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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8

EP.367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1)

원더스타인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태창을 열어 단원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래위로 몇 번이나 스크롤을 반복했지만, 어디서도 엘라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일시적인 오류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서커스단을 나가버린 것이다. 적어도 시스템은 그렇게 판단했다.

혹시 싶어 들춰본 퀘스트 목록에도 그녀와 관련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상태창을 그만 닫고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댔다.

텐트촌에서 대여해주는 물건이라 그런지 침대 뼈대는 낡고 좀먹어 있었다. 그가 등을 기대자 요란스러울 정도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기에 반응해 그의 옆에 누워 있던 니카가 몸을 뒤척였다. 그녀는 보통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씻는 편인데, 어제 있었던 경기의 피로 때문인지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어젯밤에 엘라가 뛰쳐나간 일에 대해 단원들에게 적당히 둘러댔다. 그녀가 빌리 앤 베티 쪽 일을 며칠간 돕기로 했다고 말이다. 그녀가 그에게 욕하고 화내는 것에 대해선 워낙 자주 있었던 일이라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눈을 뜨면 뭔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특명: 엘라 반환 작전’ 따위의 서브 퀘스트는 뜨지 않았다. 정말로 그녀는 서커스단을 떠난 것일까?

그는 엘라가 계속 함께했으면 했다. 다만, 더는 인질이나 협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 보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잘못된 것일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도움일 될 만한 단원을 호출했다. 바로 그녀와 동향 출신인 미키였다.

서커스단에 들어온 지 2달이 넘었는데도 원더스타인은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그의 고향 일도 있고 찰리 일도 있고 해서 대하기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도 비슷한 생각인지 굳이 자신과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엘라가 떠난다면 그도 굳이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원더스타인은 그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그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그는 미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저씨……아니, 단장님……. 당신 진짜 바보예요?”

“네?”

“아니, 뭐, 이런……아, 이걸 진짜……어휴, 답답해!”

미키는 가슴을 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2달간 서커스단 생활을 하면서 원더스타인이 단순한 원수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베가스의 뒷골목에서 깡패, 살인마, 강도, 도적들과 어울리며 자랐다. 누구보다 악인을 감지하는 감각이 뛰어났다. 그가 보기에 원더스타인은 찰리가 주장했던 것만큼 극악무도한 자가 아니었다.

거기다 미키는 다른 단원들에게 ‘저주 역병’ 사건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 일어났던 일과 비슷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당한 비극에도 뭔가 복잡한 사정이 숨어있음을 눈치챘다.

당장 엘라가 그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원더스타인에 대해 확실하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했던 것 중 한 가지는 확실히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원더스타인, 이 인간……. 사람 감정에 있어서는 더럽게 눈치가 없었다.

“휴, 그러니까 단장님. 엘라 누나는…….”

그는 운을 몇 번 떼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엘라의 애증에 대한 건 그도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본심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그에 대해 입을 놀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좀 더 간편한 설명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엘라 누나가 진심으로 이 서커스단을 떠나고 싶어 할 리 없잖아요!”

“네? 하지만 우리 약속은…….”

“아, 네! 들었어요. 그랑프리 본선까지 도와주면 해방해 주기로 했다고요. ‘당신에게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서커스단에서’가 아니라!”

원더스타인은 그의 말을 듣고 탄식을 내뱉었다.

맞다. 원래의 약속은 그것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가 끝나고 나면 자신이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커스단이 ‘내 것’, 단원들이 ‘내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당연히 엘라가 자신을 떠나는 것으로 인식이 왜곡되고 말았다.

“제가 실수했군요.”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가 서커스단에 붙들려 있는 것을 전능원에 있었을 때의 자신에 대입해서 생각했었다.

전능원은 자신들에게 집과 밥을 제공해줬다. 그리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데려가 무대에 오르도록 했다. 분명 그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능원에게 감사하다거나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엘라의 마음도 멋대로 그럴 것이라 짐작해버렸다. 미키 말대로 엘라의 경우는 자신과 달랐다. 그녀에게 거슬리는 존재는 자신 하나뿐이었다. 떠난다면 자신이 떠나는 게 맞지, 그녀를 내보내는 건 경우가 아니었다.

‘어휴, 뭐 이런 둔한 인간이 다 있담. 니카 형이 여자라는 것도 모르는 거 아냐?’

미키는 원더스타인에게 눈을 떼고 침대 위에서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니카의 몸을 살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이렇게 떠들고 있는 동안 눈 한 번 뜨지 않았다. 이불이 두꺼워서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저 굴곡 아래에 어제 본 그 몸이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미키는 어제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소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니카의 나신을 훔쳐보게 되고 말았다.

탐스러운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야무진 엉덩이. 펄럭이는 천막 입구 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몸은 분명 여자의 것이었다. 그건 분장 따위가 아니었다.

설마 니카 형이, 아니, 니카 누나가 남장여자였다니!

어쩐지 남자애치고 너무 이쁘장하다고 했다. 늘 혼자 방에서 씻던 이유도 이제 이해가 됐다.

평소에는 그 몸을 어떻게 숨기고 다닌 걸까? 붕대로 꽉꽉 맨 걸까? 아니면 환상 마법이 걸린 장신구라도 착용한 걸까?

