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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2

359. 레나 Ep – 체취

“레이. 넌 언제 사냥해봤어? 왜 이렇게 잘해?”

사냥을 나왔다. 성년이 된 나의 기념비적인 첫 사냥을.

그런데 사냥이란 건 내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고, 레이는 그걸 엄청나게 잘했다. 레이가 씩 웃으며 답했다.

“그냥 보고 따라 하는 거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안다. 역시 레이는 못 하는 게 없구나… 나는 의기소침해지려는 마음을 붙들었다.

난 사냥이란 게 사냥감과 칼부림해서 잡아내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사냥은 그 끝은 칼부림일지언정 대단한 준비를 요하는 일이었다.

우선 사냥감에 대해 알아야 하고, 지형을 알아야 하며, 걸맞은 덫을 놓아야 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냥꾼의 ‘체취’를 남겨 길목을 제한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고 나무 천지인 산중에 있노라면 뭘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레이를 따라다니며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주워 담았다.

“이… 이렇게 하면… 짜잔! 됐어! 나도 해냈어!”

“오! 잘했어, 잘했어.”

천신만고 끝에 덫을 하나 만들어 걸었다. 음- 보기만 해도 뿌듯한데, 레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니 자신감이 붙었다.

저기엔 분명히 뭐가 걸릴 거다. 100%로. 어?

그때, 무언가가 질질 끌려간 듯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잘못 본 것이 아닌지 확인하곤 레이를 불렀다.

“레이! 이것 봐. 밑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레이? 이리 와서 봐 보라니깐.”

“어? 우와 정말이네. 이런 걸 발견하다니 대단해!”

대단하긴. 그냥 눈이 달렸으면 보이는 것을. 난 레이의 호들갑 어린 칭찬이 싫지 않아 웃었다.

“내려가 보자!”

흔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단한 건 아닐 거다. 내심 기대를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 발견한 건 작은 여우 새끼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럼 그렇지.

한때는 내 운명이 거대한 돌풍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신의 검을 가진 사람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보리스 할아범의 영향으로. 혹시 내 삶에도 마우닌 왕과 레티이 여왕님께 주어졌던 것과 같은 시련이 준비돼있는 건 아닐까 기대했던 거다.

이를테면 마우닌 왕과 레티이 여왕은 어릴 적에 흉폭한 마수와 조우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데… 나는 바위틈에 숨어 있는 여우 새끼의 목덜미를 잡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얜 왜 여기 있는 거람?”

“레라. 저길 봐.”

레이의 말에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여우 한 쌍이 안절부절못하며 배회하는 게 보였다. 둘 다 각자 새끼를 한 마리씩 물고 있었다.

“아. 새끼를 옮기던 중이었구나.”

새끼가 세 마리나 되다 보니 여우 부부는 남은 한 녀석을 잠깐 숨겨놓곤 후딱 다녀오려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바둥대는 새끼 여우를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비록 내가 아직껏 실적을 올리지 못해서 급하긴 하지만… 아까 기가 막힌 덫을 하나 깔아 놨으니까!

우리는 조용히 물러서서 여우 가족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나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 레이가 뭘 하나 했더니 내 덫을 반대로 돌려놨다. 내가 잘못 설치한 걸 고쳐줬나 보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모른 척하는 레이. 사랑스럽다. 나도 눈치채지 못한 척 덫을 지나쳐 내려오는 길에 물었다.

“우리도 아까 걔들처럼 애 셋 낳을까? 나중에 결혼하면.”

우리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첫 입맞춤을 나눴다. 나의 첫 사냥은 이렇게 평범한 끝을 맺었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 * *

엣헴.

내 이름은 레라 아이나르. ‘ㅔ-’ 발음이 긴 아이나르 부족의 전사님이시다.

우리 부족에선 전사가 되면 거의 모든 일에서의 제약을 없애줬다.

