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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5

362. 레나 Ep – 불운한 스승

“이, 이게 대체… 저 인간, 저번에는 분명히 없었는데.”

“응? 뭐가?”

레이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 하지만 시선까지 숨기지는 못해서,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레이의 시선 끝에는 시끄러운 전사 무리가 몰려 있었다.

아휴, 시끄러워. 무슨 대진표를 저렇게 떼로 구경하러 왔담.

나도 레이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럽지? 우리 그만 갈까?”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무리에서 한 전사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덩치가 워낙 커서, 그리고 하는 행동이 거침없어서 눈이 절로 가는 사람이었다.

웃음소리도…

“와핫핫핫하!! 이 몸이 1번이로군. 물론- 당연한 일이지.”

엄청나게 크다.

그는 (남들은 올려다봐야 하는) 대진표가 붙은 방(榜)을 손가락으로 툭툭, 가볍게 찍어댔다.

공공 기물을 저렇게 만져도 되나.

그 무례함과 무식함에 놀랐지만 어쨌건 같은 본선 진출자인 듯해서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가 제 굵직한 손가락으로 찍어대는 곳을 보니 A-1번, ‘아르펜 알바세테’라고 적혀 있다. 알바세테라는 부족의 대전사인가 보다.

사용하는 무기는 도끼인 듯하고… 잠깐. A-1이면 나랑 만나나?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으며 다시 대진표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대진표를 굳이 확인하러 온 까닭이 있었다.

– “레이랑 결승에서 만날 거라고? 너는 B조고, 레이는 C조인데? 푸하하하!”

엘슨 아저씨가 나를 엄청 비웃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안 가르쳐주고. 대진표가 나오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엘슨 아저씨도 그렇고 레이도 그렇고, 나를 낮잡아보는 게 분명하다. 어디 두고 봐. 내가 아주 그냥.

대진표와 손가락을 허공에서 겹쳐 보며 토너먼트 순서를 확인해보았다. 나는 두 번째인 B조에서부터 올라가고, 레이는 C조에서부터…

“…어랍쇼?”

엘슨 아저씨가 날 왜 비웃었는지 알게 되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동시에 실망스럽다.

“뭐, 뭐야… 우리 결승에서 못 만나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주지.”

레이를 결승에서 만날 수가 없다.

그 전에, 4강에서 만나게 된다.

대진표를 보니 자명한 결과였다.

16강 B조에서 이긴 사람은 A조에서 이겨서 올라온 사람과 8강에서 맞붙고, 그 상대가 저 대전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을 이겨서 올라가면 레이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아쉬운 구성이 아닐 수 없었다.

나랑 레이가 어차피 모두 이겨버릴 건데! 기왕이면 우리가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냔 말이다.

레이가 세 칸 정도 밀려서 C-2 시드가 아닌 E-1 시드를 받았으면 아주 완벽했을 텐데.

하지만 뭐… 다르게 생각하면 이만하길 다행인가.

나는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16강이나 8강에서 만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게 천운이다.

16강이나 8강에서 탈락하면 나든 레이든, 그 사람은 패자부활전을 치러야 한다.

이건 다소 모양 빠지는 일이었으므로 우리가 준결승전에서 결판을 내게 된 것이 차라리 나쁘지 않게 보였다.

4강이면 나란히 기사가 될 수 있고, 결승전에 올라가는 사람을 응원해줄 수도 있다.

기왕이면 내가 이기고, 레이한테

– “너 딱 기다려. 우승하고 올게. 우승하면, 우리 결혼하는 거다.”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 듯했다.

캬,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설령 내가 지더라도, (솔직히 그럴 확률이 조오오금 더 높기는 하다), 하고픈 말이 있었다. 나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가는 레이에게

– “난 인정 못 해. 나는 결판을 내야겠으니까, 우리 결혼해. 결혼해서 결론을 내는 거야.”

우기고 싶었다.

네가 너무 잘나서, 나한테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를 번번이 무릎 꿇린 죄를 살면서 갚으라고.

