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387

EP.386 15. 프랑켄슈타인의 후계자 (40)

이고르는 상대가 어떻게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이고르의 괴물 서커스단>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세월이 무려 4년이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단서를 충분히 흘려 두었다. 언젠가 자신을 찾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실제로 그의 활동에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찾아온 사람이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한 명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조수였고, 다른 한 명은 박사가 만든 창조물이었다. 둘은 반가운 사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었지만, 서로를 통해 오랜만에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본 것에는 감사했다.

이고르는 천막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던 곳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마 눈앞의 남자가 모두 제압한 모양이었다.

“나를 찾은 용건이 뭐지?”

“잠시만요. 우선 이분부터 치료하고요.”

금발의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요정을 손에 들었다. 루미는 그의 손길을 피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그의 어깨에 흐르는 피를 보고 행동을 멈췄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보호하다 다친 것을 깨닫고는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 그, 거, 거기는 괘, 괜찮아?”

“고작 한 대입니다. 당신 걱정이나 하시죠. 당신은 수십 대나 맞았잖습니까?”

“우, 우웅, 그, 그렇지만……하, 하악! 뭐, 뭐 하는 거야……히익!”

그는 그녀의 몸을 갑자기 손으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베티에게 시달린 경험 때문에 자신을 애완동물이나 인형처럼 취급하는 것은 질색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그의 행동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이거 놔! 나, 나 이래 보여도……아, 아가씨라고! 작다고……요정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지만, 금발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주무르는 것을 반복했다.

“치료 중입니다.”

“뭐?”

“가만히 계십시오.”

“흐앗!”

그는 그녀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녀가 입은 상처들이 하나둘 낫기 시작했다. 이고르는 그 장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데볼루트를 제법 통제할 수 있게 됐군?”

“아직 미숙합니다.”

그의 무뚝뚝한 대꾸가 이고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식의 태도. 누구는 몇 년 동안 연구하고 연구해도 그 힘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금발 남자를 바라보며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사람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 ‘진짜’ 같구먼. 응? 성자 나으리 다 납셨어.”

그의 빈정거림에 실험체 24601호의 손이 멈췄다. 이고르는 그가 격분하리라 생각했다. 방금 자신이 건드린 것은 그의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그는 잠시 이고르를 바라보다가 다시 요정을 치료하는 일에 열중했다.

“아까 제게 당신을 찾아온 용건에 대해 질문하셨죠.”

이고르는 상대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감정 표현에 서툰 건 여전했지만 정신 자체가 불안정했던 옛날과 달리 꽤 차분해졌다.

“그래.”

“저는, 아니, 우리는 키르쿠스를 위한 대제전을 계획 중입니다.”

“뭐, 뭐라고?”

이고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그가 꺼낸 이야기는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기껏해야 누나들이 보고 싶다는 둥, 몸 어딘가 찌뿌둥한데 수리해달라는 둥 같은 부탁을 하려고 찾아온 줄 알았는데…….

“당신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박사님의 연구서는 가지고 계시죠?”

“그렇긴 하지만…….”

“자세한 건 조금 있다가 얘기하죠.”

밖에서 두 남녀가 루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레오와 루마가 친구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야영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루미는 친구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자신을 구해주고 치료해준 남자의 얼굴에 고정했다.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 남자에게 몸 구석구석이 주물러지고 말았다. 요정들의 세계에서는 벌거벗고 사는 이들이 많았지만, 인간들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는 그것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꿈틀대는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만진 것에 대한 분노도 아니었다. 그녀는 이 두근거림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자, 요정 아가씨, 이제 아픈 곳은 없죠? 어서 동료들 곁으로 가세요.”

그가 손짓하자 루미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가 뿌린 수면 가루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잠들기 직전의 기억이 꿈속의 일인 것처럼 희미해질 것이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두 친구의 얼굴이었다.

“어, 루미 깼니?”

“안심해. 우린 서커스단에서 상당히 멀리 벗어났으니까.”

루미는 그들을 보고도 선뜻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무언가 빠진 게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든 소중한 무언가가…….

친구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보고 서로 미소를 교환했다.

“네 꿈 모음집 찾는 거지?”

“네 머리맡에 있어.”

루미는 침대 위에 있는 상자를 보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그녀의 보물인 메모리 디스크들이 꽉꽉 담겨 있었다.

그래. 나는 어제 이걸 찾으러 천막으로 돌아갔었어. 그리고 단장한테 들켰는데……레오가 날 구하러 와줬었나?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두 친구가 달려왔었다. 루미는 어제 자신을 지켜주었던 단단한 등을 떠올렸다. 아마……레오의 것이겠지?

-자, 요정 아가씨, 이제 아픈 곳은 없죠?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친구를 바라보니 그가 이제 그냥 평범한 친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무려 25년이 걸렸다.

