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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3

손을 잡고 (6)

쿠구구구구!

나는 흑색해역에 진입하여, 흑색해역의 중심에 있는 서란과 송진의 보금자리.

흑색도로 향했다.

얼마 후, 나는 익숙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쿠구구구!

저 멀리, 어쩐지 흑색귀골곡의 계곡과 비슷한 형태의 계곡이 보인다.

아무래도 송진이 이 해역의 이름부터 이런 식으로 바꿔 놨듯이, 본래는 다른 모습이었을 저 섬 역시 흑색귀골곡 형식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다만 흑색귀골곡 같은 귀기는 없군.’

하기야, 명귀계도 아니고 고려계에서 그런 귀기를 구하기가 쉽진 않을 터였다.

귀도공법을 익힌 서란이 사축기에라도 올라 용맥을 조종하는 경지가 되었다면 또 몰랐지만, 서란은 시호보다도 경지가 낮았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쿠구궁!

얼마 후, 광음역이 흑색도에 도착했을 때였다.

“호오?”

우우웅!

흑색도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하며, 광음역의 귀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음역의 귀기를 빨아들인 흑색도의 내부에서, 귀기로 이뤄진 진형이 발생하는 듯하더니 귀기가 증폭되었다.

쿠구구구구구!

곧이어 흑색도는 흑색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로 귀물들에게 딱 맞는 수련 환경을 지닌 음산한 섬이 되었다.

파아앗!

서란이 자신의 방에서 황급히 나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땀을 닦으며 흑색도를 내려다보았다.

“흑색도에 도착했군요!”

“그래. 그나저나 저 흑색도의 진형은….”

“아, 그건 스승님이 흑색귀골곡의 진법 중 하나를 깔아 놓으신 겁니다. 본래는 섬 내의 귀기를 증폭시켜 제 수행을 돕고 스승님의 육신을 편하게 하는 정도였습니다만….”

그는 어쩐지 잔뜩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이 정도 귀기라면…!”

콰가가가각!

문득, 나는 흑색도의 중앙에서 거대한 귀기의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느꼈다.

“저 귀기는….”

익숙한 귀기의 파동이었다.

얼마 후, 귀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익숙한 귀물 하나가 튀어나왔다.

[하아아…!]

송진이었다.

그는 편안한 듯이 귀기를 흡입하며 서란을 바라보고, 그의 옆에 있는 나를 보더니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란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선배님. 들어오시지요.”

“하하, 선배님이라니요. 편하게 부르십시오.”

“…농이 지나치십니다. 선배님 정도 되시는 분이시라면 벌써 수천 년은 살아온 분이실 텐데, 오히려 수계에서는 제가 감히 선배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너무 무례했습니다.”

위정해역에서부터 서란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은 송진은, 결국 내가 수행을 숨겼던 어떤 노괴라고 생각한 건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어쩔 수도 없지.’

어차피 본인이 저렇게 굳게 믿는 이상 내가 뭐라고 말을 하든 달라지진 않을 터였다.

“…뭐, 알겠네. 그리 대접하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시게. 그건 그렇고…. 이 흑색도는 흑색귀골궁의 분점 중 하나인가?”

“예, 그렇습니다, 선배님. 다만 고력계의 특성상 본종과 연락을 할 순 없어서 아직 정식 허가는 못 받았지요.”

“그렇군. 하면 어쨌든 본종이나 광한계 분타, 혹은 수계 지점의 흑색귀골곡처럼 부유함 정비 기능도 있겠어?”

흑색귀골곡은 이동 전함인 섭명함이 혹여나 바다에 정박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허공에 부유한 상태에서도 정비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두었다.

섭명함의 동력원을 잠시 정지시키더라도, 흑색귀골곡 자체의 진법을 통해 섭명함을 허공에 띄우고 원격으로 귀기를 충전시키며 정비하는 기능이었다.

“예, 분명 저희 흑색도에도 만들어 두었습니다만…?”

“그럼 잘 됐군. 우리 광음역을 잠시 흑색도에서 받쳐 줬으면 좋겠어.”

“어….”

