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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5

353. 소꿉 Ep – 화병

“레브 경께서는 어떻게 매번 제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오시는 겁니까? 신기하군요.”

비비안 왕자가 물었다.

참호 흙벽에 기대어 앉아 작전을 검토 중이던 그는 왕자의 복식을 벗어던지고 남루한 제복을 차려입은, 완전한 야전사령관이 되어있었다.

그는 거미줄처럼 짜인 참호를 순회하며 이틀이 멀다 하고 거처를 옮겼는데, 레브 경은 본인을 신기할 정도로 잘 찾아왔다.

레브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아직도 밥만 축내는 객장(客將)이라 시간이 남아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왕자는 악의 없이 웃었다.

이 사람한테서는 늘 믿음직한 여유가 느껴지기에, 마주하고 있노라면 참호 생활의 피로함이 잠시 씻겨 나가는 것이다.

비비안은 그게 참 좋아서 레브 경이 올 때마다 차를 손수 우려내고, 티 타임을 가졌다. 오늘은 왕자를 따라다니는 맥시누스 자라이 후작도 합석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나쁘지는 않군요.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마법사가 많은 덕분이죠.”

호록-

“다행이네요. 전에 걱정하시던 건 어떻게 됐습니까? 벨리타 왕국의 제2 기사단이 도착한 것 같다면서요.”

“잘 막아냈습니다. 병사들한테 대형 방패를 보급한 게 주요했네요. 이것 참… 고대에나 쓰이던 전술이 돌고 돌아 유용하니, 전쟁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혹시 후회하십니까? 참호전을 창안하신 것을요.”

비비안은 가볍게 웃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맥시누스 후작의 말에서 그의 본심을 엿볼 수 있었다.

“푸흐흐! 이젠 보급 문제까지 해결됐으니 어쩝니까. 트루디 남작이 연락해 왔습니다. 레안 왕자와의 협상이 잘 끝났다고요. 이걸로 더 오래, 진득~ 하니 싸우게 됐습니다.”

“…레안 드 예리엘 왕자님이요? 저희 왕자님과 무슨 협상을 하셨습니까?”

맥시누스 변경백은 잠시 비비안의 눈치를 봤다. 왕자는 말해줘도 괜찮다는 듯한 태도다. 하긴, 이 사람은 콘라드 왕국 사람이지 참.

“극비 정보요. 당신네 왕자가 남부 국경지대에 와 있소. 군수품 판매를 놓고 우리 왕국과 벨리타 왕국 사이에서 간을 좀 보셨다는데, 트루디 남작이 결국 해낸 모양이외다. 뭐, 사실 자명한 결과지만 말이오.”

“…트루디 남작은 큰일을 해냈습니다. 제국후께서는 그의 공로를 폄하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트루디 남작은 비비안 왕자의 최측근이다. 왕자가 그를 띄워주려는 건 알겠지만, 맥시누스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상대가 너무 쉬웠다는 거죠. 이 전쟁을 방관하고 있는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군수품 입찰 경쟁자로 나왔으니… 흐흐흐흐, 이 사실을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알게 되면 땅을 치며 분노할 겁니다. 화병에 걸려 드러누울지도 모르죠.”

‘…아하.’

하지만 레브는 맥시누스의 말에서 그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정보를 읽어내었다.

레안이 타티안 후작을 어떻게 불러내서 만나겠다는 건지 궁금했는데, 저게 미끼였나 보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왕국 간의 접경지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무역로를 넓히고 싶어 해서 벨리타 왕국과 콘라드 왕국, 아이셀 왕국이라는 세 왕국의 접경지대로도 손을 뻗었다.

타티안 후작이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에게 유독 친한 척하는 까닭이었다.

영지를 세 왕국의 접경지대에 두고 있는 페테르 백작이 바로 콘라드 왕국 측의 모나크 남작과 동일인이었으니까. 그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콘라드 왕국과 벨리타 왕국 간의 밀무역 통로가 개척되는 셈이다.

한편 트루디 남작가는 그 세 왕국의 접경지대에서 아이셀 왕국 측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가문까지 끌어들여야 타티안 후작의 바람이 성취되는 건데, 레안이 군수품 판매를 미끼로 판을 벌여줬나 보다.

타티안 후작은 아주 흔쾌히 군수품을 포기했으리라. 생색을 내면서 트루디 남작을 구워삶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하하, 전쟁이란 게 원래 이런 것이었다.

