에 그 쓸모 없어진 6을 버렸다.

그러자…

“고마워.”

이런 씻팔. 레브가 나머지 66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걸 달랑 집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가 애초에 7을 버린 건 남들이 7 양옆에 카드를 붙이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누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6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아직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상태로 더미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이 7이 버려졌다는 게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나중에 누가 집더라도 곧장 버릴 테니까… 레브는 기세를 몰아 손에 들린 카드들을 탁탁탁탁, 단번에 내려놓았다.

“훌라!”

“와!”

카드를 조금씩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내려놓지 않고 단번에 소진하면 “훌라!”를 외칠 수 있었다.

조건이 달린 만큼 돈도 두 배로 받을 수 있는 이 카드놀이의 이름은 ‘훌라’. 레브가 민서에게서 배운,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레아는 약이 올랐지만, 순순히 돈을 내놓으며 물었다. 어차피 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쟤 돈이다.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며. 마저 알려줘.”

레브가 카드를 섞으면서 말했다.

“키르기스 공작가는 에릭 왕자와 엘리카 공주를 혼인시킴으로써 콘라드 왕국이랑 친분을 다진 거야. 물론 옛날부터 예리엘 왕가랑 사이가 좋았던 이사도라 왕가를 견제하려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콘라드 왕국이 아이셀 왕국의 우방임이 재확인됐지. 벨리타 왕국 입장에서는 콘라드 왕국이 엄청 신경 쓰이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도 벨리타 왕국은 국경을 접한 나라가 한둘이 아닌데 말이야.”

“…그러면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콘라드 왕국이랑… 에구. 기사님들, 죄송해요. 오른 왕국은 콘라드 왕국이랑 사이가 썩 좋지 않잖아.”

“우리나라는 벨리타 왕국이랑도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예리엘 왕가랑 더 가까운 사이지. 로그넘 왕가랑 예리엘 왕가는 아카이아 제국의 제2 황자의, 타탈리아 왕가는 제1 황자의 계보를 이었거든. 물론…”

오른 왕국의 쓰레기 왕자 새끼들이 콘라드 왕국을 탐내고 있긴 하지.

하지만 그들이 야욕을 드러내는 건 먼 미래의 일이고, 이를 벨리타 왕국 측이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따라서 벨리타 왕국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반반이다.

오른 왕국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콘라드 왕국에게 끼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이건 레브가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레안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고 보니 레안은 타티안 후작과 만나기로 했다고 했다.

아스타로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는 더 많은 걸 고려했는지도 모르겠다.

레브는 칫, 뭔가 불만이 많은 레아를 다독여주었다. 출정식이든 결혼식이든, 기다리느라 무료한 가운데 카드놀이는 계속되었다.

“근위기사님들은 에릭 왕자님의 결혼식까지만 보고 돌아가시나요?”

“아함~ 쩝. 네. 저희는요. 조엔은 왕자님 곁에 남을 거예요. 레브 님께서는 전장에 나가신다면서요?”

“그렇게 됐네요.”

“전쟁이라… 재밌겠네요. 무운을 빌어요. 아, 맞다. 제니아 재커리 경도 남겠다는 것 같던데요?”

“…네. 들었습니다. 기사단을 그만두겠다더군요.”

“어머, 기사단까지 그만뒀어요? 왜요?”

“바린, 너 자꾸 사기 칠래? 어째 너만 좋은 카드가 나오는 것 같다?”

“여기서 하고 싶은 게 있어서겠죠. 저도……”

레브는 말꼬리를 흐렸다.

왕성이 온통 분주한 가운데, 그는 신기한 카드놀이에 빠진 기사들을 뒤로하며 숙소를 몰래 빠져나갔다.

* * *

“엘리카에게는 이 드레스를 입힐 거예요. 정말 예쁘지 않나요?”

“그렇네요.”

“그렇죠? 아- 우리 멋쟁이 신랑, 에릭 드 예리엘 왕자님은 무슨 색이 어울리려나~ 흑갈색? 안젤리카 경. 이거 어때요?”

‘멍청한 년.’

“좋네요.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안젤리카 리디아 키르기스는 적당히 맞장구쳤다. 이년이 공작의 딸만 아니었으면, 제 아들딸도 구별하지 못하는 이까짓 여인네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키르기스 공작의 부탁이 있었다. 이년을 옆에서 주시하라는.

안젤리카도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곁에 머무르지만, 솔직히 시간 낭비였다. 그녀는 골 빈 후궁, 아리아 이사도라가 끝도 없이 옷을 뒤적이는 걸 내버려 두곤 바깥으로 나왔다.

‘도서관에 들렀다 갈까.’

아리아의 어리석음에 새삼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덕분에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그녀는 오랜만에 다른 마법사들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법을 써서, 금방 왕실 도서관에 도착한 안젤리카는 코르넬 마탑의 최신 연구 논문 자료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자료실에는 이미 다른 마법사가 와 있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리스타드?”

