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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8

356-1. 소꿉 Ep – 해방

“겨… 경기 종료! 레브 비자인 승!”

레라 아이나르가 저를 깔아뭉갠 적수를 허망하게 올려다보았다.

수백 관객의 놀란 함성이 들리고, 나는 도대체 언제 넘어졌는지 등으로 단단한 바닥이 느껴졌다. 휘슬이 울리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위치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 나는… 패한 것이다.

얼떨떨하다.

레라 아이나르는 그제야 상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어깨를 밟고, 목에 검을 들이댄 청년은 나이가 어려 보였다.

오른 왕국에서 온 전사라고 했던가. 키가 작으니 하단을 주의해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윽.”

이제야 통증이 밀려들었다.

사정없이 짓눌린 손목과 바닥에 처박힌 어깻죽지가 아프다. 어깨를 짓밟힌 건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

“…”

승리의 여운을 즐기는 것일까?

잠깐 눈을 맞부딪치며 내려다보던 청년이 발을 치웠다.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주려 한다.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잡지 않으려 했는데, 대련이 끝나고 레이가 손을 건네 오던 거랑 타이밍이 같아서… 실수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니 관객의 함성이 더 크게 들려왔다.

레라는 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승자에게 마주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경기장을 내려왔다. 터벅터벅, 계단을 밟자 자신이 패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건 오만도, 자만도 아니다.

신체 격차가 현저했고, 나는 마나의 축복도 받았다. 노엘 아저씨는 내 실력이 기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칭찬해주셨다.

기사단에 입단할 기회가 경품으로 주어진 시합에 당장 기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출전한 거다.

상식적으로 질 일이 없는 대회였는데…

“우~! 잘난척하더니 그렇게 지면 어쩌냐!”

“단 한 합을 못 막으면서 우승할 생각을 했어? 어떻게 저런 애가 시드를 받았지?”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가는 통로로 들어가려는데 가까워진 관객석에서 비아냥이 들려왔다.

레라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려다가 그만 고개를 떨궜다.

아까 맞잡았던 승자의 손바닥이 너무나도 말랑했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스스로를 비아냥거리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마우닌-레티이 대회는 16강전부터 관객을 받아 진행된다.

그러니까 레라는 방금 경기가 공개된 첫날에 탈락한 것인데, 예선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녀는 B-1번 시드를 받아 16강 본선에 곧장 진출했다. 레이와 함께 이번 대회에 돌풍을 일으킬 다크호스로 선전됐다.

대전사들로 북적이는 대회에 아이나르라는 어느 부족 대전사의 따님이 참가했으니 얼마나 귀엽게 보였을까.

더군다나 레라는 C-1번 시드를 받아 그녀와 마찬가지로 본선 진출을 확정한 제 남자친구와 결승에서 만나 우승하는 게 목표라며 호언장담했다. 토착민 출신 전사치곤 엄청 이쁘장한 아가씨가 그런 맹한 소리까지 해대니 인기몰이가 안 될 수가 없었다.

B그룹에 속한 그녀와 C그룹에 속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절대로 결승에서 맞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끽해야 4강 준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건데… 바르나울 시민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매력적인 아가씨를 보러 몰려들었다.

‘쪽팔려!’

통로를 지나던 레라는 자괴감을 넘어 수치스러워졌다.

쪽팔린다. 이러다 죽겠어!

관객의 함성이 아스라이 들려오는 통로에서 그녀는 혼자 방방 날뛰었고, 끝내 붉게 물든 얼굴을 가리며 귀퉁이에 웅크려 앉았다. 빨갛게 익은 게 홍시가 따로 없다.

그런데 그때, 뚜벅.

하늘도 무심하시지 누군가가 통로를 걸어왔다. 쪼그려 앉아 있던 레라는 당장 졸도해버리지 않는 저의 굵은 신경줄을 원망하며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다행히 걸어온 사람은 레이였다. 생각해보니 나 다음이 바로 레이가 경기할 차례다.

“레, 레이. 나…”

“괜찮아. 질 수도 있…”

“쪽팔려 죽겠어!!”

레라는 얼굴을 가린 채 하소연했다. 품에 안겨 자기가 너무 기고만장했다고 자책하며 복수를 청했다.

“레이 너 이번 경기 꼭 이겨야 해. 이겨서 올라가서 그 멸치 같은 놈을 꺾어줘. 안 그러면 나 쪽팔려서 못 살아!”

“어… 음. 노력해볼게.”

“꼭이다?! 꼭이야!”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제발제발제발 이겨달라는 그녀의 부탁에도 레이가 그 전사에게 패하고 만 것이다.