전장에서 탁월한 전략을 세우고 잘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정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도 중요했다.

전장에 나온 장수가 끊임없이 뒤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레브가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저희 쪽은 어떻습니까? 키르기스 공작가는 조용한가요?”

떨떠름한 기색이 스쳤다.

맥시누스는 말을 아꼈고, 비비안은 못내 걱정이라는 투로 말했다.

“무슨 짓을 했는지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공작가 측 세력을 휘어잡았다더군요. 오스카 드 이사도라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고… 저한테는 안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저는 이 전쟁에서 성과를 거둬서 제국의회에 어필하려 했는데, 에릭 왕자가 조만간 증원군을 보낸다지 뭡니까. 참호전을 시작한 게… 저에게 패착으로 돌아왔습니다. 증원군이 도착해서 전선을 밀기 시작하면 공을 나눠 먹게 될 테지요.”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끝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레브는 숨을 죽여 웃었다.

에릭에게 이이나 공주의 목걸이를 넘겨준 게 이렇게 굴러갈 줄 알고 있었다.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를 수정할 수 있는 전대 여왕의 옥새를 가졌으니 에릭 왕자가 급부상하는 건 당연하고, 뒤늦게 왕위 계승 레이스에 참여한 에릭은 저를 내세울 공적이 급히 필요해졌을 거다. 그래서 숟가락을 얻으려 드는 거고.

그런데 오스카 왕자는 왜 이렇게 쉽게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걸까?

이건 의외지만 어쨌든 잘 풀렸다.

에릭을 믿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레브는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러다가 오늘 그가 왕자를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왔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지 마시고, 제게 기사 열다섯 명을 빌려주십시오.”

“…무슨 용도로 쓰시려 합니까?”

홀짝.

“순찰을 돌리려 합니다. 저 혼자서 돌기엔 힘들어서요. 오늘 중에 병영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브가 떠났다. 맥시누스 후작은 그가 남기고 간 빈 찻잔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입니다.”

…동감이오.

왕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자.”

음력 초하룻날에 헤르만 포르테 백작과 열다섯 명의 기사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백작은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이 삭일(朔日)에는 달이 뜨지 않기 때문이었다.

달이 뜨지 않는다는 건 물론 어둡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만 있는 건 아니고, 북쪽에서 떠올라 마나를 몰고 오는 달이 없으니 대기가 텅텅 빈다는 장점도 있었다.

대기 중의 마나를 쥐어짜서 하루 종일 마법을 퍼부어대던 마법사들은 일찌감치 퇴근했고, 헤르만 포르테 백작과 백작의 기사들은 참호투성이 이의 전선을 크게 돌아 적진으로 파고들었다.

목표는 병영이었다. 백작이 생각하기에 이 기상천외한 전쟁은 소모전의 양상을 띠었다. 그러니 부상자를 전투병으로 계속 탈바꿈시키는 적의 병영을 초장에 뭉개놓는 게 아무래도 좋아 보인다.

물론 협정 위반이다. 병영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십자교회가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그렇게 따지면 저쪽이 먼저 전쟁의 암묵적인 협정을 위반했다.

치사하게 마법을 쏟아붓다니.

제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지켜야 할 도의가 있는 법이다. 백작은 병사들이 땅이나 파는 이 전쟁을 옳은 전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박 것들.

“누, 누구… 으아읍!”

그때, 두 명의 기사가 가던 길 왼편으로 달려들어서 숨어 있던 화살 참호 하나를 습격했다.

그곳의 병사들은 신호탄은커녕 고개를 돌려보기도 전에 제압당했다. 전선과는 너무 동떨어진 후방이라 방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잘했다. 얼마나 더 가면 되지?”

“이대로 한 식경 정도면 도달할 듯합니다. 마법사의 말이 맞다면요.”

“구름 눈으로 봤으면 맞겠지.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이놈들은 어쩔까요?”

“죽여. 아, 잠깐. 저놈은 죽이고, 그놈은 데려와 봐라.”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거구의 포르테 백작 앞으로 끌려 온 병사는 경련이 든 것처럼 떨었다.

“순순히 답해주면 죽이지는 않을 거다. 알아들었지? 그래, 착하구나. 하나만 묻겠다. 너희 병영은 어느 쪽에 있느냐?”

‘저기. 저쪽입니다!’

입이 막혀 있으니 소리는 못 내고 병사는 다급하게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병사가 지목한 방향은 포르테 백작이 아는 방향과는 달랐다.