송진은 광음역을 슬쩍 보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어… 선배님. 실례지만 해당 땅덩어리는 섭명함이랑 비교해도 너무 커서… 기능이 작동할지 모르겠습니다.”

“괜찮네. 충분히 작동할 거야.”

쿠구구구구!

나는 광음역을 흑색도의 위쪽으로 이동시키고 송진에게 눈짓을 보냈다.

송진은 신음을 흘리며 수결을 맺었고, 광음역은 흑색도 위쪽에 부유하게 되었다.

“홍범, 광음역의 부유진법을 해제해라.”

나는 홍범에게 전음을 보냈고, 곧이어 홍범이 부유진을 잠시 정지시켰다.

쿠우웅!

그리고 흑색도 전체에서 진법이 발동하더니, 광음역을 향해 반투명한 그림자를 6개 들어 올렸다.

그 그림자는 허공으로 올라갈수록 뚜렷해지더니, 광음역에 닿을 때쯤에는 반투명한 거대한 뼈다귀의 손처럼 변하였다.

거대한 뼈의 손 6개가, 반투명하게 일렁이며 광음역을 받쳤다.

쿠구구국!

물론 광음역의 무게에 따라 뼈의 손에 잠시 금이 가는 듯했지만, 광음역은 이래뵈어도 명귀계 본토의 영역 일부를 뜯어 온 땅덩어리였다.

즉, 명귀계 본토의 정순한 귀력이 충천한 땅인 것이었다.

츠츠츠츳!

명귀계의 귀력을 먹은 뼈의 손은 더욱더 뚜렷해지더니, 팔뚝 곳곳에 간 균열과 금을 스스로 수복한 후 광음역을 제대로 받친 상태가 되었다.

송진은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헛기침을 하였다.

“…선배님, 본래는 진의 손 세 개는 섭명함을 하나씩 떠받치고, 나머지 세 개는 섭명함을 정비하는 데에 쓰였습니다만… 지금은 오로지 선배님의 영토를 떠받치는 데에 쓰이고 있으니… 정비 같은 건 불가능합니다.”

“괜찮다. 어차피 광음역 정비는 우리가 하면 되니까.”

내가 굳이 흑색도의 진법을 이용한 건 지난 시간 동안 광음역이 너무 오랫동안 떠 있었기에, 광음역의 부유진을 잠시 식혀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그대도 들어오게. 오랜만에 본 얼굴이니 반갑군.”

송진과는 청문령급의 관계를 쌓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와는 썩 나쁜 관계가 아니었기에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는 잠시 우물쭈물하는 듯하더니, 결국 광음역으로 들어왔다.

* * *

오랜만에 만난 송진과의 재회는 정말 최고였다.

“그거 정말 잘 됐군!”

안 그래도 마침 귀기가 거의 떨어져 가던 송진은 명계에 끌려가기 직전이었고, 광음역의 정순한 귀기를 흡수한 덕에 다시 수명이 늘어났다고 했다.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자네가 원한다면 본교의 ‘시술’과 ‘은총’으로 새 육신도 주겠네.”

나는 무극교전 회의실에서 심부름을 하는 시비 중 하나를 가리키며, 무극교단의 은총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송진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혜는 감사합니다만, 제 육신은 이제 섭명함 외에는 필요 없습니다. 훌륭한 제자를 두어서 고력계에도 흑색귀골곡의 분파를 열었으니, 저는 이제 섭명함의 수명이 다하면 평안히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흠… 정복왕에게 듣자 하니 섭명함은 동력원을 제하고는 전부 고쳐서 오래 간다 하지 않았나?”

말 그대로였다.

북향화가 괴군이 박살 낸 섭명함을 고쳐 주고, 동력도 광음역의 귀기로 채워 넣으면 송진은 상당히 오래 살 수 있단 얘기였다.

그러나 송진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단순히 섭명함만 따지자면 그렇지요. 하지만… 섭명함에는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괴군과의 전쟁에서 끝났습니다. 흑색귀골곡 제자들이 웃고 떠들며, 배 안에서 나고 자라고, 공법을 익히고, 납치와 약탈을 하고, 혼인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본곡에 입문하고…. 그런 평화로웠던 흑색귀골곡의 역사가 깃들었던 섭명함은… 이제 없는 셈이지요.”

