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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9

375. 레나 Ep – 일지

통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다.

또, 기대했던 것보다 화려해서 산티안의 손에 이끌려 통로에 들어온 레리아나는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말았다.

“이게 다 뭐야?”

“나도 몰라요.”

통로는 조각상으로 가득했다.

세월의 흐름을 방증하듯 곳곳이 부스러졌으나 그것들은 제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여 세월에 묻힌 통로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다만, 민망하게도 조각상들은 거의 모두가 벌거벗고 있었다.

남성기 혹은 여성기가 훤히 드러났음에도 조금도 부끄럼 없는 태도로 서 있는지라 되려 앞을 지나치는 소년과 소녀가 얼굴을 붉혔다.

레리아나는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야. 사람의 신체를 아름답게 여기던 때가 있었거든. 예술이 그렇지 뭐.”

“…그럼 공주님은 저런 거에 되게 익숙하시겠네요.”

“그, 그럼!”

통로를 걸어가면서 레리아나는 조각상을 감상하는 척했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알게 된 것인데, 조각상들 사이엔 어떤 위계가 있었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손짓과 시선, 외모로 미루어보건대…

“갈수록 윗사람이야.”

늘어선 조각상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계(家系)를 이루고 있었다.

누가 누구의 딸이고 아들인지가 보인다. 한데 레리아나는 그것들에 어떤 기이한 반복성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가계도는 보통 가주를 중심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 둘째들이나 시집간 딸들까지 중점적으로 표기했다가는 그 순서가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는 좀 이상했다.

조각상이 가문을 물려받은 사람 위주로 배열되기는 했는데, 때때로 여자가 끼어 있었다.

물론 여자가 가문을 물려받는 게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단지 여기서는 너무 많이, 그리고 주기적으로 일어난 감이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한참을 걸어간 끝에 조각상 릴레이가 끝이 났다.

돌로 장식돼 있던 통로는 확연한 복도로 변했고,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조각상의 선조로 보이는 사내가 정면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데 사내라고는 했지만, 사실 이게 남성인지 여성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다.

이 조각상만 옷을 입고 있어서다.

외모는 남자 같기는 한데, 어딘가 여자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까부터 반복된 주기를 따지면 이번 차례가 여자여야 한다는 것도 성별을 판단하는 데에 혼란을 줬다.

그때, 산티안이 손가락질했다.

“저기 문이 있어요.”

“들어가자. 저 안에 네가 라오노 가문의 후예라는 증거가 있겠지.”

의자에 문이 달려있었다. 레리아나와 산티안은 중성적인 인물의 발치를 지나 문을 열었다.

녹슨 경첩의 비명과 함께 나타난 것은 오래된 방이었다.

누군가의 집무실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구가 들어찬,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는 장소였는데, 물론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레리아나와 산티안은 남의 집무실에 몰래 침입한 사람들이 할 법한 행동을 했다. 장식장이나 서랍장을 대충 훑으면서 책상에 다가섰다. 거기에는 돌로 된 책이 놓여 있었다.

신기해하며, 레리아나는 검지에 침을 발랐다. 촉촉해진 검지로 책장을 넘겨보았는데, 이게 웬걸, 책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침이고 자시고, 손톱에 힘을 줘서 걸어 넘기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안 열려.”

“제가 해볼게요.”

“무거워서 못 여는 게 아니라 안 열린다니깐. 책이 아닌가 봐… 어?”

“열었어요.”

책은 산티안이 열자 마치 종이로 된 것마냥 부드럽게 젖혀졌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레리아나와 산티안이 뽀르르 자리 잡았다. 레리아나는 의자에 앉고, 산티안은 옆에 서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일지(日誌)1)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 βαδιλεἰας Ακἰυνεν 2 Μαιου. οι υπηρἔτες αυξἦθηκαν. Η πὄλη μεγαλὦνει, και μἔσω του αδερφοὖ μου, παρακἄλεσα τον βασιλιἄ ὄτι θα ἦταν καλὖτερα ναομαστεἰ η πὄλη «Όρβιλ». Ο καιρὄς εἰναι καθαρὄς. Η αστρονομἰα εἰν αι σταθερῆ. επαίνεσε ο Λεἰ’υσια. /

책장마다 날짜가 왕국력(王國曆)으로 표기돼 있고,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무적인 내용과 혼용되어 있어서다.

