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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3

EP.372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6)

사방이 혼란스러웠다. 멀지 않은 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수만 명의 비명과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공포, 혼란, 고통의 감정이 원더스테이지 전체에 들끓었다.

마신을 위한 ‘제사’는 이 세상과 어비스에 통로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들이 몰린 이 정도 규모의 축제는 키르쿠스를 향한 거대한 제사로 작용했다. 즉, 서커스 그랑프리는 키르쿠스가 웅크리고 있는 어비스의 심연을 향해 32차선 고속도로를 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은 어비스의 부정적인 힘이 넘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그 32차선 왕복 고속도로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다니지 못하게 틀어막는 수백 겹의 방어벽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길항작용 때문에 축제와 공연은 아무리 크게 열려도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긍정적인 감정들을 한순간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틀어버릴 수 있다면? 수만 명이 즐기는 축제를 한순간에 끔찍한 비극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길을 틀어막던 방어벽은 제거되고 32차선 고속도로는 순간적으로 뻥 뚫린 공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성물 트릴까지 있다면? 키르쿠스가 세상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그 확대 망원경이 있다면, 그 통로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어비스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는 마도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계산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대기의 형태가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수백km 떨어진 곳에서도 그 진동을 느끼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이 발해진 근원지는 바로 히포드롬의 부속 섬 중 하나인 공중극장 원더스테이지였다. 폭발과 함께 쏟아져 나온 검은 그림자가 그곳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지름 수 km가 되는 구체를 형성했다. 서커스 그랑프리가 벌어지는 공간 전체가 어비스와 연결되는 거대한 통로가 된 것이다.

원더랜드의 지하에서 꿈을 즐기고 있던 혼돈이 잠에서 깼다. 감겨있던 그의 눈들이 일제히 번뜩이며 빛을 발했다.

그는 자신의 잠을 깨운 원인을 발견하고 눈을 부라렸다. 인간들의 역사에 있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게 열린 통로도 그에게 있어서는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성가신 아침 햇살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그곳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의 거대한 존재에 있어서 반걸음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는 수억 개의 촉수 중에 한 가닥을 그 통로에 쑤셔 넣었다. 인간으로 치면 손으로 눈을 가려 빛을 막는 행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원더스테이지에 있던 사람들은 세상 전체를 비트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영혼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에 그들은 몸을 벌벌 떨며 광기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베티는 마침 그윈플렌을 쫓아 원더스테이지의 지하로 들어간 참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그 영적인 폭풍에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곳은 원래 관계자 외 출입이 엄금된 장소였다. 그러나 경비인력들은 무언가에 습격당한 듯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지하에 들어간 순간 남자의 모습을 놓쳐버린 그녀였지만, 쓰러진 경비원들을 지표 삼아 그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원더스테이지의 지하 중심부. 커다란 열주들이 반구 형태의 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는 기둥 너머에서 붉은빛이 마치 급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기둥 사이로 홀 안의 모습이 보였다.

홀의 중심부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거대한 보석이 있었다. 붉은빛은 바로 거기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전야제에서 대중들 앞에 잠시 공개됐었던 물건이었다. 키르쿠스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쓰인다는 성물 트릴이었다.

“아…….”

베티는 그것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보석의 너머. 어떤 거대한 존재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감히 측량조차 어려운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녀는 눈을 까뒤집고 턱을 덜덜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곰인 빌리 역시 구슬픈 신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홀 안에는 두 사람이 트릴을 중심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한 명은 베티가 뒤를 쫓아왔던 금발의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허리가 굽은 땅딸막한 노인이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뭐라고 외쳐댔지만, 이미 키르쿠스의 위압감에 짓눌려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고르 미쳤습니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당장 멈추세요!”

“으핫핫, 내게 협력을 구할 때부터 이렇게 될 걸 예측했어야지!”

그리고 동시에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그것이 내는 충격은 아까에 비해 몇 배는 컸다. 바닥이 물결처럼 들썩였다. 베티는 뒤로 나동그라졌고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는 폐허 속에서 눈을 떴다. 그녀가 쓰러졌던 곳은 지하인데도 이상하게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바로 하늘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 군데군데 서 있는 돌기둥의 잔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자신이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더스테이지의 지상 중심부가 폭발로 인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뭐야, 저게…….”

위를 올려다본 그녀는 저 멀리 폐허의 꼭대기에서 달밤에 비친 기이한 그림자를 보았다. 꿈틀대는 촉수, 두서없이 자란 이빨, 군데군데 번뜩이는 눈. 인간의 형상에 온갖 생물의 군집을 가져다 붙인 것과 같은 존재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중심에 선 인간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윈플렌…….”

