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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4

352. 소꿉 Ep – 참호전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큰 저항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욕구가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보다 훨씬 원초적인 것임이 증명되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삽이 나누어지고,

“이걸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파라고요? 저-어기? 푸하하하하!”

병사들의 비웃음과 지휘관의 곤혹스러움이 교차하는 그때, 말을 탄 스물두 명의 마법사가 진영을 나섰다. 리스타드 제건 도로프를 필두로 한 그들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적 진영에 무차별로 마법을 쏟아부었는데, 광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쌀쌀한 초봄 봄바람에 열기가 더해지더니 다섯 줄기의 거대한 회오리가 솟구쳤다.

한쪽에서는.

다른 쪽 하늘에서는 구름이 끼더니 우르릉 쾅쾅! 번개를 험악하게 뿜어내었고, 저 멀리 만년설이 덮인 산에서는 만년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 저… 저거…”

병사들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어마어마한 가속을 받으며 날아오는 무수한 얼음 창에? 서로 빙글빙글 엮이며 모든 것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회오리바람에? 그것도 아니면 벼락을 맞아 미친 듯이 번져가는 푸른색 들불에?

구경꾼인 그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벨리타 왕국 측의 마법사들이 “니들 미쳤냐?!” 외치며 대응하기 시작하면서다.

맑던 하늘이 밝아졌다.

하늘이 무슨 안개가 낀 것처럼 하얘지더니 눈이 부시고, 웅-, 우웅-, 웅! 우우웅-! 웅웅, 웅웅웅웅웅웅!!! 웅웅거리는 소리가 무슨 가속이라도 받는 것마냥 점차 빨라지며 천지에 울려 퍼졌다.

창공을 뒤덮은 마나 로드가 저들끼리 얽히며 폭주하기 시작한 거다.

이때부터는 누가 더 빨리 불길에 장작을 집어넣느냐의 싸움이었다. 마치 맞불을 놓는 것처럼, 불길이 가능한 한 저쪽으로 번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야! 씨발 파!! 파라고! 땅!”

“앗 따, 따가워…!”

하늘색과 하얀색 줄기가 얽히며 얼룩덜룩 점멸하던 하늘 중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극도로 압축된 마나가 비산하며 일부 병사들의 살갗을 파고들었고, 다섯 줄기였던 회오리는 어느덧 서른일곱 개로 늘어나 평원을 무작위로 찢어버렸다.

마법사들은 신이 난 듯하다.

그들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유속(流速)으로 흐르는 마나 줄기들이 훤히 보였으니까.

그들이 설치한 회로를 따라서 가속 포인트에 다다른 마나 물줄기는 더욱 빨라지고, 분화 포인트에 다다르거든 몇 갈래로 쪼개지며 새로운 줄기를 형성하였다. 지금도 누가 새 포인트를 설치하면서 회로는 더욱 복잡해져만 가고 있었다.

아름답다…

그리고 신비롭다.

마법이 발현하려면 마나가 특정한 형태로 흘러야 했다.

예를 들어 구름을 모아 천둥을 일으키려면 마나 로드가 세 개의 고리를 형성하며 서로 엮여야 한다.

거기에 일정한 유량의 마나가 지속적으로 흐를 때, 구름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지금 저 하늘에는 그들도 알지 못하는 형태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떤 건 회오리를 만들어낸 다른 흐름을 몇 배로 강화하고 있다. 들불이 보라색이 된 건 저것 때문인가? 저건 마나를 모으는군. 신기해.

지식에 목마른 마법사들은 별자리를 찍듯 폭주하는 마나 로드에 흥미로운 포인트를 추가해 갔다. 그러는 사이, 지상은 지옥이 되어있었다.

“고개 숙여!!”

미쳐 돌아가는 하늘을 가로지르느라 아주 작고 뾰족해진 만년설 입자가 비로소 땅에 도달했다. 처음에는 적진을 노렸을 테지만, 산산이 갈린 입자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

쏴- 다다다다다다다!! 쌀 튀기는 소리. 겨울철 반찬을 만드느라 엄마들이 많이 내는 소리다. 아이셀 왕국의 모든 아주머니가 모였나 보다.

땅에 고꾸라진 이들이 어머니를 부르는 거로 봐서는 그런 게 틀림없었다. 아이셀 왕국 군은 허겁지겁 땅으로 파고들었다.

* * *

마법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작전은 계속되었다.

가까스로 몸을 엄폐한 병사들에게 굴을 연결하라는 명령이 (“야 이 개새끼들아! 숨어만 있지 말고 파라고!”) 하달되었고, 저녁이 되었을 무렵에는 긴 참호가 만들어져 서로의 얼굴과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상자는 많았지만, 생각보다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평원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광역 마법의 한계다.