***

루미는 기절해버린 원더스타인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가 방금 자신에게 건넸던 말은 25년 전에 들은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 자신으로부터.

그래.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내가 누군지. 그날 나를 구해준 사람은 바로 너였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원더스타인은 처음 만났던 날부터 유난히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마치 이전부터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의 정체가 요정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부터 그는 그랬다. 마야가 길거리에서 환상 마법 시연을 할 때부터.

-아르노 단장님이시죠?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반갑습니다!

-나를 아시오?

-아……그, 하하, 아르노 단장님만큼 유명한 분을 모를 리 없죠. 잡지에서 봤습니다!

그때 원더스타인의 얼굴에 떠올랐던 반가움. 그건 분명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그를 웃음이 헤프고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는 이후에 만났을 때도 자신의 숨은 약력이나 개인 정보를 알고 있는 티를 냈다.

-은막의 환상 쇼 ‘키네마’는 아르노 단장님이 길거리에서 인형극을 보고 떠올린 것이죠. 인형 대신 환상을 무대 위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발상으로…….

-저는 은막의 매점에서 레몬 치즈 케이크를 추천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단장이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제일 맛있게 준비했겠죠?

-공작님의 엄명 때문에 우리 ‘다섯 곡예사’ 팀은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제가 요리를 다 해야겠군요. 오늘 오후 간식은 꿀과 잣, 그리고 화전(花煎)입니다! 하하, 아르노 단장님이 공연 직전에 꼭 드시곤 하는 음식이죠? 아쉽게도 노란색 국화는 구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희 영감님, 아니, 스승님께서 로즈마리를 조금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도 그녀는 그가 자신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다고만 여겼다. 그가 말했던 내용은 잡지나 신문에 한 번씩은 인터뷰했던 내용들이니까. 종종 내가 그런 것도 밝혔었나 싶은 자세한 부분도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취미잖아요. 이런 장면들 디스크에 담아서 모으시는 거.

아예 외부에 말한 적도 없는 내용을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야가 아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마야의 성격상 그런 얘기를 원더스타인에 털어놓았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요정이라는 것도 모르는 애가 자신의 취미나 취향에 대해 아빠에게서 들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는…….

생각이 거기에 미친 루미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 왔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됐다. 자신의 숨겨진 약력을 알고 있는 것도, 숨겨진 취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도.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왜 지금까지 자신에게 그가 자신을 구해준 적이 있음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나이를 먹지 않는 점은 수상하긴 했지만, 원더랜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가 평범한 몸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그걸 들키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게 들키기 싫었다면 애초에 자신과 거리를 뒀을 것이다. 주변에서 괜히 얼쩡거리다가 자신이 어느 날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는 계속 그녀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마치 알아채 달라는 듯…….

아. 루미는 탄식을 삼켰다.

그는 설마…….

-요정은 동심을 잃으면 날개가 떨어져.

-인간 세상에서의 기억들은 다 기억하기 싫은 것들뿐이야. 애완동물로 팔려 갔던 것도, 괴물 서커스단 생활도, 우정이 깨진 것도.

-그래서 계속 환상 속에 숨어서 지냈어.

네가 말하면……혹시 내 상처를 자극할까 봐……. 그래서 내가 기억해줄 때까지……내가 스스로 환상을 벗고 나올 때까지……기다렸던 거라고? 너 정말 그랬던 거야?

“진짜 바보구나…….”

루미는 기절한 그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능청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자신과도 반쯤 장난식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가 사실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었던 거라니.

그녀는 그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잠든 사람에게 이러는 거는 왠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오랜 악몽 속에서 자신을 꺼내준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포개지려는 순간.

-오웨오오옹!

고양이 한 마리가 털을 바짝 세우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녀석은 살기 어린 눈으로 루미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르노 단장님.”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새하얀 피부의 소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항상 졸린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금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루미는 화들짝 놀라 원더스타인에게서 재빨리 떨어졌다.

“으, 응?”

마야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고는 그녀를 노려봤다. 아빠 연배의 선배님을 대하는 것이라기에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으나 루미는 지은 죄가 있어서 거기다 대고 뭐라 항의하지 못했다.

“단장님께서 뭘 하라고 했는지 들었죠?”

마야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살기가 진득이 배어 있었다. 루미는 재빨리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으, 응응!”

“그럼 가시죠.”

마야가 단원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턱짓했다. 그녀는 루미가 원더스타인 옆을 떠나기 전까지 절대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루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재빨리 그곳에서 벗어났다. 비록 뭔가 켕기는 사람처럼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는 그녀였지만 마지막으로 원더스타인을 돌아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럼 갔다 올게. 기다려줘.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이제 그의 몸에 걸린 저주가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괴물 서커스단의 단원들은 원더스타인이 일러준 마지막 공략을 준비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