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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6

354. 소꿉 Ep – 이탈

백작의 검에서 오러가 넘실거리자 길버트가 침음을 삼켰다.

“아, 아버지… 제발…”

“입 다물어라.”

아들이 애걸하듯 말했으나 백작은 단호하게 쳐냈다. 화가 너무 나서 어디서부터 화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공주와 키스해서 이 전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전쟁을 덜렁 멈춰달라 청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아들이 자신과 이이나 사이에서 태어난 반(半)-왕족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다분히 뻔뻔한 부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 그래도 내 아들이니까.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결정적으로 백작의 화를 돋운 건 주위를 둘러싼 열여섯의 기사였다.

이놈들은 대체 어떻게…

어떻게 우리와 숫자가 딱 맞을까. 어떻게 우리가 여길 올 줄 알았을까. 어떻게 이 시간에 맞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백작은 제가 마치 교섭에 실패한 평화 사절이라도 되는 양 낙담하는 아들을 한심하게 노려보았다.

만약 정보가 샜다면 저 녀석을 통해서일 터였고, 아들에겐, 포르테 백작가의 정식 후계자인 길버트에겐 정보를 요구할 권한과 정보를 넘겨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다.

백작은 뚜둑- 목을 꺾으며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각자 하나씩 맡아 싸워라. 나는 저 대장으로 보이는 놈을 쳐 죽이고 지원하겠다. 길버트, 물러서 있어라. 네 망명은 오늘부로 끝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이 마치 물에 돌을 던져넣은 것처럼 터졌다.

백작은 참호를 단번에 뛰어올랐고, 눈부시게 빛나는 오러블레이드가 하늘을 양단하였다.

백작은 내리긋는 그 기세 그대로 눈앞의 기사와 꼴같잖은 참호까지 갈라버리려 하였는데…

– 까앙!!

‘까앙?’

오러를 휘둘렀을 때 도저히 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감촉까지도.

세상 그 무엇이 됐건 두부 가르듯 갈라버리는 오러블레이드가 눈앞의, 왜소한 기사의 검에 막혀 있었다.

정체불명의 기사가 서서히 상체를 일으켰다.

‘으아, 뒈질 뻔했네.’

레브가 속으로 구시렁댔다. 진짜로 방금 죽을 뻔해서 주마등을 보고, 기도까지 외웠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일격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인데, 그의 검이 찍히는 순간 레브의 무릎이 꿇렸다.

그 일격마저 팔 힘만으로 막은 게 아니었다. 레브는 어깨너머로 검을 눕혀 들고, 검 끝을 등 뒤의 땅에 박아넣었다.

그러니까 등짐을 지듯이 온몸으로 검을 받아낸 거다. 레브는 팔이 후들거리고, 두들겨 맞은 어깻죽지가 아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느리게 몸을 일으켜 포르테 백작을 마주하였다.

레브가 포르테 백작을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와, 진짜 말도 안 나오게 크구나.

레브의 키는 백작의 가슴께에도 미치지 못했다. 팔뚝 근육이 어마어마해서… 아주 옛날,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레안이 닭고기 집 주인장을 처음 마주했을 적이 떠올랐다.

한 대만 맞아도 픽 죽어버릴 것 같다.

레브는 ‘당장 이빨을 털어야 하나?’ 예정에 없던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여길 떠날 수가 없는지라 검을 고쳐잡았다.

낮게. 최대한 낮게.

레브가 제 어깨에 걸린 검을 사선으로 내리 베었다. 레브의 검은 백작의 허벅지를 (그의 검에 막히면서) 스쳤다.

참호 아래로 뛰어내린 레브는 막 왼손을 위로해서 고쳐 잡은 손잡이를 활용했다. 뒤돌아서며 검을 찌르자 포르테 백작은 그 연계와 지형 활용에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아니면 아까 오러블레이드가 막힌 것에 아직도 놀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백작도 검을 고쳐 잡았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체격은 좀 아쉽지만… 여튼, 적으로 만났으니 어쩔 수 없지.”

백작이 참호로 뛰어내렸다.

거구의 백작에게 참호라는 공간은 다소 비좁았지만, 그는 이를 레브를 잡기 위한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검을 당겨 잡고는 찌르기를 주된 공격으로 삼았는데…

[ 업적 : 건달 ‘3’명 – 어두운 골목길에서 더 강해집니다. min(3) ]

레브는 섬광처럼 찔러 들어오는 백작의 검을 가까스로 흘려낼 수 있었다. ‘기사 살해’ 업적에 기대조차 않은 ‘건달 살해’ 업적까지 발동해 더해진 덕분이었다.

물론 레브에게 분석할 틈은 없었다. 핑-! 백작의 검이 그의 귓불을 베고 지나갔다.

포르테 백작의 검술에는 예비 동작이란 게 없다.

전조를 철저하게 숨기는 검술이라 그의 팔이 움직였다 싶을 땐 검이 이미 코끝에 다다라 있었다.