“마법사가 정찰한 방향이랑은 다른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음… 이 병사의 말이 맞지 않을까요? 구름 눈 마법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거라 속이기 쉽습니다.”

“그렇겠지? 좋아. 저쪽으로 가자. 그 녀석은…”

백작이 병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죽여.”

뭘 기대한 걸까. 병사가 눈을 부릅뜨며 읍읍, 무어라 하소연했다. 곧 목이 부러지며 조용해졌다.

자기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좁은 참호 바닥에 주저앉아 잠깐 쉬는 동안 백작은 제 이혼한 아내를 떠올렸다.

이이나.

젊을 적의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오만방자한 면이 없지 않았다. 고작 13살에 기사를 상대로 이겼고, 성년이 될 무렵엔 아버지 말고는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린 마음에 잘난체하며 한껏 거들먹거렸다.

그랬던 나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잠재워준 게 이이나였다.

솔직히 그녀와 결혼할 때만 해도 사랑은 무슨, 옆 나라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는 자신이 멋있다고만 생각했다.

최강의 검객이 아름답고 지체 높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하자가 있었다.

어리고 이쁘장한 공주님이지만 안경 없이는 장님이나 다름없어서 날 알아보지도 못했다. 결혼을 앞두고, 결함이 있는 아내를 맞게 된 나는 화가 나서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하고 말았다.

– “꺅! 누, 누구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시녀들을 썩 물리치고는 그녀의 발을 걸었다. 철푸덕 넘어진 공주님께선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으면서 도움을 청했다. 불쌍하게.

하지만…

– “눈도 안 보이면서 결혼은 해서 뭐 해? 돌아가.”

– “…헤르만 님이셨군요. 제 안경을 돌려주세요.”

– “네 입으로 파혼하고 돌아가겠다고 약속하면 돌려주지.”

건방질 대로 건방졌던 나는 못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모욕을 주면 그녀가 알아서 처신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이나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작고 여린 몸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진정을 되찾았다. 안경을 찾는 건 포기하고 손을 더듬어 어디 앉은 뒤, 옷매무시를 정돈했다.

– “…왜, 그러고 있으면 누가 널 도와줄 것 같아?”

그녀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나는 이미 살짝 기가 꺾였던 것 같다.

나보다 어린 동년배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어서, 비록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숨길 수 없는 고귀함에 짓눌렸다.

– “저는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에요. 부디 예의를 지켜주세요.”

– “…하! 내, 내가 왜? 내가 왜 너 따위 앞도 못 보는 여자한테 예의를 차려야 하지? 그리고 이사도라 왕가라 해봤자 저기 동쪽 변방의 가문일 뿐이잖아. 동쪽 촌뜨기가 아카이아 제국 이래 온 대륙의 유구한 수도, 오르빌에 왔으면 설설 기기도 하고 그래야지.”

이 말에는 그녀조차도 조금 화가 났었나 보다. 이이나 이사도라가 제 목걸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 “아카이아 제국의 영광을 물려받은 건 당신들만이 아니에요.”

빛이 찬란하게 뿜어지는 목걸이. 형태가 변하며 붉은색 인주(印朱)를 드러내는 그것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아카이아 제국의 옥새였다. 오직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다던.

그 이후 우리는 결혼했고, 내가 저지른 그 날의 무례는 이이나의 암묵적인 용인 속에서 흐지부지 잊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길버트가 태어나고, 아들을 내게 안겨준 아내에게 그때의 일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노라고.

아직 내가 용서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니, 이이나 포르테는 말했다.

– “아니요.”

그녀는 아들을 낳아 줬으니 아내로서의 의무는 다했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선 제 친정의 성을 돌려받고 싶은데, 참는 중이라고 했다.

– “…이사도라 왕가의 성을 쓰고 싶으면 그리하시구려. 어째서 참고 있으시오?”

–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요.”

– “…!”

– “농담이에요. 당신이 저희 이사도라 왕가를 좀 도와줬으면 해서요. 저희 이사도라 왕가는 늘 키르기스 공작가랑 경쟁하고 있거든요. 사실 제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그럴 일도 없었을 텐데… 어머니께서는 그러길 원치 않으셨어요.”

이이나는 길버트라는 두 사람의 보물을 앞에 두고, 그동안 숨겨온 과거사를 꺼냈다.

본인은 아카이아 제국 황실의 혈통을 또렷이 물려받아 태어났노라고.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황족 아내를 맞이하려 혈안이 된 작금의 사태를 자신의 대에서 종결짓고 싶어 하셨노라고.

