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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5화 조우

5화 조우

카인은 소년을 가만히 노려봤다.

흙먼지로 뒤덮였지만 그럼에도 찬란한 금발.

호수처럼 푸른 눈.

카인은 그 눈동자를 기억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저 금발 소년은 지난 회차의 이 시점에는 이곳을 찾지 않았었다.

‘녀석이 온 건 사흘 후, 차원의 그림자들이 광산을 습격했던 날.’

그날 카인은 유리창 안을 기웃거리는 소년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던 벽안.

그러나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두 개의 푸른 보석은 신기루처럼 종적을 감췄다.

묘한 아쉬움을 느낀 카인은 숙소 밖으로 나가보려 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발소리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

‘······.’

카인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저 소년이 사흘 뒤가 아닌 지금 이곳에 있는 거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지난 회차와 달라진 부분이 생긴 건가. 그 영향으로 미래가 바뀐 걸까.

카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카인의 눈빛을 봤다.

지금의 카인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나, 좌우지간 정상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카인은 소설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카인은 ‘오를리안 왕국’을 근거지로 하는 어느 용병단 소속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때의 카인은 15세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장을 죽이고 용병단을 장악한다.

그 화에 좋은 댓글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죽기 전의 용병단장이 카인을 자식처럼 대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카인보다는 오히려 독자들의 댓글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다시 묻지. 누구냐 넌.”

카인의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내 의식이 현재에 집중되며 녀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는······ 그때의······?’

그 말은 즉, 회귀 전의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 카인이 나를 봤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카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회귀했다. 아마도 그 시커먼 괴물들의 손에 당해.

거기에 더해 카인은 지난 회차의 이 시점에는 내가 이곳에 온 적이 없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카인은 이미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녀석의 손끝이 번득인다. 단검이다.

카인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빨랐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발목에 가해지는 충격과 함께 부웅! 내 몸이 떠올랐고, 어느새 나는 차가운 지면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말해라. 너는 왜 ‘오늘’ 이곳에 왔지?”

서늘한 날붙이가 내 목에 드리워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날카로운 살기가 카인의 눈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녀석은 서슴없이 나를 죽일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죽을 경우에 대한 보험이 있다.

‘카인과의 동기화.’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니, 죽어서는 안 된다.

당장의 내 목표는 광산을 탈출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바람은 훗날 카인이 벌일 대재앙을 막고 소설의 새로운 결말을 맺는 것이다.

그런데 카인과 처음 조우하자마자 녀석의 칼끝에 내 운명을 맡긴다고? 동기화 스킬 하나 믿고서?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카인을 안다.

녀석은 무한회귀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소서러(Sorcerer)’다.

한데 아직 각성도 하지 못한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나는 영원히 카인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회귀는 평범한 능력이 아니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 중, 회귀 능력자가 ‘오직 카인뿐’이라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압도적인 권능을 손쉽게 카피해 사용할 수 있다고?

그럴 리가.

‘무언가가 있을 거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날붙이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카인의 눈에서는 일말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목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뜨거웠다.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오히려 차가워졌다.

나는 카인에게 이입했다. 카인은 내가 수없이 반복해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나는 눈앞의 카인 그 자신보다도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기울어집니다.]

밤하늘이 내려앉고 지면이 솟았다.

나와 카인을 중심으로 세계가 공전했다.

나는 나의 무의식이 어딘가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스킬이 해금됩니다.]

.

.

.

[통찰 Lv.1]

무의식이 잠긴 자리로 의식의 염(念)이 피어올랐다.

[대상에게 통찰을 시전합니다.]

그러자 떠올랐다.

————————

◎ 카인 ■■■■■ [14세], [Lv.15]

◎ 속성: [■■]

◎ 특성: [회귀/1■회차], [■■■], [발달된 감각], [■■■], [승부욕], [■■■ ■■], [회복력], [■의 재능]

◎ 적성: [검술 Lv.2], [■■■], [■■], [■■],[도끼술 Lv.1], [승마술 Lv.1], [■센■■■ 격투술 Lv.2]

◎ 일반 스킬: [■■ Lv.1], [■■ Lv.1], [밀어내기 Lv.2]

◎ 전용 스킬: [■■ Lv.1]

————————

“뭘 하고 있는 거지? 넌.”

카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나는 어금니를 악다물며 웃었다. 이제 나는 카인과 동기화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카피할 능력은 회귀가 아니다.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센■■■ 격투술 Lv.2]

조금 전 카인이 나를 쓰러뜨린 기술.

저 스킬만이 이 상황을 회귀 없이 극복할 수 있다.

[스킬명이 완전해야 카피할 수 있습니다.]

‘하센베르크 격투술.’

[하센베르크 격투술(Lv.2)을 카피합니다.]

