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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

미래를 보는 투자자 036

36화.

영종도의 호텔을 미팅 장소로 잡은 이유는 근처에 인천공항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이들을 호텔로 데려오고 출국할 때까지 관리하는 일에 골든게이트 한국지점 직원들이 파견되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방에 대충 짐을 푼 우리는 로비에 있는 카페로 내려갔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이곳에 온 현주 누나는 서류를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변호사는 언제 도착해요?”

“아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니, 금방 이쪽으로 올 거야.”

골든게이트는 자체적으로 법무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오는 변호사는 국제법 전문가로 아시아 지사에서 현주 누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현주 누나가 손을 들어올렸다.

“Here, Ellie.”

나와 택규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려나?

키는 약 170 초반, 얼굴은 성숙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이었다. 피부는 새하얗고 눈동자는 옅은 갈색이다.

머리는 짧은 갈색 숏커트. 흘러내린 앞머리가 가지런한 눈썹을 살짝 가렸다.

외모만 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일단 백인 같아 보이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엄청난 미녀라는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카페에 앉아있는 모두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청바지에 캐쥬얼 점퍼를 걸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Thank you for coming, Ellie.”

“Long time no see, Jessica. How are you doing in Korea?”

그녀는 현주 누나에 이어 우리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전 골든게이트 변호사 엘리 킴이에요.”

놀랍게도 유창한 한국어였다.

변호사라기에 중후한 아저씨를 생각했는데, 20대 미녀일 줄이야!

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를 했다.

“전 강진후라고 합니다. 한국말 할 줄 아시네요.”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한국계예요. 편하게 엘리라고 불러주세요.”

택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전 오택규입니다.”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카의 동생 분이시군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반가워요.”

간단한 인사가 끝마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풀러 방으로 올라갔다. 

난 재빨리 현주 누나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홍콩에서 태어났으니, 홍콩인이지.”

홍콩은 원래 중국 영토였으나,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1997년에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현재까지도 1국가 2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기보다는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실제로 다른 국적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현주 누나는 엘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홍콩은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였던 만큼 각국 엘리트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도 여타 도시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높은 편이다.

엘리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홍콩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홍콩 여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사업을 하던 도중 주재원이던 영국 여자와 만나 결혼을 했고, 엘리가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한국, 홍콩, 영국의 피가 같이 흐르는 셈이다.

“홍콩인들은 보통 3개 국어를 하지.”

광둥어, 보통화, 영어다. 광둥어는 홍콩 현지어고, 보통화는 중국 표준어, 그리고 영어는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 때문이다.

엘리는 여기에 더해 한국어까지 할 줄 알았다. 한국계 아버지를 둔 덕분이다. 

난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저 나이에 변호사에 골든게이트에서 일할 정도라니.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네요.”

현주 누나는 피식 웃었다.

“대단한 걸로 따지면 너도 만만치 않잖아.”

택규는 아까부터 멍한 표정이었다. 

얜 왜 이래? 갑자기 미녀가 나타나서 긴장했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녀석이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나보고 제시카의 동생이라고 하는데, 제시카가 대체 누구야?”

현주 누나가 말했다.

“내 영어 이름. 전에 말해줬잖아.”

“아! 그랬나?”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였던 만큼 홍콩 사람들은 영어 이름과 중국 이름을 같이 가지고 있다. 골든게이트가 미국계 IB인 만큼 그곳에서는 대부분 영어 이름을 쓸 것이다.

“그럼 엘리는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거예요?”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얘기해줬어.”

우리가 OTK컴퍼니 법인 소유주라는 것은 골든게이트 측도 모르는 사실이다.

현주 누나와 특수 관계라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계좌 개설이나 자회사 설립에도 도움을 주었고, 이번에는 OTK컴퍼니 명의로 파견 요청을 했으니.

엘리는 법률적인 부분을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한동안은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원활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편이 낫다.

“말이 새어나갈 걱정은 안 해도 돼.”

택규는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믿어도 되는 거야?”

현주 누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변호사에게는 비밀보호 의무라는 게 있지.”

변호사는 고객의 비밀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규정을 어길 경우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그런 걸 떠나 현주 누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충분히 믿어도 되겠지.

“미팅 때도 숨길 거야?”

그 부분도 생각해 두었다.

“투자계약에 대해서는 누나에게 전부 위임할게요.”