고대어를 모르는 산티안을 위해 레리아나가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아키우넨 재위년 5월 2일. 하인이 생겼다. 도시는 커지고 있고, 난 오라버니를 통해 이 도시의 이름을 ‘오르빌’로 하는 게 좋겠다고 왕께 간언했다. 날이 맑다. 천문은 안정적이다. 레이시아 님께 칭찬받았다. 세상에… 이건 아카이아 왕국 초기의 기록이야!”

“대단한 건가요?”

“아니. 엄청난 거야. 아씨. 안 넘어가네. 처음부터 보게 맨 앞장을 펼쳐 줘.”

산티안 라우노가 돌로 된 종이를 후루룩 넘겨주었다.

왜 나는 못 넘기는데, 얘는 넘길 수 있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가장 앞장에 적힌 필기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 바네카의 일기장! 읽지 마! /

/ 바네카 라우노, 바눈 오라버니를 그리워하며. /

어린애가 적은 듯한 필기와 수려한 필체의 글씨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뒤엣것은 나중에 적힌 것이 틀림없었는데, 이것이 힌트가 됐다.

이 책의 주인이 그 유명한 바네카이고, 그녀의 성이 산티안과 발음이 같은 라우노(Λαυνο)였던 것이다.

레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티안 라우노가 바눈 라오노(Laono)의 후손이 맞나 보네.’

발음이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세월의 풍파에 잘못 전해질 수 있는 정도다.

게다가 산티안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도 특별한 증거가 됐다.

일단은 조금 더 읽어보기로 했다.

/ 가을. 선물 받았다. 레오넬 오빠 너무 좋아. 레이시아 언니도 같이 받았다. /

첫 장은 소소한 내용이었다.

소녀가 수줍게 적었다가 지워버린 흔적도 있고,

/ ΑΒΓΔΕΖΗΘΙΚΛΜΝΞΟπΠΡΣΤΥΦΧΨΩ. αβγδεζηθικλμνξοπρσςτυφχψω. 하기 싫다. 나도 레이시아 언니처럼 똑똑했으면. 오빠 미워. /

다음 장에는 어설픈 필기체로 철자를 연습하는 과정도 쓰여 있었다.

그녀는 아카이아 왕국 시절에나 쓰이던 고대어를 빠르게 익혀 나갔는지, 페이지를 여러 장 넘긴 몇 달 뒤에는 레리아나도 알아보기 힘든 고급 어휘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레리아나는 모르는 단어가 여러 개 끼어 있어도 문맥으로 글을 읽어낼 줄 알았다.

/ 여름. 레오넬 오빠를 따르는 인원이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우리 오빠는 바빠서 날 챙겨주지 못한다. 레이시아 언니도 바쁘다. 외롭다. /

/ 더운 여름. 허공에 뭐가 부유하고 있다. 오빠한테 물어봤더니 자긴 안 보인다고 했다. 바보다. /

/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

/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여긴다. 이종족의 피가 섞여서 그런 거라고 누가 그랬다. 물론 아니다. 아닐 거다. 내게 더러운 이종족의 피가 섞였을 리 없다. 없다고! /

/ 가을. 나 사형당할지도 모른다. 곧 재판이 열린다. 레이시아 언니가 재판을 열자고 했다. 밉다. /

/ 펜을 빼앗아가려… %^#%$&^ /

/ 나뭇잎이 떨어진 가을. 재판에서 승소했다. 레오넬 오라버니가 내게 일어난 일을 두둔해줬고, 레이시아 언니가 이를 비난해선 안 되는 것으로 법에 명시하였다. 나는 신관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이 힘이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님을 안다. 이건 신의 섭리를 빌어다 쓰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것을 ‘주술(呪術)’이라 명명했다. /