전사가 된 이는 바로 분가(分家)해도 되었고,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청혼해 결혼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잘난 척을 좀 하자면, 내가 이미 임자 있는 몸만 아니었으면 내게 청혼했을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레이가 우리 또래 부족원들한테 은근히 따돌림받는 이유가 이거였다.

우리 부족에는 약혼이라는 풍습이 없다. 그런데 노엘 아저씨가 나를 재빨리 채갔고, 그 바람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친구들이 많았다고나 할까? 헷, 레이는 자기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나는 이제 전사다.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부족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자격도 있다. 성 밖에 나가는 것도 자유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엄마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안 돼.”

고지식한 레이가 산통을 깼다.

“훈련해야지. 우리 실력으론 아직 멀었어.”

“우리 실력이 뭐 어때서? 솔직히 어지간한 기사 만큼은 된 것 같…”

헉.

레이는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검을 뽑더니 나를 향해서 위에서 아래로, 깨끗하게 내리그었다.

내 앞머리 끝, 코끝을 스쳐 간 검날. 레이는 검을 한 손으로 휘둘렀음에도 궤적은 아름답도록 완벽한 수직을 그렸다. 나는 내 몸이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갈라지는 상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다가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너… 너 바, 방금 뭘 한…?”

“정정해서 말할게. 네 실력으론 아직 멀었어.”

레이는 검을 검집에 꽂으며 뒤돌아섰다. 내게 크게 실망했다는 듯이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텅 빈 공터. 혼란스럽다.

나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벤치에 쌓여 있던 눈 때문에 엉덩이가 젖어오는 게 느껴지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레이가 어떻게…?’

엄청난 검술이다.

검을 수직으로 긋는 건 어렵지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당도할 수 있는 경지다.

하지만 레이는 그걸 한 팔로 해냈을 뿐 아니라 검을 완벽한 수직으로 그었다. 나는 내 앞머리와 코를 만져보았다.

이게 어떻게 같이 스칠 수가 있지?

레이는 검을 단순히 원형으로, 팔로만 내리그은 게 아니라 검 끝의 궤적마저 수직이 되게 통제한 거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 코가 베였어야 했다.

미친 듯한 통제력. 레이의 경지가 어디에 도달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얼마나 한심한 상태인지는 알겠다.

‘…레이가 내 수준에 맞춰주고 있었구나. 전사가 됐답시고 해이해지려 하니까 경고한 거야.’

이대로는 본인과 함께할 수 없다고. 우리의 관계가 검술로 시작된 관계임을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맞아. 나는 아직껏 레이를 이겨본 적이 없지… 그 옛날에 진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가 어릴 때였다.

나는 당시엔 덩치가 왜소한 샌님이었던 레이를 만만하게 보다가 한 번 혼쭐이 났다.

나름 또래 중에서는 무기술에 자신이 있었는데, 누가 기사님 댁 아들 아니랄까 봐 내 조악한 손도끼는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그 여리여리한 샌님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지금은 레이가 기억이나 할는지도 의심스러운 과거의 일이다. 잊어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잊고 있었나 보다.

– 뚝.

눈에서 뭐가 떨어졌다. 뭐야 씨발. 멍청하게 콧물이나 흘릴 것이지 뭘 잘했다고 울어, 울기는.

“이씨… 킁. 이씨이이이…”

나는 그날 벤치에 앉아 멍청하게 울었다. 아니, 사실은 추워서 콧물을 좀 흘렸던 거다. 우리 아이나르 부족에는 그런 풍습이 있다.

레이. 너 같은 문명인들은 평생, 평생 모르겠지만…

나는 겨우내 술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무슨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하는 상단이 왔다 갔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가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다 보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 * *

“이제는 둘이서 덤비면 도저히 못 당하겠구나.”

어느 날, 노엘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그걸 이제야 아셨냐는 듯이 맞받아쳤다.

“이제는 뭘 이제는이에요. 못해도 스무 번은 지셨구만.”

“흠흠. 원래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다. 특히 너희는 합이 잘 맞기도 하고… 레라, 무기술이 많이 늘었구나.”

