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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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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조원(五氣朝元), 그리고 달라진 것들

나는 땅으로 내려와, 일행을 깨운 후 대강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조난당한 것 같으며,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기타 등등…

나는 일행을 데리고 동굴로 데려가, 불을 피우고 적당히 음식을 먹였다.

그런 후 다시 잠을 재우고 동굴을 나섰다.

타닷!

나는 허공을 박차고, 여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타닷…

얼마나 허공을 거닐었을까.

나는 다시금 거대한 의식영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꼬리가 세 개인 거대한 여우.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툭-

나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월수궁무록과 조수월무록을 동시에 운용하며 여우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부웅, 붕!

수도(手刀)를 만들어, 허공을 갈라 여우의 인식을 베어내며 천천히 여우에게 접근했다.

의식영역으로부터 딱 열 보.

그것이 지난 삶에서의 한계였었다.

지금은 어떨까.

저벅-

나는 망설임 없이 열 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그리고 다시 한 보.

삼화취정에 막 올랐을 당시보다, 훨씬 의식의 결이 또렷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보인다.

어디를 어떻게 베며, 어떻게 헤쳐가야 할 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계속해서 여우의 의식영역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아홉보, 여덟보, 일곱보…

세 보, 두 보, 그리고 마지막 한 보.

나는 마지막 한 보를 남겨두고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더욱 더 의식을 집중하며, 그대로 여우의 의식영역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우응-

나는 그렇게, 여우의 의식영역으로 한 걸음을 진입하는데에 성공했다.

‘결단기급 요괴의 의식이다. 드디어…’

나는 여우의 의식 안쪽에서 싱긋 웃었다.

드디어, 결단기급 존재의 의식 안에서도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다.

즉슨, 결단기 수도자의 앞에서도 최소한 도주는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월수궁무록을 포함해, 조수월무록, 조수월무경, 조수월무결 등을 운용하며 계속해서 여우의 의식영역을 헤쳐갔다.

여우의 의식의 크기는 여우를 중심으로 반경 30장.

나는 계속해서 걸어가며, 여우에게 1장 정도를 더 가까이 근접하는데에 성공했다.

남은 거리는 약 29장.

이 앞으로는 훨씬 여우의 의식이 빽빽해졌다.

그러나, 나는 의식을 집중하며 의념을 갈무리했다.

아직도 뇌리 속에 선명하다.

조수월무결을 한 차례 진화시킨, 김영훈의 깨달음의 정수(精髓).

-그 무학의 최소 입문 조건은 오기조원이야. 일류가 절정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이. 절정 초기가 삼화취정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이… 오기조원 이하는 그 무학체계를 이해할 수 없어. 그런 게 제대로 전승이 될 수 없으니 미완성인 게지.

지난 삶의 막바지.

김영훈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군요. 이 무학은 이제…’

의식을 집중한다.

‘제가 이어받을 테니까…’

월수월무록(越修越武錄)!

월수궁무록, 조수월무록, 조수월무경, 조수월무결, 그 모든 단계를 거쳐 탄생한.

최소 입문 조건만 오기조원인 극상의 무학체계!

그 깨달음이, 내 손끝에서 피어나온다.

월수궁무록이 인식을 베어내고.

조수월무록이 인식과 조화된다면.

월수월무록은 의식을 분리해내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무학이었다.

허공에 검강이 생겨난다.

그리고 허공에서 빛나는 검강은, 이내 내 의식영역 바깥으로 향하더니, 스스로 움직이며 월수궁무록을 펼쳐 여우의 의식으로 파고들었다.

생명이 없는 검강이기에, 생체 반응이나 기타 의념 등을 정리할 필요가 없이 그저 인식만 베어내면 되었기에,

나보다도 훨씬 접근하기가 용이하다.

검강은 삽시간에 6장을 더 주파하며, 여우와의 거리를 23장까지 좁혔다.

그러나 그 이상은 확실히 의식의 밀도가 더 농밀했기에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쯤에서 검강을 흩어버리고, 월수월무록의 깨달음을 정리했다.