사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았다.

누가 이기든 우리는 기사가 되어 결혼할 것이다. 이걸로 내 삶은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었는데, 상상조차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레이가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나도 탈락했다. 8강에서.

* * *

“마우닌-레티이 대회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인기스타! 알바세테 부족에서 온~ 아~~~~~~~~ 르펜!!”

“아르펜! 아르펜!”

“8강이면 저 인간 최고기록인가? 하하하하! 힘내라, 아르펜!”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8강 무대에 올랐을 때다.

레이가 16강전에서 똑 떨어진지라 내심 우울한 걸 심기일전하며 무대에 올라섰는데, 진행자의 소개부터 심상찮았다. 관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르펜 알바세테.

그저께 봤던 거구의 전사가 요상한 몸동작으로 무대에 올라오고 있었다. 도끼를 한쪽으로 쭉 뻗어 들었다가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잘난 척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쇼맨십이 대단한 양반이었다. 그가 외쳤다.

“이 몸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오늘도 공복이다!”

“푸하하하하! 맞아, 맞아. 작년인가? 그때 배탈 나서 탈락했지.”

“아니. 배탈은 재작년. 작년에는 늦잠 자는 바람에 기권패가 됐다나 뭐라나. 큭큭큭. 저렇게 운이 없는 사람도 없을 거야. 대진운도 나빠서 걸핏하면 우승자를 16강에서 만나니… 아르펜! 파이팅! 제발 4강 좀 가즈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르펜이라는 이 대전사는 바르나울에서 지독한 불운의 상징이었다.

약 20년 가까이 마우닌-레티이 대회에 도전했으나 정말이지 다양한 이유로 탈락했다.

배탈과 설사는 기본이고,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떨어진 적도 있다. 대회가 진행되던 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고백하느라 기권한 적도 있고, 애가 아파서 예선을 치르지도 못하고 돌아간 적도 있단다.

이 정도면 거의 신께서 그의 우승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거라고 봄이 옳았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언제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 바르나울의 많은 시민이 그를 응원했고, 그 덕분인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8강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축하할 일이기는 하지만… 쯧쯧. 이번에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바로 나, 레라 아이나르 님을 만났으니까! (쪽팔리지만 이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16강을 아주 가뿐하게 박살 내고 올라온 지라 나는 자신 있게 검을 뽑았다. 길이가 유난히 길고 하얀색이 피처럼 얼룩덜룩 묻은 내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내가 이 맛에 이 검 쓴다니까.

나는 어깨에 검날을 얹으며 자세를 잡았다. 팔 힘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다.

“푸하하. 뭐냐 그 검은. 그런 걸 쓸 바에는 차라리 도끼를 쓰지.”

집중하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좀 수다스러운 사람인가 보다.

“아저씨도 기사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에요? 기사는 검이죠. 하다못해 창을 쓰든가. 도끼는 안 좋아요.”

“왜? 도끼가 뭐 어쨌다고.”

“무식하잖아요. 변화를 주기도 힘들고.”

“허, 참. 이 아가씨가 뭘 모르네. 아이나르 부족이라고 했나? 사냥은 안 하고 농사나 짓는 모양이군.”

“뭐요?”

“도끼가 왜 변화를 주기 힘들어? 기분 나빠서 말로 가르쳐줄 생각은 없고, 어디 한번 맞아 봐. 꼬맹이 전사 아가씨.”

달려온다.

나는 재빨리 두 중병기가 만났을 때의 수 싸움을 그려보았다.

내 장검이나 저 사람의 양날 도끼 같은 중병기들은 기본적으로 공격 횟수에 제약이 있다.

한번 한번을 휘두르는 게 고역이라 이를 뒷받침할 힘과 그에 못지않은 민첩함이 필요하고, 상당 수준의 두뇌 싸움을 요구한다.

나는 상대의 돌진에 내 왼발, 앞 디딤발을 살짝 당기는 것으로 응수했다. 몸의 무게 중심을 앞으로 향하게 하여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베어버리겠다는 계산이다.