아이셀 왕국은 금발이든 금안(金眼)이든, 몸에 노란색이 들어간 아낙네면 일단 첩으로 들이고 보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걸로 저들이 뭐라도 된 양,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에 이름을 올려줄 것을 청했다.

황족이라곤 수천 년 전에 사라진 마당에 이게 무슨 헛짓거리일까.

하지만 코르니우스의 황금 문서, 그 불멸의 마법을 부여받은 문서가 사람들을 미치게 하고 있었다.

해서 이이나의 어머니, 아이셀 왕국의 전 여왕께서는 이이나의 것이 분명한 옥새를 딸의 고사리손에 쥐여주고, 눈에는 데파레 즙을 떨궜다.

딸만큼은 황족이 아닌 일개 왕족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오지 말라 당부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벨리타 왕국으로 시집가게 되었다. 옥새를 들고.

– “기왕이면 도와달라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구려. 용서를 못 받으면 사랑이라도 받아야지.”

이이나는 빙긋 웃기만 하곤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게 아내의 대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십 년쯤 뒤에 알게 되었다.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이 즉위하고, 그가 소드마스터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헤르만은 왕성에 틀어박혀 정계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아내와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이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실망해 이혼을 선언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나를 정말로 사랑했을까? 나는 그녀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가슴에는 이 의문이 오래도록 박혀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오르빌에 비비안 드 이사도라 왕자와 함께 왔을 때,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허겁지겁 뛰쳐나가는 나는, 왜 그녀에게 소홀했는지는 몰라도 아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이이나는…

– “그래도 조언해주실만한 게 있으시겠지요? 예를 들어 클로에 공주님이 좋아하는 거라든가…”

비비안 왕자를 돕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클로에 공주와 비비안 왕자의 혼사를 성사시키는 데에 나를 이용하러 왔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섭섭한 마음에 헤르만은 사람들이 나간 틈을 타 그녀를 힐난했다.

– “…또 이러려고 왔소? 지긋지긋하군. 당신네 황족들은 구걸이나 하고, 사람을 이용할 줄밖에 모르지!”

– “그래요! 구걸하러 왔어요! 하지만 당신은 뭐 저희 이사도라 왕가를 도와준 적이나 있어요? 집에도 안 들어오고,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하고. 무슨 정신 나간 사람처럼.”

–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해서…”

– “또 그놈의 불안 타령! 됐어요! 부탁한 제가 멍청했어요. 당신한테 두 번 다시 부탁할 일 없을 테니 그런 줄 알아…”

– “그만들 하세요!!”

체통도 없이 막사가 떠나가라 외치던 부부를 가로막은 건 그들의 아들, 길버트 포르테였다.

– “저는… 오늘 어머니 아버지가 한자리에 계셔서 기뻐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두 분이 웃으며 이야기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장성한 아들이 몸을 떨고 있었다. 이이나는 부끄러워하고, 헤르만 백작은 머쓱하게 뒷짐을 지었다.

그날, 그래도 아들 덕분에 아내와 더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이나는 정말 오랜만에 백작가의 저택에 들렀고, 헤르만은 왕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 참았다. 아들과 아내, 셋이서 식사하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사담을 나눴다.

– “우리 아들이 그렇게 호색한이라면서? 저 아이셀 왕국까지 명성이 자자하더구나.”

– “아, 아니에요. 누구랑 헷갈려서 잘못 들으셨겠죠.”

– “아들놈이 치는 사고를 수습하느라 내 허리가 휘었소.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 “닮긴 누굴 닮아요. 당신을 쏙 빼닮았지. 당신 젊었을 때는… 어휴.”

– “…크흠.”

즐거운 하루였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와 아들이 입맞춤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노기가 치미는 걸 느끼며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들을 일으키고, 가던 길을 마저 향했다.

그런데 몇 개의 참호를 더 넘었을 무렵에 포르테 백작은 조우하였다.

“아버지!”

전쟁을 일으킨 아들과 우리를 둘러싸는 열여섯의 기사를. 개중에는 척 보기에도 범상찮은 기사가 한 명 끼어있었다.

함정인가? 그때, 멍청한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전쟁을 멈춰주세요! 저, 저도 도울게요. 어머니도 그러길…”

포르테 백작의 속이 참을 수 없이 거북해졌다. 화병에 걸릴 것만 같다. 아니, 이미… 걸렸다. 백작의 검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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