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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

39화 게이트 속 왕국

스페로 왕국.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평화로운 왕국은 풍전등화의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악마들의 침공과 차례차례 무너지는 도시들. 끝내 인간의 도시는 최후의 왕성만을 남겼고, 그곳에서 인간들은 결사항전 중이다.

“라는 테마입니다.”

“테마라?”

스페로 왕성 내부의 한 술집. 그곳에서 구대성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게이트란 것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풍경을 가졌었지.”

“예, 서울역 게이트 같은 필드 사냥형 게이트가 있는가 하면 던전형도 있고, 오크 게이트 때처럼 NPC 퀘스트형도 있지요.”

레온은 지구에 오고 나서 네 개의 게이트를 체험했다.

처음에는 호남 평야의 던전형 게이트.

그곳에서 보스 몬스터 듀란달을 쓰러뜨리자 게이트는 클로징됐다.

둘째는 청주 게이트.

야크트 스피너가 지혜의 보옥 유출을 막아서던 그곳은 사이버펑크라는 테마를 가진 세계관이었다.

생존자라곤 야피 한 기뿐이라 테마가 그리 의미는 없었지만.

셋째가 서울의 삼전역 게이트.

오크들이 출몰하여 그들의 부족연합 중 하나를 도우라는 것이 테마였지만, 레온이 무지성 돌격으로 모조리 도륙을 냈었더랬다.

이 네 번째 게이트는 그동안 겪은 게이트 중에서도 오크가 출몰한 삼전역 게이트와 비슷했다.

“이번 게이트는 오크 게이트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구대성은 레온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창을 확인하며 말했다.

“퀘스트 클리어에 조건이 달려있습니다.”

“조건이라?”

“예, 시간제한입니다.”

[스페로 왕국은 악마들의 침공을 받고 있습니다. 마왕의 침공으로부터 왕국을 지키십시오.]

남은 기한 : 1주일

그렇다.

퀘스트 조건은 일주일 동안 왕국을 지키라고 되어있다.

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알 수 있었던 사실이다.

“즉, 저희는 왕국을 일주일 동안 ‘지키기만’하면 됩니다. 그럼 게이트도 클로징 될 것입니다.”

“이상하군. 내 알기로 게이트에는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있다 들었다. 기간이 지나면 균열이 일어나고 내부의 몬스터들이 뛰쳐나온다 들었다만?”

몬스터 뿐만이 아니다. 내부의 넘치는 마소가 흘러나와 땅을 오염시키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든다.

그를 막기 위해 클로징 하지 않고 관리 중인 게이트도 꾸준히 내부 몬스터들을 청소하지 않던가.

“예, 일반적인 게이트라면 그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이런 ‘명시된 퀘스트’는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내부를 싹 청소하지 않아도 클로징이 됩니다.”

그것은 지금껏 인류가 대격변 이후 쌓인 데이터에 의한 증명이었다.

변동 게이트조차 이따금씩 발생했으므로 구대성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김진수 과장이라 했나.”

레온은 제 앞에 놓인 식사들에 결코 손대지 않으며 한창 식사 중인 김진수에게 시선을 던졌다.

“옙, 폐하! 말씀하십셔!”

협회의 직원인 그는 본래 훈련병들의 성장을 목격하고 그들의 등급을 재측정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본래 짐은 나서지 않을 예정이었다. 허나, 사태가 급박한 바, 짐과 스피너 경이 나서도 그대의 평가에는 변동이 있겠나?”

“으음…….”

본래라면 헌터들’만’의 능력을 평가해야 했다. 레온이 나선다면 일이 너무 쉽게 처리되는 탓이다.

김진수 과장은 고작 4주의 훈련으로 만년 D급들이 성장하리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오늘 있었던 전투로 그들을 재평가했다.

그들은 확실히 성장했다. 고작 4주… 고유 스킬도 없는 이들이 어지간한 C급 이상… 레온의 강화 트레잇 덕에 가히 B급 탱커 수준의 활약을 보여줬다.

대체 ‘뭘’ 먹고 자랐는지 육체강도도, 신체능력도 월등히 상향되기도 했고.

“음…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재량은 협회장님께 부여받았지요.”

“오오…!”

“이, 이번에는 승급할 수 있는 거야?”

협회 직원의 공인이 있자, 헌터들의 기세도 올라갔다. 하지만 여전히 활약 여부에 따라 평가점수를 매긴다는 그의 말에 단호히 의지를 불태웠다.

“한 가지 더.”

레온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오크 게이트에서처럼 퀘스트 조건이 바뀌고 히든 퀘스트 요소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이번 게이트에서 그러한 요소가 짐작되느냐?”

-으음…….

-히든 퀘스트인가…….

-오크 때처럼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들은 히든 퀘스트를 오크 게이트 때 처음 봤다. 퀘스트의 전제를 부숴버리는 레온의 행동에 퀘스트 자체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가능성은… 물론 있을 것 같습니다. 김 과장님은 비슷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으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게이트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사례가 없지는 않다.