‘대략 이런 깨달음인가…’

내 의식(意識)을 잘라내어서 행동을 입력한 다음 보내는 기술.

단순한 행동뿐이 아닌, 의념과 깨달음마저 입력이 가능했기에 내 기술을 고스란히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이, 오기조원의 다음 경지로 향하는 깨달음…’

강기압환(罡氣壓丸)을 사용하는 경지.

이전까지는 어떻게 김영훈에게서 떨어진 강기 덩어리들이 알아서 상대를 요격하나 했었으나, 지금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월수월무록을 계속 따라가면, 언젠가 오기조원 너머의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며, 여우의 의식을 다시 자르고 동굴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아침.

다시 여우가 찾아와서 팔을 달라고 했고, 이번에도 팔을 내 주었다.

내 원래 팔에 있던 콜레스테롤과 니코틴 등 독기가 전부 빠져서인지, 여우는 내 팔을 아주 맛있게 씹었고, 나머지 부위도 탐내는 듯 했으나, 결국 닷새 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는 갔다.

아무래도 환골탈태를 한 탓에 여우의 입맛에 더 잘 맞는 몸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다시 그들이 찾아왔다.

촤아아아-

창호자란 수도자가 발을 구르자, 내 팔이 재생된다.

세 명의 수도자가 나타나서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과는 약간 반응이 달랐다.

[흠, 영근이 있는 놈은 이렇게 넷인가.]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손을 까딱였다.

그의 의식이 움직이자, 천지영기가 저절로 꿈틀거리며 나와 전명훈, 오현석, 강민희 대리를 감싸안았다.

‘이건 또 새로운 광경이군.’

이전까지는 언제나 똑같이 저 셋만 선택받았지만, 지금은 나 역시 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이었다.

그들은 이전과 똑같이 두런거리는 듯 하더니, 차례대로 전명훈, 강민희, 오현석 등을 데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남은 내게 시선을 돌렸다.

[흠, 내 술법에도 반응하지 않고.]

[내 귀도공법에도 반응하지 않는군.]

[내 법보에도 반응이 없구나.]

“……”

웅웅-

나는 의식을 웅웅 울리는 이들의 기이한 대화 방식에 의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의식을 가지게 되니 이들이 말하는 방식이, 목소리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의식에 뜻을 그대로 불어넣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뭐 그럼 일단 무슨 속성 영질을 가졌는지나 볼까.]

금색 장포의 사내가 내게 손을 뻗었다.

우우웅-

“커헉!”

천지영기가 저절로 움직이며 내 전신을 압박했다.

동시에, 내 경맥 속으로 강제로 뚫고 들어온 천지영기가 몸 곳곳을 헤집는다.

그와 동시에 금색 장포 사내의 의식이 내 전신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느껴졌다.

“끄흡, 끄으읍!”

전신 경맥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고통!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얼마 후, 우악스레 내 몸에서 천지영기를 회수한 금포 수도자가 말했다.

[음, 참을성이 좋군. 하나…]

파아앗!

내게서 빠져나온 천지영기들은 허공으로 뭉치더니, 다섯 갈래의 영력으로 나뉘었다.

오행(五行)의 속성.

그것을 본 금포 수도자와 흑색 마의인, 청갑 거한의 눈에 흥미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영근(五靈根)이로군.]

[거기다가 저 놈의 몸에서 느껴지는 불순한 기운… 무림인인가?]

[하하하, 표정을 보아하니 아예 수도계에 대해서 잘 몰랐던 녀석인가 보군. 하기사, 자기가 영질을 타고났다는 걸 모르고 그냥 산골에서 무공만 익혀왔을 가능성도 있지.]

청갑 거한, 창호자란 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수도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나보다만. 수도자들의 영질. 혹은 영근이라 불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속성이 적을수록 수련속도가 빨라진다. 반대로 가진 속성이 많을수록 더욱 더 수련속도가 느려지고.

그렇기에 단일 속성 영질은 하늘이 내린 영질이라 하여 천영질(天靈質)이라고도 하고. 두, 세가지의 속성을 가진 영질은 진영질(眞靈質). 네, 다섯가지 속성을 가진 영질은… 잡영질(雜靈質)이라 하여 천히 취급되지.]

