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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6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95 >

캘리포니아에서의 일정을 끝마친 나는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난 내가 본 예지에 대해 생각하며 부동산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난 집에 도착해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엘리가 앞에 서있었다.

“저 왔어…….”

엘리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한참 동안의 키스가 끝난 후 엘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그 여자가 아무 짓도 안 했죠?”

여기서 그 여자란 안젤리나 틴터를 말하는 거겠지?

“그럼요. 문 앞에서 바로 도망갔어요.”

“미국은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혼자서 심심했어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당연히 보고 싶었죠.”

“할리우드 스타들 중 누가 가장 예뻤어요?”

“거기 있는 여자들 다 합친 것보다 엘리가 훨씬 더 예뻐요.”

“치잇, 거짓말.”

투정부리듯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눈은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택규가 말했다.

“친우여. 혹시 난 안 보이니?”

* * *

우리는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았다.

엘리는 내가 돌아온 기념이라며 와인을 한 병 땄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며 와인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계속 예지로 본 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TV에서는 서울이 외국인이 살기에 비싼 도시 4위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택규가 물었다.

“정말로 외국인이 살기에 비싸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사실 서울 물가 자체는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에요. 하지만 주거비는 세계 웬만한 도시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요.”

골든게이트는 외국계 금융사라는 특성상 외국인 직원 비율이 높다. 회사에서는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거주비 일부를 지원한다.그래서 현주 누나와 엘리가 호텔에서 지낼 수 있었던 거고.

참고로 호텔을 나와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지금도 거주비는 계속 나오고, 엘리는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주거비가 비싼 건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외국인이 보기에 서울 집값은 비싼 편인가요?”

“비싸죠. 그래도 홍콩보다는 나아요. 홍콩은 진짜 말도 못해요. 작년에 결혼한 친구가 침사추이에 원룸을 하나 샀는데 얼마였는지 알아요?”

“얼마였는데요?”

“1천만이었어요. 그게 말이 되냐고 물어보니, 취안완의 낡고 좁은 원룸도 다들 500만씩은 한다는 거예요. 빅토리아피크나 리펄스베이 등에 있는 초호화 주택들은 20억, 30억도 넘구요.”

엘리가 말한 금액의 단위는 당연히 원이 아닌 홍콩달러. 1천만 HKD는 약 15억 원, 20억 HKD는 약 3000억 원이다.

홍콩의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높긴 하지만, 월급이 크게 차이 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제 홍콩에서 월급쟁이가 집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봐도 좋다.

엘리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다 에셋파킹 때문이죠.”

에셋파킹(Asset Parking)이란 마치 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하듯, 자산을 안전한 곳에 두는 것을 뜻한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성장이 빠른 만큼 수많은 부호들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 돈을 자기 나라에 보관하자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뭔가 불안하다. 과거 한국처럼 IMF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화폐가치 폭락으로 자산가치가 순식간에 절반 이상 사라질 수도 있고.

때문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안전한 선진국으로 옮겨두고 싶어 하고, 그래서 미국은행에 예금하거나, 일본주식을 산다.

그중에서도 부동산은 거액의 현금을 쉽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투자이민을 허용하는 나라의 경우 부동산 구매금액에 따라 영주권이 나오기도 하고, 구매한 부동산은 임대를 주거나 자녀들 유학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1999년에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집값폭락을 우려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영향으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고 부동산이 하락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왜냐하면 중국자본이 홍콩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호들은 너도나도 홍콩에 집을 사들였고, 그로 인해 집값은 수직으로 치솟았다.

반환 이후 부동산 상승률은 무려 400퍼센트가 넘었다!

이게 평균치라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오른 곳은 10배도 넘게 올랐다.

게다가 중국인들도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며 주거난마저 심각해졌다. 홍콩은 도시국가라는 특성상 주택을 추가공급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등장한 게 한 가구를 여러 개로 쪼개 쓰는 닭장 같은 집이나, 3평 정도의 초소형 아파트다.

“신흥국 부호들이 선진국 부동산에 투자하며, 홍콩뿐 아니라 뉴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벤쿠버, 토론토, 시드니, 멜버른,런던 등의 집값이 다 폭등했지.”

택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서울은?”

“서울 역시 부동산값이 폭등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른 도시에 비해 그렇게까지 심한 편은 아니야.”

한국 부동산 역시 외국인들의 투자대상이 되고 있긴 하지만, 상업용이 아닌 거주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아직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요인이 있다. 하나는 북한이라는 위험요소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은 영어권이 아니니까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 역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만약 한국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했다면, 집값이 지금보다 수십 퍼센트는 더 올랐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국의 주거용 부동산 시장은 세계리그보다는 국내리그에 가깝다.

엘리는 살짝 풀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진후는 부동산에 별로 관심 없지 않아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보트는 부동산투자는 잘하지 않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주식이 부동산보다 수익이 낫다고 여겼고,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워렌 보트의 경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동산을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투자처로 여긴다.

나 역시 워렌 보트와 마찬가지로 부동산투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 회사가 가진 부동산이라고 해봐야 본사건물 하나가 전부고,내가 살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난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실리콘밸리 공사하는 거 보니, 관심이 좀 생겨서요.”

* * *

난 술에 취한 엘리를 방에 재운 다음,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소파에 누워서 잠들려는 택규를 깨웠다.

“우리 본사를 옮겨야 할 것 같아.”

택규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응? 갑자기?”

