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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0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89 >

군대를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어째서 간부들은 핸드폰을 쓰는데 병사들은 못 쓰게 하는 걸까? 어째서일과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부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돈 때문이다.

군대에는 지역, 학력, 소득, 자산과 상관없이 온갖 사람들이 몰려든다. 때문에 자산격차로 인해 병사들 간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돈이 필요한 행위를 아예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올랐서 그렇지, 예전에는 병장 월급이 10만 원도 안 됐다.

군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니 돈 쓸 일이 없지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살 수 있나?

PX에서 과자나 음료수만 사먹어도 그 돈은 금방 쓴다. 샴푸, 스킨, 로션 등은 물론이고, 겨울이 되면 각종 방한용품도 자신의 돈으로 사야 한다.(군 보급품은 수량도 적고 질도 떨어지니까)

월급만으로는 모자라 집에 돈을 부쳐달라고 하기도 하고, 휴가를 나가면 보통 부모님께용돈을 타서 쓴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상황이냐며, 나라를 지키는데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자기 돈을 써가며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군대를 가면 시간뿐 아니라 돈까지 날리니, 다들 기를 쓰고 군대를 빠지기 위해 노력하는 거겠지.

군인에게 최저임금 주자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가 나오면, 항상 예산 얘기가 뒤따른다.

TV에서는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해 내보냈고, 전문가들과 국방위 의원들이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금 드러난 것들을 보십시오. 그동안 줄줄 새나가는 돈만 아꼈어도, 병사들 월급을 크게 올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50만 장병에게 월 100만원씩 준다고 가정하면, 약 6조 원이 예산이 소요됩니다. 현재 임금체계 기준으로 2조 원이 이미 나가고 있으니, 1년에 4조 원이 더 필요합니다. 이는 전체 국방예산의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새나가는 돈을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매년 국방부 예산을 수조 원씩 늘려줬는데, 대체 그 돈은 어디로 간 겁니까?”

“장비와 무기 현대화사업에 쓰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무기살 돈은 있어도,병사들 월급 올려줄 돈은 없다는 거 아닙니까?”

“전투기 한 대, 전투함 한 대에 국가의 안보가 달려 있습니다. 월급 올려주느라 무기 구매를 줄이면, 군 전력저하, 안보 약화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이 나라는 북한에 적화통일 됩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병사들 월급은 왜 줍니까? 아예 주던 월급도 안 주고, 그 돈으로 전투기 수십 대 더 사면 그만큼 안보가 좋아질 텐데요.”

“그러니까 지금 주는 월급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돈 벌려고 군대 갑니까? 군대는 군대다워야 합니다.”

“군대가 군대다운 것과 월급 적은 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월급이 적어야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 금욕이 동반돼야 인내심도 길러지고 위아래 챙기는 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리 뻗을 때와 안 뻗을 때 구분하는 걸 배우면, 그게다 사회인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밑거름이 됩니다. 안 그래도 이 정부에서 자꾸 월급 올려주며 핸드폰 사용하게 해주겠다, 외출외박을 늘리겠다 하는 바람에 당나라 군대 됐다는 비난이 많아요.”

“미군 병사들은 한국군 병사들보다 몇 배의 월급을 받고, 핸드폰 들고 다니고, 평일에도 외출하는데, 그럼 의원님 말씀대로라면 미군도 당나라 군대입니까?”

“아니, 제 말은…….”

“정작 그렇게 말씀하시는 의원님께서도 군대를 면제 받으셨으니, 인내심, 위아래 챙기는 법, 다리 뻗을 때와 안 뻗을 때 구분하는 거 다 못배워 나오셨겠네요. 사회인으로서 제 역할 할 밑거름이 하나도 없는데,대체 국회의원은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뭐, 임마? 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 * *

현직 장성들의 사표가 줄을 이었다.

