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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7

364. 레나 Ep – 의식

수도교회 교육시설 수습생의 일과는 단조롭다. 새벽녘 아침 종소리에 깨어난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 꿇었다. 침대에 팔꿈치를 얹고는 아침 기도를 올린다.

태양이 뜨고, 평온한 하루 일상을 보전해준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하루 당신께서 기뻐하실 만큼 소중히 쓰겠나이다.

아침 기도를 마치고 나면 옷을 갈아입고 나가 점호를 받는다.

수습생들을 줄 세우고 이름을 불러 확인하는, 그런 방식의 점호는 아니다. 직접 사제님께 가서 기상 확인을 받으면 된다.

오늘은 오필리아 사제님이 기숙사 점호 담당으로 앉아계셨다.

“좋은 아침이에요.”

“즐거운 아침입니다.”

곱게 마주 인사해주는 중년의 사제님. 사실 이분이 여기에 계신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필리아 사제님은 대사제 급을 목전에 둔, 대단한 고위 사제님인 것이다. 이런 잡일에 동원될 분이 아님에도 이렇게 앉아 계신 까닭은 나와 관련이 깊었다.

나는 식사하러 내려가기 전에 한 가지를 여쭤보았다.

“베로니안 님은 일어나셨나요?”

오필리아 사제님은 빙긋 웃으며 답해주셨다.

“네. 방금요. 역시 수석, 차석을 다툰 분들답네요. 그분도 레아 님이 일어나셨는지 물어봤답니다.”

빨리 가면 뒤쫓을 수 있겠다.

나는 오필리아 사제님께 인사드리고 후다닥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은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헤치며 걸음을 재촉하니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를 따라잡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베로니안 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레아 님. 좋은 아침입니다.”

“즐거운 아침이에요.”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터라 딱히 주고받을 말이 없었다. 단조로운 생활. 우리는 같이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곧바로 수업을 들으러 간다. 수업이 없으면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한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냥요.”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앞에 앉은 베로니안 님도 같은 심정인지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식당은 어느덧 수습생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가 되고 말았다. 닥닥닥, 식기 긁히는 소리와 웅성이는 잡담을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다니엘이라는 선배는 어째서 안 보이는 걸까?’ 하고. 이상한 일이다. 그때,

“레아 님께서도 싱숭생숭하신가 보군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베로니안 님이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나도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네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되고 나니 맥이 탁 풀린달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하하하하. 예상하셨다고요? 저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에이. 덤덤하시던걸요.”

“겉보기만 그랬을 겁니다. 자리를 옮길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말동무가 되어주세요.”

“그래요.”

우리는 식기를 반납하러 일어났다. 그러자 뒤에서 우리 얘기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레아 님이랑 베로니안 님이다. 너희도 들었지?”

“응. 대단하더라… 둘 다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의식을 치른다네. 난 올해도 미끄러졌는데…”

왠지 미안하다.

내가 저들의 순서를 가로챈 것만 같아서.

나는 식기를 반납하고 허리춤에서 달랑이는 수실 한 가닥을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 보이게. 베로니안 님의 것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으나 그는 성큼성큼 앞서가고 있었다.

베로니안 님이 나를 이끈 곳은 본당 옆의 정원이었다. 가을이 머지않은지라 쨍하던 여름 색이 예전 같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 놓인 탁자에 둘러앉았다.

한가롭다.

우리는 올가을에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이 나서 학기(學期)가 배정되지 않았다.

즉, 우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학생들이다. 나는 여름의 마지막 싱그러움을 느긋하니 감상하였다. 베로니안 님도 그러길 잠시, 질문으로 운을 떼왔다.

“좀 섣부를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만… 의식을 치르고 나서, 앞으로 레아 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십니까?”

그 요청인가.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미안하지만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베로니안 님의 계획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이런. 거꾸로 물어보실 줄이야… 부끄럽군요.”

베로니안은 사실은 자신이 이것과 관련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물어본 것이었노라고 자백했다. 솔직한 사람이다. 이 오빠는.

“저는 교회를 개혁하고 싶습니다. 해서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여기에 남아 일하려 하는데, 레아 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만약 특별히 생각해둔 게 없으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그는 꿈속의 그때와 거의 똑같이 말했다. 언젠가 내가 사제가 되었던 때, 그때도 이 사람은 내게 이렇게 도움을 청했었다.

