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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

37화 전쟁 속의 전쟁 (3)

37화 전쟁 속의 전쟁 (3)

오스카의 물음은 한순간 나를 굳어지게 했다.

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쿠는 신비로운 사내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다니지만, 그와 함께하는 전장에서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더군. 그래서 벨레트 단장도 쿠를 데려간 거겠지.”

“하지만 중부 전선에는 소드마스터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붉은 장미의 피에르가 출전했다는군.”

붉은 장미의 피에르.

생전의 에티엔과 호각을 다투던 소드마스터.

“쿠는 괜찮을까요?”

“글쎄.”

“오스카 단장은 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 보이나?”

오스카가 킬킬 웃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래가지고 내일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아니, 당장 오늘 밤에 적의 기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마 벨레트 단장도 쿠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거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뭐, 대충 그런 느낌을 받았지. 아니면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일지도.”

나는 오스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 같기도 했다.

“용장 루카스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용장 루카스.

페르디나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이자, 최고 권력자.

그는 원래 ‘황금의 검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그러나 평의회 의장에 오르며 단장직을 내려놨고, 당시 부단장이었던 벨레트가 새로운 단장이 되었다.

지금도 벨레트는 루카스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

“쿠가 내게 너를 부탁하더군.”

“······.”

“게다가 쿠는 벨레트 단장에게도 너에 관해 이런저런 것들을 부탁했던 모양이야. 이상한 일이지. 쿠는 남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사내가 아니거든.”

오스카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넌 누구냐.”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기보다는, 나도 쿠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고아예요. 우연히 쿠를 만나 도움을 받았고, 보답하고 싶어 영지전에 참여했어요.”

“카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지?”

“면식만 있을 뿐이에요.”

“그런 것 치고는 카인이 네게 관심이 많던데.”

“그건······.”

“도미닉을 쓰러뜨렸을 때도 쿠에게 배운 검술을 쓴 거냐.”

이 오스카라는 사내는 정말로 날카로웠다.

소설 초반에 죽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장차 한가락 하는 용병이 됐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모건을 죽인 카인을 오스카가 왜 그렇게 두들겨 팼고, 술이 떡이 되어 잠들었는지 알았다.

오스카와 모건은 같은 마을에서 자란 오랜 친구 사이였으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모양이군.”

피식 웃은 오스카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이만 가 봐라. 금발.”

***

그날 이후 오스카가 카인에게 뭔가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카인의 행동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카인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검은 갈기 용병단의 한 축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데미안. 왜 모건 같은 자에게 붙어있는 거지? 그는 소인배다.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아.”

“모건에게 붙은 게 아니라 오스카 단장을 따르는 거야.”

쿠는 중부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나를 찾아와, 오스카를 잘 따라다니라고 했다. 그의 곁에 붙어있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을 가장 높일 방법이라며.

“오스카 단장은 강하고 영리해.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야.”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카인이 마르셀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카인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동안 카인의 그늘에 가려져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마르셀의 성장세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까 카인이 데리고 다니는 거겠지.’

마르셀은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나의 존재, 혹은 차원의 그림자라는 변수 때문에 살아있는 거겠지. 어쩌면 카인이 15세가 되기 전에 죽는 인물인지도 모르고.

카인과 마르셀을 제외한 C조의 나머지 둘은 전사했다. 나도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좋아! 적들이 물러난다!”

“우오오오오!”

우리는 거의 모든 전장에서 승리했다.

오스카는 상당히 노련한 용병이어서, 브리앙스 백작군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며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전선은 점점 로슈포르 쪽으로 밀렸다. 그에 따라 검은 갈기 용병단을 포함한 아군 전체의 사기가 높아졌다.

“으하하하! 제법이군 금발! 장차 훌륭한 용병이 되겠어!”

오스카가 내 어깨를 치며 크게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나는 오스카의 웃는 얼굴에서 쿠의 모습을 봤다. 그런 나를 저만치에서 카인이 보고 있었다.

“잘했다! 금발!”

“이참에 아예 검은 갈기로 들어오는 게 어때!”

검은 갈기 용병들이 오스카처럼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카인이 내 곁을 스쳐 가며 말했다.

“완전히 녹아들었군. 데미안.”

나는 되도록 카인을 멀리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틈틈이 카인과 동기화해 녀석이 가진 능력을 훔쳐야 했기 때문이다. 30레벨을 넘기지 못한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 RP: 41

어느새 RP는 41이 모였다. 정말로 생명이 위험할 때를 대비해 아껴둔 덕분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리메이크 스킬을 발현하더라도, 한 번의 추가 기회가 더 있는 셈이니까.

“소드마스터가 물러났다!”

어느 날 중부 전선에서 승전보가 들려왔다.

로슈포르 후작령의 소드마스터, 붉은 장미의 피에르가 상처를 입고 후퇴했다는 소식이었다.

쿠의 생존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감을 안은 채 전장으로 나섰고, 이후로도 쿠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

“정말이야? 확실해?”

