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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0

EP.369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3)

원더스타인과 함께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루미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괜히 옷깃을 만지작거리거나 머리핀을 정리하는 등 능청을 피워대는 것이다. 그러다가 원더스타인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돌아보면,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기를 몇 차례. 루미는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 오늘 뭔가 바뀐 거 같지 않아?”

“응? 모르겠는데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에 루미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너 환상을 꿰뚫어 볼 줄 안다며! 안 보이는 거야?”

“아, 그 안쪽 말인가요?”

원더스타인은 진화연구소의 진단 기능을 작동시켰다. 아르노의 모습을 한 환상 속에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어린아이 형태의 생명체가 감지되었다. 그녀의 몸을 살펴본 그는 며칠 전과 달라진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찌셨네요.”

루미가 화들짝 놀라 그의 눈앞에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걸로 그의 시선을 어떻게든 가려보려는 것 같았다.

“그, 그걸 어떻게……아, 아니, 틀렸어! 키……키가 커진 거야!”

“네. 키도 커지긴 했지만, 그보다 부피가…….”

“야! 넌 그것 말고 다른 건 안 보이는 거야?”

“다른 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원더스타인을 향해 루미는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옷 새로 샀단 말이야!”

“아하.”

원더스타인은 이제야 그녀의 보인 일련의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죄송합니다. 하하, 전혀 몰랐습니다. 환상을 꿰뚫어 본다고 해도 제 눈은 어디까지나 생체 반응을 감지할 뿐이라서요. 옷은 생물이 아니잖아요.”

“아……그, 그렇게 되는 거였던가? 깜빡했어…….”

루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허리에 머리를 툭툭 박아대던 것을 멈췄다.

“그 헝겊 쪼가리는 드디어 벗어던진 모양이군요?”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늘 입고 다니던 민소매 원피스를 떠올렸다. 하늘하늘한 게 여름에 입기 좋아 보였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볼 때마다 추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루미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흘겨봤다.

“헝겊 쪼가리라니! 애벌레 고치들을 모아 만든 요정 옷이라고!”

“애벌레 고치? 그런 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요?”

“우리 페어리들은 영계와 물질계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그런데 보통 옷은 물질 그 자체라서 영계로 넘어갈 때 걸린단 말이야. 그래서 애벌레 고치로 옷을 지어 입는 거야.”

“애벌레 고치와 영계가 무슨 상관인데요?”

그의 물음에 루미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머리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으이구, 그것도 몰라? 애벌레는 고치 속에서 나비가 되기 위한 꿈을 꾸잖아. 덕분에 고치에는 영계와 접속을 돕는 힘이 깃들게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마법이라는 게 원래 그런 믿음으로 작동하는 건가? 합리적인 현대인의 시선에서 ‘신비’의 영역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그냥 평범한 옷인가요?”

“응! 내가 환상으로 본을 떠서 여기 옷가게에 주문한 거야.”

루미는 제 자리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보였다.

“그걸 입으면 영계 어쩌고 문제는 괜찮나요?”

“어, 그거? 난 뭐……어차피 날개를 잃어서 다른 페어리들처럼 영계를 넘나들 수 없으니까……. 상관없지.

활기찼던 그녀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차올랐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이 그녀에게 실례가 되는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실연의 충격으로 날개를 잃었다고 했던가? 그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새 옷 입은 모습 한번 보고 싶네요.”

“음……그러면 환상을 해제해야 하는데…….”

“어차피 여기 루미 씨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잖아요. 더듬이와 귀만 숨기면 될걸요.”

“……좋아. 알았어. 네가 그렇게 애걸한다면 특별히 조금 보여줄게!”

루미는 환하게 웃고는 몸을 덮고 있는 아르노의 환상을 벗어 던졌다. 백색 장포를 입은 남자의 형상이 사라지면서 은빛 머리칼의 소녀가 그곳에 나타났다.

“짠! 어때?”

그녀는 두 팔을 벌려 보이며 허리를 죽 펼쳤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자마자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가 지금 있는 옷은 TT1에 마야의 특별 보상 복장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메모리 디스크를 모아 오면 그녀의 스승인 아르노가 “잘했다! 선물이다!”라고 외치면서 이 옷을 건네주었다.

