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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4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83 >

베를린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초청장이 날아왔다.

주변국 정상들은 다들 나와의 만남을 희망했고, 블랑 대통령은 내 손을 붙잡으며 꼭 파리에 와달라고 요청했다.

EU 정상회의 참석에 대한 얘기도 오고갔다.

기업인과 정치인들 만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머물고 있는 호텔로 한 일본인이 찾아왔다.

이름은 오카모토 타케오.

다름 아닌 일본 외교를 총괄하는 외무상이다. 오카자키 총리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 온갖 망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국도 일본도 아니고, 베를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아마 상대방 역시 몰랐겠지.

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일전에 만났을 때 저한테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오카모토 외무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니시다증권 사태 당시 그는 OTK컴퍼니를 방문했지만, 난 정문 앞에서 돌려보냈다. 차에 올라타며 그는 나에게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겼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적어도 내가 후회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오카모토 외무상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내가 가진 돈과 기술이 곧 내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그의 표정과 태도는 이전과는 크게 달라보였다.

“제가 시작한 일도 아닌데, 제가 원하는 게 뭔지가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일본이 뭘 원하느냐는 거죠.”

“일본정부가 원하는 것은 일한관계의 조속한 회복입니다. 양국의 분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니시다증권 주문실수에 대해서는요?”

“향후 더 이상 정부차원의 배상이나 사과 요구는 없을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당연하네요.”

이미 일본대법원의 판례가 있는 만큼 애초에 내가 돌려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강하게 압박한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얼마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힘이 있어야 가진 것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만약 힘이 없었다면, 토요타 주식은 진작 반환했을 테고, 이번 일도 내가 먼저 찾아가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럼 이제 강진후 대표님이 원하시는 걸 듣고 싶습니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습니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일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 * *

일본 하야시 내각관방장관이 언론 앞에 발표했다.

“일한관계의 발전을 위해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일본정부는 전쟁범죄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청와대는 바로 일본의 결정을 환영하고,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서로 노력하자며 화답했다.오카자키 총리는 허창민 대통령에게 전화했고, 둘은 한 시간 가까이 통화하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한일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부정하던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대통령과 새정치당 지지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른 야당들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자유국민당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계속 과거사 문제제기가 국민분열을 일으킨다며 정부를 비난해 왔는데, 일본 쪽에서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간담회 진행 도중 소식을 들은 연나경 대표는 재빨리 딴 소리를 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저희 자유국민당 의원님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언론의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저희 당 의원님들의 노력이 외교적 성과로…….”

하도 어이없는 발언에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져 나오며, 간담회장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연나경 대표의 머리 위에는 ‘일본 자민당의 정권복귀와 오카자키 총리 자민당 우위체제 구축’이라고 써진 현수막이 나부꼈다.

-응? 니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숟가락을 얹어?

-자유국민당이 뭔 노력을 했다고?

-그럼 전부 청와대와 새정치당 덕분이라는 건가요?

-아니, 걔들도 한 건 없고, 강진후가 다 했지~

-그런데 저 현수막은 뭐야? 저거 합성 맞죠?

-당연히 합성입니다. 종북좌파 언론사 새끼들. 이런 합성사진으로 애국보수 자유국민당을 비난하다니! 당장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해 콩밥 먹여야한다.

-ㅋㅋㅋ 믿기지 않겠지만 저거 진짜임.

-와씨! 저게 말이 돼? 여기가 뭔 일본 국회도 아니고.

-그런데 강진후 진짜 대단하다. 혼자서 일본을 물 먹인 거야?

-자본과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ㅋㅋㅋ 2조 엔 넘는 돈은 결국 배상 한 푼 안 하고 다 먹었네. 꺼어억!

-강진후가 토요타 주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협상의 여지라도 있었겠지. 그런데 장내에서 다 팔았고, 돈을 챙겨 떠났잖아. 이제 와서 돌려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

-연카자키 마음 아프겠다ㅜㅜ

-일본을 위해 자유국민당이 나설 때입니다! 항의표시로 의원직을 총사퇴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연나경 대표님이 제일 먼저 삭발하고 대정부투쟁에 나서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발표 이후 은근슬쩍 제재를 풀었고, 소재와 부품을 잔뜩 실고 있던 컨테이너선들은 재빨리 대한해협을 건넜다.

한일관계가 해빙모드로 돌아서자 러시아와 중국도 태도를 바꿨다. 로사톰은 TWR 프로젝트에 다시 일본 원전업체들을 참여시키기로 했고, 중국은 반일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일본 단체관광을 다시 허용했다.

눈치를 보던 유럽과 미국 완성차업체들은 다시 일본기업에 부품을 발주했고, 일본내 관련 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역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본혁신회 가토 나카무라 총재만은 목소리를 높여 오카자키 총리와 한국을 비난했다.

“일본의 굴욕외교다! 한국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한국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때까지 제재를 풀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지지자들이 호응해줬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때리고 있을 때와 맞고 있을 때는 사정이 다른 법이다.