레브는 이를 정말 가까스로, 자기가 어떻게 피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흘려내었다. 그런데 사정은 백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 레오 당신은 대륙 최강의 검사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 업적으로 {검술.5v : 포르테류(流)} 능력을 드립니다. ]

요 녀석의 동작이 읽히질 않는다. 몸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쏠렸는지 알아야 유효타를 날리기 편할 것인데, 여기다 싶으면 오른쪽이고, 저기다 싶으면 몸을 숙이며 앞으로 돌진해왔다. 공간이 좁은 것도 레브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에라이!”

“으윽!”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백작이 대검을 눕혀서 찍었다. 오러블레이드가 타오르는 검면이 넓게 내리쳐 오자 레브는 어쩔 수 없이 검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휘청. 제아무리 하체가 튼튼한 레브라도 무릎이 절로 꿇렸다.

레이라면 모를까, 레브가 포르테 백작의 상대가 될 순 없는 것이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검으로 견디고 있다 뿐이지 조만간 그는 백작의 힘에 압사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레브에게도 준비해 온 카드가 있었으니, 길버트가 검을 뽑으며 끼어들었다.

“아버지 제발! 멈추세요!”

레브를 짓누르며,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돌아보았다.

“물러서 있으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전쟁을 멈춰주겠노라 약조하시면 소자 물러서겠습니다.”

“너에겐 책임감이라는 것도 없고, 사태 파악도못 하겠느냐? 내가 무슨 수로 이 전쟁을 멈추겠느냐? 네가, 이 몸의 아들이 전쟁을 일으켰는데! 비비안 왕자가 전쟁을 잘도 멈춰주겠구나.”

“…비비안 왕자에게는 이미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럼 썩 돌아가라 해라. 감히 이 벨리타 왕국에 선전포고한 죄는 눈감아줄 수 있으니 당장 꽁지를 말고 후퇴하라고.”

“…아니,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못 하겠지? 그럼 나도 못 한다. 비비안 왕자는 우리나라에 얻어내고 싶은 게 있어서 왔고, 나도 일방적으로 물러서 줄 순 없다. 이미 육천 명이 넘게 전사했다는 것만 알아라. 나는 우리 왕국민의 피의 대가를 받아야겠다.”

“…”

길버트의 입이 닫혔다. 아무래도 설득을 당한 모양인데, 이대론 답이 없어서 레브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전쟁에서 패하는 것보단 협상하는 게 나을 텐데요? 어이구, 그렇게 노려보니 무섭군요. 하지만 전쟁은 이미 우리가 이겼습니다. 백작께선 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시지요?”

“싸움을 칼이 아닌 입으로 하려 드는군.”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콘라드 왕국으로부터의 군수품 수입을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셀 왕국에서는 조만간 대규모 증원군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는 협정을 맺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겠지요.”

비록 적군의 입에서지만 값을 매기기 힘든 고급 정보가 술술 튀어나오자 백작은 경청하기 시작했다. 물론, 검으로는 여전히 레브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콘라드 왕국이? 설마 그것들이 군수품을 너희 왕국에 넘겼다는 말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타티안 후작이 용인한 일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군수품이 아주 넉넉해졌고… 키르기스 공작가마저 마음을 바꿔 참전을 결심했으니 헤르만 포르테 백작, 당신네 군대는 올겨울이 가기 전에 패퇴하게 될 겁니다.”

백작은 잠시 그대로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쿡, 웃으면서 말했다.

“유언은 잘 들었다. 그러니까 증원군이 오기 전에 네놈들을 몰살하면 된다는 것이로구나. 그까짓게 내게 어려운 일인 줄 아느냐?”

정찰을 겸해서 병영을 먼저 뭉개두려 했다 뿐이지 놈들을 상대할 방안은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아이셀 왕국군은 병력을 열다섯 조각으로 나눠둔 상태였고, 병사가 고작 천 명이면 그 혼자서도 몰살하기가 어렵지만은 않았다.

지금 이 꼬맹이 기사가 좁은 참호를 무기로 버티고 있는 것처럼 그도참호를 밀고 들어가면서 병사들을 차례로 학살할 수 있었다. 적 기사 또는 마법사에게 둘러싸이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칼질 천 번을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오러는 최대한 아껴야겠으나 그렇게 하나씩 격파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래서, 이 녀석은 죽여둘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내 검을 막는지는 몰라도 이놈이 있으면 앞서 상기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테니까.

백작의 힘이 더욱 거세어졌다. 아예 오러블레이드에서 뿜어지는 열기로 레브를 지져 죽이겠다는 듯이 밀어붙였는데, 길버트 포르테가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향해 검을 세우며 경고했다.

“아버지의 말씀은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저는 비비안 왕자와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넌 인질로 쓰일 수도 있으니 나와 함께 돌아가… 헛! 이놈이!”

“레브 경을 놓아주세요.”

