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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3

369. 레나 Ep – 시험

싸움이 커졌다.

오베르 아저씨는 닐 경에게 한 대 얻어맞자마자 호루라기를 불어 건달들을 불러 모았다.

이 도시엔 치안도 없는지 냉병기를 버젓이 들고 나타나는 건달들. 나는 바린 경에게 물어보았다. 비록 실례가 될 질문이긴 하지만.

“저것들 다 처리할 수 있죠?”

“네.”

간단하게 대답한 바린 경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웬디 경조차도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저 수십의 건달들을 닐 경이 혼자 처리하겠다는 것 같았다.

난 난이도를 더 높여주었다.

“죽이면 안 돼요.”

“네네. 분부대로 합죠.”

“죽여! 저 새끼들!”

뒤이은 육박전.

나는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기사들끼리 대련하는 모습만 봐서 평민들을 상대로 얼마나 강한지는 글로 배운 수치로 추측할 따름이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닐 경은 검을 뽑지도 않았다.

검을 검집째로 휘두르며 건달이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다. 건달들은 그제야 저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기, 기사다!”

“씨발, 좆됐다.”

그래도 죽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건달들은 전의를 상실했음에도 달아나지 않았다. 닐 경은 연습용 허수아비를 때리듯 건달들을 픽픽 쓰러뜨렸다.

“오, 오베르 형님. 어쩌죠?”

“…제기랄. 모두 비켜!”

그러자 오베르 아저씨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그가 뭐라 말하려 하자 닐 경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기사님. 뭘 원하… 엌!”

– 퍽퍽퍽퍽퍽.

닐 경은 불문곡직하고 그를 두들겨 팼다.

감히 공주에게 미친년이냐니.

본래대로라면 참형으로 다스려야 할 중죄다. 하지만 저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꾸엑!” 신음하며 쓰러진 오베르 아저씨의 품에서 형형색색의 사탕이 쏟아진다.

“으… 왜…”

“앗! 공… 크흠. 영애님!”

나는 다가가서 사탕 하나를 주워 먹었다.

혀가 얼얼해지는 싸구려 단맛.

그러나 싫지 않았다.

오베르 아저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날 끔벅끔벅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참 불쌍하면서도 못내 우스워서 킥, 실소했다.

“이건 날 미친년이라고 한 것에 대한 대가야.”

“……”

“덜 맞았어?”

오베르 아저씨가 눈으로 항의하길래 경고해 줬다.

못 알아들었으면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다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영애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쭙습니다.”

오베르 아저씨가 끄응,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흠. 생각해보니 이렇게 접근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지.

“라우노 패밀리라고 했지? 내가 오늘 묵을 곳이 필요하니, 날 저택에 초대하도록 해. 당신들 보스도 만나봤으면 좋겠네.”

산티안 라우노.

사실은 보스 말고 그의 손자를 보러 왔다.

꿈에서 날 맹목적으로 사랑해준 그 애가 정말로 날 사랑했던 건지 궁금해서. 설마 거지였던 나에게 뭘 바랐던 것 같지는 않으나, 외모에 홀려 그랬던 것은 아닌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꿈은, 과연 이것도 맞힐는지.

거짓 사랑을 고백하던 무수한 귀족 놈들과 달리 과연 그 소년은 날 진심으로 사랑해줄는지.

솔직히 기대는 되지 않았다.1)

* * *

“공주님. 앞으로 웬디 경이 밀착 경호를 해드릴 겁니다. 저는 닐 경과 함께 주변을 호위하겠습니다.”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으로 가는 길에 바린 경이 속삭여 보고했다.

아무래도 적진(?)에 들어가는 거라 사생활까지 공유하는 밀착 경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나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허락했다.

또각또각.

우리를 앞뒤로 포위한 건달들의 힐끔거림이 신경조차 쓰이지 않게 됐을 무렵,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정문에는 보스로 보이는 노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일개 건달 무리의 수장임에도 그럴듯한 무게감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의 공손한 인사에 나도 목례로 까닥, 화답했다.

노인에게 손등을 내미는 건 내가 공주임을 밝히지 않은 이상 실례이겠지.

“초대해줘서 고맙네요.”

“아닙니다. 저희 애들이 영애님께 무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관리가 소홀했던 점 사죄드립니다.”

