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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6

372. 레나 Ep – 열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밀착 호위를 받지 않으시겠다니요.”

“말 그대로야. 더 이상 밀착 호위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는 거지.”

다음 날 아침. 나는 바린 경을 불러 명령했고, 그는 항명했다.

“하오나 여긴…”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이지. 문제 될 건 없어 보여. 그리고 닐 경이랑 둘이서 일하기도 힘들었을 건데, 웬디 경이 밀착 호위를 그만두면 삼 교대가 되니까 여유가 생길 거야. 바린 경도 좀 휴식을 취하도록 해.”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지만, 바린 경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어째섭니까. 웬디 경이 공주님을 불편하게 해드렸나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전 공주님의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호위를 어떻게 설 것인가 하는 건 호위 대상이 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나는 열불이 터지고 말았다. 날 섬기는 근위기사였으면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바린 경.”

“네.”

“주제넘은 조언, 잘 들었다.”

“…네?”

“만약 네 말마따나 호위 문제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지?”

“그야…”

“나의 신변과 신체에 관하여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냐는 말이다. 바린 경. 착각하지 마라. 너는 내 오라버니의 명령보다 내 명령을 우선해서 따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혹 오라버니로부터 내가 모르는 지령이라도 받았느냐? 오라버니께서 내 신병을 구속하라 말씀하시더냐.”

“아, 아닙니다. 결단코 그런 일은…”

“그럼 내 말에 따라라.”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이자가 말을 안 듣는다면 오빠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다.

바린 경은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마지못해 말했고, 나도 의구심을 유보하였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했음을 반쯤 확신했다.

“좋아. 그럼 밀착 호위가 끝났다는 걸 웬디 경에게 전달하고, 산티안을 불러줘.”

바린 경은 터덜터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산티안 라우노가 들어왔다. 상기된 표정으로.

“해달라는 대로 했어. 만족해?”

“으… 네.”

그러나 여전히 숫기 없는 자식. 산티안의 부끄럼에 나까지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려 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결국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단둘이 있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설마 여긴 아닐 거잖아? 움직여. 안내하라고.”

티안은 새빨개진 얼굴로 앞장섰다. 하지만 발걸음을 떼기 전에 뒤돌아서며 말했다.

“그… 공주님이 행차하시기엔 조금 번거로운 길이 될 거예요. 그래야 다른 사람 눈에 안 띄니까…”

“내가 너 맨날 불러서 노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건데.”

“오늘은 놀려는 게 아니어서요. 따, 따라오기나 해요.”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은 엄청나게 복잡했다. 구조가 어떻게 돼먹은 건지 창문에 계단이 붙어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3층 벽에 문이 덜렁 달려 있기도 했다.

증축과 난개발의 현장이다.

해서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루트가 수없이 많았다.

그 각자의 루트에는 콩을 말리는 할머니가 있기도 하고, 보초를 서는 건달이 있기도, 빨래통이 늘어선 곳도 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태와 저택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만 했다.

물론 산티안 라우노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그런 길을 더 잘 알았다.

하물며 장차 라우노 패밀리를 물려받아 이끌게 될 산티안에게야… 말해 뭐하겠는가.

산티안은 방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니 거긴 일종의 직원 휴게실이었고, 여기에도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그 화장실로 들어가자 어이없게도 옆집과 이어진 빗장문이 나왔다.

한 개의 화장실을 양옆 두 집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뚫어둔 것인가 보다.

문짝 안팎으로 빗장이 달려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 건넛방의 빗장을 걸고(옆집 사람이 못 들어오게), 나갈 때 다시 열어두고 가는 식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신선한데?

나는 조금 충격받았다.

평민들은 이렇게 협동하며 살아가는구나. 한정된 물자를 살뜰히 나눠 쓰려 지혜를 발휘하면서.

이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빗장문 덕에 나는 산티안을 뒤따라온 게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안은 그 빗장문을 통해 건넛집으로 거침없이 넘어갔고, 그곳의 테라스로 나갔다. 거기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쉿! 티안이 멈춰 서며 몸을 낮췄다.

“바린 경,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해요. 공주님이 밀착 호위를 물리치신 까닭은 그 소년을 배려해서일 거니까요. 끽해봤자 이 저택 내에서 놀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겠죠?”

“그러실 거예요. 저희는 정문을 지키는 거랑 공주님 수발을 드는 데만 집중하자구요. 이 정도는 왕자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겠죠.”

건물과 건물 사이, 본관 뒤편에서 바린 경과 웬디 경이 대화하고 있었다. 우릴 발견하진 못한 것 같지만…

역시. 오빠가 나 몰래 기사들에게 뭘 주문했구나!

배신감에 팔이 떨려왔다.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내심 냉정하게 세워둔 계획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공주님! 괜찮아요?”

그때, 티안이 날 바짝 붙들어 줬다. 현기증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 뻔한 것이다. 때마침 아래에서는 더 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웬디! 바린! 공주님이 없어졌어!”

“네? 방금 방에 계셨잖습니까. 그 소년이랑.”

“그러니까 없다고. 너랑 교대하자마자 바로 갔는데, 안 계셔!”

“이런 제기랄!”

기사들이 튀어 나갔다.

이제부터 저들은 저택을 수색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어서

– “나 여기 있다. 근데 오빠가 네놈들에게 시킨 게 뭐지?”

