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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6

EP.395 16. 기사 이반 (3)

칼디르를 떠난 괴물 서커스단이 향한 곳은 제국 동남부 물류의 중심지인 볼라크라는 도시였다. 볼라크는 제국의 모든 철도역에서 한 번의 환승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로 교통망이 밀집된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다.

칼디르에서 볼라크까지는 직통으로 15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간중간 멈춰서서 공연을 해야만 했기에 실제로 그들이 볼라크에 도착한 것은 칼디르를 출발하고 3주 뒤인 2월 하순 무렵이었다.

그들은 볼라크 중앙역에서 열차를 갈아타서 볼라크의 위성 도시인 벨리키 볼라크로 갈 예정이었다. 그곳에는 제국에서 제일 큰 노예시장이 있었다.

벨리키 볼라크의 노예시장은 TT3의 네 번째 스테이지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부두교를 뒤엎은 용사들은 도망친 원더스타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그가 어느새 완전히 부활하여 어느 도시에서 추종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그곳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황실 비자금에 대한 서브 퀘스트가 나오는 곳도 바로 거기였다.

‘하필 어제 그 얘기를 꺼낼 게 뭐람.’

니카는 엘라가 단원들에게 오늘 일정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무려 한 달이 지났건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여성의 것 그대로였다. 가슴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보아 약효가 떨어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남자 몸으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참모진으로부터 외출을 허락받은 시간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몸으로는 황태자 니콜라이로 복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더스타인에게 솔직히 사정을 설명하고 몸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면 뭔가 방도가 나올 수도 있지만, 선뜻 입을 떼기 쉽지 않았다. 그동안 한 짓이 있는데 본인이 사실 남자라고 어떻게 밝힌단 말인가?

그런데 때마침 그가 황실 비자금에 대한 단서를 입에 담았다. 물론 그가 직접 그것을 언급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요 며칠 내내 아나이스와 도스빌 남작에게 무언가를 묻고 다녔고, 니카는 그 질문들에서 그가 ‘출처 불명의 대규모 자금을 귀속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전에 황제 독살 미수범에 대해 찔러 보았던 것처럼 그녀는 몇 가지 키워드로 원더스타인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리고 곧 그녀는 그가 말하는 출처 불명의 대규모 자금이 황실 비자금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황실 비자금’은 ‘황제 독살 미수범’, ‘콤프라치코스’와 더불어 그녀가 원더스타인에게서 캐내고 싶었던 3가지 정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커스단의 행적과 내부 자료를 아무리 조사해 봐도 황실 비자금과 관련된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비자금에 관해서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가 마침내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그것을 안 이상 그녀는 여성화에 대한 고민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황실 비자금은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였다. 어차피 가슴 크기도 줄어들고 있겠다 한 달 안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녀는 나타샤에게 명령해 어제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다. 비자금에 대한 사소한 실마리라도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녀는 하루 만에 그의 비밀 중 하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신경에 상당히 거슬렸다.

‘쳇, 난봉꾼 같으니. 아냐 씨하고도 그런 사이였다니…….’

니카는 어젯밤 그가 아나이스와 밤을 함께 보냈다는 것을 나타샤로부터 듣고 이를 갈았다. 단원들 앞에서 따갑게 군 것이 모두 위장이었다니. 재정 회의는 개뿔. 지금까지 뒤에서 그렇고 그런 짓이나 하고 있었단 말이지.

‘유라크네 씨에게 일러 바쳐버릴까? 아니, 아니야. 지금은 잡음을 끼워 넣어선 안 돼. 황실 비자금만 아니었다면 다 터트려 버리는 건데……. 이 망할 양다리 양아치, 바람둥이, 으으, 젠장!’

니카는 오늘 유난히 자신이 신경이 곤두서 있고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원더스타인에 대한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랫배를 만지작거렸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속에 메스껍고 간헐적인 통증이 이곳에서 올라왔다. 마치 누군가가 쇠망치로 허리를 계속 후려치는 것 같았다.

‘망할 이 몸뚱어리.’