“그래요.”

“안으로 드시죠. 약소하게나마 다과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저택에 발을 들였다. 한데 바린 경이 가끔가다 한 번씩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래요?”

“공주님. 길이 너무 복잡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퇴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괜찮아요.”

“그래. 바린, 자넨 뭐든 너무 철두철미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어. 여차하면 다 때려잡고 나와도 되잖아.”

닐 경이 한마디 했다. 바린 경의 저런 꼼꼼함 때문에 오빠가 그를 내 호위대장으로 삼은 것이지만, 확실히 과한 면이 있었다.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사실 속으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 저택 구조가 대충 기억이 난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저 노인이 길을 일부러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응접실이든 보스의 방이든, 빨리 가려고 했으면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길을 벌써 다섯 번은 지나쳐 갔다.

괘씸하긴.

하지만 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인을 상대하는 저들만의 방법일 것이다. 아마 가족들이 달아날 시간을 벌기 위함이겠지.

어렴풋이 이 저택 지하에 통로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도 그 통로로 달아난 적이 있었다.

산티안 라우노의 손에 이끌려서.

그 꿈은 눈알이 터지도록 화끈했던 기억에까지 미쳤다. 동시에 그 소년이 나를 지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그 꿈의 마지막 수십 년은 희미한 시야에 갇혀 있었다.

시력이 감퇴해 손으로 더듬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고, 남편이 된 소년은 그런 나를 끔찍하게 아껴 주었다. 모진 생활고와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당신 오빠는 무사할 거야. 내가 힘낼게. 꼭 찾아서 만나게 해줄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비록 오빠를 찾아주진 못한 것 같으나, 눈이 거의 멀어버린 부인에게 충분히 눈물겨운 헌신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게 꿈일지라도 말이다.

후.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과몰입이 이래서 안 좋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어 눈물을 말려 보냈다. 때맞춰 도착한 응접실엔 라우노 패밀리의 보스 일가가 모여 있었다.

“제 가족들입니다. 이쪽은 제 부인이고, 여기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입니다.”

꾸벅꾸벅 인사하는 사람들. 하지만 내 시선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에게 고정되었다.

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곱슬머리와 아버지를 닮은 이마. 동그란 코끝.

그렇게 잘생기진 않았다.

평민들 수준에선 그럭저럭 일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지.’

티안에게서 눈을 뗐다. 그에 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실망스러운 점을 말했다.

“이게 전분가요?”

“네?”

“라우노 ‘패밀리’라고 들었어요.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이 전부일 리 없잖아요. 소개해줄 거라면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네요.”

라우노 패밀리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천애 고아 거지 꼬맹이로서 그들 사이에서 어찌나 행복했는지.

오빠가 타티안 후작가에 입양될 거라고 했을 때 나는 충격받아 몸져누웠고, 가족들과 하나하나 작별 인사하며 마음을 달래었었다.

만나보고 싶다. 꿈에서 그들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알아보고픈데 산티안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왜요? 모아서 죽이려고요?”

“아, 아니. 얘가.”

“맞잖아요. 저 사람이 오베르 아저씨랑 우리 아저씨들을 두들겨 팼다면서요. 저 사람은 적이에요! 자기는 두건을 뒤집어쓰곤 누군지 밝히지도 않으면서 소개는 무슨. 지금쯤이면 충분히 달아났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영애님. 제 손주가 뭘 모르고…”

“아니에요. 그의 말이 맞네요.”

“네?”

죽이겠다는 말이 맞다는 게 아니었는데, 앞에 선 일가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꿈에 취해, 나는 이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못했다. 이를 자책하며 두건을 벗었다.

오빠가 꼭꼭 눌러쓰라고 당부했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

“어…”

두건을 벗자 익숙한 반응들이 나왔다. 갈피를 잃은 눈동자와 내색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더 어색하게 깔리는 침묵.

내가 생긴 게 이래서 그렇다.

지겹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영애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따위의 말이 뒤따랐고 나는 “네, 고마워요.” 같은, 입에 붙은 인사치레를 했다.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긴 했지만, 내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왜, 이렇게 생겼으면 무해한가?

