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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2

EP.371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5)

베티가 조련사의 꿈을 꾼 계기는 그녀가 5살 때 본 연극이었다.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첫 번째 작품인 <동물 왕국>. 그것은 어느 귀족 소녀가 사람의 말을 하는 동물들이 모여 사는 ‘동물 왕국’에 떨어져 온갖 모험을 겪고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베티는 해당 공연을 수십 번이나 관람할 정도로 그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이야기의 결말만큼은 아무래도 좋아할 수 없었다.

“나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강아지 기사와 토끼 마법사, 여우 수녀님이 사는 세상을 두고 따분한 현실로 돌아오다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주인공이었다면 동물 왕국에서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베티는 언젠가 자기 손으로 꿈을 실현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근처에 동물 공연이 열린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관람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부탁해 동물들을 사다가 공연에서 본 재주를 직접 시도해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무리하게 재주를 가르치다가 동물이 죽는 일도 많았다. 동물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매질을 해 죽이기도 했다.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왜! 이, 못된 아이! 못된 아이!”

베티의 아빠는 엄마 없이 자란 딸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딸이 원하는 동물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얼마든지 구해다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원하는 동물을 마음껏 기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나이가 16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럭저럭 한 마리의 동물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숱한 고문에서 살아남은 동물이 한 마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수컷 곰 빌리였다.

그러나 그쯤 해서 베티의 집안도 가세가 기울어 있었다. 그녀의 아빠가 사업에 실패해 파산하고 만 것이다. 무리하게 빚을 내 희귀한 동물들을 사들인 탓이 컸다.

“걱정하지 마, 아빠. 내가 유명한 조련사가 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그녀는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를 찾았다. 다른 곡예는 잘 몰랐기에 공식 선발로 들어가기는 힘들었지만, 길들이기 하나만 심사받으면 특별 선발로 뽑힐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당시 학교의 길들이기 교수는 그 5인방으로 이름 높은 우르수스였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면 그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합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자신감은 얼마 안 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빌리는 시험에서 제시한 요구를 대부분 수행하지 못했다. 그녀는 우르수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그의 수제자라는 여자 조교수의 선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말았다.

“당신의 동물은 당신을 믿지 않는군요. 당신의 손에 든 채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복종할 뿐이죠. 죄송하지만 베티 씨는 탈락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굴욕에 그녀는 숙소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녀의 곰에게 무자비한 채찍질을 가했다.

“네가 제대로 못 해서! 내가 그년에게 모욕당했잖아! 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내 말 못 알아들어? 왜 시키는 대로 못 움직이는 거야!”

그녀는 빌리의 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다 드러나도록 사정없이 채찍을 내리쳤다. 옆에서 아빠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빌리를 죽였을지도 몰랐다.

“상관없어! 이딴 학교 따위. 틀에 박힌 사고로 내 재능을 알아보는 건 무리야. 나는 그냥 바로 서커스단에 들어가겠어!”

그녀는 아빠를 닦달해 그의 장기를 담보로 돈을 빌려 서커스 그랑프리 입장권을 구했다. 그녀는 그곳에 가서 현역들에게 직접 자신의 재주를 보여 인정받을 셈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마침내 꿈으로 향하는 첫 계단을 밟게 되었다.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는 모든 서커스단에서 입단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어차피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있던 서커스단들은 대부분 테러에 휘말려 죽어버렸으니까.

그녀는 대신 그것보다 더 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다. 키르쿠스의 유물인 트릴과 그것에 관한 연구서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는 사람이 저술한 연구서. 거기에는 트릴의 제작 방법과 그것을 이용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적혀 있었다.

베티가 그 연구서를 펴본 것은 십여 년 만의 일이었다. 트릴의 사용법을 완벽하게 익힌 뒤로 그녀는 그것을 구석에 던져두고 잊고 있었다.

그녀가 이것을 다시 꺼내 든 이유는 트릴의 제작법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트릴의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키르쿠스의 눈’을 가진 소녀를 드디어 발견했다. 베티는 어떻게든 그것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온전한 키르쿠스의 눈이 있다면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파편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보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최고의 결과물을 얻는 방법은 역시 서커스 그랑프리의 본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수만 명의 관객과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시너지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트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엘라를 자신이 데리고 있기 힘들었다. 이틀을 같이 있어 보니 그녀는 토라져서 잠시 서커스단을 나왔을 뿐, 곧 돌아갈 모양이었다. 한다면 이번 축제 내에 처리해야 했다.

축제 마지막 날이 좋을까? 아니면 오늘 저녁에 있을 대광장 공연에?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천막을 찾았다. 서커스단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었다.

“단장님, 괴물 서커스단의 원더스타인 단장님이 또 찾아왔습니다.”

“흠, 그 양반 말이죠?”

베티는 갑자기 그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다. 잡지를 통해 그의 얼굴은 본 적 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천막을 나와 멀리 울타리 입구에서 서 있는 금발의 남자를 바라봤다.