사실 투자 중개계약을 맺었으니,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참석하는 것은 내 의지다.

내가 투자하려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띠링!

메시지를 확인한 현주 누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투자를 하러 가볼까?”

* * *

토비 스트롱(Tobey Strong)과 제라드 베이컨(Gerard Bacon)은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선후배 사이다.

재학 시절부터 마음이 맞았던 둘은 학교를 졸업한 후 같이 일을 하기로 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된 창업 열풍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토비와 제라드 역시 창업에 도전했지만, 몇 차례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젊었고 열정이 있었으니까. 

둘은 허름한 원룸에서 먹고 자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어느 날, 토비는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던 도중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토비는 즉시 그 아이디어를 제라드에게 말했고, 둘은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대고 사업성을 분석했다. 

둘은 재빨리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밝았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현실화 된다면,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투자금이 절실했다. 토비가 일에 매달리는 사이 제라드는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투자자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기획안을 들고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봤지만, 퇴짜 맞기 일쑤였다.

뜨거운 창업 열기만큼이나 월스트리트의 IB들과 실리콘밸리 IT업체들의 투자 열기도 거셌다. 매일 신생 스타트업이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비율로 보면 실제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투자자를 찾지 못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다시 좁은 원룸으로 돌아온 제라드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다들 기획안은 읽어나 보고 퇴짜를 놓는 거야?”

토비는 침착하게 말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분명 우리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투자자가 있을 거야.”

투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간단하다. 성공할 비즈니스라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열 것이다.

그런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금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 달 안에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사이트 운영이 힘들어.”

“내일부터 다시 돌아다녀 봐야지.”

“젠장!”

제라드는 소파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띠링!

알림음이 울리자 토비는 폰으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메일을 읽는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왜 그래?”

“골든게이트야! 우리 기획안을 보고 연락했다는데.”

토비의 말에 제라드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뭐? 골든게이트가 우리에게 투자하겠다고?”

“아니, 골든게이트가 직접 투자한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 있는 투자회사가 우리에게 관심이 있데.”

“한국? 서성전자가 있는 그 나라? 나 서성전자 스마트폰 좋아해. 아! 물론 L6는 빼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만나기를 희망한데. 날짜 정해주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겠다는데.”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진짜인 모양인데.”

메일 발신처는 분명히 골든게이트고, 메일을 보낸 사람은 골든게이트 아시아 지사 팀장이다.

설마 세계적으로 유명한 IB가 장난으로 이러지는 않겠지.

투자자를 만난다고 해서 반드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막상 만나서 얘기해보니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세부조항이 안 맞을 수도 있다.

투자라는 건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진 모를 일이다. 

“괜히 한국까지 헛걸음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상황.

“일단 가보자. 안 되면 한국 관광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한국은 위험하지 않나? 웬 미치광이가 핵 날리겠다고 협박한다며?”

“······.”

어쨌거나 그들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호텔 미팅룸은 생각보다 넓었다. 컴퓨터와 프로젝터도 있어서, 프레젠테이션도 가능했다.

현주 누나는 옷매무새를 만지며, 안경을 올려 썼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엘리가 앉았다. 둘 다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모습이다.

어렸을 때부터 현주 누나를 봐왔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금융계 엘리트라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나 역시 오늘은 양복을 입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급하게 하나 샀다. 반면 택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회색 츄리닝 차림이었다. 

야야, 누가 보면 피부의 일부인 줄 알겠다.

난 하품을 하고 있는 택규에게 물었다.

“넌 긴장도 안 돼?”

“내가 긴장을 왜 해? 아쉬운 건 저쪽 아니야?”

“······.”

틀린 말은 아니다.

오죽 투자가 필요했으면, 투자자가 있다는 말에 먼 한국까지 날아왔겠는가?

그런데 난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고, 손은 땀으로 끈적거렸다. 내가 투자자 입장으로 기업인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현주 누나는 날 보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아, 예.”

그렇지. 배운 대로만 하면. 그런데 난 배운 게 없지 않나?

난 일단 미팅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어디보자. 처음 만날 스타트업이······.

“응?”

난 기획안을 다시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스타트업들 중 하필이면 얘들이랑 첫 미팅이야?

엘리가 당황하는 날 보며 물었다.

“왜 그래요?”

“아, 그게······.”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미팅룸 안으로 두 명의 외국인이 들어왔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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