아들놈이 검을 휘둘렀다. 그것도 벨 작정으로.

피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레브라는 꼬맹이 기사가 검압에서 풀려나 버렸다.

못난 녀석.

포르테 백작은 ‘거기 누구 없느냐!’ 누구에게 시켜 아들을 붙잡으라 할 요량으로 주위를 둘러봤는데, 기사들은 각자의 상대와 싸우느라 바쁘고… 기어이 애비가 아들에게 손을 대야 할 처지였다.

그래 까짓거, 아들은 제압하고 저 녀석은 죽이면 되지.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꼬맹이 기사가 품에서 목함을 꺼내더니 빙그레 미소 지었다. 포르테 백작이 어찌 대응하기도 전에 와작, 구슬을 깨뜨렸다.

신호탄이다. 곧 마법사들이 날아올 거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몸이 달아올랐다. 더는 여유를 두지 않고 달려들었으나 오러블레이드는 여전히 막히고, 아들놈은 속을 썩였다.

길버트가 겉멋만 잔뜩 든, 소위 고급 검술을 구사했으면 되레 쉽게 제압했을 테지만 아들은 검을 정직하게 휘둘렀다. 검을 군더더기 없이 내리긋고, 찌르니 어디 한 군데를 분질러버리거나 내주지 않고는 잡을 도리가 없었다.

하물며 오러블레이드를 막아내는 기상천외한 적 앞에서야… 포르테 백작은 끝내 등을 돌렸다.

“후퇴한다!”

누구 맘대로? 하지만 레브가 소리쳐서 흥분한 기사들을 가로막았다.

“쫓지 말고 내버려 둬라! 포르테 백작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허나 앞으로도 자주 뵙게 될 겁니다. 오늘은 조심해서 가시지요.”

레브라는 그 꼬맹이 기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병영을 습격하는 데 실패하고 돌아온 다음 날, 백작은 곧장 적 진영 하나를 골라 몰살시키려 하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레브가 기사들을 대동하고 나와 있었다.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음에는 다른 곳을 택했는데 또 나와 있고, 또, 또, 또…

같은 일이 반복되자 백작은 이게 우연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보가 새 나간 것도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는 너무 쉬웠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나가봐도 녀석이 있었으니까. 놈은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하곤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전선은 마법사들에 의해 차근차근 밀려오고… 콘라드 왕국이 아이셀 왕국에게 군수품을 팔았다는 것도, 조만간 증원군이 충원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병사가 충원되는 건 그렇다 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키르기스 공작 측을 지지하는 마법사들, 코르넬 마탑의 리디아 학파 마법사가 대거 충원된다는 정보였다. 여태까지는 이사도라 왕가를 지지하는 코르넬 마탑의 제건 학파 마법사들밖에 와 있지 않았던 거다.

과연 마법 왕국이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결국 본인이 전투에 나서기를 포기했다. 사방팔방으로 증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도 바쁘다. 마법사를 고작 여덟 명밖에 보내지 않은 카미츠 마탑을 협박하고, 타티안 후작을 포함, 전쟁을 방관하는 대귀족들에게 병사를 보내 달라 청했다.

한편 레브는 포르테 백작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곤 쾌재를 불렀다. 그는 레아에게 달려가 말했다.

“끝났어! 이제 떠나자!”

“뭐가 끝나?”

“내 할 일이. 그만두고 나와! 왕자한테는 말해놨어.”

사실 레브한테는 전쟁이 어떻게 끝나건 상관없었다. 포르테 백작이 전쟁을 단기간에 끝마치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게 목표였는데, 문제는 본인은 여길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 업적 : 왕 5/6 ]

나는 아스란 왕국의 왕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여기에 너무 오래 묶여 있어선 안 됐다.

그러니까 레브는 자기는적당히 빠지면서 백작은 전장에 오래 남아 있길 바랐던 거다. 백작이 적당한 시기에 돌아갈 수 있으면 더 좋고.

레브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레리아나에게 갔어야 할 귀속 아이템(옥새)을 에릭 왕자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증원군을 보내도록. 레브는 오프론티스에 결집 중인 증원군의 사령관이 제니아 재커리 경이라는 소식을 듣곤 내심 안타까웠다.

에릭 왕자와 공을 나눠 먹기 싫은 비비안 왕자는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길버트를 앞세워 포르테 백작과 평화 협상을 시도할 테니까…

– “이거요? 별것 아닙니다. 그냥 손목을 그었었거든요.”

왼쪽 손목을 불편하게 꺾던,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살고 싶어 하는 그 서자 출신의 여기사께서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터였다.

그래도 에릭 왕자의 편에 붙었으니, 그녀는 앞으로 에릭과 비비안 왕자와의 권력 다툼 속에서 바라던 바를 성취하겠다.

레브와 레아는 각자 반테를 타고, 마법이 휘몰아치는 전장에서 이탈해 북쪽으로 사라져 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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