니카는 배를 꽉 움켜쥐며 통증을 누르려 애썼다. 아마도 별빛 가루의 부작용인 듯했다.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아, 아니야. 아무것도…….”

니카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타샤와 눈을 피하며 당황함을 애써 감췄다. 원래의 그였다면 저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 속내를 마치 소설책 읽듯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딱 그 표정에 외에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여자로 변한 뒤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와서는 가장 가까운 나타샤의 속내조차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도 약의 부작용인 듯했다.

이대로 가다가 정말 그냥 평범한 여자애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황태자 니콜라이로 돌아가지 못하고 귀족 소녀 니카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니카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황실 비자금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자자, 그럼 이제 30분 뒤에 역에 도착할 거야. 점심은 각자 알아서 먹고. 열차가 출발하기 15분 전에 다시 모이는 거야. 알겠지?”

엘라가 일정에 대한 설명을 끝마쳤다. 그들은 볼라크 중앙역에서 내려 3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곳에서 벨리키 볼라크 역으로 가는 열차는 30분마다 한 대씩 있었지만, 그들이 빌린 화물칸을 다른 노선으로 옮겨 결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예전처럼 화물차량을 차고지에 며칠이고 보관해둘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돌봐야 하는 대동물들이 10마리나 있었다. 모두 베티의 저주에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원래 원더스타인은 공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바로 노예시장으로 가서 황실 비자금 계좌를 손에 넣으려고 했었다. 괴물 서커스단의 재정으로 대동물들의 식비를 모두 감당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자칫 시간을 끌다가는 서커스단이 파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동물들이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밥값은 자신들이 벌기를 원했다.

돈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그들도 곡예사였다. 재주를 부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엘라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러분은 사이드쇼로 나서는 게 괜찮을 것 같네요.”

사이드쇼는 손님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극장 밖에서 하는 공연을 의미했다. 아가라페와 비슷한 개념이었지만, 아가라페의 경우는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공연의 주요 장면만 편집해서 먼저 보여주었고, 사이드쇼는 본 공연과 전혀 별개의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안 그래도 엘라는 몇 달 전부터 사이드쇼의 도입을 고민하고 있었다. 괴물 서커스가 가진 한 가지 약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진입 장벽이었다. 괴물 서커스는 그 소재가 주는 부담감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매 공연에서 최소 2, 30%는 흥행에 불이익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가라페를 도입하자니 괴물 서커스의 본 공연이 주는 맛이 죽어버릴 게 뻔했다. 공포란 예상 가능한 구간이 많아지면 재미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드쇼를 진행하고 싶어도 마땅히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루엘로가 인형 옷을 입고 나서서 광고지를 나눠주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었다.

하지만 지금의 동물들이라면 사이드쇼를 충분히 시도해볼 만했다. 그들은 다들 한때 일류 조련사였던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엘라의 지도가 곁들어지면 본 공연에 필적하는 사이드쇼를 만들 수 있었다.

동물들이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공연의 의지를 표명한 덕분에 엘라도 이것을 그들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덕분에 원더스타인은 ‘공연을 할 때마다 저주 역병 발병 확률’이 실패 페널티로 추가되는 역대 가장 위험한 서브 퀘스트 하나를 무사히 처리할 수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서 덕분에 원더스타인은 이제 키르쿠스의 눈과 데볼루트, 저주 역병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원작처럼 괴물 단원들을 비웃음거리에 혐오 대상으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녔다면 공연으로 인한 데볼루트를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원작의 그 검은 마도사가 보여주었던 힘에 비해 수집 가능한 데볼루트가 너무 모자란다고 했다. 사실상 그는 TT0를 최고난도로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가 단원들에게 그런 비참한 괴물 서커스를 시켰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에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TTT 최고수의 자존심이 있었다. 저난도 혜택 따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허수아비로서 겪은 일이 있었다. 절대 그런 역겨운 서커스만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동물들의 협력에 힘입어 그들은 기존의 공연 방식에 사이드쇼를 곁들일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흥행력이 높은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덕분에 지난 3주 동안 서커스단의 명성도 상당히 많이 올랐고 다음 보상이 나오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알겠지? 역 경비원이 불심검문을 하면 니카 군이 말한 대로 여권의 노란 도장을 내밀면서 아무 외국말이나 지껄이는 거야. 이곳은 무역도시니까 그러면 괜히 시비가 걸리지 않고……이봐, 거기?”