안 됔!! 이건 말도 안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라의 명예는 약간 회복됐는데, 레이와 레브 비자인 간에 벌어진 준결승전이 엄청난 명승부였기 때문이다.

부닥치는 한 합 한 합의 파공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고, 일반인이 보기에도 경탄스러운 몸놀림이 무대를 수놓았다.

저렇게 싸우면 검이 깨지면서 김이 빠질 법도 한데, 두 사람은 관객들이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서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레라의 패배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니게 되었다.

…젠장.

그리고 이어진 결승전에서마저 그 멸치 님은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레라의 패배는 이젠 놀림거리가 아닌 전설의 시작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 몸이 다른 사람의 전설의 재료가 되다니!

4강에 오르지 못한 참가자는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수 있다. 레라는 툴툴거리며 패자부활전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레이가 이기는 것만 보고 더는 시합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쨌건 레이는 4강에 올라 입상했으니 본인만 패자부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레이와 나란히 기사가 될 수 있었다.

모양 빠지지만 어쩔 수 없지. 내 꿈이 코앞인데…

결국 레라는 패자부활전 무대에 올랐다.

“아이나르 부족 아가씨 힘내요!” 전보다 한결 너그러워진 바르나울의 시민들과 본선 우승자, 그리고 왕이 보는 앞에서 재롱잔치를 부렸다. 레브는 그걸 내심 흐뭇하게, 동시에 미안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레이가 기권하지 않고 그냥 4강에 올랐다. 하지만 다음엔 패자부활전에 나갈 것이라 레브는 미리 ‘미안해’ 속으로 사과했다.

그때, 왕의 부름이 들렸다.

“결판이 났군. 본선 우승자는 이리 가까이 오라.”

하지만 레브는 왕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레라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레라는 ‘칼리 톨루카’라는 상대를 쓰러뜨리곤

“꺄악! 레이! 나 이겼어!!”

기쁨에 찬 함성을 질렀다.

그녀는 어찌나 기뻤는지 레이를 찾아 팔짝팔짝 뛰어갔는데… 레브는 조금 목이 메었다.

저것이 바로 노구화호를 사냥하고, {전쟁} 이벤트를 막아내고, 마르하스를 없애고서야 비로소 맞이하게 된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정상적인 엔딩이었다. 저 당연한 행복을 되찾기까지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한 번 더 변하게 될 엔딩이지마는 레브는 감동을 만끽하였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레라 아이나르의 엔딩들을 차례로 떠올리다 눈가를 훔치며 뒤돌아서니 한 근위기사가 다가와 있었다.

“왕의 말씀을 못 들으셨소?”

또박또박하고 중후한 음성.

치명적으로 잘생긴, 그러나 아직껏 일개 근위기사에 머물러 있는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이었다.

바르트 경처럼 이 사람도 소드마스터가 아니게 된 모양이다. 그래도 턱이 멀쩡해졌으니 손해는 아닐 것도 같다.

“…송구합니다. 눈에 바람이 들어서.”

뻔한 변명을 하며 레브가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무례한 우승자를 여유 있게 용서하는 왕이 옥좌에 앉아 있고, 아놀프 왕자를 선두로 클라우스 왕가의 왕족들이 온전한 대용을 갖추어 기품있게 모여있었다.

내전으로 쪼개졌던 마우닌 왕과 레티이 여왕의 후손들이 본래의 영광을 되찾은 것이다.

아쉽게도 아스터 왕국의 왕자였던 파블로 클라우스 왕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어디 있을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그는 마누비울의 어느 평민 여성과 사랑에 빠졌었다.

굴레는 굴레대로. 주신에겐 사랑도 굴레의 일종인가 보다.

그때, 오랜만에 시야를 가리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 메시지에는 언젠가 민서가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없을 수가 있냐며 투덜거렸던

[ 업적 : 왕 6/6 – 레오들에게 <사기 고취> 능력이 부여됩니다. time(1y) ]

<액티브 스킬>이 담겨 있었다.

레브는 이거 민서가 알면 입에서 불을 뿜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액티브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었고, 마우닌-레티이 대회는 누군가의 호들갑 어린 외침 속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우리 결혼해요! 결혼할 거예요!”

* * *

그 이후 레브는 레아를 데리고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아직 가을임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바다를 건너 소위 ‘얼음섬’이라 불리는 곳에서 짐을 풀었는데, 도착했을 때 레아의 배는 눈에 띄게 불러 있었다.

얼음섬에서 터를 닦고 살아가는 아비커 부족의 족장이 레브를 환대했다.