수사과정에서 횡령과 뇌물 등이 밝혀져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불명예제대 하게 되면, 퇴직금과 연금이 깎이게 된다. 그런상황을 피하기 위해 먼저 사표를 쓰는 것이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국방부는 사표를 슬쩍 받아주려 했다. 하지만 강진후가 ‘이적행위를 한 장교들의 사표를 수리해줘서 퇴직금과 연금을 챙겨주는 것은 종북빨갱이들이 할 법한 짓입니다.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있다면 꼭 제보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자, 국방부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수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관련자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리 저지른 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할 말이 있겠냐만,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다.

“군대에 놀러온 것도 아니고, 나 군생활 할 때는 그보다 더 안 좋은 피복 입고도 아무 불평불만 없었다.”

“20대는 소화를 잘 시켜서 유통기한 지난 급식을 먹어도 괜찮다.”

“미군은 전투화 같은 것도 다 사서 쓴다. 공짜로 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선배들은 더 해먹고도 아무 문제없었는데, 왜 우리한테만 이러냐?”

“수십 년 동안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이 정도 잘못으로 처벌받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심지어는 ‘어차피 전쟁나면 미군이 대신 싸워주기 때문에 성능이 좀 떨어지는 무기를 써도 별 문제없다’는 말까지 나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ㅋㅋㅋ 이 새끼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이야! 누가 들으면 강제노역이나 무료봉사한 줄 알겠네.

-월급 받을 거 다 받아 처먹으며 병사들 사병처럼 부려놓고 뭔 희생과 헌신이야?

-니들한테 들어간 세금이 아깝다.

-그동안 해쳐먹은 돈이나 다 뱉어내라~

-미군이 싸워줄 거면 그냥 군대 해체해라!

-총살만이 답이다!

-총알도 아깝다. 죽창으로 찌르자!

여론이 들끓자 공무원 사회는 일제히 긴장했다.

각 부처 장관들은 기강잡기에 나섰다.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사소한 접대와 친목모임까지도 주의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다들 불만을 가졌지만, 이미 국방부의 별들이 줄줄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본 뒤라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강진후가 또 똑같은 일을 벌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부정부패를 일소할 것을 주문했고, 대대적인 개혁이 시작됐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청렴도가 크게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디스와 S&P 등의 신용평가사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부패를 없애면 행정효율이 높아지고,투자유치와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 *

눈을 떠보니 침대에는 혼자였다.

난 몸을 일으켰다. 1층으로 내려가자 엘리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 일어났어요?”

“아까요. 아침운동하고 씻었어요.”

그래서인지 피부와 머리카락이 아직 촉촉했다. 엘리는 오늘도 예쁘구나.

“주말에도 부지런하네요.”

“요즘 바빠서 운동도 많이 못했어요. 오늘처럼 시간 날 때 해야죠.”

나도 주방에서 커피를 뽑았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만 해도 엄청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그냥 적당하다는 느낌?

만약 예전에 살던 주택에서 살라고 하면 못 살겠지. 이런 걸 보면 인간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난거실에서 창밖을내다보았다. 내리쬐는 햇볕과 푸르른 정원을 보니,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올해도 엄청 덥겠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트레이닝복을 입은 택규가 거실로 나왔다.

“어제는 왜 늦게 들어왔어?”

“엔리케랑 만났거든.”

“뭐 했는데?”

“네버랜드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서 퍼레이드까지 보고 나았어.”

“아, 그래?”

서성그룹에서 운영하는 테마파크로, 나도 전에 엘리와 함께 놀러간 적이 있다.

엔리케 공주는 예쁘고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성격이 활발하고 게임과 애니메이션,코스프레를 좋아한다.

따라서 게임과 애니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게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형이나 다름없다.

역시나 한국대에 편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대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연예계 데뷔나 광고제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학업에만 열중하고 싶다며 다 거절했지만,

실제로 강의 따라가랴, 한국어 배우랴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택규랑은 자주 만났다. 그 사이 많이 친해져서 엔리케 공주는 자연스럽게 택규를 오빠라고 불렀다.