그는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수명을 늘려 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덕에 100여 년은 더 살 수 있을 테지요. 하지만 저는… 이 수명 정도만 누리고 섭명함 안에서 눈을 감으렵니다. 그때쯤이면 제 제자도 왕년의 저와 같이 훌륭한 천인기 수사가 되었을 테니 더는 여한도 없을 겁니다.”

“…알겠네. 그대의 뜻을 존중하지.”

난 시술을 거부하는 송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100여 년이면 긴 시간이었지만, 수도자들에겐 짧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육린에게 듣기론 봉래도로 향하는 길은 120년 후에나 열린다 했으니, 송진은 그 사이에 눈을 감을 터였다.

하지만 서란에게 그런 설명 등을 들어도 송진의 눈에선 딱히 결정을 번복하려는 낌새는 없었다.

정말로 서란을 길러 낸 후 눈을 감고자 하는 자세였다.

나는 문득 송진의 태도에서 궁금증이 생겨 질문했다.

“한 가지 묻지.”

“하문하십시오.”

“만약, 그대는 흑색귀골곡을 부흥시키기 위해 그대의 소중한 것… 이를테면 흑색귀골곡에서의 추억이나, 동문들을 향한 마음을 버리라 하면 버릴 건가?”

내 질문에 송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흑색귀골곡을 위해 흑색귀골곡을 버린다라…. 집단에 속했다면 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흐음….”

“하나, 버린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말이지요. 만약 제가 흑색귀골곡을 위해 흑색귀골곡에 대한 마음을 버린다면, 본곡은 저를 버리겠습니까?”

그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해 주었다.

“아마 제가 그들에 대한 마음을 버릴지라도, 아니, 설령 기억까지 잊어버려 괴물이 되었다 해도 본곡은 오히려 저를 버리지 않고 기억해 주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뭔가를 완전히 ‘버린다’거나 ‘끊어 낸다’ 같은 일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인력은 상호 간의 연결이라고도 하지요. 한데 한쪽이 끊더라도 한쪽이 당긴다면 결국 연결은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좋은 대답 고맙군.”

천인기 수사들은 단순히 그들이 못나고, 자질이 머저리인 그저 그런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광기를 응축해서 경지에 오른 이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나름의 신념과 인생에 대한 답이 있었다.

그렇기에 송진은 나보다 살아온 세월이 짧고 경지가 낮을지언정 그의 대답에는 나름의 현기가 들어 있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저 예전에 들었던 논지의 말에, 제 깨달음을 조금 섞어 답변한 것일 뿐이니까요.”

“호오, 그런 논지의 말을 누구한테 들은 거지?”

생전에 천인기였던 송진과 말을 나눌 자라면 꽤 한정되어 있었다.

흑색귀골곡의 원로진, 혹은 창천개벽문이나 금신천뢰문의 원로진, 그도 아니라면 해룡족일 터였다.

어찌 되었든 내가 아는 사람일 터였으나, 예상외로 송진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서란의 어미, 그러니까… 본곡의 귀혼 제자였던 아이에게서 들은 말이지요.”

송진은 서란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변했군.’

나름 200여 년 동안 서란과 함께했기 때문일까.

이전에는 서란을 아끼더라도 해룡족이라며 조금은 틱틱거렸다면, 이제는 그냥 대놓고 서란을 아끼는 게 눈에 보였다.

서란 역시 송진의 말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께서는, 어머니께서 선술에 대해 질문하러 오실 때마다 어머님과 얘기를 많이 나누셨다 하셨지요.”

“그래, 참으로… 어여쁜 아이였다. 유오 그 아이는….”

나와 대화를 나누던 송진은 잠시 서란과 그의 어머니인 유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허허, 잠시 얘기가 샜군요.”

“아니, 괜찮네. 보기 좋군. 어차피 자네와 나눌 얘기는 충분히 나눈 것 같으니 둘이 오랜만에 담소나 나누게나.”