그녀는 홀린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보통 사람에겐 괴물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으나 그녀에겐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베티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살폈다. 다행히 이런 폭발 속에서도 그녀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그녀는 폭발의 현장에 굴러다니는 트릴의 파편과 연구서를 챙겼다. 그리고 빌리를 데리고 필사적으로 바깥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고, 며칠 후, 잔해 속에서 구조대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본 그 존재에 사람들이 이름이 붙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 테러를 일으킨 원흉.

“검은 마도사.”

다시 현재로 돌아온 베티는 금발의 남자를 노려보며 그 이름을 곱씹었다.

어째서 좀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을까? 엘라 같은 어린 소녀를 부단장으로 끼고 다닐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베티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단서들을 조합했다.

서커스 그랑프리, 키르쿠스의 눈, 트릴, 검은 마도사.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됐다.

저 남자는 아마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에도 지난번과 같은 일을 벌일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일 것이다. 혼돈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수만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대참극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엘라는 아마 스페어일 확률이 높았다. 트릴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그녀는 땀이 가득 찬 손을 쥐었다 폈다.

자,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으로 봐서 그는 자신에게 트릴의 파편과 연구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 존재를 알았다면 지난 18년 동안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거기다 무방비하게 엘라를 자신에게 보낼 리도 없었다.

지금의 그는 달빛 아래에서 봤던 그가 아니었다. 바보처럼 헤실대는 모습도 그렇고, 집 나간 여자애 하나 끌고 가지 못해 쩔쩔매는 것도 그랬다. 그는 트릴이 없으면 아마 별것 아닌 존재일 것이다.

검은 마도사가 공포의 대상인 이유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체도, 힘의 근원도, 목적도 모르기에 다들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의 진실을 일부나마 알고 있었다. 직접 목격한 사실들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서 덕분이었다. 그녀에게 검은 마도사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트릴도 없는 지금의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자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트릴의 파편도, 연구서도, 키르쿠스의 눈을 가진 소녀도 자신에게 있었다.

“단장님, 은막 서커스의 아르노 단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전에 방문하신다고 아까 연락을 받았죠. 제 숙소 앞까지 모셔와 주세요.”

베티는 이만 상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막 서커스는 자신들 바로 앞 순서에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번 축제에서 트릴을 만들어내는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서커스단의 역할도 중요했다. 그녀는 사업용 미소를 띠며 손님을 맞이했다.

“아르노 단장님.”

“베티 단장.”

은색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백색 장포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지나가다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둘은 서커스단 내부를 거닐며 오늘 저녁에 있을 공연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실무자 단계에서 진즉에 조정이 끝난 내용이었다. 즉, 아르노가 그녀를 찾은 데에는 다른 볼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베티는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면서 그의 속내가 뭔지 알아내려 했다.

“자, 여기는 제가 기르는 동물들이 공연을 연습하는 장소예요.”

개인 연습장으로 들어선 그녀는 동물들에게 적당히 몇 가지 재주를 부리도록 했다. 아르노는 그것을 감상하는 척하다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여기에 괴물 서커스단의 부단장인 엘라 양이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소.”

“엘라 말인가요?”

베티의 미소가 움찔했다. 하필 그의 입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나오다니……. 베티는 긴장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네. 우리 서커스단 일을 며칠 돕기 위해 여기 와 있죠.”

“나도 그녀와 인연이 적지 않아서 말이오. 그녀에게 몇 가지 조언이 듣고 싶어서 괴물 서커스단에 찾아갔더니 그녀가 여기 있다고 하더군. 혹시 잠깐 볼 수 있겠소?”

베티는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표정을 살폈으나 아르노의 환상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서 자신이 거절했다간 원더스타인의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별 볼 일 없을지 몰라도 엘라의 신변이 위험하다 싶으면 무슨 짓을 하려 들지 몰랐다.

“알았어요. 엘라에게 안내해드리죠.”

삐익. 그녀는 피리를 불었다. 인스피라를 통해 ‘하던 일을 멈춰라.’라는 의지를 실어 보냈다. 그녀가 길들인 동물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재주를 부리던 동물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그만뒀다.

“자, 그럼 이쪽으로……응?”

훈련장을 정리하고 이만 천막을 나가려던 베티는 뭔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아르노가 제자리에 서서 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이지만 그의 형상이 반투명해지기도 했다.

“아르노 단장님? 왜 그러시죠?”

아르노의 평상시 모습은 환상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반투명하게 변한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그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것이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아, 아무것도 아니오……. 마력이 조금…….”

목소리 역시 이상했다. 흐릿하지만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도 섞여 있는 듯했다.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베티는 마법이 잘 안되나보다 여기고 몸을 돌렸다. 아르노는 차림새를 다시 정비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천막을 나서기 직전, 번개가 내려치듯 어떤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천막의 입구에서 우뚝 멈춰 서서 눈을 번뜩이며 뒤를 돌아봤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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