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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5

EP.374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28)

원더스타인은 빌리 앤 베티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서 루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걸릴 거라 말했던 그녀가 3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일정표상 엘라와 함께 다니기로 되어있던 날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하루를 다 써버려도 상관없었다.

“엘라는 며칠 뒤에 알아서 돌아가겠다는데? 화는 다 풀렸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야영장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래.”

다행히 그녀가 가져온 소식은 그만큼 기다린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름 덜었군요. 감사합니다. 편지 심부름 같은 일에 루미 씨를 반나절이나 붙들어 버려서 죄송하네요.”

루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약속한 일인걸. 어제 나랑 놀아준 것에 대한 보답이니까.”

원더스타인은 어째 그녀의 태도가 너무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후배 주제에 한참 선배를 부려 먹었다고 투덜거렸을 시점인데…….

“화난 것……아니죠?”

“내가 왜 화를 내겠어?”

“그냥 평소랑 반응이 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런 거 전혀 없어. 걱정하지 마.”

그녀의 태도는 보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사근사근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는데……다 풀린 건가?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저녁때군요.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그의 제안에 루미는 웃으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미안하지만 오늘부터 계속 바쁘거든.”

“제가 시간을 뺏었다는 말이군요. 이거 더 죄송한걸요.”

원더스타인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러나 루미는 생글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괜히 민망해져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응. 알았어. 잘 가.”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친절했지만, 대답은 칼처럼 자른 듯 단호했다. 그는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루미는 돌아서는 그를 향해 속으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거기 서라고. 자신은 지금 베티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제발 알아채달라고.

그러나 그녀의 말은 속에서 맴돌 뿐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기계적으로 지어진 미소가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푸들거렸다. 그녀는 베티가 내린 명령의 범주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없었다.

루미는 멀어져 가는 원더스타인의 등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쏘아봤다. 애꿎은 그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그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엄습하는 공포를 이겨내 보려는 행동에 가까웠다. 임무를 마친 몸뚱어리가 다시 베티에게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싫어. 멈추라고! 제발 좀…….’

그녀는 몸을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아주 잠깐 움찔했을 뿐 베티가 내린 명령을 착실하게 따랐다. 꼭두각시 인형의 신세나 다름없었다.

베티의 인스피라는 개체가 품은 복종심에 따라 그 위력이 달라졌다. 27년 만에 만난 그녀가 이렇게 베티의 의지에 강하게 속박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마음 구석에 품고 있었던 베티에 대한 공포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윽고 막사로 들어선 루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굴욕적이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시, 시킨 대로 했어……요.”

“응. 수고.”

베티는 그녀의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선을 한군데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현재 환상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루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상자를 바라봤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반들을 한가득 담고 있는 그것은 그녀의 보물 1호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바로 그녀의 추억이 담긴 메모리 디스크 모음집이었다.

“뭐야, 요정 주제에 인간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진짜로 남자에게 고백했던 거야? 풋, 말도 안 되게 건방지네. 벌레와 잡종인 생물 주제에. 안 그래?”

“네……. 마, 맞……아요……. 제가 건방졌어요…….”

거기에는 즐거운 추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치 일기를 쓰듯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메모리 디스크에 환상을 기록했다.

그런 소중한 일기장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헤집고 들춰보고 품평을 해대고 있었다. 베티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루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생긴 것은 괴물 서커스단에 들어가 루마를 만나고 나서였다. 그녀는 요정을 연구하기 위해 서커스단에 들어왔고, 루미는 그녀의 연구에 협력하는 대가로 매달 메모리 디스크를 선물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기억을 새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원하는 환상을 정제해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디스크에 새기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함께 관람하는 것은 훗날 은막 서커스를 세우게 되는 밑바탕이 되는 경험이었다.

그런 소중한 물건이 지금 베티의 손에서 희롱당하고 있었다. 루미는 몸을 구속하는 압력을 밀어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만해…….”

“응? 너 뭐라고 했니?”

“그……그만하라고!”

루미의 외침과 함께 환상 영상이 깜빡이더니 이내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메모리 디스크는 오직 환상 마법사만이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었다. 루미는 최대한의 의지력을 발휘해 디스크에 공급되고 있던 마력을 끓어버린 것이다.

히죽대던 베티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했다. 그녀는 땅을 쾅 하고 구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제자리에서 못 박힌 서서 몸을 떨고 있는 루미에게 다가갔다.

“흐음, 너 아무래도 훈육이 좀 더 필요하겠네. 이 상태로는 내 계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거든.”

베티가 그녀를 일부러 자극했던 것은 인스피라의 한계치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녀는 루미의 마음에 아직 저항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아…….”

베티가 채찍을 들자 루미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몸 여기저기에 못이 박히고, 성냥불로 지져지고, 구둣발에 짓밟혀 팔다리가 부러졌었다.

-그만해주세요. 아파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렇게 빌게요. 제발…….

사정하고 사정했는데도 계속되었던 고문.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베티는 그런 그녀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발로 그녀의 머리를 걷어찼다.

“흐악!”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베티는 쓰러진 그녀의 등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그녀가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가르는 소리가 나며 피가 튀었다.

“윽! 아악! 그, 그만……으갹!”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 소녀와 다름없는 모습인데도 채찍을 휘두르는 베티의 손놀림은 인정사정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루미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입에 미소가 번져갔다.

착실한 조련사의 가면을 써온 세월이 무려 18년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스스로 속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동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을 괴롭히고 지배하는 게 좋을 뿐이었다.

인간은 안 된다. 자신과 대등한 존재가 있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자신은 유일무이하게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서 다른 하등존재들을 내려다봐야 했다.

