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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0

376. 레나 Ep – 황제

“시, 신이시여.”

오르빌의 사람들은 신께서 강림하셨다고 생각했다.

고막을 찢는 폭발음에 왕궁을 바라보니 그곳엔 거대한 형상이 일어서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자신의 영원한 도시, 오르빌과 놀라 자빠진 시민들을 내려다보았다.

레오넬이 짓고, 레이시아가 낳은 아들과 그 후손 황족의 피에 깃들어 본인이 수천 년을 보살펴온 도시다.

대공은 새삼 뜨거운 감회를 느끼며 선언했다.

– 오르빌! 이 아름다운 도시는 날 이루는 자양분이 되리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오르빌 전역에서 검은 이끼가 피어올랐다.

곰팡이 포자처럼 번져가는 그것은 둡, 사형수의 담요였다. 대공은 대지가 충분히 물들자 이번엔 팔을 들어 하늘을 그러쥐었다.

태양을 일찍 내려보내고, 홍련달을 불러오려 한 것이다. 이때, 아스타로트의 몸이 휘청였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그의 다리 부근을 마구 베어대고 있었다.

“누가 붙잡혔어!”

“잘라 내!”

게다가 일치단결해 몰려드는 교회 놈들과 귀족, 기사, 병사들까지.

아스타로트는 갈라진 얼굴을 씰룩이며 불쾌해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인자하게 속삭였다.

– 훼방을 놓는 자식들이 많구나. 레이시아, 봐라. 저것들이 모두 너와 네 오라버니의 자손들이다.

“히익! 놔, 놔줘!”

– 나 또한 비슷하지. 네 후손의 피에 담겨 쭉 살아왔으니… 그럼 그 옛날에 못다 한 것을 하자꾸나. 아! 그 전에.

아스타로트가 무너진 왕성 천장을 일부 뜯어냈다. 레오넬을 붙잡기에 앞서 그를 오래도록 괴롭혀온 놈부터 작살 낼 요량이었다.

바로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다.

후작은 그새 저 멀리까지 도망쳐 있었다. 인파에 둘러싸여 안전을 넉넉히 확보하고는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증스러운 놈.

아스타로트가 손에 쥔 것을 던졌다. 바윗덩어리는 그의 손아귀 힘에 산산조각나 후작과 병사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후작은 그마저도 예상했는지 여유 있게 소리쳤다.

“이렌느!”

다만, 그녀가 움직이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 * *

– “그대는 후작이 토턴 타티안을 죽였다는 걸 아는가? 아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었구나.”

저택에 손님으로 머물게 된 레안 드 예리엘 왕자가 흘린 말이었다.

그는 딱하다는 듯 두 통의 편지를 넘겨주었고, 이렌느는 그걸 속수무책으로 읽었다. 그러고서야 오래도록 품어온 짝사랑에 결별을 고할 수 있었다.

/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님께.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 하겠습니다. 일전에 만난 따님은 분명 아름답고 현숙한 분이셨습… (중략) …그러나 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기에 더 이상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길 듯합니다. 크세니아 양 앞에 멋진 신사분이 나타나길 기원하겠습니다. 토턴 타티안 올림. /

/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백작님께서 거듭 요청하시니 고하겠습니다. 그녀는 귀족 영애가 아닙니다. 신분에 결함이 있으나 올곧은, 기사님입니다. 제 아버님께는 비밀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것이 짝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렌느는 저에게 쓰여지지 않은 연서(戀書)를 수도 없이 되읽었다.

그 두 통의 종잇장에서 토턴 님이 남긴 향기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베나르 타티안 후작을 향한 충성심이 너덜너덜 마모될 때까지.

이렌느는 날아드는 바위를 보았다.

고개를 돌려 저를 부르는 후작 또한 눈에 담았는데, 다행히도 그와 그의 아들은 요만큼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이런.”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었음일까. 후작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이렌느는 땅을 박찼고, 찰나의 순간, 바윗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피로 얼룩진 바윗돌들.

분노에 몸을 맡기고, 명예를 저버린 여기사는 돌아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자결하기보단 처절하게 싸우다 죽기 위하여.

토턴 님!

사랑합니다.

감히 사랑했습니다.

싸움에 한 조각의 불길이 더했다.

