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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6화

10장 황후의 안목(2)

아이넨은 백화점에서 정신없는 쇼핑을 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옷과 화장품, 장신구를 산 뒤에도 상품권 금액이 남았다.

퀴즈 문제를 맞혀서 받은 상품권치곤 상당한 금액이었다.

마지막으로 식재료를 사러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

코너 옆을 도는 중에 누가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뒤에서 따라오길래 지나칠 줄 알았는데 그녀와 속도를 같이 한다.

“……???”

아는 사람인가, 하고 힐끗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다.

정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 저기요?”

“쉿.”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아이넨 씨를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이쪽으로.”

남자는 아이넨에게 살짝 붙어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안내했다.

남자의 안내는 완강하지 않고 정중했다.

아이넨이 뿌리치려고 들면 할 수 있는 정도.

“누가 기다린다는 거예요?”

“도착하면 아실 겁니다.”

“아무도 없는데 여기서 들으면 어때요?”

아이넨의 말에 남자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는 아이넨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필리 테르스트 님께서 찾으십니다.”

“필리 테…… 설마 폐하의……!”

“쉿.”

남자가 주의를 주자 아이넨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 빨리 다물어서 그런지 딸꾹질을 했다.

“저, 저를 왜요?”

아이넨은 한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아이넨 씨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남자는 마치 준비된 듯한 대사를 했다.

아마 이 이상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을 것 같다.

아이넨은 남자의 유도대로 이끌려 걸어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필리 테르스트면, 제국의 황후!’

아이넨이 대하기에는 너무 높은 상대다.

그녀는 콘스텔의 전투직 교사도 아니고, 그냥 도서관 사서일 뿐이다.

황후가 자신을 찾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왜 이렇게 몰래 움직이는 거야?’

황후면 당당하게 명하면 될 것 아닌가.

아이넨 플로트는 당장 내 앞으로 나와 명을 받들라!

그 한마디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을 텐데.

‘황후에게 나서지 못하는 껄끄러운 이유가 있거나, 궁에 알리고 싶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아이넨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남자는 아이넨을 안내하면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우측으로 꺾은 뒤 또 문을 열고, 거기서 계단으로 내려가 ‘공사 중’ 팻말을 넘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방향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으로 걸어내려갔다.

‘구, 구식…….’

침입을 철저하게 막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짠돌이스러운 것도 같고.

그리고 마침내 남자가 철문 하나를 열었을 때.

“……와아.”

도착한 곳은 확실히 백화점은 아니었다.

궁의 내부를 따온 것 같은 화려한 장신구와 예술품들이 거기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필리 테르스트는 따뜻한 색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 취향을 반영해서인지 방 안은 빨강, 주황, 노랑으로 가득했다.

방 안을 조금 걷자 탁자가 보였다.

탁자에는 이미 준비가 되었는지 차가 담긴 컵이 놓여 있었다.

“앉아서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남자는 나갔다.

아이넨은 멍하니 방 안을 둘러보았다.

‘……튈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무리였다.

아무리 미심쩍어도 황후의 부름을 거역할 순 없으니.

그리고 그럴 틈도 없었다.

“와아아, 오셨군요 아이넨 씨.”

포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말투와 어조.

아이넨이 얼른 일어서 무릎을 꿇으려 하자,

“아앗, 아니에요. 그런 거 안해도 되어요.”

어딘가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손을 내젓는다.

“앉아요 앉아.”

그렇게 말하며 먼저 의자에 앉는 그녀를, 아이넨은 그제야 제대로 보았다.

눈을 닮은 하얀 머리카락.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얼굴, 살짝 열리는 붉은 눈동자.

어느샌가 분위기가 동글동글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른한 공기네.’

나른하다고 하니 콘스텔에 인간늘보가 떠오른다.

걔도 항상 나른한 얼굴이긴 했지. 졸린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프론디어와 달리 필리는 밝은 분위기다.

졸리다거나 피곤해서 생기는 나른함이 아니다.

그 온화함이 주변에 물드는 듯한, 평화로움.

“많이 당황하셨죠? 죄송해요. 꼭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서.”

“저를, 말씀이십니까?”

아이넨의 말투가 이상해졌다.

황족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어야지.

필리가 웃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여기서는 황후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것이 쉬워야 말이지요.

아이넨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차를 홀짝였다.

필리가 물었다.

“백화점 상품권, 잘 쓰셨나요?”

“후룹?! 콜록, 콜록!”

