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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9

EP.368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2)

그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랍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루미는 잠에서 깼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 틈새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친구들이 돌아온 것일까? 그녀는 잠기운을 금방 떨쳐 버리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그녀는 선뜻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잠결에 뒤척인 탓인지 손에 든 꽃이 완전히 짓뭉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에엥, 이게 뭐야. 레오에게 줄 꽃이…….”

환상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깟 꽃 따위 수천 송이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심을 표현할 꽃을 가짜로 마련하기는 싫었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다리 다쳤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레오나르도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등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은빛 머리칼의 여인을 배신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루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더니 툭 내던지듯 말했다.

“안 그러면 안 업어주잖아.”

“이게 정말…….”

그녀는 화를 내려는 그를 지나쳐 외투를 벗고 침대 위에 엎드리더니 그를 향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다리 아픈 건 진짜야. 마사지 좀 해줘.”

“야, 너 업고 오느라 나도 피곤하거든?”

“루미는 항상 어깨에 얹고 다니면서.”

“요정이랑 너랑 같냐? 하여간…….”

레오는 그녀에게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이내 포기한 듯 입을 다물고 그녀의 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됐어. 이제 반대쪽 다리를 뻗어 봐. 큭, 발을 어디다 갖다 대는 거야?”

“네가 뻗으라며.”

“내 입속에 넣으라는 말은 아니었지.”

“요구하는 게 많아.”

레오는 루마가 그의 입에 발을 쑤셔 넣을 때, 들뜬 표정을 짓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미소를 흘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뒤에서 저런 음습한 궁리나 해대는 그녀의 엉뚱함이 사랑스러웠다. 그가 반한 것도 그녀의 이런 면모였다.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그때, 그는 괴물 쇼를 하는 서커스단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환상 마법사인 루마 렌데린이 그곳에 입단한 것은 그곳에 있다는 페어리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그녀는 그를 귀찮은 존재로 취급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요정뿐이었다. 요정의 친구라는 남자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녀의 싸늘한 태도와 사회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 때문에 레오는 그녀와 몇 번이나 부딪쳤다. 그때마다 루미는 중간에서 두 사람을 달래느라 고생해야 했다.

-두 사람 다 내 친구잖아. 서로 친하게 지내줘!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정을 쌓아가기를 2년째, 서커스단 안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그곳의 단장은 괴물 단원들을 거의 짐승이나 노예처럼 다루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유혈 사태가 일어날 거라 짐작했던 두 사람은 혼란을 틈타 루미를 데리고 서커스단을 탈출했다. 그렇게 가지고 나온 자금으로 세운 곳이 바로 이 은막 서커스단이었다.

“다들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루마가 창문 밖을 살피며 말했다. 레오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조심할 필요 있어? 어차피 대부분 우리 관계 눈치챈 거 같던데.”

“루미는 아직 모르잖아.”

“아, 그렇지. 그런데 걔한테는 우리 관계를 언제까지 숨길 거야?”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충격 많이 받을 거야.”

“응? 무슨 말이야?”

멍청한 표정으로 되묻는 레오를 향해 루마는 눈을 흘겼다.

“이런 둔탱이.”

“남녀 사이의 일을 설명하는 게 어려워서 그래? 어린애라서?”

“아니야. 어린애는 무슨. 걔를 마냥 애 취급하지 마. 요정이지만 걔도 여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요정은 무성이잖아. 남성체 여성체가 있지만, 그게 생물학적 성은 아니라며?”

“어휴, 답답이. 다른 여자들 마음은 쉽게 읽으면서 우리 마음 알아채는 건 왜 이렇게 느려?”

그녀의 빈정거림에 레오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었다.

“자, 잠깐, 루미가 날 좋아한다고?”

“그래. 여자로서.”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핫, 말도 안 돼. 루미는 요정이잖아. 우리랑 생각하는 게 달라. 우리와 같은 의미로 좋아하는 건 아닐 거야.”

“야, 너 진짜……. 혹시나 루미 앞에서 그딴 말 하지 마. 생각해 봐. 정말로 걔가 그냥 어린애에 불과하다면 성인 남자 연기는 어떻게 하는 건데?”

“그야 지금까지 봤던 성인 남성의 행동과 말투를 그대로 재현하는 거겠지. 평소에 하는 행동들을 봐. 완전 어린애…….”

“요정의 ‘동심’은 그런 게 아니야. 그건 말이지…….”

레오는 손을 들어 갑자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진정해. 루미가 아무리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걔랑은 이런 거 못 하잖아. 응? 안 그래……?”

레오는 왁 하는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아, 뭐 하는 짓이야……출장 갔다 와서 피곤하다 했잖아……저리 안 가……?”

“아이고, 맨다리 다 드러내고 쭉 뻗고 있는 게……. 덮쳐달라는 신호 아니면 뭔데?”

“이이……사, 사람 진지한 얘기하는데……들어!”

“알아. 네가 무슨 말 하는지. 하지만 설사 루미의 마음이 진짜라고 해도……지금 내 마음에는 너를 빼고 받아들일 자리가 없어.”

그가 그녀의 귓가를 잘근거리며 속삭였다. 그녀의 눈처럼 새하얀 얼굴 위에 홍조가 떠올랐다.