/ 여름. 레오넬 오라버니가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확정했다.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곳이다. 바눈 오빠는 사람들을 시켜 마을을 짓기 시작했다. 레이시아 언니는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

/ 6월. 오빠가 신나서 떠들어대는 건 보기 싫지만 기쁜 날이다. 오빠에게 성(姓)이 내려졌다. 라우노. 고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의는 못 하겠다. 호수가 범람했다. 나더러 기청제2)를 올리란다. 그냥 비를 그치게 하는 게 빠르겠다. /

/ 10월 13일. 마을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다. 도둑질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

/ 10월 25일. 레오넬 오라버니가 원정을 떠난다. 마을은 바눈 오빠랑 레이시아 언니가 맡아줄 거다. 나도 따라가기로 했다. /

/ 레오넬 오라버니가 이상하다. 안에 뭔가 있다. 잘못 본 것이겠지. /

/ 12월 20일. 마을로 돌아왔다. 이종족으로부터 빼앗아온 식량을 다들 반긴다. 우린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레오넬 오라버니는 말이 없다. /

/ 1월 11일. 레오넬 오라버니를 우리의 공식적인 우두머리로 삼기로 했다. 차별화를 위해 주변 부족의 부족장들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려 한다. 왕(king)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오늘은 스물다섯 명이 얼어 죽었다. 레이시아 언니는 이번에는 옷감을 짜고 있다. /

/ 2월 1일. 청련달이 떴다. 레오넬 오라버니가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 그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연설했다. 마을을 위해 많이 헌신해온 사람은 대대손손 존경받아 마땅하다 주장했다. 바눈 오빠가 으쓱하는 게 보기 싫었다. 신발이 낡아서 버렸다. /

/ 2월 19일. 호수에 다녀왔다.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사람들이 나랑 바눈 오빠를 헷갈리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날이 따뜻해지고 있다. /

/ 2월 29일. 무섭다. 우리 마을에 신이 내린 것일까. 홍련달이 얼른 저물기를. /

/ 3월 1일. 레오넬 오라버니가 왕위에 올랐다. 바눈 오빠는 귀족이 됐고, 레이시아 언니는 공주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마을 벽을 허물고 더 크게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 /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지랄이야. 도와주려고 한 건데. /

/ 3월 9일. 오빠랑 화해했다. 다신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더러 어쩌라고.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물어보는걸. /

/ 3월 21일. 마을 증축이 한창이다. 넓어진 김에 우리 라우노 가문 사람들이 살아갈 땅을 마련했다. 레오넬 오라버니를 만나러 가봤지만 왕은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 /

/ 4월 7일. 적이 쳐들어왔다. 레오넬 오라버니가 홀로 나가 막았다. 시민들이 점점 게을러지고 있는 듯하다. 소량의 벌꿀을 손에 넣었다. /

/ 4월 19일. 우리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외지인들은 우리 마을을 도시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나 싶다. 궁리해봐야지. /

/ 4월 20일. 레이시아 언니가 새 법령을 발포(發布)했다. 왕 아래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건 문제가 될 것 같다. 바눈 오빠는 레오넬 오라버니를 드높이는 것에는 찬성하는 듯하다. /

/ 레오넬 재위년 4월 23일.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마음에 안 든다. 존칭이란 것도 생겼다. 우웩. 앞으로 나도 별자리를 살피기로 했다. /

/ 아키우넨 재위년 5월 2일. 하인이 생겼다. 도시는 커지고 있고, 난 오라버니를 통해 이 도시의 이름을 ‘오르빌’로 하는 게 좋겠다고 왕께 간언했다. 날이 맑다. 천문은 안정적이다. 레이시아 님께 칭찬받았다. /