나는 껄껄 웃으며 두 사제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광음역의 귀물들은 흑색도로 내려가, 흑색도에서 수련하는 고력계의 흑색귀골곡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등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엉엉 울거나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조금 들리긴 했지만, 어차피 원래 귀물들은 자주 저런 소리를 내니 신경 쓸 건 없었다.

나는 무극교전의 지하로 내려가, 홍범, 연위 등이 지키는 염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정룡궁에서 얻은 염정인가?”

“그렇습니다. 정룡궁주가 순순히 가르쳐 주더군요.”

홍범은 정룡궁에서 얻은 염정으로, 어느새 비선진을 설치해서 내가 공령지처럼 사용할 수 있게 작업을 마쳐 두었다.

연위는 불만스러운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가 볼때, 그 자식은 숨기는 게 분명 더 있다 하지 않았더냐! 이렇게 귀한 보물을 순순히 분다는 건 더 귀중한 보물을 감추려는 작전일 확률이 9할 9푼 하고도 1푼이 더 추가된 확률이야! 내 눈은 절대 속일 수 없지!!”

그녀는 팔짱을 끼고서 홍범을 살짝 째려보았다.

“아니, 들어봐라, 은현아. 내가 홍범한테 육린에게 고통 6만 배 증폭 독약을 먹인 후 고문시켜 보자고 하니까 그건 안 된다는 게 아니냐? 이 녀석 괜히 같은 요족이랍시고 봐주거나, 혹은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

“아니, 연위 대인….”

홍범은 아연해진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고통 6만 배 독약은 합체기 요왕이라 해도 미쳐 버릴 위험이 높습니다. 아무리 적이라 해도 육 궁주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런 고문을 해야 하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홍범 말이 맞습니다. 6만 배 독약은 너무 과하지요.”

녀석이 우리를 뒤통수쳐서 궁지로 몰아간 것도 아닌데 굳이 숨겨 둔 보물을 더 찾자고 그런 가혹한 고문을 할 이유는 없었다.

연위는 내게까지 찬동을 얻지 못하자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흥. 육린 놈이면 앵룡궁주의 유산도 제 놈이 다 처먹었을 터인데… 그 유산도 다 얻을 수 있는데… 조금 더 모질어지지 못해서 그 보물들을 잃어버리면 정말 배가 아플 거 같은데….”

“뭐, 그런 엄청난 보물들은 차차 찾아보는 것으로 하고, 일단은 강녕축부터 마저 쌓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하거라. 나같은 늙탱이한테 왜 묻느냐.”

그녀는 단단히 삐진 듯 그대로 지하실을 나가 버렸고, 난 한숨을 쉬며 의식을 늘어뜨렸다.

육린에게 전해 듣기로, 동래도가 열리는 시간은 약 120년 후.

그 전까지 최대한 강녕축을 전부 얻을 계획이었다.

* * *

평운대륙.

그 끝자락에 있는 유화국에는 세 명의 연기기 극성 대선사와 한 명의 반신이 있어 유화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중 유화국의 유일한 축기기 반신.

절귀곡이 무너진 이후, 인근에 있는 흑릉곡에 자리를 잡은 축기기 수사.

투신(鬪神) 함진은 그날도 공손히 동부 안쪽, 작은 제단 위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절을 올리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덜걱덜걱덜걱―

갑자기 물그릇이 떨리며, 그릇의 물이 검게 물들었다.

“핫…!”

그리고 함진이 문득 정신을 차린 순간, 그는 어느새 새하얀 정신세계 속으로 끌려들어 왔다.

함진은 정신세계 속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귀왕.

무극귀왕을 알현하며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부르셨나이까.”

무극귀왕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네 몸을 빌려야 할 일이 생겼다. 옥패는 잘 보관하고 있었느냐.”

“예, 언제나 품에 품고 있었습니다.”

“좋다. 바로 그 자리로 가 보자.”

함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무극귀왕은 그의 육신을 장악하였다.

* * *

츠츠츳!

나는 함진의 몸을 장악한 후, 녀석의 몸을 움직여 보았다.

“호오, 훌륭하군.”

