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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

38화 변동 게이트

게이트 진입시의 빛이 잦아든다. 천천히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모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드넓은 전쟁터다.

-크라아아아아!

-키캬캬캬캬캬!

이형의 괴물들이 우글우글 몰려든다. 그들의 정체는 악마. 이마에 솟구친 뿔들과 걸음걸이에서 풍기는 지독한 마기가 그 증거다.

악마들이 평원을 달리며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악마들의 군세를 막아서는 군대.

“막아라!”

“마, 막으라고요?”

“불가능합니다!”

척 봐도 기 수천이 넘는 악마들이었다. 그런 악마들에 맞서는 군대는 고작 수백. 단순 숫자만으로도 형편없이 밀리는데, 그들의 무장인 빈약하기 그지없다.

현대 기술로 정련된 헌터들에 비하면 중세 수준의 갑옷과 창 따위로 어찌 열 배가 넘는 악마들을 막아선단 말인가.

그리고 악마들의 군세를 마주치고 당황하고 있는 건 훈련병들도 마찬가지다.

“어, 어째서 악마들이?”

“데몬 게이트라고?!”

훈련병들은 당황했다. 노란색 게이트에서 악마족이 출몰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느닷없이 전장 한복판에 소환된 것도 당황스러운데 악마들이라니?

게이트에 대한 연구만큼은 빠삭한 구대성도 이런 현상은 들어본 적도 없다.

“방패를 들어라! 방진이다! 진형을 갖춰라!”

느닷없는 환경의 변화에도 레온은 냉정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가 새하얀 백마를 타고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병사들의 방패를 두드리자 훈련병들도 금방 정신을 차렸다.

“바, 방패 들어!”

1조에서 5조. 조장들의 지시에 따라 순식간에 방진이 완성된다.

“전진! 전진 앞으로!”

전진하라고? 일단 튀고 보는 게 아니라? 레온의 지시에 훈련병들이 경악했지만, 그들은 4주 동안 보고 배운 게 있었다.

기사의 지시에는 절대복종. 불복의 대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 사자심장의 오라 】

무엇보다 그의 존재만으로 부여되는 가득한 트레잇들. 훈련병들은 방패를 들고 서서히 전진했다.

‘겁을 안 먹는다고?’

그 모습을 보며 김진수 과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악마들의 무리에 돌진하라는 게 얼마나 무모한 명령인지 모를 턱이 없는데, 훈련병들은 착실히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충만한 전능감. 김진수 과장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남발되는 시스템 메시지에 경악했다.

‘뭐야, 이 강화 트레잇들은. 커맨더 이상의 강화버프를 모든 헌터들한테 부여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도주하지 않고 우직하게 전진하는 훈련병들은 악마들 눈에 띄었다.

수십 기의 악마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악마견들이다!”

“이쪽으로 온다!”

블러드 하운드. 통칭 악마견으로 불리는 그것들은 사람만한 덩치를 가진 악마들이다.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방패나 쏘아지는 화살 따윈 아무래도 좋은지 숨이 끊어져라 달려들었다.

-쾅!

-콰앙!

자살돌격에 가까운 거침없는 몸통 박치기. 김진수 과장은 돌격에 방진이 돌파될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끄읍!”

“버텨!”

네 다리 짐승의 육탄돌격에도 훈련병들은 버텨냈다. 단지 한두 명의 뛰어난 이들이 아니라 그들 전원이 이 돌격을 버텨낸 것이다.

‘블러드 하운드의 돌격은 B급 헌터도 버거워하는데?’

B급 탱커쯤 되면 탱킹에 도움이 되는 고유스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D급 헌터들은 그런 고유스킬도 없을 텐데, 깡으로 악마견들의 돌격을 막아낸 것이다.

“반격하라!”

레온의 지시에 방패와 방패 틈새 사이로 검을 찔러넣는 훈련병들. 그들의 검이 손쉽게 악마견들의 살가죽을 꿰뚫었다.

-키에에엑!

-꺼엉!

선두의 악마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악마들이 몰려온다. 제 키보다도 더 큰 검을 들고 있는 그레이트 소드들이다.

“막아!”

악마견들의 돌격도 막아낸 헌터들이다. 소인족 수준의 악마들이 광오한 일격을 휘두르며 방패벽에 돌진했지만, 방진은 견고했다.

레온이 검을 들고 외쳤다.

“일보전진!”

허둥지둥 방패를 들고 전진하는 훈련병들. 그레이트 소드들과 밀착한 상태로 적이 대검을 휘두를 거리를 주지 않는다. 곧바로 조장들이 외쳤다.

“밀어!”

-쿵!

4주 동안 미친 듯이 연습한 방진. 헌터들은 순간의 폭발적인 푸쉬로 악마들을 밀어냈다.

“찔러!”

다음부터는 기계적인 동작의 반복이다. 막고, 밀고, 찌른다. 대보병전에서 이것만큼 강력한 백병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잡하게 달려드는 악마들이 오는 족족 썰려나가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 데몬 트롤!”

“악마 트롤이다!”