제법 잘 생기긴 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짐승이라면 기본적으로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한낱 경비원에게 거절당하면서도 실실 웃어대는 자존심 없는 남자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별것 아니군.’

베티는 그에 대한 흥미를 꺼트리고 발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딴 남자가 아니었다. 엘라가 이곳에 머무르는 기간 안에 의식을 성공시켜 트릴을 완성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는 발걸음을 딱 멈춰 섰다. 트릴이라는 소재로 생각을 전환하는 순간, 어떤 인물의 모습이 머릿속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다시 울타리 입구를 바라봤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다시 되씹어 봐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를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왜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것은 그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18년 전의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 웃는 그를 보고 18년 전의 그를 떠올리지 못했다.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코미디 무대에 올라 그날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사람.

‘떠돌이 신사’라는 공연으로 피에로 분야의 개척한 광대.

웃지 않는 남자.

“그윈플렌?”

베티의 기억이 다시 18년 전으로 돌아갔다.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가 열렸던 곳으로.

테러가 일어났던 그 날, 그녀는 그곳에서 그를 봤다.

베티의 아빠는 그날 그녀를 데리고 원더스테이지의 코미디 무대를 찾았다. 입단에 실패해 좌절해 있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동물 공연을 제외한 보통 곡예는 즐겨 보지 않았다. 그러나 광대놀음만은 좋아하는 편이었다. 바보 같은 인간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하며 울고불고 깨지는 꼴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인간을 발견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른 긴 금발의 무표정한 미남자. 바로 그날 코미디 무대의 우승자인 ‘떠돌이 신사’의 피에로, 그윈플렌이었다.

“아빠! 나 저거 갖고 싶어!”

“베티, 사람이잖니.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상관없어! 난 저거 갖고 싶단 말이야! 사줘! 사달라고!”

그녀의 기이한 동물 사랑과 인간 혐오 덕분에, 비록 자각은 없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인간이 아님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길들이고 싶었다. 그에게 목줄을 걸고 마구 채찍질하고 싶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굴종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베티!”

그녀는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무대 뒤로 사라지는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불렀으나 주변에서도 워낙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파를 빠져나간 그는 골목을 지나 광장 옆의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걸린 간판으로 봤을 때, 그곳은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복장을 만들어주는 의상실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그녀는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2층으로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위층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베티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의상실 내부를 살폈다. 벽에는 온갖 화려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것들을 둘러보던 중에 그녀는 무언가를 보고 멈춰 섰다.

같은 양식을 가진 다섯 벌의 옷이 의상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생김새로 봤을 때, 딱 베티 또래의 곡예사들을 위한 복장 같았다.

“이게 뭐야……. 의상 제작 주문? 잠깐……크리스티앙이라고?”

옷들을 살펴보던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편지와 대본을 발견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놀랍게도 극작가 크리스티앙이 보낸 의상의 도면과 참고할 대본이었다.

크리스티앙은 베티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 왕국>의 작가였다. 그녀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매년 하나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아마 이건 올해 발표 예정인 작품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대본의 내용은 많지 않았다. 딱 주연이 되는 ‘다섯 곡예사’의 복장만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자신에게 맞는 배역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길들이기 곡예사.”

그녀는 고개를 들어 중앙에 걸린 붉은색 연미복을 바라봤다. 가문이 주저앉은 뒤로 단벌 드레스를 빨아 입고 다니는 그녀였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에 딱 맞는 새 옷이 나타나니 절로 손이 갔다. 그녀는 재빨리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눈앞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나야……. 그 <동물 왕국>의 작가인 크리스티앙이 인정해줬어. 내가 바로 최고의 조련사야.”

베티는 몽롱한 눈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은계의 청록색 깃털이 꽂힌 붉은색 모자, 황금 견장이 달린 붉은색 연미복, 흰색 블라우스와 짧은 치마. 자신보다 더 이 배역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몽상 속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베티는 깜짝 놀라 구석방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로 보아 최소 세 사람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완성된 <다섯 곡예사>의 복장들은 제 숙소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성함이 그윈플렌……이라고 하셨던가요?”

“그건 예명입니다. 제 이름은 원더…….”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선반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의 고함이 뒤따랐다. 구석방에 숨어있던 베티 역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지, 지진일까요?”

“말도 안 돼요. 여기는 공중도시인데…….”

“하, 하지만 이 정도 충격이라면…….”

사람들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수습하는 가운데 한 남자만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원더스테이지의 중심부를 돌아봤다.

“수상합니다. 이 폭발……잠시만요. 설마, 그자가!”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앗, 그윈플렌 씨!”

“기다려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집을 뛰쳐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베티는 창문 너머로 금발의 남자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가 크리스티앙과 연결고리를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품에서 피리를 꺼내 불었다. 바로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그녀의 곰 빌리가 건물 앞으로 달려왔다. 베티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그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빌리! 저 남자를 쫓는 거야!”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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