구대성은 어째 불안해졌다.

“저… 폐하. 혹시 무슨 생각을…….”

“마왕을 주살해볼까 한다.”

“허업…!”

그 말의 뜻은 명료했다. 숫자를 셀 수 없는 악마들을 모조리 도륙하면서 침공의 원인인 마왕까지 잡아보겠다 아닌가?

이건 오크 게이트 때보다도 큰일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만신전 길드의 대량살상병기 야피가 있었다.

“폐, 폐하, 그래도 굳이 위험한 길을…….”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을 무리시킬 생각은 없느니. 짐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한다.”

그 말에 안도하는 헌터들. 레온은 타고난 사령관이다.

왕성의 성벽과 스페로 왕국군을 내버려두고 헌터들 50명만 데리고 마왕을 공략한다는 건 자살행위다. 자신 혼자라면 모를까.

“승전을 기념하며 오늘은 푹 쉬어라. 내일은 이 왕국의 사령관을 만나는 건 짐이 할 터이니.”

“예, 폐하!”

레온은 헌터들을 뒤로하고 왕국 기사가 마련해준 제 방으로 올라갔다. 성배를 소환하고 오늘 죽인 ‘데몬 트롤’의 마기를 갈무리한다.

성배는 악성을 소멸시키면서 그 에너지를 성력으로 치환하는 힘이 있다. 레온이 제 세계에서 천만이 넘는 악마들을 도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설마 짐승들의 우두머리까지 흡수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고크록의 팔 한쪽을 흡수해 치환한 에너지로 성배의 기능을 회복했다.

데몬 트롤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무리 없이 만신전과 연결할 정도는 되었다.

[레온, 나의 첫 번째 기사여.]

“아리아나시여. 평안하십니까.”

신을 강림시킬 순 없지만, 제 심장 속에 있는 만신전의 신성과 잠시 대화를 나눌 순 있었다.

아리아나가 말했다.

[느꼈느냐?]

“예, 이 게이트는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레온은 전투가 끝난 뒤에서야 그 묘한 기운을 느꼈다.

“피부에 와 닿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눈치채는 게 늦었습니다.”

[살아있는 육신을 가진 너로서는 쉬이 눈치챌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 세계에 녹아든 기운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 세계에 사자심왕조차 자연스럽게 느낄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

“마왕이라는 자겠습니까? 군주급 악마라면…….”

[미묘하구나. 그만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좀 더 강렬한 기운을 품었을 것이다. 이것은 뭔가… 달라.]

레온은 둘이나 되는 악마군주들을 도살했다.

성배기사단과 함께, 신들과 함께 그 광오한 힘을 가진 마신의 수족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었다.

혼돈의 군주 말루스.

쾌락의 군주 도트라돈.

그 하나하나가 한 세계를 끝장낼 수 있는 괴물들.

그것들의 기운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떨게 만들고 절규와 절망을 불러온다.

만약 군주급 악마가 이 게이트에 있었더라면 수준이 낮은 헌터들은 사자심장의 오라에도 절망했을 것이다.

[나의 기사여. 만신전의 신성이 네게 전할 말이 있다더구나.]

“당신의 기사가 귀를 기울입니다.”

[플르가 이 세계를 조사하고 싶다는구나. 그녀가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야.]

“플르께서 말씀이십니까?”

그 신성을 레온은 잘 알았다.

“플르께서 강림하시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겠군요.”

[그래, 방법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알다마다.

데메라 때처럼 단순히 화신체를 빙의시키는 것이 아닌 신성의 강림을 위해선 보다 확실한 것이 필요하다.

* * * *

다음 날 아침, 만신전 길드가 묵는 여관에 병사들이 찾아왔다.

“라이온하트 경! 라이온하트 경은 계시오!”

아침 일찍 일어나 있던 구대성이 레온을 깨우려 계단을 올랐다.

“폐하…! 병사들이 폐하를 뵙기를──”

그러나 이미 레온은 말끔히 차려입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그의 외견은 완활 한 광채를 띄고 있다.

“이, 일어나셨군요?”

“왕궁으로 가야하지 않느냐. 목욕재개를 했지.”

그래서 이렇게 반짝반짝 거리나? 구대성은 레온이 자신과는 참 인종부터 다른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라이온하트 경이시오?”

“흠, 그러하다.”

레온은 자신을 찾아온 병사들에게 일일이 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기사라는 신분도 맞는 말이었으니.

“재상 각하와 대장군께서 경을 뵙고자 하시오. 마차를 준비했으니 왕궁으로 갑시다.”

“좋다.”

어제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레온은 흔쾌히 수락했다. 레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스피너 경은 대기. 이곳에서 남은 훈련병들을 통솔한다.”

-끼룩.