하긴, 나이가 많으니 오빠가 맞긴 하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데, 택규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요즘들어 이런 생각이 드는데.”

“무슨 생각?”

“나 아무래도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것 같지 않아?”

“응?”

대체로 남자가 이런 말하는 건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말을 한 사람이 오택규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얼굴만 봐서는 전혀 인기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적어도 재산까지는 보고 판단해야 한다.

오택규는 OTK컴퍼니 2대 주주이자, 세계 두 번째 부자. 그 후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사람의 매력이란 하나가 아닌, 모든 것이 합쳐져서 나타난다. 외모, 성격, 지식, 습관, 매너, 말투, 직업, 자산 등등.

따라서 돈이 많다는 것은 분명 오택규의 매력이다. 물려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벌었다면 더더욱.

실제로 유럽에 있을 때도 택규는 왜 같이 안 왔냐고 묻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오택규의 인기는 세계적이었다.

재산이 탈한국 급이니, 인기도 글로벌하다랄까?

“왜 그렇게생각하는데?”

엘리도 재빨리 물었다.

“얼른 말해 봐요.”

“별건 아니고, 어제 같이 밥을 먹는데 엔리케가 갑자기 ‘오빠 우리 무슨 사이예요?’라고묻더라구.”

택규의 얘기에 엘리와 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엘리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니! 정말로 대체 무슨 사이기에 이런 질문을 한 거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잘 모르겠어서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지.”

확실히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옳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넌 무슨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택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썸?”

언어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것도 분절한다. 예를 들어 오전과 오후, 아침과 점심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기준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고 하면, 어디까지 친구였고 어디서부터 연인이었는지, 명확한 구분이 힘들다.

재밌는 사실은 하도 그런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아예 썸이라는 용어가 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어는 다시 현상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친구에서 연인이 됐다면, 이제는 중간에 썸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썸이 뭔지 알아요?”

내 물음에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처음에는 ‘썸녀’, ‘썸남’, ‘썸 탄다’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알아요.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또는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연인도 아닌 그리고 친구도 아닌’ 그런 관계잖아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네요.”

“외국에도 그런 개념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썸은 불안정한 관계잖아요.”

“그렇죠. 확정성보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친구나 연인은 그 자체로 관계의 목적이고, 안정적이다. 반면 썸이라는 관계는 과정은 될 수 있어도 목적은 될 수 없다. 때문에 항상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려는 성질이 있다.

뒤로 움직이면 그냥 친구나 남남 사이로 돌아가는 거고, 앞으로 움직이면 연인사이로 발전하는 거다.

사실 어느 정도 만나다 보면 사귀자고 고백을 하든지, 그만 만나자고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냥 만나고만 있었던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엔리케 공주가 먼저 저렇게 물었겠는가?

그러니 불안정한 썸이라는 관계를 넘어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라고 봐도 좋겠지?

택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민하영과 양하나도 전에 비슷한 질문을 했단 말이지.”

“뭐!?”

난 그 말에 또다시 깜짝 놀랐다.

대체 얜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친구로서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째서 배가 아픈 걸까? 기분 탓인가?

엘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요? 설마 부러움에 질투가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내가 오택규를 질투할 리 없어!

“그래서 넌 누가 좋은데?”

택규는 팔짱을 낀 채 한참을 고민하더니 물었다.

“꼭 한 명만 좋아해야 하는 거야?”

“…….”

와아, 이 자식 말하는 거 보게.

이러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귀화하겠다고 할 기세다. 물론 그쪽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하겠지만.

진정한 친구라면 가장 친한 친구가 일부다처의 길을 걷도록 놔둘 수는 없다. 이건 무조건 말려야 한다.

난 딱 잘라 말했다.

“당연히 한 명만 좋아해야지!”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89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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