“어때? 이제 누가 우위에 있는지 알겠어? 응? 벌레 주제에 감히 주인님에게 저항하지 말라 이거야!”

그래서 동물 왕국이었다. 인간인 자신보다 덜떨어진 존재들만이 가득한 안심되는 이상향. 그곳에서라면 얼마든지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도와줘……도와줘……레오.’

무자비한 채찍 세례 속에서 루미는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괴물 서커스단을 탈출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이런 위기에 처했었다. 친구들과 급히 야영장을 빠져나오던 와중에 그녀는 보물 1호를 막사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도저히 놓고 갈 수 없었던 그녀는 레오의 주머니에서 몰래 빠져나와 불타고 있는 막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단장과 마주쳤다. 단장은 단원 중에 제일 몸값이 높은 그녀만은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붙잡아 억지로 새장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녀는 환상을 만들어 단장에게 저항했지만, 역으로 그것은 단장의 화를 돋우었다. 그때, 그가 휘두른 채찍을 막아준 것은 어떤 남자의 등이었다.

그녀를 구해준, 그녀가 반한, 그 넓고 단단한 안전하고 포근한 남자의 품. 그러나 현재 그는 이곳에 없었다.

베티가 채찍을 드는 순간 루미는 급격하게 움츠러들었다. 지금 그녀는 환상을 만드는 방법도 몸을 감추는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30년 전의 어린 요정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린 채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만을 빌 뿐이었다.

베티의 채찍 세례는 루미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작은 신음조차 사라졌을 때 멈췄다. 그녀는 루미에게 조용히 하라는 명령을 내린 참이었고, 그 명령에 따라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비명조차 억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 완전한 복종의 지표라는 것을 지난 18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가학적인 쾌락이 주는 여운에 잠겨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흐느껴 우는 루미를 향해 말했다.

“혹시 네가 사귀었던 친구들 기억하고 있어?”

루미는 그녀가 말하는 친구들이 레오와 루마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티의 새장에 갇혀 지냈던 시절, 그녀는 간간이 근처를 지나가는 작은 동물들과 친해졌다. 루미의 밥그릇을 기웃거리던 창가의 다람쥐,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와서 즐겨듣던 마당의 참새 등.

하지만 그중 오래간 우정은 없었다. 그녀가 다른 동물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베티는 그들이 들어오는 길목에 쥐덫이나 독 먹이 따위를 설치해둔 것이었다. 그들 모두 루미 눈앞에서 잔인하게 으스러지거나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동물이 있으면 일부러 무서운 환상을 만들어서 그들을 쫓아냈다. 자신과 친해져 봤자 좋을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그때 일은 왜 꺼내는 것일까?

베티는 퉁퉁 부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을 해줘야겠어.”

***

10일에 걸친 아무르 지방의 신년 축제도 이제 오늘이면 끝이었다. 니카는 석양이 지는 것을 보고 이제 슬슬 서커스단으로 돌아갈 때라고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걸로 이번 건은 마무리 짓도록 하지. 세부적인 내용은 참모부와 상의해줘.”

“네. 알겠습니다.”

방안에 모여있던 정보부원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황태자에 대한 경의의 빛이 어려 있었다.

주군이 갑자기 외유를 결정했다고 했을 때, 그들은 내심 그가 겁에 질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아무리 자질을 타고났다지만, 그는 15살짜리 어린애였다. 수백 명이 동원된 대규모 암살. 그만큼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봤으니 정치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걱정을 한 달 만에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설마 황제 독살 시도의 배후를 캐내다니? 그동안 정치적 변방으로 여겨졌던 아무르 지방의 힘을 발굴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제야 그들은 주군에게 그들이 모르는 계획이 있음을 알고 안심했다.

정보부원들과 회동을 끝낸 니카는 해방감을 느꼈다. 10일 동안 축제를 즐기며 푹 쉬었던 다른 단원들과 달리 그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번 일에 매달렸었다.

‘그……약을 마저 먹을까?’

비틀거리며 걷던 니카는 품에 든 유리병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원더스타인으로부터 빼돌린 별빛 가루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그가 정력제라고 밝혔던 이 약.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기 있긴 했지만, 분명 영양제에 해당하는 효과가 있었다. 항상 또래보다 체력이 모자랐던 그가 이 약을 먹은 날만큼은 기운이 넘쳐서 펄펄 날아다녔다.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몇 시간 푹 쉰다고 생각하고 그냥 먹어?’

‘쉬려면 그냥 잠을 자면 되잖아. 핑계하고는.’

‘마침 일도 하나 마무리 지었는데 나에게 선물도 줄 겸…….’

‘선물은 무슨 선물? 여자가 되는 게 선물이냐?’

니카는 숙소로 향하는 동안 가루를 흡입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타일렀다. 그는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약을 먹었을 때 느꼈던 체력적인 고양감을 성적인 쾌감으로 몸이 착각하는 게 분명했다.

도착증이라는 것이 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자제해야 했다. 제국의 황태자가 여장에 맛 들였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큰일이었다. 성적인 문제로 추문에 싸인 황족이 여태껏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제국의 미래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이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자제심도 숙소에 들어서서 구석에 걸린 아무르 전통복을 보는 순간 바닥이 나고 말았다. 원더스타인과 함께 몇 시간을 몸을 부대꼈을 때 입었던 저 옷! 저것을 입고 있었을 때 그가 느꼈던 쾌감들이 머릿속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 저 비싼 옷을 한 번만 입고 파는 것도 아깝지! 서커스단의 힘든 재정을 생각해 보면, 저걸 한 번 더 입는 게 예의야!’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한 니카는 병에 든 가루를 그대로 들이켰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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