“……”

[하하하,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수선(修仙)이 오직 자질로만 결정된다면 너와 같은 오영질을 가진 이는 진즉에 모두 목매달고 자살했을 테니까. 수도는 자질뿐이 아닌 공법과 경지에 대한 이해와, 총체적인 오성 역시 중요하다.

거기에 끈기와 인내심, 의지력 역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본좌가 보기에 너는 자질은 형편없고, 오성은 모르겠다만, 저 얍삽하게 생긴 황금색 장포 놈의 악랄한 영질 검사를 비명 없이 넘긴 것을 보아, 인내력과 의지력은 훌륭한 것 같구나.]

파아앗!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내게 작은 빛무리를 튕겨주었다.

빛무리는 내 손등에 스며들며 작은 낙인으로 변모했다.

[내 가문 방계의 끝자락… 그 녀석들이 세운 수도가문이 하나 있다. 워낙 자질이 떨어지고 총체적으로 허약한 놈들이라 이번 승천문이 열릴 때에 데려가지 않지만. 그래도 네게는 도움이 되겠지. 가문의 외부 구성원 추천장이다.

벽라국이라는 범인들의 국가에 있으며, 청문씨(淸汶氏)를 사용하니, 청문세가를 찾아가면 될 것이야.]

말을 마친 창호자와 다른 두 명의 수도자는 빛무리로 변해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

난 내 손등에 찍힌 작은 낙인을 보며 작게 창호자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 이보게 서 대리. 저들이 도대체 뭐라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르는 척을 했고,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바람이 불었다.

나는 동굴에 누워 끙끙거리는 오혜서 대리를 간호하며 그녀를 관찰하였다.

‘천지영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전에는 하나도 몰랐지만, 의식을 각성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광대한 하늘의 영력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얼마 후 다시 해룡왕 서휼이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갔고, 얼마 지나 김연 주임이 능력을 각성했다.

쿠구구구구-

‘이건…’

김연 주임 역시, 의식을 각성한 지금에서야 그 능력의 실체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미쳤군. 이게, 인간의 의식이라고…?’

그녀를 중심으로, 수천, 수만, 수억 가닥은 되어보이는 의식의 실이, 천지간을 감싸안듯이 돋아나 있었다.

의식의 실의 크기는 차라리 수도자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꿇리는 기색이 없었다.

동시에 나는 그녀의 상단전이 급격히 커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능력을 각성하면서… 나와 같은 부작용을 겪고 있나보근.’

나는 천천히 그녀의 능력에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혈을 짚어 상단전을 조금 안정시켜주었다.

“서…대리님이 만져주니까, 조금 머리가 덜 아픈 것 같아요…”

“……”

김연 주임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러 수도자들과, 해룡왕이 향했던 방향.

그곳에서 다시 꼽추 괴인이 날아오고 있었다.

후웅-

그리고, 꼽추 괴인은 날아오자마자 나와 김 주임을 보더니, 그녀에게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새하얀 빛무리가 날아가 김 주임의 상단전에 안착했고, 그녀의 상단전이 비틀리는 작용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저건…?’

이전 생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전 생에서도 계속 사용해 왔지만, 의식을 각성한 지금에서야 볼 수 있던 것이리라.

꼽추 괴인은 김 주임을 살펴본 후, 내게도 시선을 주었다.

[흐음… 흠, 이건 또 무어야.]

이전까지의 수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꼽추 괴인의 시선 역시 이전 회차와는 달라졌다.

[어디보자, 이 골격, 이 영질, 이 의식의 크기…]

잠시 나를 뜯어보던 꼽추 괴인은 갑자기 다가와 내 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꼽추 괴인이 히죽 웃으며 낄낄거렸다.

[히히히, 그렇군. 이 내공. 이 골격. 이 경맥. 의식의 크기, 거기에 하필이면 오행영근이라니. 내 젊었을 적 봤던 그 놈하고 같은 부류로구만!]

꼽추 괴인이 이를 드러내며 낄낄거렸다.