“암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로슈포르 놈들이 북쪽 숲에서 야영하고 있더라니까요? 분명 브리앙스 백작군을 야습하려는 겁니다. 우리가 선수를 쳐야 한다고요!”

부하의 호들갑에 오스카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 됐다.

모건이 말했다.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가면 들킬 거요. 소수 정예로 움직여 불을 놓는 것이 좋겠소. 놈들이 달아날 법한 길목에 숨어 있다가 기습해 죽입시다.”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게다가 한동안 사이가 서먹했던 모건이 내놓은 계책이었기에 오스카는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출발한다. 습격 인원은 부단장이 선발하도록 하고.”

“알겠소. 단장.”

“이번 일을 성공하면 브리앙스 측에 추가 대금을 받아낼 수도 있겠지. 중부 전선의 소드마스터도 후퇴했고, 이제 페르디나로 돌아가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울 일만 남았군. 하하하!”

오스카의 웃음에 용병들이 킬킬대며 따라 웃었다.

잠시 후, 오스카와 모건을 포함한 일곱의 정예 용병이 북쪽 숲으로 떠났다.

.

.

.

숲은 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흩뿌려졌다. 마른 잎사귀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귀를 울렸다.

“여기가 맞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오스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둠에 잠긴 숲속에서는 야영지는커녕 적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놈들이 불을 끈 모양이오. 조금만 더 가봅시다.”

모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일곱 용병은 조심스럽게 숲을 탐색했다. 그럼에도 로슈포르 병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스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때, 그의 뒤편에서 날카로운 빛이 쏘아졌다.

콰득!

오스카는 순발력을 발휘해 바로 피했으나, 옆구리가 찢어졌다. 얼마 전 갑옷이 망가지며 드러난 틈새를 노린 악의적인 공격.

“모건! 너인가!”

오스카가 검을 뽑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의 얼굴 위로 놀라움과 배신감이 번갈아 떠올랐다. 대체 왜. 너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는데.

“오스카.”

모건의 검 끝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함께 온 다섯 용병이 검을 들고 오스카를 포위했다.

빌어먹을. 모건의 측근들로만 팀이 꾸려졌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오스카는 알고 있었다. 다만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을 뿐.

“악감정은 없소. 오스카 단장.

“대세를 따를 뿐이지.”

“그러니 조용히 죽어 주시오.”

멍청한 놈들. 무엇이 대세라는 말인가.

나를 죽이고 모건이 단장이 된다. 그러면 저놈들은 한자리씩 차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배부른 개새끼들 사이에서 힘을 비축한 굶주린 늑대가 이런 기회를 두고 볼 리 있겠는가.

‘카인. 곧 네 세상이 오겠구나.’

오스카는 조소했다. 검은 갈기 용병단의 끝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카인을 처음 봤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검을 뻗었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흔들리는 수많은 그림자가 마치 군중처럼 오스카를 둘러쌌다. 잎사귀 부딪는 소리가 비명처럼 귀를 울렸다.

피핏!

오스카의 몸에서 피가 흩어졌다. 그는 분전했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를 향한 배신감과, 기습으로 입은 상처가 그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오스카는 용병 셋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슬슬 한계인 것 같았다. 오스카의 눈이 뜨거워졌다. 저들과 함께 웃었던, 싸웠던, 휴식을 즐겼던 날들이 머리를 스치며 울분이 솟구쳤다.

“모건. 우리가 함께 꿈꾸던 그날들은 어디로 갔나.”

모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무리를 낼 요량으로 검을 추켜올렸다.

그때였다.

카앙!

오스카의 눈앞으로 빛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모건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돼 날아갔다. 오스카는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봤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고,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을 발견한 그는 살아남은 두 용병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카인!”

갑작스러운 모건의 죽음으로 두 용병은 당황했다. 그래서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오스카와 카인의 검에 쓰러졌다.

용병들의 시체를 보며 오스카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웃음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오스카가 웃음을 그쳤을 때 카인이 술병을 건넸다.

정신과 육체의 갈증에 시달리던 오스카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카인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시야가 부옇게 변하며 현기증이 일었다. 부상이나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독이다.

“카인. 너······.”

오스카는 카인을 돌아봤다. 검을 뽑으려 했지만 손끝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둔탁한 소음이 발밑을 울리는 것으로, 오스카는 자신이 검을 떨어뜨렸다는 것을 인지했다.

“오스카 단장.”

카인의 얼굴은 물에 번진 그림처럼 흐릿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스카는 그의 눈이 맹수처럼 이글거리는 것을 알았다. 또한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입을 하고 있다는 것도.

“왜······.”

“당신이 살아 있으면.”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붉은 것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오스카는 자신의 목이 급격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귓속으로는 파도가 몰아치는 듯했다.

“내가 데미안을 갖는 데 방해가 될 것 같거든.”

그리고 일순간에, 암흑과 정적으로 변했다.

***

불현듯 잠에서 깨어난 나는 미니맵의 변화를 포착했다. 엄청난 수의 적대적 표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오스카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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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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