* * *

“뭐라도 좀 해 봐요! 이대로는 그냥 죽으러 가는 거잖아!”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내 이름은 레라 아이나르!

‘ㅔ’ 발음이 긴 전사님… 이신데, 지금은 자기소개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악신이 강림했다.

물론 잡으러 온 것이긴 하지만, 녀석이 상상 이상의 괴물이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든다.

녀석은 일단 거대했다.

희끄무레한 회색 형체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놈의 산양을 닮은 굽은 다리만이 우리가 공격해봄직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녀석의 다리로 몰려들었는데, 악신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산양 다리에 털 대신 달린 비늘이 도검의 침입을 막았다. 한 손에는 웬 공주님이 붙잡혀 있고, 녀석은 남은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사뭇 여유로운 동작이다.

그럼에도 그 독수리 갈퀴가 어찌나 빠른지 전방에는 뿌연 피구름이 일었다. 그나마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백색 오러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버텨주는 덕분에 몰살을 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되려 우리 진형이 무너지지 않는 게 놀랍다. 누구라도 공포에 질려 달아날 법한데.

[ 업적 : 왕 6/6 – 레오들에게 <사기 고취> 능력이 부여됩니다. time(1y) ]

“이것 놔! 내 동생이…”

“못 놔! 레안! 정신 차려! 너까지 붙잡히면 끝장이야.”

그 와중에 우리 쪽에는 문제가 생겼다. 악신의 손에 붙잡힌 소녀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며, 레안 왕자가 발작한 것이다.

고귀한 왕자님의 발작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 생각했는데, 레브 경이 막아섰다. 무엄하게도 왕자의 목에 팔을 걸어 끌어안았다.

휴.

저만하길 다행이다. 나는 다시 악신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물론 여전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레이. 어쩌지? 이대로는 가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데.”

“…그러게. 레아 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레아 씨는 지팡이랑 황동 술잔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지팡이? 황동 술잔? 그게 뭔데?

레아 씨는 난처하다는 듯이 고개 숙였다.

“지팡이는 지금은 쓸모가 없고, 술잔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신력을 불어넣어 봐도 잡아먹기만 하네요. 죄송해요.”

“흠…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저희한테 축복만 넉넉하게 내려주세요. 레라, 가자.”

레이는 무언가를 주저하듯 고민하더니 검을 뽑으며 뒤돌아섰다.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음? 우리가 가서 뭐 어쩌자고. 소드마스터님도 저러고 계신데.”

“내가 뚫어줄게. 네가 공격해.”

“뭐? 네가 무슨 수로?”

레이는 대답하지 않고 악신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뚜벅.

그 뒷모습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악신과 대비돼, 무척 하찮게 보이면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레이는 옥쇄(玉碎)를 각오했나 보다.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해서 뒤따라가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동물 내음.

아직 절반밖에 오지 않았음에도 놈은 산처럼 거대해졌다. 고개를 한계까지 치켜들어 봐도 시선이 녀석의 복부 즈음까지밖에 닿질 않는다.

진짜 왜 사람들이 달아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까는 그렇게 공포스럽더니. 너무 무서워서 공포심이 마비된 것일까? 그리고 저걸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 거야, 젠장. 말도 안 되잖아.

그때였다.

악신이 허리를 굽혀 우리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다음 소드마스터가 왔구나. 포르테 백작. 재미있었다.

여태껏 가만히 있던 다리가 움직였다. 덩치가 너무 커서 움직이지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 발굽이 달린 다리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커헉!”

“으악!!”

비현실적인 움직임이었다. 커다란 것은 그만큼 느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깨고, 헤르만 포르테 백작을 걷어차 버렸다.

그 발길질에 휩쓸린 사람들 수십 명이 터져서 허공을 수놓는다.

[ 아스타로트 대공의 압도적인 무위에 <사기 고취> 지속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27’초 남았습니다. ]

뿜어진 피보라를 맞으니 그제야 공포감이 몰려들려 했다.

무섭다.

저건 못 잡는다. 불가능하다.

악신이 다시 걷어차려는지 다리를 뒤로 빼고, 나는 레이를 붙잡아 옆으로 밀치려던 순간이었다.

놈의 손에 붙잡힌 소녀가 기진맥진해 늘어지고, 절망이 드리운 그 순간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 소년은 왕궁의 중앙 홀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잔해를 떨치며 ‘올라’오더니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 청량한 음색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 히히힝!!

