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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2

350. 소꿉 Ep – 증원군

아이셀 왕국에는 ‘전통은 할머니한테서, 글은 할아버지한테서 배운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계 중심의 야만인 부족과 유배 온 제국민이 섞여 만들어진 아이셀 왕국의 사회 풍속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로서, 비록 황족들이 피난을 온 이래로 부계(父系) 성을 따르는 풍습이 귀족들 사이에서 정착되었다 한들, 물려줄 성(姓) 따윈 없는 평민들에게는 할머니가 여전히 가정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뜻했다.

그러다 보니 풍경이 아주 낯설다. ─ 고 길버트는 생각했다.

여자 병사, 여병(女兵)이 행군 중인 군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벨리타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들이 남병(男兵)들과 함께 군장을 메고, 유쾌하게 잡담하며 행군하는 모습은 길버트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외국은 외국이구나… 다소간의 고립감마저 느껴졌다.

사실 군대인 것 치고는 그의 취향에 퍽 들어맞는 환경이긴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여자를 밝혔고, 여성 편력에 있어서는 시대를 초월한 평등주의적인 관점을 가졌다.

일단 여자이기만 하면 신분의 틀에 구애하지 않고 귀족인 자신과 연애할 수 있는 상대로 보는 것이다.

물론, 외모는 따지지만.

어쨌든 벨리타 왕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혼성군과 무료한 행군 시간이라는 조합은 그에게 바쁜 도전 거리를 안겨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굉장히 자중하였는데, 병사는 물론 아이셀 왕국으로 망명 온 이래 누구에게도 추파나 멘트 한번을 던지지 않았으니 보통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해가 저물어가고, 병사들이 숙영지를 짓느라 분주한 와중에 길버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검을 잡았다.

검을 내리그으며 몸을 풀고 있으니 이윽고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덩치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독특한 존재감으로 공기를 가라앉히는 그는…

레브 비자인 경(卿)이었다.

“오셨군요.”

“…”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레브 비자인 경은 무척 과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매서워서 첫 만남 때 길버트는 이 사람이 본인을 싫어하는 줄로 착각했었다.

물론 피차 초면이라 그럴 리는 없었고, 길버트는 제가 너무 민감했음을 픽 터지는 실소로 흘려버린지 오래였다. 그는 검술을 가르쳐주러 온 레브 경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새삼스럽게 내가 검술을 다시 익히게 된 건 이 사람이 권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어렵게 모셔온 이 수상쩍게 젊은 기사는

“부탁하신 대로 아드님과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리죠. 하지만 장소는 고상한 협상 테이블이 아닐 겁니다. 전장에서 칼을 들고 만날 것이니 아드님께서도 무기를 드셔야 합니다.”

─ 라고 말했다.

지금은 무척 실례되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내 아버지를, 전장에서, 무기를 겨눈 채로 만나겠다고?

모르긴 몰라도 만나자마자 목이 날아가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님은 소드마스터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위대한 아버지, 헤르만 포르테 백작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웃기만 하고 구태여 반박하진 않았는데, 어쨌건 나를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기만 하면 이 사람의 목이 날아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때는 그렇게 얕잡아봤었다.

– 스릉.

레브 비자인 경이 검을 뽑았다.

미리 몸을 풀어둔 길버트는 회상을 마무리하며 그의 앞에 나섰고, 훈련하기에 앞서 여느 때처럼 대련을 시작했다.

대련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게 레브 경의 지도 스타일인 듯했다. 이때만큼은 검술을 자유롭게 펼쳐도 나무라지 않는 걸 보면 어제까지 배운 걸 제자가 어찌 해석해 사용하는지 관찰하기 위함인 듯했고, 이건 상당히 관대한 편에 속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길버트 포르테는 다시금 익숙해져 가는 검 손잡이의 감촉과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훈련하던 저의 어린 시절을 되새김질했다.

아버지가 검술을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면, 이렇게 관대하게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과는 뭐가 많이 달랐을까.

내게 어떤 영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어머니와 이혼은 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땀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며, 대련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길버트는 저도 모르게 백작가의 비기를 펼쳤다.

그 비기란 회전을 가미한 스텝을 밟아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며 사선베기를 쳐올리는…

– 쿵!

“윽.”

역시 어림도 없었다.

레브 비자인 경은 마치 이 비기를 본적이라도 있다는 듯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길버트가 회전하기 무섭게 땅을 박차며 어깨 박치기를 감행했다.