안젤리카는 놀라서 말을 걸고 말았다. 그러곤 후회했다.

싸늘하게 돌아보는 푸른 옷차림의 마법사. 리스타드 제건 도로프였다. 어느덧 우리 모두 중년이 되었음에도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 탁!

“당신이로군.”

리스타드가 보던 자료집을 거세게 내려놓았다. 안젤리카는 내심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나야.”

찰나의 정적. 서둘러 말을 붙였다.

“콘라드 왕국의 궁중 마법사는 때려쳤나 봐? 왜, 왕이 도와달래?”

“넌 여전하더군.”

“…뭐가.”

“뭐겠어.”

안젤리카의 눈이 자료집을 향했다. 내 연구 논문. 그녀는 조금 기뻤다.

“내 껄 보고 있었네. 그게 배아의 수용체와 마법적 연관성에 관한…”

“닥쳐.”

리스타드 제건 도로프는 역겹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안젤리카는 살짝 울화통을 터뜨렸다.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

“나만 그러는 거 아니잖아. 다른 마법사들도 하는 건데… 네가 걷는 마도(魔道)는 안 그랬을 것 같아?”

“넌 도가 지나쳐. 네 꼴을 봐.”

“내 꼴이 뭐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대꾸하는 안젤리카를 보며 리스타드는 한숨을 뱉고 말았다.

한 이십 년쯤 못 본 사이에 그녀는 더욱 기괴해졌다. 키가 멀대처럼 커지고, 이는 뾰족해졌다.

그녀의 가지런했던, 순박한 치열은 어디로 갔을까. 리스타드는 한 마디 쏘아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피와 살점을 누덕누덕 입힌들 사람은 나아지지 않아. 오히려 퇴보하지. 지금의 너처럼.”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해!”

“?”

“그래서 이번 연구가 중요한 거야. 내가 임산부들을 가져다가 실험해봤는데 배아 초기에 영향을 가해야 해. 아직 구체적인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영향을 받았을 거로 추측되는 개체가 있어. 그게 누군지 알면 넌 정말 놀랄…”

“작작 하라고 이 미친년아.”

정적이 흘렀다. 안젤리카도 더는 참지 않았다.

“…야. 너 웃긴다. 너는 뭐 사람 안 죽여봤어? 너도 노예들 수도 없이 갈아 넣었으면서 왜 혼자 고상한 척이야.”

“…적어도 우리 제건 학파는 그걸 최소화하려고 노력해.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하고.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아. 마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하니까. 하지만 너희 리디아 학파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 네가 문제야. 네 연구 주제는 대부분 도를 넘었어.”

“흥! 남의 연구 주제에 대해 말이 많네. 만나서 반가웠어! 고상한 마법사 씨. 얼른 썩 전쟁터로 꺼지시지. 가서 댁의 마법이 병사들을 얼마나 잘 굽는지 확인하세요!”

안젤리카는 속 시원히 쏘아붙이곤 뒤돌아섰다. 하지만 속이 막 편치만은 않았는데, 리스타드와는 한때 마탑에서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마도학(魔道學)의 지평을 연 마법의 아버지, 코르니우스에 못지않은 마법사가 되겠노라 함께 다짐하던.

물론 뭣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코르니우스는 마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마법의 기초가 되는 ‘마나 로드’를 창안했으며, 영원불멸한 마법들을 남겼다.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가 개중 하나다.

당시에는 마법사라는 명칭조차 없었기에 ‘대주술사’로만 칭송받으며 살다 간 코르니우스는 사후에 ‘마도사’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데, 사실 이 마도사(魔道士)라는 명칭은 그의 제자들이 자신들을 일반적인 주술사와 구별하려고 지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마법의 길(道)을 새기는 사람이라니.

너무 거창하다.

그들은 감히 이 명칭을 자신들에게 붙일 수 없었다. 그건 오직 마나 로드를 창안한 코르니우스만이 합당하게 가질 수 있는 칭호였다.

그래도 스승님을 마도사라 칭하고 나니 저들의 명칭은 쉽게 결정되었다.

그들은 자신을 마법사(法, 모범으로 삼아 좇다)라 칭하였으며, ‘마도수리학’을 비롯한 수많은 갈래의 마법을 정립해나갔다. 이를 되새기던 안젤리카는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개새끼.’

내 연구 주제가 뭐 어쨌다고.

코르넬 마탑은 딱히 공동으로 정한 주제가 있지 않았다. 벨리타 왕국의 카미츠 마탑은 속성 이론을, 오른 왕국의 볼리뉴 마탑은 마나 중첩이론을, 아스란 왕국의 레그드 마탑은 결계 마법을, 콘라드 왕국의 이베르 마탑은 대규모 광역술을 최우선 연구 과제로 설정한 것과 달리 코르넬 마탑은 마법의 기초 학문인 마도수리학만 마스터한다면 그 이후에 무얼 연구하건 자유였다.

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파헤쳐나갈 뿐이다.