마야의 하얀 피부와 머리카락에 대조되는 검은 드레스. 기본적인 형태는 루미가 평소에 입고 다니던 원피스와 유사했다.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단순하게 생긴 옷이었지만,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전장에서 원피스 하나 달랑 걸치고 다니는 뛰어다니는 모습이 소위 말하는 ‘고인 물의 패션’다웠기에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는 ‘흑설 공주 마야’라고 부르면서 애용되었다.

“직접 디자인하셨다고 했나요?”

“환상으로 본을 떠서 주문한 건 사실이지만, 원래 이거 우리 페어리 중에서 공주 계급만이 입고 다니는 옷이야. 검은색 고치는 엄청 희귀하거든. 물론 이 옷은 그냥 검은 천으로 만든 거지만.”

원더스타인은 이제야 원작에서의 아르노가 마야에게 왜 이런 단출한 옷을 선물로 줬는지 이해가 갔다. 공주의 복장이라……. 사람들이 이 옷에 붙인 별명은 진실과 묘하게 접하고 있었다.

“아름답군요.”

“흥! 그 한마디 듣자고 내가 너무 구차하게 군 것 같단 말이야! 하나도 안 기뻐!”

루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쌩 달려 나갔다. 그 몇 발자국 동안 그녀는 입에 떠오르는 미소를 간신히 가라앉히고는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뭐해! 풍등 사러 가야지! 우리도 새해 소망 적어서 하나 띄우자!”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걸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아까부터 두 사람의 뒤를 쫓고 있던 마야와 카렌은 한참 어떤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루미가 아르노의 환상을 풀기 직전, 크레오가 두 사람의 투명화를 뚫고 들어와 둘의 뒷덜미를 낚아챈 것이다.

“이러시면 곤란하죠, 두 분.”

“으악, 뭐야!”

“이거 놓으세요.”

마야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은막 쪽과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아는 척하며 다가오곤 했던 사람이었다. 은막의 삼인자로 아빠와 엄마의 옛 지인이었다.

“두 아가씨가 왜 우리 단장님의 뒤를 쫓고 있는 겁니까?”

“음, 저기 그게…….”

“저는 ‘우리 단장님’의 뒤를 쫓는 거예요.”

마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받아쳤다. 이목구비에서는 레오나르도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루마와 닮았다. 크레오는 두 사람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왜 두 분의 뒤를 쫓는 겁니까?”

“그건…….”

마야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카렌이 불쑥 끼어들었다.

“두 분 데이트 나가신 거 맞죠?”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크레오는 당황함을 감추려 애쓰며 대답했다.

“데, 데이트는 무슨……성인 남자 둘이 왜…….”

“그 반응을 보아하니 아저씨도 알고 있나 보네요?”

“그런 말을 하는 두 분이야말로……뭘 알고 이러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그를 향해 마야가 말했다.

“아빠가 말해줬어요. 아르노 단장님의 비밀에 대해서요.”

“레오나르도 님이요?”

마야의 아빠가 그녀에게 알려준 것은 어디까지나 몇 가지 단서뿐이었다. 그러나 두 단장의 대화를 엿들었다고 밝히기 꺼림칙했던 그녀는 모든 걸 아빠가 얘기해줬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설마 따님에게 다 말할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아빠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거까지요.”

거기까지 얘기했다면 모든 걸 밝힌 거나 다름없었다. 크레오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뒷덜미를 낚아챘던 환상 갈고리를 지워서 두 사람을 풀어줬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솔직히 말하죠. 두 분은 데이트 나간 게 맞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미 두 분을 놓친 것 같군요.”

마야는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와 언쟁을 벌이는 사이 두 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크레오는 그녀의 날카로운 태도를 보고 달래듯이 말했다.

“그냥 두 분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습니까?”

“왜 감싸는 거죠?”

마야의 날 선 대꾸에 크레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레오와 루마의 딸이라면 얘기해줄 만했다.