거대한 흑마를 소환했다.

마수, ‘도흑포마’가 악신을 들이받고 하늘이 내려앉았다. 나는 낮아진 하늘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네 사람을 보았노라 증언할 수 있다.

가시 면류관을 쓴 고결한 희생의 여신, 보아르.

머리를 풀어 헤친 인내와 헌신의 신, 나메르.

한없이 깊은 눈으로 악행을 뚫어보는 계도의 신, 비나르.

그리고 어깨엔 방패, 등에는 검을 매단 전투와 명예의 신, 라차르였다.

땅을 뚫고 올라온 소년은 훌쩍, 도흑포마의 등에 날듯이 올랐다.

아스타로트 대공이 주신의 네 화신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말 등을 박차고 오러블레이드로 빛나는 검을 꺼내어 대공의 손목을 잘랐다.

“레안! 민서가 왔어!”

레브가 목청껏 소리쳤다. 레안도 민서의 품에 무사히 안긴 동생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 아스타로트. 오랜만이구나.

라차르 신이 이죽거렸다. 아스타로트는 제 손목이 잘린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양팔로 머리를 감싸며 분통을 터뜨렸다.

– 네, 네놈들이 왜 여기에… 아. 주신이 약속을 저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로구나! 이 더러운…

= 아니에요. 저희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영웅의 부름을 받았을 뿐이랍니다.

보아르 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수록 면류관의 가시가 그녀의 머리를 더 깊게 파고들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 저분이 우리의 네 신전을 모두 열었거든요. 이건 아즈라도 해내지 못한 일이에요.

= 보아르, 설명은 그만둬. 천벌의 때가 도래했다, 아스타로트. 만물의 흥망은 필연적이니 네놈의 오만함도 끝을 맞이하리라. 이날을 위해 주신께서는 세 줄기의 강을 놓으시고…

[ … ]

비나르 신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동안 나메르 신은 침묵했다. 그것의 이유를 아스타로트는 알고 있었다.

– 헛소리 마라, 비나르. 오늘 난 죽지 않는다. 굴레에 묶이지 않은 내가 그렇게 마음먹었으니 나에게 영원한 미래가 준비되었을 것이다!

아스타로트의 반박에 그 말 많은 비나르 신마저도 대답이 궁색한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굴레에서 풀려난 아스타로트는 잡는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아즈라 성인조차 놈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이고.

하지만 라차르 신은 끌끌, 미소 지었다.

= 오늘은 다를 테니까 길고 짧은 건 대보자고. 바눈. 나와라.

–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환생한 제 몸이 죽어가고 있군요.

라차르 신의 어깨에 한 인형이 나타났다.

바눈 라우노. 그가 손가락질한 곳은 조금 전에 민서가 뚫고 올라온 통로였다. 거기에는 바린 경과 닐, 웬디 경이 잔해를 해치며 올라서고 있었다.

레리아나 공주를 쫓아온 것이다.

그들은 웬 새파랗게 젊은 소드마스터(민서)의 도움을 받아 철문을 통과하였고, 도중에 공주님을 데려갔던 산티안 라우노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 치료를 위해 일단 업어서 데려오긴 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님을 깨닫곤 바닥에 내려놓았다.

라차르 신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 치료했으니 가라. 가서 원 없이 살아보아라. 그리고… 나메르. 슬슬 하지.

[ 알았다. ]

네 화신이 손을 맞대어 아스타로트를 내리눌렀다. 아스타로트 대공이 분노를 터뜨렸으나 그들은 자기 할 일에 충실했다.

지상, 사제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아아! 놈이 작아집니다! 줄어들어요! 이것이 신의 은총입니다!”

“오! 감사합니다. 신이시… 어?”

아스타로트 대공은 억지로 뽑아낸 강림체를 잃어버렸다. 허나 그에겐 아직 남아있는 몸이 있었다.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의 육신이었다.

얼굴을 불쾌하게 일그러뜨리며 일어선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 그가 한 마디의 영창을 뱉었다.

“제국의 창.”

홍련달을 깎아 만든 창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하나는 손에 들리고, 나머지 수백 개는 둥둥 떠올라 어리석은 백성들을 조준하였다.

그가 바로 수천 년 역사를 견인한 황제이기에, 만인이 무릎 꿇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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