집채만한 덩치와 2m는 될 법한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 중형 괴수. 이것마저 막아낼 자신은 없었는지, 훈련병들의 동공이 떨렸다.

“물러서지 마라! 진형을 유지하고 자리를 굳건히 지켜라!”

레온의 목소리가 그들을 일깨웠다.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훈련병들은 ‘버티는 것만큼은’ 할 수 있다.

-중형개체 대응. 저격 개시.

그때였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미니멀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투다다다다다다!!

쏟아지는 홀리 그레네이트 탄. 성배기사의 동체에서 쏘아진 총탄은 그 자체로 성스러운 공격이다.

“야, 야피 경?!”

“야피 경이 여기 왜 있어?”

헌터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하던 데몬 트롤이 고통에 겨워하며 속도가 늦어졌다. 야피가 퍼부은 신성한 기관총탄이 무릎을 분쇄한 탓이다.

“크아아아아아!”

그러나 트롤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몽둥이를 들었다. 트롤은 최소 B급… 질량이 큰 만큼 공략 난이도는 A급에 준한다.

어지간한 노란색 게이트에서 보스급으로 나오는 개체를 D급 헌터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으오오오옷…!”

구대성이 방패를 들었다. 동료의 오른쪽 어깨까지 보호한다.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은 헌터들은 자연스럽게 구대성을 따라 방패를 밀집시킨다.

-꽝!

구대성을 비롯한 훈련병들은 자신들의 몸이 우악스럽게 밀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극복할 수 없는 질량의 차이가 방어를 관통하고 충격을 주었다.

‘어?’

하지만 트롤의 일격을 막아낸 훈련병들의 뇌리에 공통된 의아함이 스친다.

‘폐하가 돌격하는 것보다 가벼운데?’

‘덩치는 네 배는 차이가 날 텐데.’

‘뭐야, 막을 만하잖아?’

지난 4주간, 그들은 단 한 번도 레온의 돌격을 막아보지 못했다. 조금만 발에 힘을 덜 주면 뻥뻥 하늘로 솟구치기 일쑤였다.

【 최강 돌격자 】

그에 비하면 트롤의 휘두르기 쯤이야 훈련병들의 방진이 비틀리는 수준에서 막아낼 수 있다!

“잘 막았다!”

그 사이, 어느새 트롤의 등 뒤로 접근한 레온이 휘릭! 하고 성검을 휘두르자 대응하지 못한 트롤의 목이 잘려나갔다.

마치 두부에 칼질을 한 것처럼 썰려 나가는 트롤의 목.

-키이이…!

-캬악…!

나름 비장의 수단이었던 트롤이 어이없이 죽어나가자 악마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반면 방어군의 기세는 드높아졌고.

기세가 꺾인 악마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후퇴하기 시작했다. 악마 트롤이 ‘소멸’한 탓이다.

-키이이… 죽었다.

-트롤… 진짜 죽었다.

악마들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물질계에서 육신을 얻고 노니는 불멸의 생명체들이다.

죽는다면 그저 정신계로 돌아갈 뿐, 물질계의 그릇을 잃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금 죽은 트롤은 정신계로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레온이 소환한 성배에 빨려 들어가더니 ‘소멸’했다.

“노, 놈들이 물러난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환호성을 지르는 방어군. 그들이 생존에 기뻐하는 사이 레온과 헌터들에게 한 기수가 다가왔다.

갑주의 상태로 보아 지휘관 또는 기사로 보이는 그는 먼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저희 스페로 왕국을 구원하러 와주신 거군요, 용사님들!”

헌터들이 그 표현에 저마다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스페로 왕국은 악마들의 침공을 받고 있습니다. 마왕의 침공으로부터 왕국을 지키십시오.]

남은 기한 : 1주일

“이런 퀘스트인가…….”

“마왕이라니. 설마 대악마를 말하는 건가?”

“군주급 악마는 아니겠지? 노란색 게이트에서 악마 군주가 뜰 리 없잖아!”

혼란스러워하는 헌터들. 몇몇은 당장 게이트를 빠져나가야 한다 주장했다. 하지만…….

“뭐야? 게이트가 사라졌어?”

“이게 어떻게 된… 설마 변동 게이트?”

“말도 안 돼!”

헌터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승전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절망이 드리웠다.

“조용! 경거망동하지 마라!”

레온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흘러간다. 존재만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사자심왕의 기운은 반쯤 무너질 것 같았던 헌터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이 충분히 조용해지고서야 레온은 입을 연다.

“스피너 경. 그대가 이곳엔 어쩐 일인가?

-이변 관측. 제3의 인물 진입.

야피는 자신이 관측한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레온과 헌터들이 아닌 로브를 쓴 인물. 투명화 마법이라도 썼는지, 적외선으로만 관측된 부외자였다.

“이자가 무언가 벌인 것인가.”

-판단재료 부족.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구대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벼, 변동 게이트입니다.”

“그게 무엇이지?”

“게이트의 이상 현상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게이트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클리어할 때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차단. 공략 난이도의 급증.

안에서 나오는 것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불가하다.