얼마나 지났다고 함진은 벌써 축기기 2수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함진은 심상 내부에서 겸양을 떨었지만, 내가 보기에 함진의 재능은 정말로 뛰어났다.

‘아니, 내가 함진의 몸에 자주 강신하다 보니 녀석 특유의 자질이 계속 개화된 건가.’

원래 자질이 좋았든 나 때문에 자질이 개선되었든,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함진의 동부를 나서려 할 때였다.

“으음, 서방님. 어디 가시나요?”

동부의 다른 방에서 한 여인이 눈을 비비며 부스스한 옷차림으로 함진을 불렀다.

함진이 내면에서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냥 저리 가라고 손짓만 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손짓을 했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갔다.

“혼인하였느냐?”

―아, 그것이… 이전 결단기 노괴들에게도 반신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노괴들이 자기가 죽으면 자기 추종자들이나 제자들도 전부 죽게 되는 금제를 걸어 두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유화국의 반신은 저밖에 남지 않아서… 여러 수도가문에서 계속 혼인 얘기가 나와서….

“뭐, 네가 알아서 할 일이….”

“서방님, 오늘 아침은 거르실 건가요?”

그러나 얼마 후, 동부의 다른 방에서 다른 여인이 나와 함진에게 질문했고, 나는 손짓으로 그녀를 물리며 동부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함진의 동부를 나가던 와중 나는 동부 곳곳의 방에서 튀어나오는 함진의 부인‘들’과 계속해서 마주쳐야 했다.

“…너… 도대체 무슨 삶을 살고 있는 거냐.”

17번째 부인을 물리치고 동부 바깥으로 나온 나는 문득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함진은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였다.

―그… 절대 억지로 취한 건 아니고, 정말로 수도가문들에서 보내 온 여식들입니다. 다시 되돌아가면 타국의 더 늙은 노괴에게 시집을 간다고, 여기 남겠다고 매달리길래….

“….”

나는 혀를 내두르며, 함진의 몸으로 인력을 조종해 이전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함진이 축기기에 올랐기에, 녀석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꾸구구국!

허공을 움켜쥐자, 인력이 꼬였다.

나는 함진의 품속에서 영패를 꺼내 발동시켰다.

절귀곡이 사라지고, 드넓은 공터가 된 대지 위로, 녹빛의 진법이 빛을 뿜었다.

얼마 후 나는 이전처럼 인근의 공간이 이계화되어 ‘중간지대’로 변화하는 걸 인지했다.

우우웅!

나는 중간지대의 인력의 흐름을 읽어, 좌표를 계산했다.

중간지대는 단순히 고력계의 해역과 해역을 연결하는 역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량한 공간을 보다 쉽게 뛰어넘게 해 주는 역할이기도 했다.

즉, 존자들이 향한 뇌성해 지역은 중간지대를 하나 만들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무량한 거리 너머에 있다는 뜻이었다.

위이이잉!

건녀퍈의 좌표와 인력 및 의식을 연결한 나는, 그대로 좌표를 끌어당겼다.

쿠구구구구!

순식간에 함진의 육신은 어마어마한 공간을 건너뛰었다.

함진은 그의 내면 안쪽에서 내 시야를 통해 주변을 보며 경탄을 터트렸다.

주변으로 무량한 별과 성운, 은하 같은 것들로 보이는 빛무리가 보였다.

이 광대한 세상을 직접 봤다는 것 그 자체로 뭔가 각성 효과가 있었는지, 함진의 상단전이 더욱 더 각성되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의 경지가 더 빨리 오르겠군.’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얼마나 공간을 넘어갔을까.

마침내 나는 다음 좌표가 가리키던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쿠릉, 쿠르르릉!

곳곳에서 벼락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에겐 유독한 기체들이 대기에 떠다니고 있었고, 곳곳에서 모래 폭풍이 일어나는 건조한 사막이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별 같았다.

‘여기가 뇌성해? 아… 아니군.’

나는 내가 도착한 곳에, 또 다른 중간지대가 설치되었단 걸 알아챘다.

우그그극!

나는 중간지대를 다시금 활성화시켰다.