[네놈, 타고나길 선택받아 태어난 수도자가 아닌게지? 그렇지?]

“….!”

그 말에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수도자들과 해룡왕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맞으려나.

노인은 낄낄거리며 계속해서 내 몸을 더듬었다.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노인이 가진 의식의 크기를 보아, 내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꾹 참으며 잠자코 있었다.

[저런, 의식이 요동치는군. 내 말이 맞았어. 너…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로구나. 무공을 익혀서 수도자의 경계에 진입한 거로구나. 그렇지?]

“…어찌, 아셨습니까.”

나는 김영훈과 김 주임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연국어를 써서 되물었다.

그러자 꼽추 노인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야, 천육백년 전에 네놈하고 똑같은 놈을 봤으니까. 그래, 무림인들은 오기조원이라고 불렀던가, 그 경지를?]

“…그렇군요.”

하기사, 아주 오랜 세월을 산 이들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이런 자들이 그 긴 세월을 살며, 오기조원에 이른 무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그 놈도 나름 무림 기준에서는 천재라고 불리던 녀석이었지. 내가 축기기 수도자였을 때 만났다만, 이 나와 어느 정도 합을 겨룰 수 있을 정도였으니.

결국 내게 패배하긴 했지만, 상당히 재밌었던 경험이었다. 그 놈을 만나고 나서 고서들을 뒤져, 또 저런 기이한 존재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고서를 찾아보니, 몇백년에 한 번씩, 아주 드물게 그런 녀석들이 나오긴 한다는군.

그리고 특징도 너와 모두 똑같고 말이지.]

괴인의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상당히 튼튼한 근골. 넓은 경맥. 단전을 가득 채운 무림인들의 내공.]

괴인은 내 턱을 붙잡더니, 억지로 내 입을 벌리고 이빨을 가리켰다.

순간 괴인을 걷어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 짓을 했을 때의 후폭풍이 어떨지 알았기에 짜증을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완벽히 대칭된 깔끔한 치열. 이런 치열은 자연적으로는 ‘절대’ 못 나오지. 영근을 가지고 태어난 수도자들도 이런 치열은 없어. 오직 오기조원에 이르러 환골탈태를 한 무림인만이 가지는 치열이야.]

괴인은 내 턱에서 손을 놓고, 내 의식영역을 자신의 의식으로 건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연기기 3, 4성 수도자 크기의 의식. 법력이 1푼도 없는 무림인 주제에 이런 의식을 가진다고? 어림도 없지. 이렇게 의식이 비대한 건 스스로 의식을 각성한 오기조원의 무인 뿐.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오행영근.]

그는 마지막으로 내 손목을 낚아채어 잡고는, 진맥하듯이 기를 흘려보내었다.

[오기조원의 무림인들은, 오기조원의 경계에 이를 때, 상단전의 불균형을 막기 위해 천지영기에서 오행의 영기를 균일하게 뽑아서 환골탈태에 쓴다고 하지.

그 덕에 너희 오기조원의 무인들은 일반적인 오영근 수도자들보다 훨씬 체내의 영기가 균일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이런 것들이 네가 평범한 오영근 수도자들이 아닌, 오기조원의 무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지.]

꼽추 괴인은 낄낄 웃으며 내게서 손을 떼었다.

[나처럼 학식이 풍부하고 오래 살아 지혜로운 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사실이니라. 오랜만에 젊을 적 친우와 만난 듯한 기분이라 잠시 흥겨워 조금 많이 떠들었군.]

아무래도 젊은 시절 만났다는, 천 육백년 전의 오기조원의 무인과 나를 잠시 겹쳐보았던 모양이었다.

꼽추 노인은 히죽 웃으며 내 손에 찍힌 낙인을 바라보았다.

[손에 낙인을 보니, 창호자 그 착한 놈이 추천권이랍시고 줬나 보지? 흐하하, 멍청하고 또 멍청한 놈 같으니. 오기조원의 무인이라면 제놈이 익히는 연체공법(鍊體功法)을 전수하기에 굉장히 좋은 자질이거늘.