/ 내가 또 실수했나 보다. /

/ 아키우넨 재위년 5월 10일. 내일부터는 별자리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화가 난다. /

/ 내가 사리사욕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요. 도시도 커졌겠다, 땅이 남길래 측량을 좀 넉넉하게 했을 뿐인데. /

/ 아키우넨 재위년 5월 30일. 신분제에 대한 논의가 격렬하게 진행 중이다. 역시나 이건 레이시아 님이 주창하던 법 앞의 평등과 맞부딪쳤고, 레오넬 오라버니의 주장과는 상반되기에 논란이 커졌다. 내가 땅을 크게 구한 게 이런 문제로 번질 줄이야.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 /

/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

/ 아키우넨 재위년 6월 5일. 바눈 오빠와 다시 화해했다. 오빠는 두 번 다시 내 일기를 열어보지 않겠다 약속했다. 나는 레오넬 님을 꼬박꼬박 높여 쓰기로 했다. 짜증 난다. /

/ 아키우넨 재위년 6월 14일. 논란이 종결되었다. 왕 아래 귀족이 있고, 귀족은 평민을 위해 헌신해야 함을 법에 명시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레이시아 공주님과 바눈 오빠는 언제까지 자기들끼리 국정을 결정하려는 걸까. 두 사람은 얼른 결혼해버리는 게 도시를 위해 좋을 듯하다. 저번에 구한 신발이 낡았다. 그래서 버렸다. /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

/ 아키우넨 재위년 7월 1일. 신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레오넬 오라버니처럼 나도 집에 틀어박히련다. /

/ 레이시아 언니는 바쁜 와중에도 종종 나를 불렀다. 다른 건 아니고 옛날이야기나 나누자는 것이었는데, 언니답지 않게 속내가 뻔했다. 그럴 거면 언니가 먼저 고백하라고 조언해줬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게 웃긴다. 나한테는 말할 수 있으면 오빠한테도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랑 오빠는 구분이 안 되게 똑같이 생겼는데! /

/ 두 사람 사이에서 시달림받는 것도 더는 견디기 어렵다. 억지로라도 고백하게 만들어야겠다. 저번에 구한 벌꿀이 어디 있더라? 회양풀도 섞어 넣어야지. /

/ 풀 위에 풀풀. 돌 아래 돌멩이 두 개. 오르빌 왕궁 건립을 기원하며. 아키우넨 재위년 9월 15일. /

/ 레이시아 언니는 마셨다. 하지만 저 등신 같은 새끼는 안 마셨다. /

“공주님?”

바네카의 일지를 시간순으로 읽어 나가던 레리아나는 멈칫했다.

글씨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엉망진창이어서다. 바네카가 분노에 차서 글자를 휘갈겨 썼나 보다.

그 이후로 바네카는 한동안 일지 작성을 하지 않았던 듯했다.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된 부분부터는 시제가 과거형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체도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날그날의 일을 기록했다기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 채워 넣은 것으로 보였다.

레리아나는 바짝 마른 목을 헛기침해 깨우곤, 다시 읽어 나갔다.

/ 아키우넨 재위년 10월. 바눈 오라버니, 당신께서는 상심해 일을 나가지 않으셨지요. 국정이 마비되었습니다. 묘약을 먹은 레이시아 님도 일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저도 그땐 화가 나 있었습니다. 하인을 죽였던 거로 기억합니다. /

/ 아키우넨 재위년 10월의 어느 날. 레오넬 님이 오라버니를 찾아 우리 집에 왔어요. 하인이 없어서 제가 나가 문을 열어드렸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라버니가 거부한 묘약을 레오넬 님께 먹였거든요. /

‘뭐?’

레리아나는 왕이 묘약을 먹었다는 부분부터는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내용을 알려달라는 산티안에게 기다리라 말하곤, 페이지를 넘기라 재촉했다. 산티안은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책장을 넘겼다.