레온은 오크 게이트 때와는 달리 사라져 버린 게이트를 보면서 퇴로가 막혔음을 깨달았다.

“흠…….”

하필이면 훈련병들의 실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우연일까? 모를 일이다.

레온이 고민하는 사이 헌터들의 안색은 실시간으로 어두워져 갔다.

보통 게이트는 사전측정의 난이도에 따라 그에 적합한 공략대가 입찰하기에 급격하게 올라간 난이도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변동 게이트가 뜨면 그 안의 헌터들은 전멸이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들은 생존율이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게이트의 이변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 앞에 사자심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폐, 폐하… 방도가 있으십니까?”

불안에 빠진 헌터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레온은 그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석으로 공략한다. 퀘스트에 따르면 마왕을 쓰러뜨리라 했지.”

“악마군주… 아니면 대악마일 수도 있습니다.”

“흥…! 짐은 악마군주 둘과 서른 마리가 넘는 대악마들을 도살한 사자심왕이다. 짐의 힘을 의심하느냐?”

“오오오…….”

“그래, 폐하는 악마 관련 트레잇만 세 개나 있어!”

【악종의 공포】

【악마군주 살해자】

【최다 악마 도살자】

시스템 메시지로 확인한 악마 관련 트레잇만 이 정도다. 헌터들은 희망에 표정이 밝아졌다.

“…….”

레온은 그것이 신성이 충만했던 자신의 세계에서 벌인 전적임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으로선 악마군주를 상대로 정면승부가 불가함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라는 희망에 기대면 그만이다. 기사는 어느 때라도 굳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 * * *

한편 광주 게이트를 데몬 게이트로 변동시킨 주범 레이날드 쉘먼은 레온이 악마들을 격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중상급 악마인 데몬 트롤을 일격에…….”

아무리 헌터들이 주의를 끌었다곤 해도 저 질긴 트롤의 목을 단박에 베다니… 무엇보다 트롤의 소멸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악마들은 불멸의 생명체들이다. 정신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물질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어디까지나 껍데기에 불과하다.

드론을 원격조정하는 것에 가깝기에 드론이 파괴된다 해도 악마 본인이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자심왕의 검은 베어낸 존재의 ‘죽음’을 강제했다.

정신체의 연결을 타고 올라가 ‘죽음’이라는 결과를 강요한다. 즉, 드론을 조종하던 조종수가 드론이 파괴됨과 동시에 사망하는 것이다.

무시무시하다.

어째서 지혜의 보옥 너머 대악마가 기겁하며 도망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히힛… 히히힛!]

“위대한 존재시여?”

그리고 그런 두려운 존재를 목도하고서도 지혜의 보옥에서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들었다.

[약해졌닷! 약해졌엇!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네놈도 결국 사람이구낫! 키히히히힛!]

약해졌다고? 저게?

보통 트롤도 아닌 데몬 트롤을 일격에 소멸시킨 저자가?

레이날드가 의문을 내비치자 기분이 좋았는지 지혜의 보옥이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히히힛, 놈이 만약 전성기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악마 천마리쯤이 일격으로 소멸시켰을 것이닷! 성력이 충분했다면 성검을 개방했겠짓!]

“성검… 말입니까?”

데몬 트롤의 목을 벴을 때, 잠깐이지만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던 검이다. 그만한 힘이 개방조차 되지 않은 힘이라고?

[흐히힛… 잘 쳐줘도 성배기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인갓! 영락했구낫!]

지혜의 보옥 너머 대악마가 기뻐하자 레이날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대한 존재시여… 그렇다면 당신께서 강림하실 수 있도록 의식을 치를까요?”

[뭣?!]

지혜의 보옥이 당황했다.

[싫닷! 아무리 약해졌어도 놈은 사자심왕이닷! 미쳤다고 내가 가냣!]

약해졌다며…….

레이날드는 불만을 삼키고 물었다.

“그럼 저자는… 누가 처리합니까?”

[흐히힛…! 이곳의 마왕이닷.]

“마왕…….”

퀘스트는 레이날드도 확인했다. 이곳에 마왕이 있다고.

“설마… 정말 악마군주께서 존재하시는 겁니까?”

그런 존재가 있다면 확실히 필승이었다. 대격변 이후로 30년 전쟁의 역사 속에서 악마 군주는 수많은 S급 헌터들을 도살한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

[군주님들이 강림하려면 이깟 게이트의 에너지로는 택도 없닷! 하지만… 군주로 내정된 악재가 이곳에 존재하짓.]

“오, 오오…….”

그 말에 레이날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악마들을 섬기는 인간들은 그 역할의 최후에서 악마가 되기를 소원한다.

악마의 불멸성을 동경하고 자신도 대악마가 되리라 야망을 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악마조차 무색게 하는 군주라니?

[히히힛… 이곳에는 그 추악한 색욕의 악마들이 100년 동안 공들이고 있는 존재가 있짓…! 그것이라면 저 약해진 사자심왕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닷!]

그를 위해선 레이날드가 수족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이 스페로 왕국의 덧없는 희망을 이용해, ‘여왕’을 깨울 것이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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