물어보면 될 것이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빠의 배신에 대해, 지금 당장은 외면하고 싶다.

“공주님. 계속 가시겠어요?”

산티안이 내 안색을 읽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가서 뭐라도 해 줘…”

난 화가 나면 날 화나게 한 정적(政敵)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고통을 줄 수 있을지 끝장까지 상상하는 편이다.

모략과 뒷담, 편 가르기는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고상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적을 진정으로 무너뜨리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독하게 짓밟아야 했다.

이를테면 그래. 자녀가 있는 이에게는 자녀를 타겟으로 하는 게 즉효일 것이고, 효심이 깊은 이에게는 부모가 약점이 될 것이다. 본인이 위협받으면 허세를 부릴 것이나, 아내가 위협받으면 백기를 든다.

인간은 관계에 취약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라면 공포를 활용해 적을 찍어 누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오빠라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오빠는 내 안위를 1순위로 걱정해주는… 아니, 걱정해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해공갈이라도 해야 하나?’

허탈한 실소를 흘리며 산티안을 뒤따라갔다. 오빠와 싸우느니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거의 다 왔어요. 발 조심하세요.”

티안은 내 떨리는 손을 꼭 붙들어 줬다. 저택을 요리조리 누빈 끝에 우린 지하에 들어서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산티안은 나를 지하 비밀통로가 있는 곳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고백하기에는 썩 로맨틱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보다 나은 장소가 없을 듯하다.

날 데리고 어디로든 사라져 줘.

산티안이 내 앞에 무릎 꿇었다.

“공주님. 고백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또 저의 신분이 공주님께 걸맞지 않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 넌 예법도 모르지.

왼쪽 무릎을 꿇고 오른쪽 무릎을 세워 앉는 건 기사의 맹세지 연인의 맹세가 아니야, 바보야. 내가 이런 바보를 믿어도 되는 걸까. 그리고 손이라도 내밀든가.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잖아…

하지만 산티안 라우노는 제 어설픈 자세와는 별개로 말을 사뭇 진중하게 이어나갔다.

“하지만 저희 가문이 세상의 그 어느 가문과 비견해도 꿀리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때는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가문이 바로 저희 가문이에요.”

“…귀족을 참칭하려거든 그럴싸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참칭이 아니에요. 저희 라우노 패밀리가 사실 세상에 알려진 최초의 귀족, 라오노 가문의 후손이에요.”

“발음은 비슷하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날 사랑해? 진심으로 날 사랑해 줄 거야?”

산티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가 났는지 벌떡 일어서선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자신을 싸게 팔아넘기듯 행동하지 말아 주세요, 공주님. 저는 공주님과 격을 맞추고자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평민 따위가 무슨 수로? 삼천 년도 전에 멸문한 라오노 가문을 참칭한들 네 격이 올라가진 않아.”

“믿지 않으실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훔… 아니, 빌려왔어요. 이게 저희 집안이 라오노 가문의 후예란 걸 증명해줄 거예요.”

산티안 라우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거무튀튀한 막대기. 그건 아주 먼 옛날에나 쓰이던 형태의 열쇠였다.

산티안은 그 막대기형 열쇠를 칼 잡듯이 붙잡곤, 마찬가지로 거무튀튀한 강철로 된 철문에 다가섰다. 사방으로 뚫린 여타 비밀통로들과 달리 그곳에서는 한기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산티안은 철문 고리를 잡고, 열쇠 구멍으로 추정되는 곳에 그 팔뚝만 한 길이의 열쇠를 밀어 넣었다.

– 득. 득득득, 득득득.

열쇠는 구멍을 후벼 파듯 거칠게 들어갔다.

철문은 결이 울룩불룩해질 정도로 오래 방치돼있던 터라 산티안은 열쇠를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 소년의 들끓는 마음을 그 무엇이 막으리오. 결국, 텅!! 열쇠가 끝까지 들어가고, 철문 뒤에서 빗장이 끌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철문은 끼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었다.

어떤 마법이 걸려있던 건 아닌 듯했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서 그리된 모양이다.

이를 방증하듯 철문 뒤에는 사뭇 기계적인 장치가 달려 있었다.

막대기형 열쇠에 난 홈과 들어맞는 톱니바퀴가 있었고, 열쇠가 들어오거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면서 빗장을 열거나 잠그는 장치였다.

그 말인즉슨, 이 철문은 열쇠가 없으면 안에서도 열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깥에서 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때였다.

“공주님! 어디 계십니까, 공주님!”

기사들이 뒤쫓아 온 모양이었다. 레리아나는 땀이 흥건한 산티안을 재촉했다.

“들어가자. 가서 네 모든 걸 내게 보여줘. 그리고 날 사랑해 줘.”

소년과 갓 성년이 된 소녀가 어두컴컴한 통로에 발을 들였다. 산티안이 철문을 닫곤 열쇠를 반대로 걸어 당기자 문은 처음처럼 굳게 잠기고 말았다.

“공주님!”

“공주님! 제발요!”

바린과 닐, 웬디 경이 뒤쫓아왔을 땐 통로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세월의 풍파에 헤지고 지워져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으나, 철문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Baneka Launo /

아주 먼 옛날, 그 시대를 장악한 주술사의 이름이.

기사들이 탄식하는 그때, 또 다른 소년이 달려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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