/ 레오넬 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왕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저만이 알고 있었죠. 신께서는 제게 저주를 내리셨을 겁니다. 그 대가로 오래도 살아왔지요. 아스타로트 대공의 아내가 되어서 말입니다. /

/ 아키우넨 재위 2년, 아마도 9월. 레이시아 님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상이 놀라고, 신께서는 분노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셨습니다. 레오넬 님은 온 힘을 다해 맞서 싸우셨죠. 그러나 신께서 레이시아 님을 잡아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눈 오라버니, 당신께서는 그제야 저를 찾아오더군요. /

/ “그래요, 오라버니. 제가 왕께 약을 먹였어요.”라고 말하자 당신은 저에게 고함치셨죠. 하지만 기회를 드렸잖아요. 레이시아는 오라버니를 사랑할 수 있었답니다. 모든 게, 잘 될 수 있었다구요. 당신은 레이시아 님과 맺어지고, 저는 글쎄요, 레오넬 님과 꿈에 그리던 대로 맺어질 수도 있었겠지요. 결과적으로는 비슷하게 됐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거면 진작 고백하지 그러셨어요, 라고 불평해봅니다. /

/ 레오넬 님은 레이시아 공주님을 되찾으러 떠났고, 바눈 오라버니도 그를 뒤쫓아가, 오르빌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제가 당신을 닮은 게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도 하지 말라던 일을 했습니다. 바눈 오라버니, 당신의 행세를 하여 사람들을 안심시켰죠. 낮에는 남자로, 밤에는 여자로 살았습니다. 당신과 레이시아 님, 레오넬 님은 사라졌는데 아스타로트 대공은 돌아왔거든요. /

/ 아스타로트 대공은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언제고 반드시 돌아올 제 남편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요. 그 악마는… /

레리아나는 깜짝 놀라서 헛바람을 삼켰다.

/ …이 글을 읽고 있는 레이시아 님 «당신»과 레오넬 님을 간절히 원합니다. «당신»과 레오넬 님을 손에 넣어서 다시금 출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고, 그가 ‘아스트로 산’에 묻혀 있는 굴레를 끊지 못 하게 하십시오.

레이시아 님. 당신을 동경합니다.

오라버니와 당신께 지은 죄를 지울 길이 없어, 변명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바눈 오라버니께는 제 안부만 전해주세요. f- Baneka. /

‘이게 무슨 말이야?’

레리아나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책에 쓰여있는 «글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듯 지칭한 것에 놀라서다. 하지만, 책은 사람을 잘못 찾은 듯했다.

나더러 레이시아라니.

난 레리아나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자신과는 아무래도 관계없는 일이라 레리아나는 책에서 눈을 떼었다. 산티안에게 이제는 네가 바눈 라오노의 후예란 걸 알겠다고 말하려 하는 순간이었다.

“앗!! 누나!”

산티안이 레리아나에게 몸을 던졌다. 그녀를 감싸 안아 지키려 했으나 거대한 손은 레리아나를 감싸 쥐고, 산티안은 멀리 쳐내버렸다.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간 소년의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꺄악!!”

한편, 레리아나는 비명을 질렀다.

땅을 무시하고 지상으로 끌어올려 진 그녀의 눈앞에는 얼굴이 반으로 쪼개진 거인이 있었다. 거인은 그녀를 탐스럽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 레이시아! 돌아왔구나!

제아무리 주신이 시간을 가지고 장난친다 해도 레이시아와 레오넬만 손에 넣는다면 해볼 만하다.

재탄생해 아스트로 산에 묻혀 있는 굴레만 끊어낼 수 있다면…!

의욕을 되찾은 아스타로트 대공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오르빌 왕궁 지붕이 그 음파에 터져나갔다.

1)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또는 그런 책.

2) 祈晴祭, 장마가 계속될 때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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