사람 목숨이 그만큼 질기다는 뜻이기도 하고.

저녁이 되었으나 날은 밝았다.

수천 개의 조명탄이 터진 것처럼 하늘에서는 아직도 마나 로드가 윙윙대며 빛을 뿜고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뜬 달은 청련달. 청련달의 푸르름이 소모된 마나를 복구하였다.

오늘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병사들은 흙더미와 부상병을 나르고, 어쨌거나 뭘 먹긴 먹어야 하니 미처 가져오지 못한 군수품을 참호로 옮겨 나갔다. 각 부대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지휘관들은 비비안 왕자의 말을 상기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결해나갔다.

길버트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말했다.

“와. 비명횡사할 뻔했네. 레브 경, 고생하셨습니다. 삽질을 엄청나게 잘하시더군요.”

“…”

“말들까지 참호로 옮기시고… 대단하십니다.”

– 히힝!

– 히힝!

“그래도 조금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몇 시간째…”

“입 좀 다무십쇼.”

레브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일이 터졌을 때, 레아가 근처에 있지 않아서 보호해주지 못한 탓이다.

그녀를 찾아서 달려가려는데, 하필 반테들이 무방비하게 서 있는 게 보였고, 솔직히 레아는 지켜줄 필요가 없었다.

신력이 부글부글 넘치는 대사제님께서 다치고 자시고 할 턱이 없으니까… 안일한 선택을 했다.

레브는 추적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땅을 꾸준히 팠다. 가끔 고개를 내밀어 레아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서 삽을 놓고 참호를 뛰어넘었다.

넘어와 보니 벌써 천막이 덮여 있는 여기는…

“레아!”

“레브! 다행이다. 안 다쳤구나!”

부상병이 우글거리는 병영이었다. 레아가 어딜 갔나 했더니 병영에서 일하고 있었나 보다.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다. 레브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라며 거듭 되뇌는 레아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레브가 한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는데, 만약 레브가 다쳐서 오면 치료를 해줘야 하는 건지 고민했었다.

나는 여기에 없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레브가 다치더라도 손을 놓고 바라보지 않으면 오히려 다음번의 레브를 죽이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때, 레브가 그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소리했다.

“근데 너, 이렇게 일해도 되겠어?”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내가 막 축복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허드렛일만 하는 건데.”

“레아 씨! 붕대를 가져오신다더니 어디 갔어요?”

“앗. 레브, 잠깐만.”

레아는 총총, 붕대를 들고 떠났다.

사실 그녀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단번에 치료할 수 있을 텐데… 레아 성격에 참기도 힘들겠다.

레브는 신음하는 부상병들과 쉴 틈 없이 일하는 군의관들, 사제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군의관이 찢어진 살을 꿰매어 두면 사제가 가서 치유의 축복을 내렸고, 부상병은 금방 기력을 회복해 침상을 벗어났다.

레아랑 비교하니까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거지, 참 효율적이다. 신력 소모도 많지 않아 보이고.

사제가 정규군에 포함된 걸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사가 바뀌기 전에, 아스틴 왕국과 벨리타 왕국 간에 전쟁이 터졌을 때는 십자교회가 이를 반대하면서 사제의 동원을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전쟁은 스무 번의 회차를 반복한 레브로서도 향방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여기에 오리라는 것을. 그는 부상병을 순식간에 다시 전투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병영을 뭉개고 싶어 할 터였다.

원래 같았으면 왕자를 잡아다가 전쟁을 빨리 종결짓고 싶겠지만, 지금은 우리도 비비안 왕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니 포르테 백작으로서는 병영을 공격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겠다.

어쨌든 레아가 안전한 걸 확인했으니, 레브는 다시 {추적술}을 켰다.

그러고는 왕자가 있는 방향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 * *

“이게… 무슨 일이냐?”

대륙 유일의 소드마스터,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도착했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진영을 갖춘 아군을 둘러보며 말문을 잃었다.

어떻게 된 게 천막은 모두 땅으로 들어가 있고, 목책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병사들은 검과 방패 같은 무기를 내팽개치고 웬 삽이랑 활, 화살통만 들고 다닌다.

그리고 의기소침하게 앉아 있는 기사들까지…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고자 총사령관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총사령관을 찾기도 전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저기 하늘에 거대한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정상적인 태풍이라면 색이 저렇게 붉지도 않고, 번개 대신 불을 뿜지도 않을 테니 이건 마법사들이 미쳐 가지곤 마법을 남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백작은 당장 진로를 바꾸어 참호에서 뛰쳐나갔다. 언덕에 있던 마법사의 멱살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마법사. 나는 마탑에 전쟁을 보조해줄 마법사를 보내 달라고 했지 전장을 실험장으로 여기는 미치광이를 보내라고는 하지 않았다.”