“우, 웃기고 있네. 그 말 살면서 몇십 번이나 한 거야? 지금까지 아무 여자만 보면 껄떡대던 난봉꾼이……그, 그런 말 해봤자……이잇!”

“그런 날 녹여낸 게 너야.”

“야, 얏”

“사랑해, 루마.”

“징글징글한 새끼……으흥, 힛!”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엉켜 갔다. 쾌락에 찬 신음과 흐느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끈적하고 습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싫어. 이런 건 싫어.’

루미는 서랍 속에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녀의 몸은 애처로울 정도로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숨어있는 서랍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침대에서 나는 소음이 더 컸기에 바깥의 두 사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루미의 나이는 30살이 넘었다. 인간의 기준은 물론 요정의 기준으로도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녀도 알만한 건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요정들 특유의 ‘동심’ 때문에 말투나 행동이 어린애와 비슷할 뿐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가 어린애 눈높이에서 말하는 현상과 같았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자면 그와는 조금 궤가 다르긴 했으나, 레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 어린애와 같은 수준인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나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가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자신은 없었다. 남자는 자신을 이성으로 보지 않았고, 친구는 자신을 배려한다는 말로 자신에게 숨기고 속였다.

둘 다 방향성은 달랐지만 같은 전제를 깔고 행동했다. 어차피 요정인 자신과 인간인 그는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좌절, 배신감, 질투, 절망. 요정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이었다. 너무나 아프고 쓰라렸다. 그녀의 동심은 산산이 깨져 버렸고, 그녀의 날개들은 떨어져 나가 버렸다.

그날 이후로 세 사람의 우정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눈물과 고함, 욕설과 달램, 사랑과 미움이 그들 사이에 오갔다.

루미는 그들이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단한 환상의 벽을 두르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아르노의 환상이 완성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후에 들어온 단원들은 그녀가 요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떠나는 날까지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날개가 떨어진 자신을 보고 동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두 사람은 떠난 뒤에도 간간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단원들이 아무 말 없이 그것들을 탁자 위에 두고 가면, 그녀는 밤에 몰래 혼자 그것들을 뜯어 봤다.

‘우리가 살 곳을 구했어. 카스티유 중부 해안에 있는 작은 도시야.’

‘딸아이가 태어났어. 이름은 마야라고 지었어. 근처에 오면 한 번 들르지 않을래?’

‘이번에 그랑프리 주최 측에서 요청받았어. 일손이 많이 모자라나 봐. 원더 스테이지에서 볼 수 있길 빌게.’

원래 은막 서커스단도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오를 자격이 됐다. 그러나 루미는 루마가 그곳에 온다는 편지를 받고 없는 사정을 만들어내서 일부러 본선 진출을 포기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친구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부정적인 마음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커져 있었다. 그녀가 보내오는 행복한 결혼 생활도, 아기를 가진 것도 전부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하늘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들었을 때, 그녀는 방에 틀어박혀 며칠 내내 엉엉 울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위령제 형식으로 치러졌다. 그녀는 거기서 레오와 그의 딸인 마야를 봤으나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괜히 자신이 두 사람의 아내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오와 다시 연락하게 된 건 그로부터 17년 후의 일이었다. 마야가 자신의 엄마가 있었던 곳에서 환상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크레오는 루미의 옆을 무려 25년 동안 지켜왔다. 그는 이미 결혼하고 가정도 꾸렸지만, 은막을 떠나지 못했다.

루미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환상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그녀가 너무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실연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를 속박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방구석 폐인처럼 살던 그녀가 얼마 전부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크레오는 그 저주를 풀어준 것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꽃이네요?”

“아, 나도 모르게 꺾어버렸군.”

크레오의 지적에 아르노는 손에 들린 꽃송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까부터 원더스타인이 언제 오나, 어디로 가야 하나,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원을 왔다 갔다 하던 그는 예쁜 꽃이 보여 자신도 모르게 꺾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요정인 자신이 식물을 무의식적으로 꺾어버리다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오랜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려는 그때, 숙소의 입구에서 어떤 남자가 그녀를 불렀다.

“아르노 단장님.”

“원더스타인.”

아르노는 꽃을 품속에 갈무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크레오는 아르노만큼 환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환상을 간파하는 눈만큼은 그녀보다 뛰어났다. 환상 속에 숨은 요정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눈에 마력을 집중하는 일을 20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저절로 터득한 것이었다.

그는 회색 장포의 남자 안쪽에서 부끄러운 미소를 띤 채 폴짝폴짝 뛰는 요정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랜 겨울이 끝나고, 애벌레가 다시 고치를 찢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크레오는 이만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에 무언가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투명화? 누구지?’

그는 눈에 마력을 집중해서 그곳을 바라봤다. 은빛 머리칼의 인형처럼 생긴 소녀와 붉은 머리칼의 남자애 같은 차림새를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크레오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은막 쪽과도 몇 번 접촉이 있었기에 그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하여간. 모전여전이라니까.’

어떻게 제 엄마와 하는 짓이 저렇게 똑같을까. 그는 과거 레오나르도가 자기 방에 유령이 있다고 호들갑 떨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찌 됐든 우리 꼬마 단장님의 데이트를 방해받게 둘 수는 없지.’

그는 원더스타인과 아르노의 뒤를 쫓고 있는 두 사람의 뒤로 조심히 다가갔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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