“20년 전, 저도 그때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레오 님과 루마 님의 교제가 공식화되었을 때, 단장님은 크게 실망했죠. 아시다시피 단장님의 사랑은 지금이나 그때나 사회 통념상 보답받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장님은 한 번 거절당하고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레오 님에게 환상을 이용해 그가 원하는 모습대로 꾸미고 다니겠다고도 제안했어요.”

마야는 남자가 여자의 환상을 뒤집어쓴 장면을, 크레오는 손바닥만 한 요정이 사람 크기의 환상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무리였죠. 그런 방법으로 육체적 장벽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생물학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어요. 아기까지 환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니, 애초에 환상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죠. 거기에서 진실한 사랑이 싹틀 리 있겠습니까? 레오 님은 그분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그의 마음에는 루마 님뿐이었습니다. 단장님이 들어갈 구석은 없었죠.”

마야는 아르노에 대한 질투와 원망이 사그라지면서 동시에 그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도 지난 며칠간 고민했었다. 환상으로 자신을 남자로 꾸미면 단장님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크레오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환상에서 진실한 사랑이 싹틀 리 없었다. 그것은 기만이었다. 아카데미의 수업 시간에도 지겹게 들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환상으로 외모를 바꾸고 다니는 게 당장 즐거울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고 경고했었다.

“그날 이후로 2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형태로 살아왔던 분이 오랜만에 진짜 자신을 드러내고 다니고 계십니다. 당신의 단장님 덕분이지요. 마야 양, 당신의 마음을 감히 제가 논할 수는 없겠지만, 부디 지금의 아르노 님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어요.”

마야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그처럼 자신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는 마음은 이제 떠나보내 줘야 할 것 같았다.

***

루미와 원더스타인은 길거리에서 풍등 하나를 사서 근처 주점에 들어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함께 그것을 조립했다.

“이것도 20년 동안 많이 발전했네. 내 때는 살과 창호지를 일일이 끼워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다 찢어먹어서 다들 하늘을 날 때도 비실거리다가 추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 봐봐. 이제는 조립이라는 말도 우스워. 그냥 접혀 있는 걸 펼치면 그만이야. 공장들이 발전한 덕분인가?”

“그런가요? 그것보다 저는 20년 전이 내 때라는 말이 더 놀라운데요. 제가 진짜 50대 할머니랑 같이 앉아 있다는 게 느껴져서…….”

“50대 하, 할머니? 너 진짜…….”

“50대 맞잖아요.”

“요정 나이로는 아직 아가씨라고!”

“하하, 알겠습니다. 사과드리지요, 요정 아가씨.”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줘.”

두 사람은 장난스러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풍등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둘은 풍등에 달린 꼬리표에 각자 올해의 소망들을 적었다. 제일 큰 풍등을 샀기에 글씨를 쓸 공간은 넉넉했다. 각자 주변 인물들의 건강, 금전운, 목표 달성 등등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그건 뭔데 손으로 가리세요?”

“뭐, 뭐야! 저리 안 가!”

“어차피 나중에 띄우면 보게 될 텐데, 좀 보여주세요.”

“야, 너 감히 선배의 몸에 손을…….”

원더스타인은 한쪽 팔로 그녀의 몸을 껴안아 제압하고는 재빨리 그녀가 쓰고 있던 소망을 훔쳐봤다. 그곳에는 ‘몸무게 20kg까지 감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살쪘다는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나요?”

“그, 그래, 어, 어서 이거 놓지 못해! 나쁜 놈! 난 너보다 훨씬 연상이라고!”

“죄송합니다, 할머니.”

“이 녀석이!”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가게에서 빌린 붓을 돌려주기 위해 입구로 달려갔다. 루미의 씩씩거림은 그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자마자 재빨리 가라앉았다.

그녀는 방금 원더스타인이 들춰봤던 꼬리표를 슬쩍 바라보며 거기에 걸린 환상을 해제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글씨들이 사라지면서 진짜 그녀가 쓴 소망이 드러났다. 그녀가 그곳에 적었던 것은 새해 다이어트 목표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연애운 관련 바람이었다.

“노, 놀랐잖아.”

루미는 그 꼬리표를 재빨리 다른 꼬리표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원더스타인이 돌아왔고 두 사람은 풍등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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