“배, 백작님! 그, 그게 아니오라… 컥컥.”

“당장 마법을 멈춰라. 목을 뽑아 버리기 전에.”

“제가… 멈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건 적군이 부린 마법입니다.”

“적군이?”

“네! 머, 먼저 이것부터 놓… 헉!”

“경위를 소상히 고하라.”

“휴…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마법사가 목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는 잠시 지팡이를 들어 올리곤 태풍을 향해 중얼중얼, 마법을 부리는가 싶더니 힘이 빠진 듯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백작은 그 즉시 더 거대해지기 시작한 태풍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더러 뭘 알라는 거냐?”

“…이번엔 안 터지는군요.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건 제가 불러낸 게 아닙니다.”

“네가 부르지 않았다는 것까지는 들었다.”

“네. 지난달부터 적군 마법사들이 마법을 무작위로 부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결계를 치지 않는 이상 적이 마법을 부리는 걸 막을 방도가 없고요. 지금처럼 적이 부린 마법에 훼방을 놓는 수밖에 없죠.”

“…저게 훼방을 놓은 것이냐? 더 커졌는데?”

“적어도 우리만 맞지는 않거든요. 적군에게도 피해가 갈 겁니다. 슬슬 피하시죠.”

그 이후로 대략 한 시간가량 태풍에서 불이 쏟아졌다.

허 참…

참호에 걸터앉은 포르테 백작은 그 광경을 관람하면서 어째서 양측의 군대 모두가 두더지처럼 땅에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옆에서 감자를 꺼내 먹고 있는 마법사에게 물어보았다.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총사령관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지?”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보다는 많이 안 죽었습니다. 첫날 피해가 좀 크긴 했는데… 한 오천 명 정도 죽고 끝났더군요. 아, 이거 엄청 안 죽은 겁니다. 잘못했으면 전멸했을 거예요. 총사령관이 후퇴를 잘했지요.그 이후의 대처도 좋았고요.”

“어떻게 대처했지?”

“20리를 후퇴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적들처럼 참호를 팠습니다. 삽을 구하기가 좀 어려워서 처음엔 계속 밀려났습니다만, 어떻게든 적들처럼 참호를 갖추고 나니 적들도 우리를 뚫기 어려워하더군요. 이거, 전쟁이 길어지겠습니다.”

“…알았다. 알려줘서 고맙다. 다른 보고 사항은 없느냐?”

“있습니다. 저희는 마법사가 여덟 명밖에 없습니다. 저쪽은 딱 봐도 스무 명이 넘고요. 저희가 돌아가면서 막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많이 피곤합니다. 어렵겠지만 마법사를 더 충원해주세요.”

“알아보겠다. 그럼 수고하게.”

백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총사령관을 찾아 움직였다. 도무지 총사령관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서 헤매는 도중 적군의 일부 병력이 참호를 넘어 돌격해오는 게 보였다.

결국 우리 쪽 참호 한 줄을 빼앗겼는데, 그렇게 대단한 손해 같지도 않고 시답잖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작 한 줄의 참호를 빼앗기 위해 돌격하고, 태풍을 부르는 건가. 그는 마법사의 말마따나 전쟁이 엄청나게 길어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런데 이건 그가 바라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으므로… 백작은 고민에 빠졌다. 난 어떻게든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이렇게 늦게 도착한 것도 출발을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왠지 왕성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전쟁은 겨울에 터졌음에도 병사들을 제3 기사단과 함께 먼저 보내고, 그다음엔 제2 기사단을 보내고, 더는 일정을 미룰 수가 없게 돼서야 본인이 제1 기사단을 이끌고 왔다.

원래는 더 천천히 출발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한 건 전쟁의 발발 원인이 그의 아들, 길버트와 클로에 공주가 키스하면서였을뿐더러 이이나 이사도라가 길버트를 아이셀 왕국으로 데려가면서 그의 입지가 더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왕당파 귀족들은 그가 왜 출병하지 않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머리 아프다.

그리고 나는 왜 자꾸 왕성에 틀어박히려 하는 것일까. 왕성에서 한 발자국만 나와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가정에 소홀하고, 끝내 이혼까지 하였으면서. 아들, 길버트와 여유 있는 시간 한 번을 보내지 못했으면서.

포르테 백작이 검을 움켜쥐며 저 멀리 줄줄이 파인 참호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두통의 원인을 적군에게 뒤집어씌웠다.

벨리타 왕국과 타탈리아 왕가의 무한한 영광을 위하여. 내 저것들을 얼른 쓸어 버리리라.

그러려면…

백작이 뒤돌아서서 걸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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