“뭐, 바로 옮긴다는 건 아니고.”

“어디로? 외국으로?”

“외국은 아니고 국내로.”

엄밀히 말하면 여기가 본사는 아니다. 법인소재지는 조세피난처인 델라아일랜드로 되어 있고, 여기는 그냥 서울 사무실일 뿐이다.

따라서 본사를 옮긴다는 것은 법인소재지를 옮기는 게 아니라, 그냥 일하는 건물만 옮기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반겨줄 곳은 많다. 그만큼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기승전결이 없지 않나?”

내가 생각해도 좀 뜬금없긴 하다. 사실 기승전결도 없고. 하지만 얘를 납득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예지를 봤어.”

그 말에 택규는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진짜?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말이야.”

너무 오랜만이라 나도 좀 반가웠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OTK컴퍼니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래.”

“다른 곳? 어디?”

내 말을 들은 택규는 또다시 놀랐다.

“뭐? 거기로 본사를 옮긴다고? 거기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예지를 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택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드넓은 허허벌판 위에 OTK컴퍼니 본사건물 하나만 딸랑 서 있게 되는 거야?”

“설마. 본사를 옮긴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 이유가 뭔데?”

난 그동안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을 말했다.

“앞으로 그곳이 한국의 금융과 산업의 중심이 된다면?”

“거긴 아무것도 없잖아.”

난 미국에서 본 광경들을 떠올렸다.

실리콘밸리는 모든 것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었다. 그곳에 본사를 두고 있던 IT 대기업들은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기꺼이 기술과 자본을 쏟아 부었다.

실리콘밸리는 붕괴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최첨단도시로 재탄생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으니 모든 걸 새롭게 만들 수 있겠지.”

* * *

어느 정도 계획의 윤곽을 잡고 난 뒤, 난 팀장급 이상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난 그 자리에서 선언을 하듯 말했다.

“신도시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내 말에 택규를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긴, 이게 뭔 심시티도 아니고, 갑자기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니 어이없고 황당하겠지.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마이클 리 팀장이 물었다.

“신도시라면 어느 정도 규모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인구는 최소 50만 명에서 100만 명. 위성도시가 아닌 자족 가능한 산업도시입니다.”

또다시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면 규모가 만만치 않을 텐데…….”

서울 인구가 1천만 명이다보니, 50만 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만 돼도 대도시로 분류된다.

만약 100만 명이 넘는다면, 그야말로 광역시 하나를 새로 만드는 셈이다.

상엽 선배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요?”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토지확보부터 불가능합니다. OTK컴퍼니가 부지 매입한다는 소문만 퍼져도 전국, 아니 전 세계 땅투기꾼들이 몰려들 겁니다.”

경영권 분쟁이 붙어 주식을 매입한다 치면, 그때부터 주가는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수직으로 치솟는다.

이는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 개발을 목적으로 매입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10만 원짜리 땅이 100만 원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알박기 해놓은 다음 강제수용한다고 하면 드러누워서 ‘강진후가 사람 죽이네. 내 땅 뺏어가네’ 소리치며 목숨 걸고 농성할 겁니다.”

개발을 할 때 한 지역의 모든 토지를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통 7, 80퍼센트를 매입하면 나머지는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게 꼭 법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땅주인이 못 나가겠다고 드러눕고 버티면 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물리력을 동원해 끌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상엽 선배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문제는 OTK컴퍼니가 돈 많은 거 세상이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땅주인들이 원하는 금액 다 맞춰주려면 1천조 원이 아니라,세상에 있는 모든 부를 다 가져다 줘도 부족합니다.”

이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재개발이나 택지개발에서 알박기는 늘 있어왔다.

서상원 팀장이 말했다.

“공장이나 상업시설에 대해 주변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얼마 전, 네오틴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철회하지 않았습니까?”

네오틴은 용인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변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전자파로 인해 아이들 건강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네오틴은 여러 차례 주민공청회를 열며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기준치 이하고, 스마트폰과 전자레인지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보다도 낮아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변에 학교가 있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보상을 바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가 극심해지자, 결국 네오틴은 데이터센터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다.

비슷한 사례는 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AMZ는 원래 제2본사로 뉴욕을 낙점했으나, 집값폭등과 거주여건 악화 등을 우려한 주민들로 인해 지금 표류상태다.

서상원 팀장이 한마디 했다.

“토지보상이랑 주민반발을 해결하는 사이 사업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겁니다. 아무리 OTK컴퍼니라고 해도 한 기업이 진행하기에는 무모한 사업입니다.”

상엽 선배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공권력을 투입해도 택지지구 하나 개발하는 데만 최소 몇 년이 걸립니다. 그 과정에서 인명사고라도 터지면 여론은 여론대로 악화될 테구요. 그럼 기레기들이 OTK컴퍼니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땅주인들의 인권을 짓밟고 강제로 쫓아내내 어쩌네 신나게 기사를 써댈 겁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문제는 토지확보와 주민들의 반대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땅주인도 없고, 주민 반대도 없는 곳이면, 신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물음에 상엽 선배는 황당해했다.

“대한민국에 주인 없는 땅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밑에서 솟아나지 않은 이상.”

“딱 한 곳 있잖아요. 밑에서 솟아난 땅이.”

“예?”

농담 같지만, 놀랍게도 진짜다.

난 태블릿에 지도앱을 켜서 보여주었다.

“바로 여기예요.”

< 미래를 보는 투자자 395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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