일본 경영자단체는 공동성명을 내며 일본혁신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체 셀프 제재로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일본기업만 피해를 보는 제재를 왜 계속하자는 거냐?”

“한국이 예전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왜 모르나?”

“가토 총재는 자꾸 말만 하지 말고 항의표시로 할복이라도 해라!”

* * *

난 택규의 전화를 받았다.

[뭐야? 왜 벌써 그만해? 연나경 대표가 일본을 외통수로 몰지 말라 그래서 그만하는 거야?]

“……그런 말을 했었어?”

자유국민당이 하는 말에 신경도 안 써서 잘 몰랐다.

“이제 그만할 때 됐잖아. 로날드도 적당히 하라고 하더라.”

일본의 로비로 워싱턴 정가가 움직이려는 것을 로날드가 억지로 막고 있었다. 만약 분쟁이 더 커지면, 미국이 중재에 나섰을 것이다.

[아깝네. 이거 끝까지 갔으면 완전 재밌었을 텐데.]

“별로 재미없었을걸. 센카쿠열도 분쟁 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봐.”

2010년,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인 선장을 체포했고, 중국은 이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중국정부는 늘 쓰던 방식대로 일본관광 금지와 희토류 수출금지로 일본정부를 압박했고, 결국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처벌 없이 석방했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중국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양국관계는 극도로 악화됐고, 일본인들은 굴욕외교라며 분노했다. 간신히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이는 결국 자민당의 재집권과 오카자키 총리 등장으로 이어졌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자충수를 둔 셈이다. 그리고 중국이 언제든 희토류를 무기로 일본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일본은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폐전자부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중국으로부터 희토류 수입을 크게 줄였다.또한 일본자본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빠져나가며, 중국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만약 내가 멈추지 않는다면, 일본 역시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 내민 손을 잡는 게 좋겠지.

“일본이 죽는 소리 해봐야 진짜로 죽기야 하겠어?”

전 세계에서 일본 우습게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말처럼, 일본이 지닌 경제력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뭔, 동양의 섬나라 GDP가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도 높다. 그리고 그만큼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원전이나 자동차에서 뒤처진다고 해서 쉽게 휘청거릴 나라가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본은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 외교나 군사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은 한국에도 좋지 않다.

무역은 한쪽이 손해를 보면, 다른 쪽이 이익을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물류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무역은 양쪽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

애초에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한국 덕이 크다.

한국전쟁 특수도 있었지만, 그 뒤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엄청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바로 옆에 거대한 시장이 생겨난 셈이다.

냉정하게 말해 식민지배로 수탈해 얻은 이익이라고 해봐야, 그 후 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사실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이 했던 식민지배는 그다지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의 인프라 구축과 관리에 비용이 더 들어가거나, 식민지를 개발하느라 정작 본국 개발은 뒷전으로 밀리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식민지배가 사라진 이유는 노예가 사라진 이유와 같다.

일하기 싫어하고 도망칠 궁리만 하는 노예를 감시까지 붙여가며 부리는 것보다는 월급을 주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낫다. 더 중요한 사실은 노예는 소비를 하지 않지만,노동자는 소비를 통해 기업을 살찌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식민지배로 총칼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털어먹는 것보다, 차라리 경제를 성장시켜 무역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가난한 나라가 먹고살 만해지면, 그 나라 국민들은 옷도 사고, 스마트폰도 사고, 자동차도 산다.그리고 스마트폰을 쓰기 위해서는 기지국을 세워야 하고, 자동차를 타기 위해서는 도로도 깔아야 한다. 그만큼의 시장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각종 지원을 하며 성장을 돕는 것은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조를 받던 한국이 지금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 된 것처럼.

“미국도 미국이지만, 러시아가 정말로 TWR 프로젝트에서 일본을 완전히 배제시키거나,일본자본이 빠져나가도록 놔둘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경제협력과 영토분쟁 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잠시 내 장단에 맞춰줬을 뿐이지.”

덕분에 서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비소츠키 대통령도 지지율이 크게 올라 흡족해하고 있고.

택규는 입맛을 다셨다.

[쩝, 그럼 어쩔 수 없겠네. 그럼 이제 유럽 애들이랑 구매협상도 그만하는 거야?]

“뭔 소리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제부터 시작이지.”

다시 말하지만, 1년에만 대일무역적자가 30조 원이다. 물론 그렇게 수입한 소재와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해 다른 나라에 팔아 돈을 벌고 있으니 실제로는 이익이지만,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일관계가 어떻게 되든 수입처를 다변화시키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을 금지시키자 일본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기술개발을 했듯이, 한국도 그럴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제재를 풀면서 이제 다급해진 것은 유럽업체들. 한국 바이어들은 이제 양쪽을 경쟁시키며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과 계약을 하면 된다.

[오! 똑똑한데?]

사실 내 생각은 아니다.

“이거 현주 누나 생각이었잖아.”

현주 누나는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얘기해주었다.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확하게 맞췄다는 게 놀랍다.

역시 골든게이트 지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83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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