아직 내가 누군지 소개조차 하지 않았을진대 외모만 보고 무장 해제된 이들이 딱할 정도로 우스워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픈 충동마저 일었다.

물론, 이번에도 잘 다스려냈다. 그러지 못했으면 우리나라에 살아있는 귀족이 없을 터였다. 레안과 에릭, 내 두 오빠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 자신에 대한 기묘한 반감을 느끼며, 나는 어떠냐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너도 내 외모만으로 날 평가하고, 사랑할 것이냐. 아니면 이용할 마음을 품고 내게 접근해 거짓말을 늘어놓을 것이냐.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부 위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눈앞의 소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치. 그래서요? 당신이 누군데요.”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게 퍽 신선해서 나는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원래는 신분을 속일 생각이었지만.

“레리아나 드 예리엘이라고 한다, 꼬맹아. 콘라드의 왕족이시지.”

내가 여길 떠나는 날, 너는 나와 깊은 인연을 맺거나 죽게 되리라.

바린 경이 사람 숫자를 세었다.

* * *

“공주님은요?”

“이제 주무시려나 봐.”

닐 경이 교대해주러 왔다. 경계를 서고 있던 바린은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고, 닐 경도 그의 옆, 계단에 주저앉았다.

“햐. 오르빌은 역시 춥네. 아휴. 집에 언제쯤 돌아갈 수 있으려나.”

“내년쯤에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또 내년이야? 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구, 너. 그땐 맡겨진 임무가 확실했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기약이 없잖아.”

“그렇긴 하죠.”

바린이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닐 경의 말마따나, 이번 일은 에릭 왕자님을 아이셀 왕국으로 호위해드렸던 것과는 달랐다.

바린과 닐, 웬디는 호위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레안 왕자님의 호출을 받았다.

행선지를 어디에도 보고하지 말고 자기가 있는 모나크 남작령으로 오라는 것이었는데, 도착하니 ‘잠행’이라는 엉뚱한 임무가 주어졌다.

레리아나 공주님이 벨리타 왕국에 밀입국할 것이니 그분을 호위하라는 명령이었다.

– “왜요? 왕자님께서도 오르빌에 가신다면서요. 같이 가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왕자님의 명령이 다소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닐 경이 따졌다. 레안 왕자님은 차분히 설명해주셨다.

– “나는 타탈리아 왕가의 클로에 공주를 만나러 가는 것일세. 혼담을 나누러 가는데 레리아나 공주가 동행하면 저쪽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동생을 저쪽 왕자한테 시집보낼 것도 아닌데 말이야. 외교상 실례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그러네.”

– “밀입국하겠다는 것부터 이미 실례인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 레리아나 공주님께선 거길 왜 가시는 겁니까?”

– “오르빌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군. 자세한 건 레리아나에게 물어보시게.”

그렇게 해서 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왕자 일행은 관문을 통해 정식으로 입국했고, 우린 공주님을 모시고 모나크 남작령과 페테르 백작령 사이 국경을 넘었다.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간단하게 통과했다. 타티안 후작의 증표까지 받았으니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 뭐, 좋다.

근위기사로서 명을 받았으면 불만 없이 수행해야지.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공주님의 행동이었다.

왜 오르빌에 가는 거냐는 물음에도 답해주지 않으셨고, 여기에 와서 하시는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본명을 밝히시다니. 죽여야 할 사람만 다섯 명이 생겼다.

바린은 다소간의 푸념을 담아 이 의문을 털어놓았다. 닐 경은 턱을 긁적이며 엉뚱한 말을 했다.

“자넨 아들만 둘이던가?”

“셋입니다.”

“아하. 그래서 그렇구만. 난 딸이 있어서 알 것도 같아.”

“뭘요?”

“우리 딸이 남자 친구랑 싸웠을 때 딱 공주님이랑 같은 표정을 지었거든. 역시 사내놈들은 못 믿겠으니 시험해봐야겠다고 하더라구. 뭐야. 이봐! 갑자기 어디 가?”

“자러 갑니다. 그리고 말 같잖은 소리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십쇼. 돌아가서 불경죄로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바린 경은 턱턱, 걸어가 버렸다.

닐 경은 그런 바린 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역시 고지식해.”

1) ‘사실, 거짓말이다. 기대하고 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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