그때의 나는 거절했었다. 고향에 있을 레브에게 돌아가고 싶어서. 그가 콘라드 왕국에서 죽어 있는 줄도 모르고.

옛날 일이다. 이번에도 거절해야 할 듯하다. 나는 단박에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말을 돌렸다. 그러자,

“막중한 대업을 꿈꾸고 계셨군요.”

“실로 그렇습니다. 그놈의 굴레. 하나같이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믿어 스스로 떨쳐 일어나지 않으니 날이 갈수록 교회가 구태의연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무릇 성직자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생계가 가쁘고, 혹독한 삶과 맞서 싸우며 살아가는 이들이 즐비하거늘… 신을 받든답시고 앉아서 운명 타령이나 해서는 참된 성직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침 저기 좋은 예시가 지나가는군요.”

베로니안이 말을 격하게 쏟아내었다. 마침 운이 안 좋았다.

그는 저쪽, 새들에게 모이를 주러 다가가는 수도사를 발견하곤 손가락질했다. 하필이면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다.

성격이 온순한 베로니안이 하기엔 사뭇 과격한 행동이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 노인의 이름은 미하에르.

작년까지만 해도 추기경이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베로니안은 그를 진심으로 경멸하는지 손가락질을 거두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 사람이 이 시대의 원흉입니다. 수많은 토착민을 학살하였고, 작년에 경질되었으나 여전히 신학자로서 명망을 떨치고 있지요. 사람들이 그럽디다. 추기경 자리에서 물러나고도 무척 경건하게 살아가신다고, 굴레라는 걸 진정으로 깨달은 분이시라고요. 하! 웃기지도 않습니다.”

“…손은 치우심이 좋겠습니다.”

“…”

베로니안의 눈이 나를 향했다. 이글거리는 투사의 눈. 혁명가의 눈이다. 그는 순순히 손을 치웠지만, 곧 질문할 것이었다.

당신의 사상(思想)은 어떠하냐고.

베로니안은 질문에 앞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미하에르 수도사를 등지고, 내게 물었다. 모이 냄새를 맡은 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다시 여쭙습니다. 레아 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십니까?”

나는 답해주었다. “저는 운명을 따르려 합니다.”라고. 베로니안은 엄청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의외로군요. 레아 님께서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그런 길이라는 게 뭐지요?”

“순응하기만 하고 선택하지 않는 삶이요. 꼭두각시와 같은 삶을 고르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꼭두각시라…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내 친구 생각이 났다. 그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내가 곁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을 터였다.

불쌍한 레브.

나는 내 소꿉친구를 위하여, 더 나아가 그의 동료들을 위해 반문하였다.

“아니요. 그 또한 선택입니다. 삶이라는 등불 앞에 불어오는 운명이란 바람은 시시각각 선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베로니안 님. 당신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운명이라는 단어가 거슬리신다면, 사명으로 고쳐 묻겠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는 게 당신이 품은 사명이라면, 그것이 곧 당신이 선택한 운명일 겁니다.”

베로니안이 침묵했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재차 물었다.

“그럼 레아 님께서는 어떤 운명을 선택하셨습니까?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자 하십니까.”

“저는…”

– “레브 님이 오시거든 오필리아 사제님을 데리고 오르빌로 가세요. 그곳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시작될 겁니다… 라는 군요.”

오필리아 사제님과 함께 수도교회에 도착한 날 성녀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았고, 그걸 소리 내어 말했다.

“저는 나아가 악(惡)을 멸하고자 합니다. 저와 당신, 만인의 일그러진 운명을 되돌리기 위해서.”

베로니안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뒤로는 한때 추기경이었던, 왕위 계승권자이기까지 했던 노인이 맥아리 없는 손길로 새 모이나 뿌려대고 있었다.

* * *

“De~~~us pro~tius. e~~eeeis impus-Shea-!”1)

한 소프라노 사제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성가가 울려 퍼졌다.