“헤헷. 웬일로 칭찬이세요?”

“하지만.”

노엘 아저씨는 사뭇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지금이라도 무기를 바꾸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물론 여태껏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니 오늘은 진지하게 충고를 하나 해주마.”

“뭔데요?”

“지금이라도 무기를 바꿔라. 그건 네게 너무 크다.”

“아- 싫다니깐요!”

나는 내 검을 끌어안았다. 땅에 꽂아 세우면 어깨까지 오는 내 검은 솔직히 크기는 하지만, 크기에 비해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았다.

팔 힘만으로는 절대 못 휘두르고 온 몸을 던지듯 움직여야 간신히 휘두를 수 있는 정도? 이만하면 됐지.

내가 이 검에 집착하는 이유는 보리스 할아범의(그런데 이 양반은 어딜 갔길래 요새 안 보이지?) 헛소리 때문만은 아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이어서였다.

레이한테 지고서 펑펑 울며 돌아온 날, 아빠가 내게 넘겨준 거다.

지금도 큰데, 그때는 어찌나 커 보이던지.

피에 젖은 듯 하얗게 물든 검신이 나를 매료시켰고, 내가 이 검을 원활하게 휘두를 수 있게 되는 날 레이를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어릴 때의 감상이다.

어쨌든 나는 이 검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최근에는 내 나름의 방식도 정립했고, 나만의 검술을 만들기 위한 가닥을 잡아가는 단계다. 이제 와서 검을 바꾸는 거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노엘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검만 아니었으면 너는 지금쯤 너만의 검술을 만들었을 게다. 앞으로도 갈 길이 먼데… 고집을 피우니 어쩔 수 없구나. 일단 내 생각에는 그 검이 너무 크고 무거우니, 무기술 자체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어떻게요?”

“예를 들면… 글쎄, 도끼 다루는 법을 참고하든가… 나도 구체적으론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어쨌든 그걸 검으로만 생각해선 어려울 듯하다.”

“흐음~ 도끼라…… 생각해볼게요. 무게는 비슷하겠네요.”

기사가 될 사람이 도끼는 무슨.

솔직히 내심 언짢았지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노엘 아저씨가 내가 토착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비아냥거릴 사람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레이는 이젠 안 좋은 버릇까지 싹 고쳤으니 내가 더 이상 손 봐줄 데가 없구나. 아들은 그만 하산하거라. 하하하!”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승님.”

레이는 빙긋 웃으며 노엘 아저씨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의 실력이 저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듯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는 나를 힐끗 바라보곤 아버지께 말했다. 노엘 아저씨도 레이가 무슨 말을 할지 어느 정도는 직감한 모양새였다.

“아버지.”

“오냐. 추천장이라도 써 주련?”

“아니요. 추천장은 됐고, 기사단장님께 소개장만 한 통 적어주세요. 한번 만나 뵙고 싶어서요.”

“그러마. 그리고?”

“훈련은 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올해 마우닌-레티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요.”

훈련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는 말이 천둥처럼 들렸다. 레이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맺었다.

“레라랑 같이요.”

입술이 움찔거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숨겼고, 레이는 내가 얼마나 삐졌는지 알게 됐을 터였다.

흥.

나는 여전히 삐진 체하며 훈련이나 하려 했는데, 한결 따스해진 봄 햇살,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덮쳐왔다.

그래. 얼른. 어서.

레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뒤에서 물씬 풍겨오는 체취, 허리를 안아오는 손길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돌렸다.

“이거 놔. 나 아직 화났단 말야.”

“정말?”

“그래.”

“어떻게 해야 용서해줄 건데?”

“글쎄… 이 나쁜 놈을 어찌하면 좋을… 꺅! 읍.”

이것도 나만 아는 건데, 레이는 입맞춤을 제대로 할 줄 알았다.

성의를 봐서 이번에도 용서해줘야겠다. (웃음)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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