단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던 엘라는 단원 중 한 명이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적당한 단원은 엘라가 말을 걸었는데도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엘라는 그녀가 조회 시작부터 내내 저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늘 쓰고 다니는 병아리 모자에 달린 인형 눈알이 자신 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뭐야, 루리, 공지를 전달할 때 딴짓하기 있기, 없기?”

“우앗, 에, 엘라 언니!”

“뭔데 그렇게 재밌게 읽고 있었어?”

엘라는 루엘로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봤다. 조잡한 제본 방식과 손글씨의 형태로 보아 누군가 손수 제작한 것 같았다.

“어디서 난 거야?”

“이거? 헤헷, 도스빌 아저씨가 쓴 동화책이야.”

“뭐? 저 인간이?”

엘라가 구석을 돌아봤다. 도스빌 남작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재빨리 딴청을 피우는 척을 했다.

루엘로가 가방에서 손에 든 것과 같은 종류의 책들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두어 달 전에 도스빌이 혼자 끄적이던 공책을 훔쳐본 적이 있었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알려달라고 했더니 직접 이야기책으로 만들어서 그녀에게 주기적으로 선물해주었다는 것이다.

“뭐야, 당신, 보기보다 애한테 약한가 보네.”

“크흠, 뭐, 저 머리카락 괴물이 협박해서 억지로 쓴 건데…….”

도스빌은 얼굴을 붉히며 엘라의 시선을 피했다.

“아저씨가 쓴 동화책 무척 재밌어. 삼손도 즐겁게 읽었는걸?”

“흐, 흥. 그, 그냥저냥 읽을 만하더군.”

루엘로의 머리카락이 쑥스러운 듯 그녀의 어깨 뒤로 몸을 숨겼다.

엘라는 두 부끄럼쟁이를 내버려 두고 동화책을 넘겨봤다. 그것들은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작품들을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축약하고 생략한 게 아니라 대사나 진행이 어린이들에게 맞게 꽤 재치 있고 우습게 바뀌어 있었다.

“오, 도스빌, 당신에게 이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는데.”

엘라의 감탄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나이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스빌 남작은 원래 문학부 출신이에요.”

“뭐라고?”

“무, 문학부?”

몇몇 단원들이 웃음을 흘렸다. 평소 그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핫핫, 도스빌이 문학 소년이었단 말이야?”

미노바가 유난히 과장되게 웃어 보이며 도스빌을 향해 이죽거렸다. 그러자 남작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시, 시끄러워! 그냥 성적 맞춰서 들어간 거야! 무, 문학 따위 누가 좋아하는 줄 알고……. 학부 졸업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봤어!”

“아저씨 공책 수십 권은 됐어요. 10년 치는 되는 것 같았는데…….”

“푸핫핫, 졸업해도 작가의 열정은 식지 않았구먼!”

“이 입 싼 꼬맹이! 다음 권 안 써준다!”

“어어, 죄……죄송해요…….”

“이 자식, 우리 딸을 울려?”

“끄아악! 써, 써 줄게! 써 줄 테니까……크헉!”

원더스타인은 미노바에게 허리꺾기를 당하는 도스빌 남작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도스빌의 캐릭터 프로필의 직업란에 ‘작가’라 되어 있던 게 그런 이유에서였나.

그는 의문 하나가 해소된 것을 기뻐하며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다음 열차를 타기 전까지 남은 3시간 동안 그는 노예시장에서 실행할 황실 비자금 회수 계획을 검토할 생각이었다. 게임에서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하여 썩 괜찮은 계획이 나왔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시작하기 전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그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 체포되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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