‘옳지. 그대로 들어와라.’

아르펜이라는 저 대전사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지 도낏자루를 양손으로 붙잡은 채 밀고 들어왔다.

내가 내리치면 그대로 막겠다는 건데, 하! 어디 막아 봐라! 어깨의 탄성을 이용해 얹혀 있던 검신을 튕겨 올리고,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 쐐애액-!

아보타의 긴 검날이 공기를 잘라낸다. 길이가 긴 만큼 원심력을 강하게 받아 빠르게 내리꽂혔는데…

“흡, 차!”

“어?”

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역시 그는 피하지 않았다. 다만 자세가 독특했다.

그는 도낏자루를 놓아버렸다.

양날 도끼, 도끼 머리 양쪽을 각각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는 내 검을 막으려 드는 것이었다. 도낏자루가 가운데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그리고 그건 주요했다.

– 깡!

그가 자기 머리 높이 도끼 머리를 들쳐 올린지라 내 검은 충분한 가속을 받지 못한 채 막혔다. 또, 그의 자세가 (얼핏 보면 웃기지만) 아주 안정적이었다.

꼿꼿하게 선 채로, 양팔을 높이 들어 막아낸 것이다.

보통은 도끼를 눕혀서 도낏자루로 내 검을 받아내는 모양이 될 건데, 그랬으면 난 그 도낏자루를 부러뜨렸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도끼의 가장 단단한 부분, 도끼 머리로 공격을 막아냈고 빠르게 다음 동작을 이어나갔다.

“으흐흐흐흐. 도끼가 변화를 주기 힘들다고? 핫핫핫핫하!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 몸은 말이야, 너무 대단해서 그 간단한 방법을 어릴 적에 터득했지. 받아라! 막대기!”

“앗!!”

그건 정말이지 기괴한 동작이었다. 만약 양날 도끼의 도끼날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그는 손을 교차해 오른손으로 왼쪽 도끼날의 아랫부분을 움켜쥐었다.

‘T’자에서 왼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아 내리친 건데,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도낏자루가 빙글 회전하며 내리꽂혔다.

내 머리로!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공격에 한 호흡을 소모한 중병기를 즉각 방어 용도로 되돌리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검이 위로 들린 상태로 막혀 있어서 당겨 막을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검의 무게에 의존해 내 몸을 당겨 넣었다.

– 탱!

내 머리로 내리꽂히던 도낏자루를 가까스로 빗겨 막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오른쪽에서 파공성이 들려왔다.

“꺄악!!”

“와! 아르펜! 아르펜!!”

하마터면 귀싸대기를 맞을 뻔했다.

상대가 남은 왼손으로 내 뺨을 냅다 후려쳐 온 거다. 다행히 어깨를 들어 막기는 했지만…

“음~ 제법이야. 이거 처음 보고 막은 사람 손에 꼽는데. 아가씨, 어때? 아직도 도끼가 무식한 무기로 보여?”

“…퉤! 네. 엄청 무식하네요.”

“흐흐. 아직 덜 맞았네.”

이상한 말이지만 그때의 나에게 승패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단서가 저기에 있다. 홀린 듯이 덤벼들었고, 뒤지게 얻어터졌다.

아르펜 알바세테.

그는 정말 훌륭한 전사였고, 내게 엄청난 깨달음과 패배를 안겨주며 4강으로 올라갔다. 그에게는 그게 더없이 기쁜 일이었는지 관객석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해

“여보! 얘들아! 봤어? 봤지?! 소원 성취했다! 올해 우승하고! 두 번 다시 안 올 거야!! 하하하하하!!”

속 시원한 고함을 터뜨렸다.

다만, 그는 엄청난 불운의 상징답게 바로 다음 날, 4강에서 레브라는 전사를 만나고 말았다.

레이를 꺾고 올라온 그 엄청난 실력자는 무슨 원한이 있었는지 아르펜을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쥐어 패버렸다.

마지막에는 “고맙다”라고 했다는데…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살짝 미친 사람임이 분명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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