길버트는 균형을 잃으며 넘어지고, 대련은 끝이 났다.

“쩝. 아깝네. 고생하셨습니다. …저 좀 일으켜 주시죠.”

길버트는 넘어진 채로 (스스로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레브 비자인 경은 머뭇거리는 듯하였으나 이내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주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땠나요? 제가 생각하기엔 어제보다는 훨씬 나아진 듯한데…”

듣고 싶은 답을 정해 놓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검술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 레오 당신은 대륙 최강의 검사가 되었으나, 레나는 당신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위로의 뜻으로 {검술 스승} 능력을 드립니다. ]

레브 경이 잘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과거에 묵혀 놨던 실력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 그 나이 처먹도록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받았었지만, 그땐 고작 열두 살이었고, 면박을 준 아버지의 기준이 말도 안 되게 높은 것이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니, 검술에 있어서 일반인들과 비교해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길버트는 재능이 차고 넘치는 아이였다.

그랬던 재능이 오랜 시간이 흘러 말랑해진 손바닥을 깨끗한 도화지로 삼아 비상하는 것만 같았다.

레브도 부정하진 않았다.

“네. 나아졌군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그런 복잡한 검술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베고, 깨끗하게 찌르세요. 그 외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그럼 오늘도 어제 하던 훈련을 이어서 할까요?”

다시 끄덕. 레브 경은 더 할 말이 없는지 근처에 앉을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슬슬 눈이 녹기 시작하는 초봄이라 어디든 마땅치 않아 보였다.

병사를 시켜 뭐라도 가져오게 하면 될 것을.

레브 경은 어지간해선 남을 부리는 경우가 없어서 길버트는 때때로 답답함을 느꼈다. 저럴 거면 뭐하러 비자인이라는 가짜 성을 만들어 붙였는지 원. 묘한 사람이다.

“레브! 여기. 의자.”

그때였다.

레아라는 이쁘장한 아가씨가 잉차잉차, 나무 의자를 두 개 가져왔다. 다른 하나는 나 앉으라고 가져왔나 보다.

“안 와도 된다니깐 왜 왔어.”

“소인이 레브 비자인 님께 의자를 가져다드리러 왔지요~”

“…고마워. 이제 돌아가.”

“싫어. 날씨도 좋고, 노을도 예쁜데 좀만 같이 있자.”

…나 앉으라고 가져온 게 아니었구나.

길버트는 이때부터 저쪽으로는 관심을 끊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브 경은 내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검술을 훈련하다가 적당한 시간에 막사로 되돌아갔고, 레브는 그제야 퉁명스럽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자꾸 오지 말라니깐.”

“뭐 어때.”

“뭐 어때가 아니라 내가 싫어. 저 녀석이랑 엮였던 일이 자꾸 떠오른단 말야.”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는데도 그러네. 저 사람이 조금 치졸하게 굴긴 했지. 나한테 술 멕여서 어떻게 해볼라고.”

“…”

“근데 결국 뽀뽀도 못 했어. 나만 억울하게 쫓겨나고. 그땐 많이 슬펐던 것 같은데…”

레아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노을을 보며.

“그래도 싫어.”

“으음? 이건 무슨 똥고집이실까? 내가 괜찮다는데.”

“…”

“진짜 별일 아니었다니깐. 내가 보기엔 다니엘 오빠가 뭘 착각한 것 같아. 저 사람한테 팔찌를 받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 오빠뿐이었는데, 심문하던 사제님이 팔찌를 언급하더라구. 그러니까 다니엘 오빠가 잘못 신고한 게 분명…”

“다니엘은 또 누구야?”

잉?

레브가 그녀의 말을 싹둑 자르며 끼어들었다. 한데 그녀를 바라보고 있진 않았다.

요 녀석 봐라?

레아가 의자를 옮겨 레브 앞에 턱 걸터앉았다. 몸을 기울이는 뽄새를 보아하니 장난기가 만반이다.

“레브 비자인 경 님.”

“…경에는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게 아니야. 경은 그 자체로…”

“혹시 질투하세요?”

“아니. 우리 사이에 질투는 무슨…”

“그래요. 위대한 비자인 가문의 적장자이자 예비 소드마스터님께서 그러실 리 없죠. 그것도 사제 수습생 나부랭이한테요.”

“아, 동기 수습생이었구나. 난 또…”

“아니. 동기는 베로니안이라는 오빠가 동기고, 다니엘 오빠는 선배님이지롱. 에벱벱뻽, 귀 빨개졌대요~”

“베로니안은 또 누구… 만지지 마.”