‘그렇군. 뇌성해라는 곳이 너무나 먼 세계이기에 존자들이 중간지대를 더 만들어 놓은 거야.’

단순히 중간지대 하나로는 절대 도착할 수 없는 곳이란 뜻이었다.

나는 다시금 중간지대 위에서 인력을 발동시켜, 이 중간지대가 가리키는 다음 좌표로 건너갔다.

우우웅!

이번에는 공기가 없는 별 위였다.

이곳은 마치 달처럼 중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곳곳이 황량한 대지였다.

이곳 역시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인 듯했다.

그리고….

‘여기도 중간지대라고?’

나는 살짝 아연해졌다.

도대체 뇌성해가 얼마나 먼 곳이길래, 그 존자들마저 중간지대를 이렇게 몇 개씩이나 설치했단 말인가?

문득, 나는 백운 성사가 불렀다는 장익이 천 년 후에나 분체를 보냈다는 걸 기억했다.

‘어쩌면, 인력으로 무량한 시공간을 여행하는 존자들마저도 오가는 데에 천 년이 걸릴 정도로 먼 거리라는 뜻….’

그 말은, 앞으로 이런 중간지대가 몇 개나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런 젠장. 분명 좌표의 이름에는 ‘뇌성해’라고 적혀 있었잖나.’

아무래도 존자들이 ‘뇌성해로 가는 중간지대’에서 ‘중간지대’라는 말을 빼 버리고 대충 ‘뇌성해’라는 이름만 적어 둔 것 같았다.

‘표기를 정확히 해야지. 뭐, 이렇게 된 이상 계속 가 볼 수밖에.’

우우웅!

나는 다시금 중간지대를 발동해 공간을 넘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중간지대를 뛰어넘었을까, 나는 점차 함진의 몸이 못 버티는 걸 인지했다.

‘나를 받아들인 함진이 못 버티고 있군.’

축기 중기가 되어서 예전보다 많은 권능을 행사한다 해도, 고작해야 축기 중기다.

반신이니 뭐니 웃기지도 않는 거창한 이름을 쓴다지만, 아직도 인간의 테를 벗지 못한 수준의 경지일 뿐이었다.

‘이거 어떻게 한다….’

나는 유독한 기체로 가득 찬 행성에 도착하며 눈을 찌푸렸다.

함진의 법력과 기력은 떨어져만 가는데, 어째 생명이 살 수 없는 별만 중간지대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법력이 떨어지면 함진은 그대로 죽을 목숨이었다.

‘함진의 생명력을 소모해서 내 권능을 끌어와 별의 일부를 조금 개조하면 살 수야 있겠지만….’

함진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일단 계속 가 보자.’

나는 이를 악물고 중간지대를 계속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중간지대를 이동했을까.

내 얼굴엔 절망이 깃들었다.

‘빌어먹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는 함진의 세계를 제하고 없던 건가?’

존자들이 지정해 둔 중간지대는 하나같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한환경의 별들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제길, 나중에 장생과 등을 내려서 생명력을 보충해 주기로 하고, 일단 함진의 생명력으로 일대를 개조해서….’

그리고 내가 본격적으로 힘을 써, 일대를 인간이 생활할 수 있게 개조하려 할 때였다.

“아까부터 고력계의 전송진을 이용하던 게 네놈이냐?”

“….”

나는 기척도 없이 내 뒤를 점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바위가 녹을 정도로 뜨거운 고온의 별 위쪽.

항성이 근처에 있어서 법력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그대로 녹아 버리는 세계였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서 어떤 보호법술도 쓰지 않은 존재가 뜨거운 광석 위쪽에 자리를 잡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기이하군. 분명 어전 일 보인데, 혼이 온 위치는 고력계야. 고력계에도 심족이 있었나?”

그는 바로 등 뒤에 네 개의 박도를 찬 녹색의 소인, 함천존자 장익이었다.

“뭐, 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장익은 나를 향해 웃으며 등 뒤에서 박도를 한 자루 꺼냈다.

“어른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겠지? 인사해 봐라. 마음에 들면 23번째 제자로 삼아 줄 생각도 있다.”

회귀수선전(回歸修仙傳) 372화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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