내 몸에 낯선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 위험천만한 상황의 대처법이 머리에 그려졌다. 나는 뱀처럼 목을 비틀어 단검을 흘려냈다. 두 다리로 카인의 목을 휘감았다.

“이게 무슨······!”

카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녀석의 동요한 모습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다리에 질근 힘을 주자 녀석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카인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녀석은 목이 졸린 상태로 단검을 휘둘렀다.

나는 단검을 피하며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카인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나는 소매를 찢어 목의 상처를 동여맸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카인이 배를 쥐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사나웠다. 하지만 무턱대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단 한 번의 반격이었음에도 그는 내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일단 대치 상황은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나를 향한 카인의 의심을 지워야 한다.

이대로 카인과 척을 지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카인을 죽일 수 없다.’

실력 차가 완연한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설령 훗날의 내가 카인보다 강해진다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카인을 죽인다면, 녀석은 회귀 후 나를 일 순위 타깃으로 삼을 테니까.

‘그러고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죽이려 들 테지.’

회귀의 힘을 등에 업은 카인은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동기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기 전에 죽으면 회귀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영원한 죽음.’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카인의 의심을 지워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마법처럼 나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숙소의 지붕을 얼키설키 뒤덮은 덩굴.

그 순간 확, 하고 머릿속에서 등불이 켜졌다.

“조금 전에 네가 물었었지? 왜 이곳에 왔느냐고.”

***

무한회귀의 세계관에는 ‘아스트라(Astra)’라는 열매가 있다.

이 열매는 ‘정력에 좋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했는데, 작가는 아스트라만 보면 환장하는 남녀를 나름의 개그 요소로 써먹었었다.

하지만 아스트라는 마력을 숨긴 영물(靈物)로, 훗날 마법 재료로 고가에 거래된다.

또한 영물답게 아주 제멋대로 자란다.

아스트라 덩굴은 일 년 내내 열매를 안 맺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하루아침에 수십 개의 완숙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열매를 맺는 타이밍이 카인의 회귀마저 무시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직감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리메이크를 시전합니다.]

‘리메이크는 내가 소설 속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리메이커가 세계의 현상에 간섭합니다.]

세계가 진동했다. 나의 주위가 흑백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활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원시 숲에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짐승의 무리 같았다.

【······데미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지금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음을······】

나는 그 활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더 이상 그것은 글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이 세계의 원자 같은 것, 세계의 기본 요소로 변해 있었다.

【······데미안의 손이 덩굴을 향해 펼쳐졌다. 카인의 눈에서 의심과 경계가 번갈아 빛났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진동하는 덩굴 위로 완숙한 열매가 맺혔다.】

눈을 깜빡인 순간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요정처럼 뛰놀던 활자도, 흑백 사진 같던 풍경도 모두 사라졌다.

바뀐 것은 오직 하나.

마법처럼 열매를 맺은 덩굴뿐이다.

“······감독관에게 들었거든.”

펼쳤던 손을 내리며 내가 말했다.

“무엇을 말이지?”

“조금 전 감독관의 눈을 피해 다니다 우연히 들었어. 이곳에 아스트라 열매가 맺혔다고. 그래서 와본 거야.”

“서투른 거짓말이군.”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카인이 단검을 고쳐 쥐었다. 그 후의 일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휙! 단검이 휘둘러졌다. 아슬아슬하게 다가온 칼날을 막으며 나의 팔이 진동했다. 카인의 공격은 빠르고 예리했지만, 나의 마석 단검은 그의 모든 공격을 흘려냈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가 균형을 이루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숨이······!’

호흡이 가빠졌다. 몸 안의 기운이 급속도로 쇠락했다. 동기화의 후유증일까. 아니면 리메이크의 후유증일까. 하지만 견뎌야 한다. 카인이 나의 격투술을 알아볼 때까지는.

덥석, 카인이 나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나는 이후에 벌어질 일을 직감했다. 세상이 빙글 회전한다. 이대로라면 나는 다시 바닥에 널브러질 것이다.

[하센베르크 격투술(Lv.2)이 반격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내 몸이 제멋대로 반응했다. 갑작스럽게 카인의 팔을 꺾으며 끌어당겼다. 당황한 카인의 기운이 등 뒤로도 느껴졌다. 그런 빈틈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카인의 팔에 두 다리를 끼우고, 비틀었다. 카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너는······!”

우리의 몸이 동시에 지면으로 무너졌다. 나는 카인의 팔을 부러뜨릴 기세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유령 같은 동작으로 카인이 팔을 빼냈고, 나는 퉁기듯 상체를 일으키며 단검을 뻗었다.

카인의 대응도 나와 같았다. 그 결과 빛처럼 번득이는 두 단검이 서로의 목을 겨눴다. 우리는 사나운 눈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카인이었다.

“······너. 그 격투술은 누구에게 배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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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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