놀래서 차를 갑자기 들이켰다.

아이넨은 기침을 하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코, 콜록, 그걸 어떻게…….”

“사실 그 퀴즈, 저희 쪽에서 낸 거거든요.”

“황후님께서……?”

필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아이넨 씨를 찾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설마 전문 정답을 맞히는 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 그럼, 저를 찾으시는 이유가…….”

“네. 퀴즈 때문이에요.”

필리의 시원한 답변에 아이넨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생각이 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황족과 아무 인연이 없는 자신을 왜 찾나 했더니.

퀴즈 때문이었구나.

‘전문 정답을 한 사람을 찾은 거구나.’

가만.

그렇다면 황후가 지금 알고 싶어 하는 건…….

필리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래서, 아이넨 씨.”

“네, 네헤?”

삑사리가 났다.

필리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드래곤 하트에 대한 정보, 어떻게 알았어요?”

* * *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꿈이랄까, 기억이랄까.

프론디어의 지식을 흡수한 찌꺼기 같은 것을 보았다.

너무 단편적이고 흐릿해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프론디어에게 몰래 고대어의 정보를 전한 누군가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놈의 정체를 모르겠다.

‘……이건 아마, 프론디어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거야. 그놈이 뭐라 말했고, 무슨 목소리였고,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놈’이라고 한 걸 봐서는, 남자였던 듯싶다.

아무튼 과거의 프론디어는 어떤 놈에게 이상한 소리를 들어, 고대어의 해석에 매진했다.

엘로디의 신력을 없애는 방법이었겠지.

‘고대어의 해석을 해낸 것으로 봐서 프론디어는 멍청하진 않아. 분명 그놈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던 거다.’

아니면 마법, 최면으로 홀리게 했든가.

어느 쪽이든 그 남자에 대해선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난 지금 이 생각을 어디서 하고 있냐면.

“우응……. 음냐.”

병원 침대에서, 엎어져 자는 사이벨을 보면서 생각 중이었다.

어쩐지 자면서 배가 무겁더라니.

언제부터 내 옆을 지켜주었는지 사이벨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엎어져 자는 주제에 너무 편안해 보이길래 깨우기가 미안해졌다.

……환자는 나지만, 아무튼.

끼익-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어머, 프론디어 군. 일어났어요?”

“핫?!”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의 말에 반응한 건 내가 아니라 사이벨이었다.

퍼뜩 눈을 뜨고는 쏜살같이 머리를 들어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에 간호사가 웃었다.

“여자친구가 어제부터 지극정성이었어.”

간호사의 말에 사이벨이 똑바로 앉은 자세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녀, 녀자친구 아니웨여.”

“사이벨, 발음.”

“어, 아우우.”

내 지적에 사이벨이 양손을 들어 볼을 꾹꾹 눌렀다.

……저러면 발음이 좋아지나?

“사이벨, 입술에 머리카락.”

“앗, 그, 그래.”

“턱에 침.”

“핫?! 그, 그래.”

“콧물.”

“거짓말!”

“응. 거짓말.”

재밌어져서 그만.

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사이벨을 뒤로하고,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제가 얼마나 자고 있었죠?”

“하루 됐어요. 간호는 여기 사이벨 양과 엘로디 양이 번갈아 가면서 해줬구요.”

“……저 그렇게 심각했나요? 옆에 누가 있어야 할 정도로?”

“어어……. 저도 괜찮다고 했는데, 꼭 간호하고 싶다고 해서.”

간호사의 말에 다시 사이벨을 봤다.

사이벨은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런 채로 내게 말했다.

“아니, 그 뭐야. 너 힘들어 보여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달까.”

“……뭐, 오두막에서는 모두가 힘들었지.”

“그, 그런 게 아니라. 그, 아주 오래전부터…… 힘들었던 거 같아서.”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아주 오래전부터라니.

아, 혹시 ‘인간늘보’라는 평판 때문인가.

이번 사태가 터진 이유가 내 안 좋은 평판도 한몫했으니까.

하지만 사실 그 평판이 그렇게 힘들 건 없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서 시선을 돌린다든가, 자리를 피한다든가 그 정도.

눈에 보이는 괴롭힘을 받은 적은 없다.

뭐, 나보다는 로아흐 가문이 무서웠던 거겠지만.

나는 말했다.

“괜찮아. 익숙하니까.”

“……익숙해? 그런 게?”

“음, 뭐. 다치거나 그런 적도 없었고.”

