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8

38화 전쟁 속의 전쟁 (4)

38화 전쟁 속의 전쟁 (4)

빈 천막을 보며 생각했다.

오스카는 어디로 갔지?

나는 미니맵 표식을 우호적 대상으로 바꿨다.

아군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낮의 전투가 너무 치열했던 탓에 완전히 뻗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급한 상황이지만 소리를 질러 동료들을 깨우는 것은 안 된다. 얼추 봐도 적의 수는 아군의 두 배. 우리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면 즉각 돌입할 거다.

“도미닉. 일어나 도미닉.”

도미닉을 깨운 나는 쉿! 손가락을 세우며,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알렸다. 다른 이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버럭 성을 냈겠지. 하지만 나는 ‘하늘눈의 금발’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도미닉이 다른 용병들을 깨우러 갔다. 그사이 나는 카인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오스카가 없다면 이곳에서 가장 강한 무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이는 카인이다. 녀석을 이용해 반격을 꾀해야 한다.

카인! 낮게 외치며 나는 카인의 천막을 열었다. 그런데 안은 비어 있었다. 얘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마침 마르셀이 불침번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르셀!”

나는 그에게 달려가 카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마르셀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적군이 오고 있다고 말하자, 녀석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빌어먹을 놈의 자식 같으니.

곧 모든 용병이 깨어났다. 미니맵으로 적의 진입 방향을 확인한 나는 용병들과 함께 몸을 빼냈다. 그 과정에서 도미닉이 큰 도움이 됐다. 이곳에 남은 이들 중 도미닉은 최고참이었고, 그래서 용병들은 군소리 없이 도미닉의 말을 따랐다.

“염병할 진짜네. 진짜 오고 있잖아.”

“금발은 저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어떻게 알긴. 하늘눈의 금발이잖아.”

“쉿. 조용히 해.”

용병들을 조용히 시킨 도미닉이 내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금발.”

방법은 두 가지다. 말을 타고 달아나거나, 혹은 역으로 적을 기습하거나.

몇몇 용병을 통해 오스카와 모건이 적의 야영지를 급습하러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카인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마르셀은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설마 카인이······, 아니, 일단 이 생각은 접어두자.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니까.

“적이 너무 많아. 달아나는 것이 좋겠어.”

“그래. 내 생각도 같다, 금발.”

도미닉이 씩 웃으며 나를 봤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전장에서 도미닉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도미닉이 죽었거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면 지금 나는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했겠지.

“가자.”

야영지 주변의 나무 사이로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말을 매어놓은 곳까지의 짧은 거리가 천 길처럼 멀게 느껴졌다.

“뭐야! 없잖아!”

“눈치채고 달아났다!”

마침 적들은 빈 야영지를 급습한 참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말의 매듭을 풀었다.

이히히힝!

말 위에 올라 숲을 달렸다.

***

카인은 오스카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십여 차례의 회귀 끝에, 처음으로 자신을 도와줬던 은인.

카인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도와준 것은 오스카가 아니다.

‘데미안.’

데미안은 소드마스터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줬다. 게다가 어떤 마법적인 힘을 발휘해 균열을 파괴했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카인은 자신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데미안을 떠올릴 때의 자신은, 아마도 내면의 무언가가 변해버린다는 것을.

그 이유에 대해서도 카인은 짐작했다.

데미안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특별한 마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카인이 의심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회귀.’

회차가 바뀔 때마다 카인은 느꼈다.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데미안에게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명확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카인은 데미안에게서 낯설면서도 낯익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데미안은 자신과 동종(同類)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 동종이어야 한다.

그것을 확인할 때까지 데미안, 너는 내 것이다.

“대장!”

저만치에서 마르셀이 말을 달려왔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말 한 마리를 야영지에서 떨어뜨려 놨었다.

마르셀의 얼굴에서 다급함을 감지한 카인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

나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주에 성공했다.

“금발 아니었으면 진짜 죽을뻔했군!”

“하늘눈의 금발! 만세!”

“금발의 눈이 파란 이유는 정말로 하늘이 담겨있기 때문이었어! 크하하하하!”

그러나 우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적의 추격이 느껴졌다. 심지어 상당히 빨랐다.

두두두두두두!

“빌어먹을! 붉은 폭풍 놈들이다!”

붉은 폭풍 용병단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레오네 썬더피스트’라는 자가 단장으로 있는 호전적인 용병단. 이번에 오비니 백작령과 계약했다고 쿠에게 들었었다.

‘하필이면 붉은 폭풍 용병단이라니.’

저들이 타는 말은 발 빠르기로 유명한 적색마(赤色馬)다. 그들이 자신의 용병단을 ‘붉은 폭풍’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험하다. 이대로면 따라잡힌다.

“어이 금발! 싸워야 할 것 같은데!”

“이대로 싸우는 건 자살 행위야! 도미닉!”

적의 수는 우리보다 많다. 그리고 단단히 준비하고 왔다. 막 잠에서 깨어나 달아나는 우리와는 심리적인 면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게다가 붉은 폭풍의 단장인 레오네 썬더피스트는 ‘상급 소드유저’. 다시 말해 기사급 실력자다. 레벨로 표현하면 40레벨 대의 강자.

검은 갈기 용병단에서 40레벨이 넘는 이는 오스카뿐이다. 하지만 오스카는 여기에 없다. 지금 우리 중에서 30레벨이 넘는 자는 도미닉뿐.

‘이대로 맞붙으면 무조건 진다. 그렇다면.’

등 뒤를 돌아봤다. 내리쬐는 달빛 사이로 수십 마리의 적색마가 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따라잡힐 거다. 그렇다면 싸우기 전에 최대한 적의 숫자를 줄여야겠지.

[리메이크를 시전합니다.]