이 성가는 고대 아카이아 어(語)였고, 따라서 신성 주문과 동일한 것이었기에 전당에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F~ors quo. que- ha~aabere credo.”2)

그리고 뒤따르는 2중창. 이번에는 묵직한 저음이 깔리며 전당 바닥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평소에는 극도로 아끼는 주문이고 신력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좋았다. 의식의 날이 열렸다.

이는 수습생이 한 명의 성직자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사제가 될 사람과 수도사가 될 사람이 갈리는 운명의 날로 더 유명했다.

C_7.

다소 어두운 C 마이너 7화음과 함께 수년간의 시험을 통해 거르고 걸러진 수습생들이 전당에 차례로 발을 들였다. 경건한 자리이기에 환호 없는 격려가 눈빛으로 쏟아졌다.

레아도 거기에 있었다.

수실이 다섯, 일곱 개씩이나 달린 수습생들 사이에 달랑 한 개의 수실을 달고선.

수습생들이 제단 앞에 무릎 꿇자 화음이 잦아들며 조용해졌다.

또각.

성녀의 걸음 소리 외엔 어떤 음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옆에서 같이 무릎 꿇은 수습생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을 뿐. 레아는 두 눈을 감고 기도드렸다.

“고개를 드세요.”

성녀의 걸음 소리가 앞에서 멈췄다. 내 차례가 됐나 보다. 레아는 고개를 들어 성녀를 올려다봤다.

“레아 님. 오랜만이에요.”

“…성녀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긴 하다. 올해 초에 뵙고는 처음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놀라셨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때보다도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폭삭 나이 든 할머니. 성녀의 상징인 왕홀이 지팡이로 쓰이고 있다.

아까 또각, 울렸던 소리는 발굽이 아닌 저 지팡이를 디디는 소리였나 보다. 그럼에도 성녀는 맑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다음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죠. 레아 님. 당신은 의식을 치를 필요가 없음을 알지만, 실례할게요.”

성녀가 레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작고 이쁘장한 아가씨. 그녀의 미래를 비춰주소서.

[ … ]

‘…!!’

잠시 후, 성녀 메리엘은 레아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의 미래는 충분히 보았다. 그리고, 덕분에 내 운명까지도 알게 되었다.

‘비나르 님. 짓궂으십니다. 그 편지가 이걸 위해서였다니요.’

[ …그동안 수고 많았다. 87번째… 아니, 순서가 없어질 성녀여. ]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 알 것 없다. 마지막까지 네 소임을 다하라. ]

‘칫. 그냥 알려주면 안 돼요?’

성녀는 내심 애교를 부리며 빌어봤지만, 그 말 많은 비나르 신마저 입을 닫았다. 그녀가 알 필요 없다는 것이다.

메리엘은 다시 칫,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리곤 본업으로 되돌아왔다. 뒤따르는 사제에게 말했다.

“이분은 예외입니다.”

“네?”

수도사 아니면 사제인데, 성녀님이 다르게 말하는 바람에 혼란이 왔다. 사제는 의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예외요? 그건 수도사라는 말씀이신가요?”

성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분께는 제가 직접 신력을 내릴 거예요.”

“…예?”

신력은 성녀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성녀는 그랬을지 몰라도 그 이후엔 사제가 사제에게로, 알뜰하게 공유하며 양을 늘려온 것이지, 신력이 펑펑 넘쳐흐르는 성녀에게서 받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수습생한테는 직접 신력을 내리겠다고?

모르긴 몰라도 십자교회의 수천 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터였다. 최초의 성녀가 그랬을 걸 제외하면. 사제는 놀라움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 쿠당!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었다.

전당 내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순간, 레브가 전당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레아! 안… 안 늦었겠지?’

감사하게도 늦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더 감사하게도 웅성거리는 객석 너머, 드높은 전당과 빛나는 재단을 배경으로 레아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제단 앞에 무릎 꿇은 채 밝게 미소지으며.

‘너 왔구나! 사랑해.’

레아는 눈빛으로 말했다. 레브는 그걸 알아들었다.

1) 디~~어스 프로~(ㅂ)티어스. 이~~이이이리이스임푸시아-!” (역주. 신이시여 악인을 용서하소서!)

2) 포~올스 쿼. 테- 하~아아베레 크레(ㅂ)시도. (역주. 그들에게도 기회가 있음을 믿습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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