그는 니카의 사정에 대해 원더스타인에게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하필 그 순간 그녀가 눈을 뜨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으음, 뭐야, 미키, 너 언제 여기 와 있었어?”

“단장님과 상의할 게 있어서.”

“그래?”

니카는 하품을 하며 잠옷 아래로 손을 넣어 배를 긁적였다. 미키는 그녀가 미끈한 허리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시선을 돌렸다. 사정을 알고 나니 저런 모습을 예전처럼 당당하게 바라보기 힘들었다.

“오늘 밤에 유등 축제가 있군요. 저는 아르노 단장님의 일을 돕기로 해서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원더스타인은 야영장을 떠났다. 아르노와 만나기로 한 시각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는 그전에 엘라를 만나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빌리 앤 베티의 문지기는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엘라 님은 지금 단장님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군요.”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천막 주위를 몇 시간 동안 서성거렸다. 그러나 엘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호크를 통해 쪽지를 전달하려고도 해봤지만, 빌리 앤 베티에서 키우는 맹금류들이 떼지어 날아와 영역을 침범한 그를 쫓아냈다.

엘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스피라인 스피릿 링크를 이용해서 말이다.

‘흥. 본인이 잘못한 건 아는 모양이지? 며칠 정도 더 튕겨볼까?’

그녀는 그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이미 화는 풀려 있었다. 그녀는 바로 그를 만나러 가는 대신 그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가 자신에게 안달이 난 모습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엘라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베티가 동물들을 데리고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대로 멈춰라!>라는 이름을 가진 그 곡예는 그녀가 창단 직후부터 해오던 그녀를 대표하는 공연이었다. 동물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다가 음악이 멈추는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멈춰 서는 것이다.

여기서 각 동물이 어떤 동작을 취할지가 재미 포인트였다. 그냥 우두커니 선 자세로 멈춰 서면 공연이 재밌을 리 없었다. 동물들 각자의 개성을 살려 감탄할 만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이 곡예의 핵심이었다.

베티의 인스피라인 ‘조련사의 피리’도 이 공연을 통해 터득한 것이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명령을 떠올리며 피리를 불면, 그 소리를 들은 그녀의 동물들은 강제적으로 그 명령에 따르게 됐다. 멈추라면 멈추고, 춤추라면 춤추는 식이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그대로 멈춰라!”

엘라는 베티가 각 동물의 멈춰선 자세를 하나하나 수정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인스피라를 발동했다.

바깥은 해가 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매달리던 그도 포기하고 이만 발걸음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그의 어딘가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며칠 연락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떨까? 무단침입을 해서라도 자신을 데리러 올까?

그가 흉악한 맹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자신을 되찾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

크레오는 대외적으로 은막 서커스단의 삼인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실상 은막의 이인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은막의 단장과 부단장이 같은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은막 서커스단은 25년 전, 아르노, 루미온, 레오나르도, 루마, 네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 크레오는 당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으로 창립 후 첫 번째로 들어온 단원이었다.

그는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아르노와 루미온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요정인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인간 기준에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연기였다.

“모른 척해줘.”

“왜 정체를 숨기는 겁니까?”

“루미는 인간 세상에 나왔다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어. 애완동물로 팔렸다가, 또, 괴물 서커스에 구경거리로 올랐다가. 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직도 무서워해. 그러니까 가면 뒤에 숨게 해줘.”

크레오는 은막 서커스단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의 사람들 역시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루미의 어설픈 연기에 속아주는 척해 주기로 했다. 뒤에 들어온 마법사들도 다들 기쁜 마음으로 그 연극에 동참했다.

그렇게 전력을 키우고 공연을 다듬어 가던 그들은 몇 년 뒤, 제1회 서커스 그랑프리의 무대에 올라 큰 활약을 펼침으로써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꽃을 따신 겁니까?”

환상 전문 서커스단으로 명성을 떨치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크레오는 루미가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식물들의 고통도 느낀다는 요정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있지. 크레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꽃을 주는 거야?”

“꽃이요? 네. 보통 그렇죠.”

“좋아. 그럼 나 레오한테 꽃을 선물할 거야. 아까 루마한테 연락이 왔어. 둘이 저녁에 도착한대.”

전신을 천으로 감싼 난쟁이 마녀가 손에 든 꽃송이의 냄새를 맡으며 천진한 웃음을 흘렸다. 크레오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일말의 불길함을 느꼈다.

과연 그녀가 말하는 ‘좋아하는 사람’의 의미는 어디까지일까.

크레오는 레오와 루마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얼마 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루미는 전혀 눈치 못 챈 모양이지만, 두 사람은 친구 사이를 넘어 연인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그걸 요정인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크레오는 애써 고개를 내저으며 불안감을 떨쳐버렸다. 꽃 한 송이에도 생명을 느끼는 그녀의 사랑은 인간들이 느끼는 남녀 간의 애정과는 다른 것일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날, 루미는 멀리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레오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 그의 방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서랍 속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품에 소중한 꽃송이를 꼭 안은 채 말이다.

‘이걸 주면서 레오한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그러나 악천후 때문에 두 사람의 귀환 시간은 꽤 늦어지게 됐다. 루미는 서랍 속에서 그만 깜빡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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