적들을 향해 왼팔을 뻗었다. 나는 두 번 쓸 수 있는 리메이크 중 한 번을 여기서 사용하기로 했다. 집중해라. 최소 20의 RP는 남겨야 한다.

[리메이커가 세계의 현상에 간섭합니다.]

아스트레아의 천칭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즉, 광산의 숲에서 기사를 죽였을 때와 같은 위력을 낼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슨 방법을 써야 한 번에 많은 적을 쓰러뜨릴 수 있지?

[자연 감응(Lv.2)을 발현합니다.]

본능적으로 발현한 자연 감응이 힌트를 줬다. 나는 지면 위로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을 봤다. 나의 세계가 흑백으로 변하며 진동을 시작했다. 눈앞으로 마법처럼 활자가 펼쳐졌다.

【······데미안의 눈동자에 예리한 집중력이 깃들었다. 그는 자연 감응력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관찰력 특성을 더했다. 찰나 간 데미안은 자신의 뒤를 쫓는 적색마 중 어느 개체를,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힘과 방향으로 타격해야 할지를 계산했다. 망원경을 통해 보는 듯이 확대된 지면의 돌이 끓는 물처럼 진동했다. 그것이 적색마의 발목을 겨냥하며 튀어 올랐다.】

이히히히힝!

선두를 달리던 적색마 두 마리가 고꾸라졌다. 그 뒤의 적색마들도 볼링핀처럼 차례로 무너졌다. 나는 서둘러 RP를 확인했다.

◎ RP: 21

됐다. 정확하게 20의 RP만 사용했다. 앞으로 나는 1회 더 리메이크 스킬을 발현할 수 있다!

“뭐, 뭐야 저것들! 갑자기 왜 넘어지는 거지?”

“뭔지는 몰라도 잘됐다! 꼴 좋구나 붉은 폭풍 놈들! 으하하하하!”

동료들의 얼굴이 화색이 됐다. 그 와중에 도미닉만은 휘둥그렇게 눈을 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어, 어이 금발. 너 마법사냐······?”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시간을 벌었지만, 리메이크 스킬에 휩쓸리지 않은 적색마들이 재차 거리를 좁혀왔다. 다행인 점은 처음에 비해 적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우리보다는 많았다.

‘레오네 썬더피스트가 저 안에 있을까? 없으면 해볼 만 할 텐데.’

“비, 빌어먹을! 화살이다!”

“모두 방패 들어!”

아까보다 더욱 거리를 좁힌 붉은 폭풍 용병들이 화살을 쏴댔다. 우리도 응전하려 했지만 급하게 야영지를 떠난 탓에 활을 챙긴 이는 소수였다.

한 번 더 리메이크 스킬을 써야 할까? 아니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리메이크 스킬은 아껴두는 편이 낫다.

“이대로면 놈들에게 각개격파 당한다! 반격하려면 지금이야!”

도미닉이 외쳤고, 검은 갈기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았다. 우리는 도미닉의 구령에 맞춰 말의 방향을 틀었다. 적을 향해 돌진했다.

.

.

.

숲의 경계를 넘은 초원 위로 달빛이 퍼져 나갔다. 쇳소리가 나고, 피가 튀고, 비명이 울렸다. 용병들의 무거운 숨소리와 고함. 그 속에서 나는 의지를 초월한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검술(Lv.3)을 획득합니다.]

짙은 혈향이 코끝을 감돌았다. 혀에서 피 맛이 났다. 누군가 내게 돌진하며 크게 소리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른다. 내 귀에 그 외침은 마치 먼 곳에서 밀려드는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그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가슴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새빨간 칼날이 근육과 뼈를 부수며 들어갔고, 나는 검을 통해 인간의 심장이 멎는 순간의 진동을 느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적을 벤 걸까. 살아남은 아군은 몇이나 될까. 살갗에 닿는 공기가 차갑다. 그와 반대로 내 안의 피는 뜨겁게 타올랐다. 레오네 썬더피스트는 어디에 있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보였다. 도미닉을 포함한 아군 넷이 그를 상대하고 있다. 도미닉의 몸에서 피가 솟는다.

나는 레오네를 향해 달리며 왼팔을 뻗었다. 막아야 한다. 단순히 도미닉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도미닉이 살아있을 때 레오네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전멸한다.

[리메이크를 시전합니다.]

[스킬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RP가 부족합니다.]

뭐라고?

적의 칼날이 측면을 밀고 들어왔다. 그것을 검으로 쳐낸 뒤 반격했다. 그러면서 실감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내 몸은 쿠에게 배웠던 것을 본능적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RP가 부족합니다.]

다시 한번 리메이크 발현에 실패했다. 그사이 레오네의 검이 도미닉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털썩, 무릎을 꿇은 도미닉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나머지 셋도 순식간에 목이 잘렸다.

적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검 손잡이를 움켜쥐며 주위를 살폈다. 살아남은 아군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내 차례라는 건가. 빌어먹을. 웃기지 마. 순순히 당해줄 것 같냐.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나는 레오네와 동기화했다.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을 카피했다.

몸 안을 휘도는 용암 같은 열기를 느끼며, 나는 신들린 듯 검을 휘둘렀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진동이 심장을 뒤흔들었다.

돌연 적 하나가 가슴을 쥐며 쓰러졌다. 이상한 일이다. 내 검은 그에게 스치지도 않았는데.

“크헉······!”

이상한 일은 재차 벌어졌다. 또 하나의 적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넘어갔다. 부르르 몸을 떠는 그의 한쪽 눈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누구지? 저 화살을 쏜 자는.

또 다른 적의 목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그 화살에서 나는 낯익은 것을 봤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잎사귀 무늬. 그리고 깨달았다. 화살을 쏜 자가 누구인지.

“데미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