“임산부를 데리고 온 전사는 처음 보는군. 어서 오시게. 끝없는 시련을 원해 찾아왔다면 여기가 그대의 종착점일세.”

“잘 부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내가 애를 낳을 때까지만 머물다 갈 겁니다.”

여기는 청련달이 뜨는 날이면 수없이 많은 마수가 바다를 깨뜨리며 상륙한다는 섬이었다.

마수 업적 카운터를 채워둘 요량으로 방문하였고, 레브는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며 목적을 달성했다.

이듬해 봄에 레아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는 란과 앤 아비커라는 출산 경험이 있는 아가씨들이 산파를 자청해 레아를 보살펴주었다.

새벽녘에 시작된 진통과 초조한 밤샘 기다림 끝에 레브는

“어여쁜 따님이에요!”

인생 처음으로, 아니, 모든 회차를 통틀어 처음으로 자신의 딸을 품에 안았다. 안을 수 있었다.

“어쩜 이렇게 깨끗하게 나왔지? 얼굴에 구김 하나 없어요!”

레브는 딸을 어색하게 안아 들곤 엉거주춤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의 얼굴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우움- 꼼지락거리는 입술에 심장이 저리고, 아이의 깃털 같은 무게가 너무 무겁다.

얘가… 내 딸이구나.

“…내가 뭐랬어. 예쁘다고 했지?”

모진 산통으로 탈진해 누워있던 레아가 삐죽거렸다. 레브는 그래도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해져 있었던, 그들의 딸의 이름은 노아(Noa). 구어로 ‘극복’이라는 뜻이었다. 레브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들이 뒤이어 낳을 아들의 이름은 소야(Soa), ‘행복’이었기에. 주신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삶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나의 운명이었다.

레아가 수도교회로 떠나건 안 떠나건, 사제가 됐건 못 됐건, 데모스 마을의 산골짜기 소년은 끝내 그의 소꿉친구와 결혼했을 테니까.

레아도 나를 위해 기꺼이 기다리고, 받아주었을 것이니까…

레아와 레브는 바다가 녹기 전에 떠났다.

내려가는 길에 루테티아를 구경하였고, 레아가 행복을 잉태했을 무렵에 두 사람은 고향에 발을 디뎠다.

마을을 떠난 지 꼭 2년이 흘러서, 대륙을 한 바퀴 돌아서였다.

딸아이를 안고 돌아온 두 사람.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나서 그들을 얼른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레아가 고집을 피워 결혼식을 이듬해로 미뤄버렸다.

레브에게 소야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듬해, 아들까지 원 없이 안아보고 나서야 레브는 그만 엔딩을 볼 각오를 다졌다. 결혼식이 열렸다.

“오늘 거룩한 혼인예배에 참석해주신 마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기 일생일대의 가약(佳約)을 맺는 청년 둘이 섰습니다. 이 어여쁜 청년들은 어릴 적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초기 자금}과 {뒷골목의 규칙} 정보를 건네받은 한스는 어엿한 상인이 되어있었고, 레슬리 수도사는 미하에르 추기경이 실각된 덕분인지 교회의 수도원장을 맡고 있었다.

레브는 레슬리 수도사의 주례를 들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마을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던 아버지가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 계셨다. 그 옆에 어머니가 살아 계신 것도, 어머니가 한스 아주머니와 속닥속닥 이야기하시는 것도 그가 어렵게 되찾은 풍경이었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레브는 한숨을 코에 묻으며 앞으로 다가올 비정상을 대비하였다. 레아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레아. 고마워. 이번에 날 따라와 줘서.”

“…”

“다음에는 내가 너를 찾아갈 거야. 온 대륙을 돌아서. 가는 내내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하겠지. 네가 언젠가 놀렸다시피, 줄이 달린 꼭두각시처럼 말이야.”

“…”

“하지만 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 네가 아무리 놀려도, 놀렸어도. 너를 찾아가는 꼭두각시라면 만 번을 더 해도 행복할 거야. 레아야. 다음에 다시 만나자.”

“…그래! 다음에 봐!”

예쁘게 차려입은 신부가 신랑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 기쁜 날에 눈물을 글썽였고, 엔딩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

[ 레나가 결혼했습니다. 축하합니다! ]

[ 레나 키우기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브에게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엔딩과 함께 시야가 동실 날아올랐지만, 허공에 떠오른 구체에는 민서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교회를 배경으로 멀어져가는 저 아래에는 레아를 부둥켜안은 레브가 있었고, 레브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다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부시게 웃었다. 레아의 고개를 들어 잡으며 입을 맞췄다.

축복의 성가와 함께 평화로운 마을, 교회가 멀어져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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