“또한 왕성으로 향하는데, 시종도 없이 갈 순 없지. 자원자 셋을 시종으로 데려가겠다.”

참 알다가도 모를 발상에 헌터들이 술렁이던 것도 잠시, 이럴 땐 잽싸게 나서야 한다는 걸 사회경험으로 알고 있는 헌터들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기, 김진수 과장입니다!”

“김도한입니다!”

“구대성입니다!”

뒤따라 나선 이도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흠, 좋다. 문을 열어라.”

직장 경험이 많은 김진수 과장이 얼른 튀어와 마차 문을 열었다.

이 왕족 나리에게 ‘문도 열어줘야 합니까?’라는 상식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왕궁에 도착하자 시종이 예의를 갖추며 그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왕궁 시종장인 파르코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알현실로 모시겠습니다.”

한스를 따라 알현실로 가는 길에는 온갖 예술품과 장식들이 우아하게 놓여 있었다. 옛 유럽의 왕궁을 방문하면 이러할까 싶었다.

“흠, 왕궁의 주인께서는 심미안이 대단한 모양이군.”

“후후, 식견이 있으시군요.”

레온의 칭찬에 반응하는 한스 시종장. 그는 손님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왕궁의 역사를 설명했다.

“이곳 스페로 왕궁은 오랜 역사를 지닌 궁전입니다. 시조이신 피오라 여왕님 때부터 현재의 베아트리체 여왕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왕님들을 모셔왔지요.”

-여왕님이라네.

-시조부터 다 여왕님? 모계사회인가 봅니다.

-쉿. 폐하가 이쪽을 보신다!

시종장의 말에 서로 속삭이는 세 사람. 그런 세 사람을 레온이 지긋이 응시하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평민이 왕족의 가계에 왈가왈부하는 건 어느 나라의 예법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레온은 곧장 시종장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군. 정식 예법을 배워먹지 못한 무지렁이들일세. 상황이 긴박하다 하여 예법을 모르는 자들을 데려왔어.”

“허허, 괜찮습니다. 외지인이시니 그럴 수도 있지요.”

시종장은 가볍게 넘어갔으나 레온은 굳은 시선으로 세 사람을 응시했고, 들으라는 듯 혀를 찼다.

“쯧쯧… 아무리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눈치라는 것이 있을 진데.”

세 사람은 알현실에 도착할 때까지 닥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알현실. 그곳에는 여러 관료들이 레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큼직한 융단이 이어진 좌우에는 기사와 관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끝에 왕좌로 보이는 자리가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

가려진 천막에는 실루엣이 겨우 보였는데, 그 실루엣은 가녀린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라이온하트 경이십니다.”

레온과 그 일행들은 어제의 전투로 왕성에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악마의 군세에 맞서 영웅적인 활약을 한 의문의 집단. 레온이 스스로를 기사라 밝히지 않았다면 용병 집단으로 추정했을 것이다.

“흐음, 그대가 성문 앞 전투에서 활약한 라이온하트 경이신가.”

먼저 말을 건 것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화려한 복장의 중년 사내였다.

“본인은 왕국의 재상인 아키움 공작일세.”

왕국의 재상. 두말할 것도 없이 왕궁의 실세다. 그는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레온을 왕국의 기사로 임명하겠다는 제안서를 읊으려 했다.

레온이 입을 열기 전까지.

“여왕께 인사부터 올리겠다.”

레온은 곧장 여왕의 옥좌에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로막는 두 사람.

아키움 공작과 장군으로 추정되는 노기사였다.

“아무리 공을 세웠어도 어찌 외지인이 전하의 코앞까지 다가가려 하는가!”

재상의 호통에 레온을 따라온 세 사람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긴 해.’

‘갑자기 홱 돌아서 암살시도라도 할 수 있으니.’

‘물론 폐하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경호상 막아야 하긴 하지.’

레온은 지구와는 다른 상식을 가진 이세계 왕족이었으나 그렇다고 이치에 맞는 일을 부정하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재상의 거부에도 기분 나빠하지는──

“못 참겠군.”

“뭐라고?”

“여왕이시여, 본인은 라이온하트 왕국의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요. 무례임을 알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소.”

“아니, 이 작자가 대체 뭐라는 건가! 대장군! 어서 이 자를 끌어내시──”

그 순간, 레온이 재상의 얼굴을 붙잡았다.

“자, 잠깐…!”

이거 뭔가 데자뷰──

-꾸드득!

사자심왕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자 재상의 목이 돌아갔다.

1,080도 회전하여 원위치했다.

즉사였다.

“…….”

“…….”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데다, 쇼킹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회복이 늦다.

3초나 반응이 없자, 레온이 재상의 부들거리는 시체에서 팔을 뽑았다.

순수한 악력으로 사람의 팔이 뽑히는 진귀한 광경이었다.

‘왜 또 지랄인데?’

이번엔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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