오기조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본 전력(戰力)은 보장된 놈인데. 하계에 남아있을 쩌리 가문에나 추천하다니. 그 아둔한 놈이 또 실수를 했구나.]

그는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으며 나를 향해 질문했다.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일단 너는 뭘 주로 익힌 무림인이냐?]

“검법입니다.”

[오, 그래. 검 좋지. 내가 만났던 친우는 창을 주로 사용했지만 검법 역시 익히곤 했어. 애초에 무림인 대다수가 검을 익히기도 하고…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너 말이다.]

그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평생 검을 잡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느냐? 만약 그런 맹세를 한다면 내 너를 친히 제자로 받아들여주마.]

검을 잡지 말라고?

고민은 짧았다.

아니,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검을 놓을 수 없습니다.”

[흐음, 내 제자가 되면 나를 따라 승천문을 넘어 바로 상계로 비승할 기회를 얻는데도?]

“견문이 짧아 그것이 어떤 기회인줄은 모르오나, 평생을 수련해 온 무(武)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너는 내 제자가 된다면 앞으로 수백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작 몇십년 수련해 왔을 그 무공을 포기 못한다는 게냐?]

고작 몇십년이라.

나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몇십년도 아니고, 고작도 아니다.

내 지난 삶(生)들은…

그래, 무(武)란 나의 지난 삶들이었다.

“…죄송합니다. 하나, 저는… 짧게 살다가 짧게 죽을지언정, 이 손에 배긴 검을 놓을 수 없습니다.”

[흐음…]

잠시 나를 뜯어보던 꼽추 노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없는 것 같으니. 1600년 전 그 놈도 그랬지. 의식의 크기는 고작해야 연기기 4성쯤이나 되던 것이, 연기기 극성을 넘어선 공격을 퍼붓길래, 신기해서 제자로 삼으려 했더니만… 네놈하고 똑같은 말을 했다.]

그의 표정은 어쩐지 아쉬워보였다.

[되었다. 내 제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거라. 참고로 나는 성격이 나쁘니 창호자 놈에겐 딱히 널 추천하지는 않을 게야. 그냥 서로의 연이 닿지 않은 게지. 그럼 이만 썩 꺼져라.]

우웅-

노인이 손을 뻗자, 뒤쪽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시커먼 공허를 내뿜었다.

이전과도 같은 진행.

나와 김영훈의 몸이 공간균열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내 제자가 되지 않은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기개를 지킨 점을 높이 사서 선물을 하나 주마.]

파아앗!

꼽추 노인의 손 끝에서 하얀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빛무리는 공간균열로 빨려드는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고, 내 머릿속에 뭔가가 각인되는 듯 했다.

나는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공간 균열로 떨어졌다.

이전까지와 다른 점이라면, 공간 균열 너머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우리에게 손을 뻗는 김 주임이 아닌, 손을 흔드는 꼽추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 * *

휘이이이이-

바람이 분다.

춥다.

그리고, 주변이 온통 파랗다.

“….?”

‘여기는…’

나는 문득, 내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 이런 미친..”

나는 기겁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떨어지고 있다!

하늘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김영훈 역시 저 멀리서 나와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허공답보를 펼치며 김영훈을 낚아채고, 깨지 않게 수면혈을 눌러준 다음 허공답보를 사용해, 낙하 속도를 낮추었다.

얼마나 떨어졌을까, 나는 허공을 밟으며, 무사히 지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정신을 안 차렸으면, 나도 모르게 바로 다음 생으로 넘어갈 뻔했군.’

소름돋는다.

아무리 무작위라지만, 아예 하늘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다.

나는 식은땀을 훔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이곳은…’

허공답보를 하늘을 뛰어다니며 주변의 지형을 관찰한 결과,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대강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연산성(鍊山城) 서쪽이군…’

연산성.

내가 최초로 떨어진 성.

몇 회차를 거쳐, 또 다시 이 인근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우선, 꼽추 노인이 내게 뭘 준 건지나 볼까…’

나는 눈을 감고 꼽추 노인이 내 머리에 입력시킨 법결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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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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