인간의 개조(改造).

이것이 그녀가 관심 있는 분야였다. 아무래도 주제가 이렇다 보니 인체실험을 좀 많이 해야 했다.

그런데 스승으로부터 갓 졸업한 초짜 마법사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노예를 맘껏 구입할 수가 없었다.

안젤리카는 결국 자신의 몸을 연구 물품으로 삼았고, 리스타드와는 그때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노예의 원활한 수급을 위하여 키르기스 공작가를 선택해 입양되었을 땐 거의 절연을 하고 말았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사람.

리스타드는 어느 가문에도 입양되길 택하지 않으며 콘라드 왕국으로 떠나버렸고, ‘리디아 키르기스’라는 성을 얻은 안젤리카의 연구는 더욱 깊은 광기에 빠져들었다.

살을 가르고, 붙이고.

피를 섞고, 교환하고.

뼈를 잇고, 자르고.

그렇게 해 볼 만한 건 다 해봤을 때였다. 그녀의 시선은 우수한 혈통에까지 닿았고, 갖은 방법을 통해 완벽한 황족의 씨앗을 조립해내기에 이르렀다.

안젤리카는 그 씨앗을 본인의 배에 심었다. 딸과 아들을 10달의 간격을 두고 낳았다.

남매의 이름은 엘리카와 오스카.

금발에 금안을 가진, 완벽한 황족이었다. 눈에 주황색이 조금 섞이긴 했으나, 이 남매는 키르기스 공작의 눈길을 끌었다.

– “후궁으로 들어간 내 딸이 회임한 상태이긴 한데…”

둘째인 오스카는 곧 왕자가 되었다. 이듬해 아리아가 둘째를 낳았을 때는 첫째인 엘리카가 공주가 되어 왕궁에 입성하였다. 이것도 꽤나 놀라운 일이지만 안젤리카는 더 엄청난 걸 발견하게 된다.

오스카가 마법의 재능을 타고났다. 안젤리카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온 대륙을 통틀어도 마법사는 고작 200명이 되지 않는다. 마법사의 재능은 유전되지 않으며, 남녀 구분 없이 극도로 희귀해 내 자식이 마침 운 좋게 마법사일 가능성은 실로 전무한 것이었다.

안젤리카는 비로소 인간의 진정한 개조 방법을 깨달았다. 황족 아이를 만드는 와중에 마법이 어떤 변화를 촉발한 것이고, 코르니우스 이후로 변변찮았던 마도의 대혁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생 인류는 지워버리고, 위대한 마도의 세계가… 내 손으로 펼쳐질 터였다.

도서관을 나온 안젤리카는 왠지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안전을 위해 구름을 주위에 퍼뜨리고, 느긋하게 걸으며 생각했다.

에릭 드 예리엘 왕자.

그 반의 반쪽짜리 황족이 나에게 귀여운 제안을 걸어왔다. 본인은 왕위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하겠노라고… 엘리카를 어찌 구워삶았는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긴, 오스카가 좀 덜떨어지긴 했지. 그러면 오스카는 연구 재료로 돌리고, 왕위 경쟁은 이 야심만만한 왕자에게 맡기는 게 좋으려나~ 아니면 반대로?

안젤리카가 배부른 고민을 이어갈 때였다. 궁내 키르기스 공작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 발에서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꺄악!”

검이 바닥과 발등을 뚫고 솟구쳐 올라왔다. 안젤리카가 쓰러진 틈에 한 새파랗게 젊은 기사가 비루한 평민들이 사는 공간, 랑하랑에서 뛰쳐 올라왔다.

“뭐, 뭐냐! 블루아…”

“어딜.”

안젤리카의 목이 허망하게 잘려 나갔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이 구름 속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리고 왜…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나는… (중략) …비비안 왕자와 정략적으로 약혼했으나, 아이셀 왕국으로 가던 중 아이셀 왕국의 대마법사, ‘안젤리카 리디아 키르기스’가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레브가 퉷, 안젤리카의 떨어진 머리를 걷어차곤 침을 뱉었다. 복수는 한 번만. 그러나 이번이 내 마지막 회차라는 게 만족스럽다.

‘레리아나의 복수를 했네. 목걸이도 에릭 왕자한테 줬으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끝났어.’

레브는 회색 구름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랑하랑으로 몸을 숨겼다.

‘로라’라는 시녀에게 깜빡 윙크해 본인이 여길 다녀갔다는 걸 기록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곤, 출정 준비로 한창 바쁜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에게 가서 말했다.

고민했는데, 역시 전장에 참전하기로 마음먹었노라고. 그런데 별 건 아니고, 사람을 한 명 죽였노라고.

이유를 묻길래 레브는 간단하게 답했다.

“그냥. 에릭 왕자한테 싸가지 없이 군 년이 있어서 죽였소이다.”

다음날, 출정식이 열리고, 레브는 오프론티스를 떠났다.

“지긋지긋한 곳이었어.” 레아가 한마디 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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