“그건 지금까지가 그랬던 거고!”

사이벨이 드물게 외쳤다.

뭔가 나를 혼내는 듯, 아니, 설득하는 듯한 눈동자다.

“그런 걸 백 번도 넘게…….”

“……응?”

백 번?

뭐가 백 번?

“아냐, 됐어.”

사이벨이 입을 다물었다.

뭔가, 전혀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서 참 기분이 묘했다.

“어머.”

그리고 또 한 명이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미소 지었다.

……얘도 표정이 사이벨이랑 비슷하다.

“깨어났구나, 프론디어.”

“어어. 엘로디.”

──그 후.

나는 둘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먼저 세르프는 사망이 확인되었다.

이마에 관통상으로 인한 즉사.

흉기는 보이지 않았으나, 사이벨의 마법 화살이라는 걸로 해뒀다.

그리고 또 다른 리더, 그로벨.

왜 숲속에 있을 때는 세르프만 말하나 했더니, 그로벨은 그 이전 세르프의 기습에 의해 기절한 상태였다.

세르프는 로크벨을 조종하려고 했었으니까.

그러려면 그로벨이 방해라고 판단한 거겠지.

그로벨은 ‘테이번의 방벽’에 보내졌다.

테이번은 우르파 가문의 영지인데, 우리 가문 영지인 예란헤스와는 완전 정반대에 위치한 변방이다.

리드위 우르파가 관리하는 이 지역은 예란헤스보다도 위험하다.

나의 아버지 앙페르의 탁월한 통솔력과 관리로 인해 마물의 침공을 전부 막았던 예란헤스와 달리, 테이번은 그렇지 못했다.

겨울이 되면 바깥의 마물들은 더욱 허기가 지고, 먹이의 냄새를 맡고 조금씩 안쪽으로 기어들어 온다.

이 때문에 매해 겨울마다 테이번에선 참혹한 전투가 펼쳐진다.

그 겨울의 방비를 위해 그로벨은 병사 중 하나로 명예롭게 ‘쓰여질’ 것이다.

그로벨은 본인이 한 잘못보다, 그 경과가 너무 안 좋았다.

기절한 상태였다고 해도 ‘악토버’의 표면적 리더가 그로벨이었으니.

자기 동생에게 연기를 시키고, 방화, 상해, 살인미수까지.

게다가 또 하필 나와 엘로디라는 두 막강한 가문의 귀족 자제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점까지도.

엄한 처벌이 불가피했다.

나는 물었다.

“나 퇴원은 언제야?”

“오늘 바로. 기절한 원인이 심각한 게 아니고, 후유증도 없을 거래.”

“음, 원인이 뭐였는데?”

“……마나 소진.”

그 말을 할 때의 엘로디는, 꼭 무슨 암 선고라도 내리는 것처럼 말했다.

뭐 그런 느낌으로 말하냐.

마나 소진이 뭐 별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구나.”

라고,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내 말을 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엘로디와 사이벨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 분위기 뭐냐고 대체!

그러다 엘로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맞아, 너 깨어나면 아이넨 선생님께서 고맙다는 말 전해달라 했었어.”

“아이넨 선생님이?”

“응, 너 뭐 도와줬다며? 퀴즈라던데?”

“……아하, 그거.”

그 드래곤 하트 문제 말하는 거구나.

“그거 덕에 백화점 상품권 받았대. 테르스트 백화점.”

“……테르스트 백화점?”

테르스트 백화점.

이름부터 참 알기 쉬운데, 황족 관할의 백화점이다.

‘모험가 퀴즈,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마지막 문제, 테르스트…….’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드는데.

띠링-

그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탁자 위에 있던 내 폰이 소리를 냈다.

나는 사이벨에게 폰을 건네받았다.

확인해 보니 문자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필리 테르스트에요오.]

……뭐?

누구라고?

생각이 못 따라가는 와중에 문자가 한 개 더 왔다.

[조만간 한 번 봐요 우리.]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AWR,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tius, a game that no one has cleared. [GAME OVER] The moment all possible strategies failed, “Student Frondier ?” I became an Extra in the game, I became Frondier! [Weaving] •Saves and replicates images of objects. However, it is an illusion. All I have is the ability to replicate objects as virtual images! [Main Quest: Change of Destiny] ? You know the end of humanity’s destruction. Save humanity and change its fate. “Change the fate with this?!” Duplicate everything to carve out my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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