“메롱이다.”

“당기지도 말고. 아야. 아! 진짜 이럴 거… 흡!”

체술과 검술에 나름 도가 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아의 입맞춤은 피할 길이 없었다.

레브는 놀라서 목을 뒤로 꾸욱- 당기며 입맞춤을 당했고, 레아는 조금씩 일어서며 밀어붙였다. 그녀의 의자가 꽈당, 넘어진 것도 같지만 확인하진 못했다.

입을 떼자 한 눈 가득히 들어오는 레아의 얼굴. 황혼 때문에 그녀의 얼굴도 붉었다.

레아는 무슨 이유에선지 너무나도 기뻐 보였다.

“이제야 날 이렇게 보네.”

“뭐, 뭘.”

“닥쳐봐. 나 지금 너무 좋으니까. 이 나쁜 자식.”

“…”

“레브야.”

“왜.”

“그냥.”

레아가 뺨을 더듬었다. 사랑스럽게 마주 보며 다시 불렀다.

“레브야.”

“…레아야.”

“아우 씨. 그건 좀 징그럽다.”

나더러 뭘 어쩌라고.

레브는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잡아당겨 무릎에 앉혔다. 레아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레브야, 있지~”

가능한 한 낮고, 은근한 목소리로.

“난 노야랑 소야가 그리운데. 너는 어때?”

* * *

“다시 말해봐. 뭐? 만 이천 명?”

“그, 그렇습니다.”

“와 씨발, 장난하나.”

총사령관은 당장에라도 탁자를 엎어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차마 작전 보고서가 산더미로 쌓여있는 걸 뒤집진 못하고, 잉크병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화풀이했다.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곤 다시금 전령에게 물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다.

“하하 씨발. 농담이지? 난 분명히 이만 오천 명이 온다고 들었거든?”

“…”

“거짓말인 거 알았지, 나도. 전선에서 죽어라 싸우고 있는데, 증원군이라도 빠방하게 보내줄 거라 말하면 사기도 오르고, 응? 어쨌든 당장 기분은 좋잖아?”

“…”

“근데 만 이천 명은 좀 아니잖아. 좀 많~이 부족하잖아 이 씨발 개 쌍놈의 새끼얔!! 나가! 당장!! 가서 왕자한테 이만 명은 데려오기 전엔 오지도 말라고 전햇!!”

전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어 나갔다.

총사령관은, 아니, 조만간 비비안 왕자에게 총사령관직을 넘겨주고 전선의 물자 보급을 총괄하게 될 ‘맥시누스 서부 변경백’은 혼자서 화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설마 저 전령 놈이 왕자한테 내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건 아니겠거니… 생각하면서.

하지만 증원군이 고작 만 이천 명이라는 게 더 아니올시다다.

적군은 못 해도 삼만 명이 동원될 것이고, 벨리타 왕국에는 어지간한 왕가에 비견될 만한 대귀족이 여럿 있어서 전황에 따라 대량의 병력이 충원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쪽엔 헤르만 포르테 백작, 소드마스터가 있다.

제기랄~ 답도 없네.

맥시누스 제국후(帝國侯, 만자문 황실 소속인 후작)의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천막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뭐야? 누군지는 몰라도 들어오지 마.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오지 말… 이런. 트루티 남작이로군. 왕자님이 보냈소?”

“네. 화가 많이 나셨을 테니 저더러 가보라 하셨습니다.”

“알긴 아시는군. 내 그러면 미안하지만, 하소연을 좀 해도 되겠소?”

“얼마든지요.”

“…김 새는군. 앉으시오. 무슨 현묘한 방책인지 들어나 봅시다.”

“저에게 어떤 묘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맥시누스 변경백은 싱겁다는 듯이 답했다.

“전령한테 말하지 못할 방법이 있으니까 당신을 보내셨겠지. 남작도 피시겠소?”

“전 됐습니다.”

맥시누스 변경백이 연초에 불을 댕겼다.

팔다리는 얇고, 배는 뚱뚱한 사람이지만 폐활량은 좋은지 천막에서는 금세 연기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연기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트루디 남작은 전령에게도 알리지 못할 정보를 그에게만 몰래 전달하는 데 성공한 뒤, 전선을 이탈해 사라졌다.

벨리타 왕국과 아이셀 왕국 간의 전초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일로써, 국경지대에는 두 왕국의 병력과 물자, 전운이 거센 피바람을 예고하며 쌓여만 가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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